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당무
쥘 르나르 지음, 연숙진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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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에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머리가 타는 듯이 붉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한, 한 마디로 너무나 못생긴 아이였다. 그런 그에게는 그를 너무나 못살게 구는 엄마가 있었다. 자기가 배아파 낳은 아이이면서도 그가 못생겼다고 미워하는 것이었다. 사실 정이 안가는 얼굴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학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마 그 엄마는 그 아이가 못생겼다거나 말을 안듣는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에 학대를 한 것이 아니라 그 학대는 결혼 생활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 아니였을까.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경우를 가끔 본다. 남편이 속썩이면 그것을 아이에게 풀고 그러면 그 아이는 비뚤어지거나 위축이 되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 연쇄작용을. 그래서 나는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존재이다. 그런 아이를 엄마의 잘못된 양육 방법 때문에 망친다면 누구의 탓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훌륭한 사람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아이가 훌륭하길 바란다면 우선 엄마가 먼저 훌륭해야 할 것이다. 르픽 부인이 결혼생활에서 불행했다면 애꿎은 아이를 닥달할 게 아니라 무엇이 문제였는지 밝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를 사랑으로 키웠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집단따돌림에 관한 우리 작가의 책을 보았다. 이런 소설류는 일본이나 중국의 작가는 봤어도 우리 나라 작가가 쓴 것은 보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었다. 이경화 작가의 <지독한 장난>. 그녀가 말하는 집단따돌림은 사실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였다. 왜곡된 부모의 관심 속에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 더군다나 몸집이 작아서 덩치 큰 아이들에게 구타를 당한 아이가 나중에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보면서 조그만 상처가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지면서 점점 커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르픽 부인이 자신의 불행을 모두 약자인 홍당무에게 잔인하고도 끔찍한 방법으로 퍼붓는 것처럼. 요강을 두지 않고 오줌쌌다고 아이를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일, 선물을 받을 필요가 없는 아이라고 아빠가 사다주신 선물도 주지 않은 일, 잘못 할 때마다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 일, 오줌을 스프에 넣어 먹게 만드는 일 등... 그녀가 저지른 일은 아동 학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아닌가.

 

내가 보기엔 아이를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 것임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몹쓸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피를 나눈 가족에게 그랬다니... 정말 웬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 있다는 어떤 이의 말이 이 경우에서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홍당무는 이런 역경을 이겨낸다. 그가 이렇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린 아이답지 않은 성숙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말이면 뭐든지 믿어주는 대부와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리광을 피워도 끝까지 받아주는,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대부라면, 미래를 의논하고 인생을 조언해줄 수 있는 어른의 시야를 가지고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마지막에 아버지와 홍당무의 이해가 이루어지면서 얻은 홍당무의 깨달음이 가슴 벅차게 느껴졌다. 험한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홍당무에게 든든한 아군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더이상 홍당무가 당할 수 밖에 없는 '약자'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강자'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르픽부인이 한없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아뭉개도 되는 -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 '약자' 인 줄만 알았던 홍당무가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자 어쩔 줄 몰라 하던 르픽 부인이 사실은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였을까 하고.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이제껏 해왔던 행동을 보면 절대 사랑을 가득 받아보지는 않았을 것같다. 사랑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랑없는 결혼 생활 속에서 빡빡하게 살아오다가 세 아이를 낳았지만 진정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못생긴 홍당무를 아낌없이 사랑해줄 순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니 한없이 악한 자와 한없이 약한 자만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피해자만이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 인생에서도 사소한 상처를 두고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 때문에 피해자만 양성해내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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