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하지 무라드 - 톨스토이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슬픈 영웅 이야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페이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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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고전에 약한 편이다.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이 당연히 읽었을 법한 책 근처에는 전혀 가지 않았을 정도로 편식도 심하고 문학에는 완전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내게도 좋아하는 작가는 - 그 작가의 범주가 얇긴 하지만 - 있다. 러시아 소설 중에는 유일하게 읽어본 작가 - 그것도 단편이지만^^; - 가 바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다. 그의 작품은 아주 오래전 언니가 학교 숙제로 읽던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에서부터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장편 소설에는 손도 대지 않았음은 여기서 고백해야 겠다. ㅋㅋㅋ

 

그래서 내가 접한 톨스토이의 장편소설은 <하지무라드>가 처음이다. 이 소설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실제 영웅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라는데 사실 이런 전쟁 소설도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 만난 전쟁 소설은 참 느낌이 괜찮았다. 본격적인 전투씬이 별로 없긴 했지만 박진감 넘치면서도 전쟁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어투가 마음에 들었다. 또한 서문에 나온 것처럼 인물에게 고유의 생생한 성격을 부여해준다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이제라도 접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하지무라드 외에도 그를 수행하는 네 명의 병사 즉, 엘다르,  감잘로,  하네피,  한 마호마와 그가 러시아로 투항할 때 만났던 세묜 미하일로비치 보론초프 공작 내외,  그의 아버지 미하일 세묘노비치 보론초프 총독, 러시아 병사인 아브레프, 피노프, 니콜라이 황제 등등 여러 인물들이 나왔지만 어느 한 명도 똑같은 성격을 가지거나 하지 않고 독특한 그 고유의 성격을 가지고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아나갔다. 마치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제 스스로 의지가 있어서 삶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무라드는 러시아 편에 가담하였는데 어떤 오해 때문에 샤밀의 편에 들어가서 혁혁한 공을 많이 세웠다. 원래부터 - 젖형제를 죽인 복수심 때문에 - 샤밀에 대해 강한 증오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러시아에게, 자신도 믿지 못해 샤밀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샤밀에게 미움을 사서 러시아 편에 가담을 하려고 한 과정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소설에서는 하지무라드가 카프카스에서의 영웅이라는 상황을 먼저 설정해놓고 시작했는데 과거 그의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좀더 인간적인 고뇌가 더 많이 담겨있었다. 러시아에게 피해를 많이 입힌 하지무라드가 자진 투항을 해온다면 아무래도 전략상 상당히 유리한 것이 틀림없을 텐데도 하지무라드의 가족을 구해서 그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생각보다는 간만 보며 밍기적거리는 러시아를 보고도 실망을 많이 했었다. 과거에 아무리 혁혁한 공을 세웠을지라도 지금 이순간 자신에게 아무 힘이 없어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을 보니 정말 지금 이 시대에 돈이 있을 때나 사람이 붙고 돈이 없으면 다 사라지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특히나 하지무라드가 왔단 소리에 어린 아이들까지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를 구경하러 오는데 그 모습이 정말 위대한 사람을 맞이하러 온다기 보다는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구경하듯 도대체 하지무라드는 어떻게 생겼을지 호기심에 오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인간적인 호의를 가지고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의 인간적 고뇌와 어려움을 진실로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단 것이 이 소설의 결론이다. 마지막에 안타깝게 끝을 내버린 하지무라드를 보며 정말 그를 존경하고 추앙하진 않았구나 하는 걸 느껴 러시아 인들이 너무 야속하기만 했다. 샤밀의 편에도 러시아의 편에도 설 수 없는 그의 모호한 입장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쿠낙(친구)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지...

 

옮긴이의 서문을 보면 톨스토이는 말년에 명성이 높아지고 작품이 대단해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긴 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한 명이 없어 외로워했다던데 마치 하지무라드가 바로 그처럼 보인다. 이게 바로 풍요 속의 빈곤인가? 말년에 힘들었던 톨스토이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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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Miracle 2
김재한 외 지음, 김봉석 해설 / 시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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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해리포터>를 생각했던 내게 이 책은 조금 아쉽고 재미없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 하나의 단편을 꼼꼼히 읽고 그 나름의 의미와 내용을 음미해보니 아~ 내 생각이 짧았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판타지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엘프나 나오고 마법사가 등장해야 한다는 막연한 서구 동경주의가 있었던 것인지 뱀파이어나 인조인간, 악마와의 계약, 귀신 쫓는 사람, 그리고 민담 같은 우리네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의 환상문학을 접하고 나니 그 모든 것이 환상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설을 막 읽고 났을 때는 막연히 재미있기만을 바랬던 내 마음을 무시한 이 책이 너무나 야속한지라 뻗대면서 서평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머릿속에 맴돌던 재미난 이야기에 헤어나올 수 없었음을 고백해야겠다. ㅋㅋㅋ 그런 부름을 잊을 수 없어 다시금 손에 든 책을 다시 훑어보니 정말 다재다능한 소설가들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었음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대부분 너무 재미있다. 그런데 처음 부분에 너무 안타깝고 묘한 이야기가 실려있어서 진도가 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 묘하고 감정의 흐름이 더디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지원 씨의 <카나리아>를 먼저 읽어도 좋을 듯 하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것을 제일 마지막에 봐야 덜 힘들 것 같다.

 

김철곤, <상아처녀>

교육학을 공부하다보면 한번쯤 듣는 소리가 있다.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가 그것인데 이는 교육자가 기대한 만큼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향상된다는 이론이다. 아마도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에서 따온 이름이지만 정말 진실로 그 효과를 믿는다.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 배양액 속에서만 사는 인간을 창조해서 실험하는 곳이 배경이다. 거기서 일하는 한 남자는 그녀가 일반 환경에서는 어떻게 적응해가는지를 관찰하는 임무를 맡아서 그녀를 몰래 빼돌린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의 말만 믿고 따뜻한 배양액에서 바깥 세상으로 한발 내딛은 그녀, 갈라테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쩜,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비정해지는 인간을 보여준 것 같아 좀 아팠다...

 

정지원, <카나리아>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한다.

노래를 잊은 카나리아는 보름밤에 은으로 만든 배에 띄워 보내면 잊어버린 노래를 기억해낸다. 농담이겠지. 노래를 잊은 카나리아가 기억해낼 리 없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잊은' 것... 인간이라고 하기엔 뭔가가 빠져버린 주인공에게 그것은 중요한 키워드였다.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사는 것, 자신이 정상일 수 있다는 것... 정상이 아니면서 정상임을 굳게 붙들고 사는 그녀에게 이 세상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날 아무 이유없이 한 여자를 죽인다.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머리카락을 뜯어버리면서... 그렇게 멍하니 있는 그녀에게 뱀파이어인 그가 다가온다.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이 소설은 정말 어려웠다. 뭔 말을 그렇게 빙빙 돌려서 하는지 정말 못 알아먹었다. 느와르 영화에서 출구도 없고 입구도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바로 그런 걸까. 하여튼 내 취향은 아닌 소설이다.

 

최지혜, <용의 비늘>

내가 상상했던 환상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배경은 용이 사는 중세의 어느 왕국, 레첸이라고 하는 없어져야 할 저주받은 왕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국에서 눈의 가시 같은 존재였던 레첸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난다. 거의 죽음에 이르는 길, 바로 용의 비늘을 구해와야 하는 길.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속 이야기는 다르다. 레첸은 길을 떠나다 시헬이란 인물을 만난다. 푸른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푸른 옷만 입는 그를. 그가 용을 찾는데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하곤 그를 쫓아다니면서 방법을 구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도 글썽거리고, 아아~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성체가 된 레첸의 이야기를 즐기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지나, <윈드 드리머>

이 소설도 마법사가 나오는 어느 중세 시대의 한적한 마을이 배경이다. 그 시대에는 꼭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매이션에 나올 것 같은 비행물체가 등장한다. 비공정은 비행석이란 돌로 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비행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권력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여기 주인공 아시타르는 황제의 사촌으로서 그런 물체를 만드는 과학자였지만 비행석을 얻기 위해 벌어지는 착취에 넌더리를 내고 이름없이 어느 시골로 왔다. 신분이 낮은 자가 귀족의 아이를 낳는 것은 사형이라는 중죄에 처해지기에 자기 눈앞에서 엄마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았던 아시타르는 자기와 똑같은 운명에 처한 두 모자를 구하기 위해 비행석이 없이 나는 비행물체 윈드 드리머를 만들기로 한다. 여기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 명 등장했으면 더 좋았을텐데...쩝..아쉽다~

 

홍정훈, <사육>

이건 상당히 웃기다. 매혹적일 정도로 소름끼치는 존재인 뱀파이어가 오히려 인간에게 사육당하면서 피를 빼앗긴다는 내용... 인간의 불로장생의 비밀이 밝혀질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류형석, <목소리>

요건 우리나라의 민담 같은 느낌이 드는 환상문학이다. 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옹고집전처럼 못된 주인 영감이 뭔가 잘못했는데 그것을 복수하려는 나쁜 사람이 도술로 해코지를 하지만 결국은 착한 사람이 이겨낸다는 이야기, 아주 구수한 옛날 이야기... 여기에는 정말 이쁘장한 아가씨들이 나온다. 오히려 그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을지도...

 

이성현, <내가 바란 단 하나의 행복>

이것은 한 남자의 피비린내나는 복수극으로 시작했다가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로 끝을 내는 이야기이다. 마법이 있는 중세 시대에 남주인공이 적국의 마법사를 베었는데 그가 내린 저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친한 친구와 그는 한 사람이 행복하면 다른 사람은 끝없는 불행을 갖게 된다는 저주...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가 친구와 결혼하고 자신은 좌천되고 친구는 거대한 영지의 영주가 되었다. 너무나 쓰라린 불행에 친구를 죽이러 가는 한 남자 이야기인데 정말 안타까웠다. 여기까지만. 끝까지 읽으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내용도 그 내용대로 안타까웠던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김재한, <세계는 도둑맞았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이 세계를 점령하고 이 세상을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마법으로 전 세계를 통솔한다는 이야기. 정말 온갖 것이 다 나온다. 악마와의 싸움, 외계인이란 존재 등등 다 나오는데 재미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매트릭스>와 비슷하게 끝이 나서 더 마음에 드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23살의 일필휘지는 16살의 이자벨이란 어린 소녀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그는 어릴 때 동생이랑 계약한 악마를 찾아서 동생이 무엇을 그리 알고 싶어했는지를 찾고 싶어했기에 데몬 슬레이어로 연수입이 1억달러가 넘는 대단한 마법사인 이자벨을 스승으로 두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외계인이 침략하고 일필휘지는 일생 일대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자기가 찾던 악마가 홀연히 나타나서 과거와 미래 둘 중에 한 곳을 선택하라고 했다. 과거는 동생이 악마랑 계약을 맺던 장면이고 미래는 이자벨의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과연 일필휘지는 무엇을 선택할까. <매트릭스>를 본 사람이라면 그 답을 알 것이다. ㅋㅋ

 

이상민, <과거로부터의 편지>

요건 완전 퇴마록이다. 안타까운 이야기. 산장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같이 있다가 그 여인이 귀신에 씌여 삶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가는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 현지에게 편지가 온다. 그 죽음의 산장에서...흐흐흐 완전 공포물이군.

 

일일히 다 쓰다보니까 너무 길어졌다. 처음엔 내 기대치에 못 미쳤는 줄 알았었는데 다시 보니 정말 하나같이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또 요런 책이 있으면 모조리 읽어보고 싶다. 아~ 환상문학이란 바로 요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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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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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찬사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그야말로 끝내주는 해피엔드다!"

 

라고 적힌 옮긴이의 말을 인용해보면 정말 끝내주는 책일 거라 예상을 하겠지만, 내겐 그 끝내주는 특별함을 느낄 순 없었다.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내용의 특이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간혹 어떤 계기로 인해 일본 사람들은 정말 독특해~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좀 어려보이는 사람도 성적인 말을 아무렇게나 쉽게 내뱉는다던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가치관이 나와는, 아니면 내 민족과는 좀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소설을 옮긴 이는 한국인이지만 그래도 그 특별함이 내겐 느껴지진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항상 해피엔드를 지향하는 나이기에 이 소설의 끝이 끝내주게 좋긴 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라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읽어봐도 새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여서 별을 네 개나 주었다.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수녀원에서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아주 검소하게 살아서 프란체스코란 별명을 얻은 여주인공이 바깥 세상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다가 인간의 얼굴 모습을 한 종기 즉, 인면창을 만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인면창은 처녀성을 지킨 여자에게마 나타나서 여성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마구 비꼬고 여성의 오만함을 드러내게 만들어 그 여자가 처녀가 아니게 되면 떠난다는데 오히려 이 주인공은 인면창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려서 그나마 실날 같이 있었던 여성으로서의 오만함을 깡그리 다 앗아가버리게 된다. 고가 씨 즉, 인명창은 항상 프렌체스코에게 몹쓸 여자~라는 말을 항상 달고 산다. 남자에게 흥분을 줄 수 없는 여자는 몹쓸 - 쓸데가 없는 - 여자라는 것이다. 이 인면창도 상당히 독특한 소재이지만 더 독특한 것은 여주인공인 프란체스코였다. 맨발의 성자로 불렸던 성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따서 부를 정도로 그녀는 프로그래머로 돈을 많이 벌어도 특별히 자신을 위해 옷이나 장신구, 화장품을 사지 않았다. 검소하게 사는 것이야 마음 먹으면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는 있는 거지만 다른 것은 더욱 신기하다. 외모가 어느 정도 받쳐주었었는지 잠깐 모델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녀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 색스럽다거나 섹시하단 느낌보다도 한없이 경건해지게 만드는 터라 절대 모델을 할 수 없었던 것!

 

또한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지라 어찌 하다가 자기 집을 연인들의 사랑의 보금자리로 개방했었는데 프란체스코에게 흑심을 품고 덮친 요미오라는 남자가 있었다. 참나~ 이게 말이 되는지. 최음제와 술을 프란체스코에게 먹이고 자기도 먹고 나서 덮치려는데 그만 사고가 나버렸다. 그의 성기능이 임포텐스가 될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이 이야기를 하고 접촉을 했던 탓인지 그녀가 손을 댄 머리에 머리카락이 다 빠져 대머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체질을 가진 여성에게 어느 누가 접근을 할 수가 있겠는지. 성(姓)적인 행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만들어진 그녀의 체질 덕분에 프란체스코는 아예 자신은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생각하며 인면창인 고가 씨에 만족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보통 기분 나쁜 소리를 듣거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비난을 받거나 하면 화를 내기 마련이 아닐까. 특히나 고가 씨처럼 무례한 사람에게는. 그런데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그런 체질로 태어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끊임없이 수용하고 심지어는 미안하다고 정식으로 인사까지 한다. 그랬기에 기적이 일어났던 것일까. 서평을 쓰기 위해 한 번 더 읽어보는데 처음 읽을 때와는 다른 것을 느꼈다. 고가 씨와 프란체스코의 말을 빌려보면..

 

666명의 남자에게는 너 같은 분위기의 여자는 '섹스를 했으니 지금 사귀는 여자하고는 헤어져!(혹은 부인하고 이혼해!)'라든가,

'섹스를 했으니 당연히 결혼할 거지?'라고 계속 꽁꽁 얽어맬 여자로 보이는 거야.

매뉴얼에 이런 여자는 그렇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지.

사실 몹쓸 여자가 아닌 여자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지위(=여자 친구 혹은 아내라는 자리)를 척척 얻어내지만.

-고가 씨-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나는 고가 씨의 말대로는 못하겠어.

공정하게 자신의 마음속을 모두 보여주고 서로가 괴롭지 않은 상태에서 사귀고 싶거든.

그게 남자에게는 두려운 일로 여겨진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몹쓸 여자로 남을 수 밖에. 고가 씨의 말대로는 못해. 미안해.

-프렌체스코-

 

고가 씨는 항상 말했었다. 남자는 연애를 할 때 심각한 이야기나 깊은 사고를 못한다고. 그래서 여자는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 척 유도를 해서 남자가 인지하기도 전에 낚아채야 한다고. 그럼에도 프렌체스코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리고 보니 연애를 할 수 없는 체질인 프렌체스코는 정말 연애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피상적인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던 생각이 든다. 실제로 연애란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적으로도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도움을 얻는 것이니까. 결국 프렌체스코는 인간 남자들에게 더이상 기대를 할 수 없으니 고가 씨에게 결혼 신청을 하는데... 이 이후는 해피엔딩이라니까 어떨지 자연히 추측이 되겠지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지 않을까.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전혀 색스럽지 않는 소설, 이것이 바로 <내 안의 특별한 악마>다. 이젠 옮긴이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된다.

 

"어떤 찬사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그야말로 끝내주는 해피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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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질주하는 법
가스 스타인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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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은 나에게 마음의 안식일 때도 있고, 피난처일 때도 있고, 그리고 도피의 대상이 되기도 하다.

 

나에게 이번 주는 정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만 싶었던 나날들이었다. 세상에서 내 모습이 절대 보이지 않게. 꽁꽁. 그럴 때마다 나랑 함께 한 것은 바로 책이었다. 바로 책 때문에 문제가 생긴 때도 있지만..=.= 이번 주는 무지하게 읽어댔다. 읽은 책은 무조건 서평을 쓰려고 마음 먹었던 나이지만 읽는 속도를 서평 쓰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무지 읽어댔다. 이 책 말고도 내 서평을 기다리는 게 세 권이나 더 있는데 오늘 안으로 쓸 수 있을까. 이렇게 밀려 있는 기분으로 책을 읽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하다. 꼭 화장실에 가서 뒷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온 것처럼.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날 쏙 빨려들어가게 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중요한 회의가 있어 어떤 책인지 간만 보려 했었을 뿐인데 새벽까지 줄창 읽었다. 결국 그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누가 봐도 전혀 후회할 수가 없는 책이다. 중요한 회의와 맞바꾼 책!!! 두둥!! <빗속을 질주하는 법> 제목만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를 것 같아 잠깐 풀이해보면 여기 주인공 데니는 카레이서이다.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대단한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멋진 남자인데 운과 배경이 없어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마른 땅보다 다른 카레이서들이 싫어하는 젖은 땅에서 더 잘 달리는데 그만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제목에 나온 '비'는 이것과 비슷하게 그의 인생에서 다가오는 어려움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데니는 잘 달릴 수 있겠지.

 

이 소설에서 가장 특이할 점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인데 그 관찰자가 주인공 데니의 개인 '엔조'라는 것이다. 어쩌면 여느 인간보다 더 사려깊고 철학적인 엔조는 나중에 꼭 인간으로 태어날 것을 꿈꾸는데 데니에게는 꿈과 인생을 나누는 동반자라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날 데니와 함께 카레이싱을 논하며 인생을 즐기다가 아름다운 침입자를 만나게 된다. 데니가 푹 빠져버린 이브가 그 주인공. 이브의 등장으로 데니와의 교감을 나눌 시간이 줄어든 것은 불쾌했지만 데니를 위해서 참는 엔조는 그들의 딸 조위의 등장으로 더욱더 데니의 가족에게 헌신하게 되었다. 그런 엔조가 여느 개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처음부터 이브와 엔조의 관계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데니가 빗속에서 젖지 않는 것처럼 운전하는 법을 알려준 뒤부터 엔조는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로 했다.

내가 증명할 건 앞에 있다.

엔조에겐 이브는 비였고, 예측 불가한 요소였으나 그 모든 위험까지도 포용하기로 마음먹은 엔조는 이브와의 거리를 좁혀가기로 했다. 데니가 퇴근하면 항상 데니 곁에만 찰싹 붙어있던 엔조가 이브가 저녁을 준비하는 식당에 가서 어슬렁거리자 점차적으로 이브도 그를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자신의 약점을 고치고 노력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상처만 핥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몇몇의 인간들보다 더 낫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엔조는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멋진 존재이다.

 

데니에게 일어난 첫 번째 시련은 이브의 죽음이다. 머리에 종양이 생긴 것을 너무 늦게 발견한 이브는 어린 딸 조위를 두고, 그녀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데니를 두고 먼저 떠난다. 그녀가 아팠을 때 데니에게 카레이서로 이름을 날릴 기회가 왔음에도 이브를 간호하기 위해 버린 데니를 두고 가버린 그녀.. 그것이 첫 번째 시련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번째 시련은 이브의 부모님이 조위의 양육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보통은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양육권이 주어지기 마련인데 장모님의 친척 조카 중 한 소녀가 데니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했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실은 그 소녀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앙심을 품은 소녀의 농간이었지만... 재판에서는 그것을 밝힐 수가 없다. 성범죄자로 등록이 되면 아이를 잃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로 갈 수가 없어 카레이서로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데니의 양육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아이와의 방문일을 정하고 성범죄자로 등록되지 않도록 하는 회유책을 들이미는데...

 

세차게 퍼붓는 빗속에서 데니가 미끄러지고 있을 때 그의 동반자 '엔조'는 무엇을 했을까. 정말 엔조는 그의 동반자가 맞다. 그가 미끄러져 우왕좌왕 했을 때 그를 도와주고 정신차리게 해주었으니.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그만큼 그에 대해 믿는 뭔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테지. 엔조가 생각하는 데니는 어떤 사람일까.

그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데니는 절대로 섣불리 무릎 꿇을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여기선 '사람'이 아니라 '개'이지만.^^ 그렇기에 바닥에서 무너진 데니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거겠지. 사람과 개와의 우정을 그린 책들의 모임이 있다면 아마 이 책이 일등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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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메릴 호
한가을 지음 / 엔블록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해적들이 날뛰는 18C 초 카리브해, 대서양의 역사적 사건과

평행우주와 양자적 세계, 블록 우주론적 상상을 결합시켜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 그리고 우정을

전 우주적으로 그려낸 서사시

 

라고 책 뒷면 표지에 소개된 글을 읽어봐도 실제 책을 보기 전까지 이 내용을 예측할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란 절규만 나올 뿐. 18세기의 이야기는 왜 나오고 평행 우주는 무엇이며, 블록 우주는 도대체 무얼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요소를 모아 모아서 짬뽕을 만들어버린 이 소설은 읽기 시작한지 1부가 지나야만 이해할 수가 있다. 처음엔 뭔 소리여~했던 이야기들이 실제 사건이 시작되면서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이 책의 첫 부분에서는 딱딱한 기호들이 등장하는 대화가 전혀 이해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대화 이후에 반드시 일어나야할,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어린 주인공이 이 세계를 구원할 메시아였다는 영웅주의가 나오지 않아서 더 실망했다. 뭔가 기대하게 해놓고 발을 싹~ 빼버리는 게 참 괘씸하다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앞 부분을 조금 보고 다시 들춰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내 계획보다는 조금 늦게, 그런데 출근 시간보단 조금 빨리 일어났기에 그 시간에 이 책을 다시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길 하는 걸까? 이야기가 중간쯤 진행되니까 소설 속으로 쏙 빨려들어갈 수 있었다. 근본은 딱 스티븐슨이 지은 [보물섬]이랑 비슷해서 주인공 모이가 꼭 짐 같았기에 당연히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게 많아져갔다. 그런 만큼 모이도 소설 속 총알과 대포가 날아다니는 험난한 모험 속에서도 자신의 동료와 보물을 지키는 제 몫을 다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범선과 해적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모이는 평범한 학생이다. 자기 위로 누나와 밑으로 동생이 하나씩 있는 평범하게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학생, 그러나 그에게 특이할 만한 사항은 어렸을 때 엄마가 소리소문없이 집을 나가버렸다는 것, 어릴 때 엄마와 같이 다른 세계 사람을 목격했다는 것 정도?

 

그런 그에게 미치라는 여자아이와의 만남으로 인생이 변했다. 알모타 제국을 이어받을 공주라는 미치의 말을 빌리자면, 이 세계는 평행우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이웃한 우주에서 우주 간 이동 중에서 자신만 홀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을 나간 엄마가 사실은 우브 세계 - 지금 이 세계 -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갔을 수도 있을 거라는 충격적인 말까지도. 그러다 모이의 뒷집에 사는 조 씨의 집을 관찰하다가 그 집에 희한한 범선이 많이 있다는 것과, 갑자기 이 세계에서 벼락부자가 된 조 씨가 다른 우주 간의 무역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쪽 세계에서 보잘것없는 것이 그 쪽에서는 값어치가 상당해지고, 우리에게 희귀한 다이아몬드나 금은 그 쪽에선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기에 고철덩어리만 가져다 팔아도 부자가 될 수 있단 말씀!!

 

미치가 몰래 그 범선에 타고 집에 가려는 걸 배웅해주러 갔던 모이는 어쩌다가 같이 그 범선에 타게 되어 희한한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일급 항해사의 음모와 18C의 해적들과의 싸움, 그리고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솔깃해할 온갖 보석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모험 속에서 모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고 재빠른 활동력으로 그 모든 위험에 맞서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아쉽지만 평행우주경찰들의 방해로 알모타 제국에서 거래한 무지막지한 보석과 금은 내버려두고 온 채. 하지만 잭 캐치의 사물함이란 소중한 보물을 사용해 그는 아빠가 인쇄소를 살리기 위해 빌린 빚 때문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막을 수 있게 된다. 그 후부터 모이는 종종 메릴 호 선장이란 칭호를 들으며 여러 가지를 운반해달라는 불법적인 전화요구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단순하게 봐도 재미있고, 심각하게 이런 우주가 있을지 연구하며 봐도 재밌을 것 같은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 처음엔 좀 골치 아프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면 모험을 즐길 수 있어 나쁘지 않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모험소설을 읽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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