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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장난 -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ㅣ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이경화 지음 / 대교출판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도 중학교 시절에도 ‘왕따’ 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항상 외톨이는 한 명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워낙 존재감이 없고 왜소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외톨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심각한 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처를 받았던 것도 아닌, 숫기가 없어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던 어린 아이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던 나는, 여러 아이들과 우루루 몰려다니는 아이들 중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이 좋았는지 분위기가 그랬는지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학년 때는 외톨이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습 분위기는 아니였어도 교실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그렇게 내가 경험했던 ‘외톨이’ 라고 하는 부류의 아이들은 공부를 조금 못하거나 입고 다니는 옷이 좀 지난 것이라거나 씻고 다니지 않는다거나 하는 뭔가 일반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꼬투리로 삼아 암암리에 경계가 지워졌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내가 경험했던 것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왕따’ 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라 어쩐지 무서운 느낌이 든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목소리 높여 ‘왕따’ 는 더럽다느니.. 어디가 이상하다느니..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실은 정말 더럽거나 어디가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위생관념이 없더라도 조금 배려해주고 만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모르는걸까. 그러나 아이들이 ‘더럽다’, ‘냄새난다’ 고 하는 말은 실제로 그래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꼬투리를 붙여서 ‘왕따’ 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다른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야마와키 유키코의 <나쁜 교실> 이란 책을 인터넷으로 알게 된 후, 바로 신청해서 받아보았다. 그 책은 작가가 집단 따돌림을 당한 아이를 상담한 내용을 적어놓은 책인데 아이들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다른 데에다 풀어버리고 싶어서 그렇게 약자를 공격한다고들 했다. 어른들 세계에서만 보았던 양육강식이 사실은 아이들 세계에서 더 잔인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작가가 상담했던 그 아이는 반 아이들이 냄새난다고 놀리고 급식에다 벌레를 몰래 넣어놓고 밥을 먹으면 벌레를 먹었다고 놀려서(실제로 먹지 않았는데도^^;)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렸었다. 그런 아이가 밥을 안 먹고 학교도 가기 싫어해서 걱정된 부모님이 상담 받으러 왔는데 그 때 부모님께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학교에 대해 원망하고 책망하기 급급해서 아이가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명했던 그 아이의 부모님께서는 학교랑 잘 연계해서 집단따돌림을 주도하는 아이를 변화시켜 나중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친구’ 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좋게 끝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당하는 아이나 가하는 아이나 어른에게는 절대 알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지독한 장난> 의 주인공 ‘준서’ 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힘겹게 살아가시는 부모님을 걱정끼쳐 드리기 싫어서 집단따돌림이 너무 심해져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폭력에 저항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이해되지 않을 뿐. 아마 내가 당했어도 ‘준서’ 랑 똑같이 반응했을 것 같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폭력에 몸이 굳어져버려 미처 저항해도 된다는 것을 모르는, 아니 저항해야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머릿 속에 입력되지 못하면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보고 있으려니까 신은경, 문정혁 주연의 영화 <6월 일기> 가 생각났다.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도중에 밝혀지는 집단따돌림의 실체를 그때 처음 보았다. 그전까지는 ‘왕따’ 가 심각하단 소릴 들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 영화에서 알게 되었다. 집단 구타는 일상생활이고, 걸레 빤 물에 얼굴을 처박지를 않나, 여학생이(주인공은 남학생이다..) 성적 수치심까지 주는 등...내 상식으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식으로 상처를 주면 가해자는 정말로 즐거운 걸까. 왜 그런 일이 자행되는지 정말....그런데 그것보다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 모든 일과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카페에 올리고 서로 의견까지 교환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피해자 엄마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그 영화는 내가 예전에 다녔던 학원 선생님과 같이 봤는데 그 이후에 정말 아이들이 소중해 보였다. 삐뚤게 자라지 말고 항상 깨끗하고 행복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 그런 악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론 어른들의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가정에서 소중하게 사랑받지 못하고 손찌검을 당하거나 남과 비교만 당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그것이 상처가 되거나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남에게 상처주기를 일삼는다. 무료하고 재미없는 현실이 싫어서, 자기가 있는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다른 것으로 잊기 위해서 등 어떤 이유이든 자신이 불행하기에, 자신이 사랑받아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남에게 자신이 받은 그대로를 주는 것이다.
<지독한 장난> 의 또 다른 주인공 ‘강민’ 도 그랬다. 강민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공부를 못한다고 걸핏하면 손찌검을 하는 교수인 아버지와, 왜곡된 사랑으로 덮어놓고 자기 자식만 감싸는 어머니 밑에서 뒤틀린 자아상을 만들어낸 그는 오히려 ‘왕따’ 인 ‘준서’ 보다도 더 불쌍한 아이이다. 초등학생 때 왜소한 몸 때문에 동네 형에게 구타당하고 도둑질까지 했던 피해자인 그는, 그 상처 때문에 덩치가 커진 지금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었다. 사실 사랑받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데서 오는 뒤틀린 즐거움을 즐기는 그것이 사실 사랑해달라고 소리치는 행동이 아닐까. 그 중에서 특히 ‘강민’ 이 ‘김현주’ 수학 강사에게 했던 못된 짓, 그리고 ‘김현주’ 강사가 ‘강민’ 에게 했던 못된 짓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나온다. 학벌이 좋지 못한 강사이기에 학원장과 다른 강사에게 실력있는 강사임을 보이기 위해 ‘강민’ 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그녀의 모습이 사실은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아닌가 해서...
아이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존재임에도 어른들은 가끔 그것을 잊는다.
어리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어리기에 사소한 상처에도 크게 아파한다는 것을...
이제 어른들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 관심, 애정, 격려... 이 좋은 말을 매일 해도 다 못하고 죽는 우리인데 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느라 정작 더 중요한 일에 힘을 못 쓰는 걸까.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해서 앞으로 순탄한 인생을 살았으면 싶고, 남의 자식보다 더 뛰어나게 키우고 싶고, 오로지 공부만 하게 다른 모든 일은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은 잘 알지만 머리만 키우고 마음이 뒤따라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아이가 성장하고 세상을 경험할 때 쉽게 좌절하고 만다는 것을 왜 모르시는 걸까. 아이가 남을 배려하고 자신이 아픈 것처럼 남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항상 격려해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게끔 도와주고 설령 성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 그래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더라도 - 아이니까, 사랑스런 나의 아이니까 참아주고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음을 인정해주고 알게 해준다면 아마 ‘왕따’ 를 당할 아이도, ‘왕따’ 를 만들 아이도 없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