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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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림을 가지고 치유한다는 미술치료가 요즘 뜨고 있다. 왜 뜨고 있다고 말하냐면 그런 시류에 무덤덤한 나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ㅋㅋ 사실 우리 학원에서도 아이들에게 접근할 때 그림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조금 들은 풍월이 있다. 그래서 한 때는 나도 미술치료를 배우고 싶었는데 언제나 말로만 끝나 버리고 말았다. 아쉽게도~ 허나 대략 어떤 건지 감을 잡아서 내심 좋다.

 

이 책은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 이런 그림을 보면서 내가 받았던 상처, 아픔을 내려놓는 게 어떠냐고 슬며시 다가와 추천해준다.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그림을 좋아해서 이 책도 참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잔잔하게 빨아들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까 의문점이 많이 생겨버렸다. 미술치료는 어떻게 배우고, 전문적으로 어디에서 쓰는지 등 궁금했다.

특히 저자의 이력이 상당히 독특해서 책을 보는 내내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이런 글을 쓸수가 있을까가 가장 궁금했다.

그걸 알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 흑심을 가지고 그의 이력을 아무리 파헤쳐봐도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저자가 남자치고는 상당히 말도 많을 것 같고 전 세대의 은어를 쉽게 이해하는 게 정말 특이했다.

책 내내 중고생 아이들이 쓰는 말(확인할 길은 없지만^^;)도 아무렇지도 않게 써대니, 이거 참, 난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

사실 내가 그런 거에 좀 늦은 편이다. 그러니 순응하고 따라가야지...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다른 건 다 좋았는데 표지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거 좀 봐라~~ 코가 없는 소년이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을... 내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명색이 그림치유에세이인데 아름답고 그윽한 그림을 표지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내 나름의 생각 때문이었다.

뭐,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왜 저 그림을 골랐는지 나름 알겠다마는.

그래도 그렇지, 내가 저 그림만 보고 화가 이순구<웃는 얼굴>가 그린 그림인 줄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어쨌거나 저자는 상처를 치유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썼다니까

그 표지가 영 안 어울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애들 취향 같은 건 아쉽다. 조금.

저자 자신이 힘들었을 때 화랑에 들려 마음을 다스리게 도움을 주었던 그림들로 꾸며져 있다.

 

나도 확 반할 만한 그림들로 꾸며져 있는데, 내 그림 취향은 보통 사진 같은 그림이다.

물론 딱 그거만 좋아하진 않지만 여기에 그런 실사와 같은 그림이 있어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다.

바로 이경미 화가의 <Nana>. 이것을 보면 완전 실사같은 느낌이 든다.

와~ 이런 그림 그리는 모습을 옆에서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아름다운 고양이 나나를 아름답게 그려놓은 그 그림을 보면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그림의 모델이 된 나나는 목을 다쳐 제대로 생활할 수 없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김정란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렸다. 비단에 수묵채색을 했는데,

아크릴이나 유화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참 좋다. 동양화가 확실히 우리 맘에 호소하는 게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는 현대작가만 나오다 보니까 완전 그림이 아닌 작품이 많이 나온다. 사진이나 전시작품이나 모형 등..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미술 작품이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할 듯 싶다. 왜냐면 다각도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임광혁의 <Magnolia Lymos>는 철과 우레탄, 자석으로 목련 나무를 만들었는데 완전 멋지다...

그 미술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 속의 온갖 나쁜 생각들이 빠져나가버릴 것 같다.

선하디 선한 목련꽃잎을 뜯어다가 내 마음대로 갖다 붙이면서 꽃놀이에 빠져있음 그 어떤 나쁜 생각이 들랴.

조성연의 <화경>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다. 화병에 담긴 꽃의 뒷 모습을 찍었는데,

어찌 그 모습이 그리 처연하게 아름다워 보이는지..

꽃이 아름답단 것을 알고 있었지만 뒷모습까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던 내 무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삶에는 이렇게 화려한 아름다움과 쓸쓸한 아름다움이 있는 거겠지~

한지에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모습이 생각나는 그림, 김순철의 <About Wish 0798>을 보면 갈색의 두 항아리가 나온다.

실로 한 땀 한 땀 뜬 항아리가... 이게 왜 이리 내 마음을 끄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작품은 실제로 가서 봐야 그 아름다움이 더 극명하게 다가올 텐데... 아쉽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작품은 2007년 요절한 주정아의 작품이다.

장지에 목탄으로 채색한 작품인데, 그 표현력과 유머가 당연 압권이다.

<개도 남자다> <스쿠터 보이> <이 죽일 놈의 연애> 이란 작품으로 소개가 되었는데,

완전 만화같은 표현과 숨겨진 익살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림치유에세이라지만 나는 그림을 보면 그냥 뽕~가는 타입이라 치유가 된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저 좋을 뿐~~ 그거면 되지 않나. 화가들도 그림을 보고 분석하길 바라진 않을 테니. 느끼고 좋으면 그냥 좋은 거다.

생각날 때마다 책을 펴 그림을 보다가 살아야겠다. 기회가 되면 실제 화랑에서 보게 되면 더 좋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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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기술 - 심리학자의 용서 프로젝트
딕 티비츠 지음, 한미영 옮김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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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 전에 나는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오너에게 험담을 늘어놓고 다닌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의 인격이나 그 상황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도 못한 상황이라 그저 그에게 분노만 품었고,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어쩌다가 한 번 만날 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뭔가 흠이 없을까 찾아내기에 바빴다.

점점 그 사건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면서 그에겐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음험한 동기가 있다고까지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그런 동기를 가졌든지 안 가졌든지 간에.

이 모든 일들이 내게 그리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음은 당연하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하기 보단 그를 더 깍아내리려고 했고, 그게 안 되니 그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으니까.

 

그와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은 그로부터 2~3년이 더 지나서였다.

그가 이제까지 이루어냈던 성공과 업적을 축하까진 안 해도 나름 인정해줄 수도 있었고,

그래서 그에 대해 내 모든 분노가 사그라든 줄 알았다. 더 크게 말하면 내가 그를 용서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와 관련되었으나 그가 저지르지는 않은 또 다른 일이 겹치자, 내 안에 있던 분노가 다시금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사실은 나는 그를 용서했던 게 아니라 그 사건에서 회피하고 덮어버리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느낀 분노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이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같은 유형이 아니라

"정말 내가 나쁜 걸까. 그래도 이런 일은 같은 동료로서, 특히 후배로서 할 짓이 아니야~"

"내가 원인을 제공했으니 나도 할 말은 없어. 그렇지만 뒷말을 한다는 건 하극상이라구~" 하는 종류였다.

이 책으로 말하면 사건을 폭넓게 보고 자신의 책임을 이해한다고나 할까.

그러니 내가 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이건 정말 그 사람 탓이야~"라고 전적으로 책임을 미룰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용서의 기술]이란 책을 보니, 내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런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정말 '용서'에는 '기술'이 필요하단 것을 다시금 느끼면서, 이것은 정말 과학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용서의 기술]이란 제목을 보면 그저 영성적이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란 자기계발쪽으로 보겠지만,

이 책은 행동건강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쓴 아주 과학적인 책이다.

특히, 우리가 용서를 해야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것부터가 아주 과학적이다.

분노는 심장병이나 고혈압을 일으키는 등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심장학회는 콜레스테롤, 운동, 영양 등 다른 기준 지표들과 함께 심장 질환을 유발하는 위험요소로 분노를 선정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덜 화를 낸다면 사람들이 심장마비로 죽을 확률은 지금보다 3배나 감소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연히 "살기위해 용서해야 한다."

그런데 알긴 알지만 그 방법은 누가 제대로 가르쳐주길 했나? 절대 아니다. 그저 화를 억누르는 연습만 해왔을 뿐이다.

여기서 말한 몇 가지 방법 중, 내가 써봤던 것은 단 두가지다.

 

하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그에게 나를 끌어내리려는 음험한 동기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보니 그런 말이 나왔다고 상상하는 것.

그의 숨은 동기를 찾아내려고 안달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마터 루터 킹 목사는 이런 말을 남기셨다. 

"우리 중 가장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면이 있고, 우리 중 가장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면이 있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의 적을 덜 미워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겸손해지는 것이다.

나도 그런 똑같은 나쁜 짓을 다른 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음험한 동기를 가지고 하든 그런 의도가 없든 간에)

잘 알기에 나의 모자란 부분과 나의 잘한 부분을 균형있게 인지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데 그렇게까지 큰 분노를 품고 있기엔 너무 미안하니까 용서해주고 넘어가야지~~~

 

나도 이젠 마음이 편해졌다. 알게 모르게 나를 갉아먹어왔던 분노라는 감정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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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최고의 삶을 말하다
헬렌 S. 가르손 지음, 김지애 옮김 / 이코노믹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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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이 책에도 그렇게 쓰여있고, 사람들이 보통 그녀를 말할 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난 그 말에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러나 그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라고~

 

그녀가 자서전을 내지 않으면 모를까, 현재로선 그녀의 측근들이 아닌 사람들은 그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왜 이런 말로 글을 시작하냐면, 이 생각이 내가 이 책을 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프라에 대한 사실과 추측으로 나열되어 있다.

실제로 그 당시에 오프라의 생각은 어땠는지, 감정은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가 아홉 살의 나이로 강간을 당했을 때도, 십대의 나이로 미혼모가 되었을 때도, 그녀의 아기가 낳자마자 죽었을 때도

그녀의 감정은..... 알 수가 없다.

 

실은 나는 그녀의 능력이나 그녀가 이뤄낸 것, 그녀의 선행, 그녀의 부에 대해서보다는

그녀의 인간성, 그녀의 고통, 그녀의 두려움, 그녀의 믿음, 그녀의 삶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쉽게도 그녀의 인생에서 드러난 것에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의 애인은 누군지, 그녀의 재산은 얼만지...

물론 직접 그녀가 쓴 것이 아닌데 어찌 안 그럴 수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뭐랄까,

이 책의 문체 자체가 모호함으로 뒤덮여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짜증이 몰려 왔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사실 이 책이 오프라 윈프리와 처음 만나는 책이다. 그녀에 관한 책이 여러 권 나왔다는 건 알고 있는데,

이 책은 썩 추천해주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정말 답답하단 생각만 들 뿐.

이 책에서 그녀를 제대로 알 수가 없었기에 다른 책을 찾아봐야 하겠지만, 정말 그 다음 책에서도 그러면

그녀의 자서전이 나올 때까지 안 보련다.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어~ 하면서.

 

유명한 사람에게 안티팬들이 생기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유독 이 책에선 그런 내용도 많이 다룬다.

누구는 오프라가 기업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둥, 그녀의 경영 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둥, 비밀 서약서 때문에 소송을 당하질 않나,

결혼설, 파경설 등 여러 가지 기사가 판을 친다.

처음엔 오프라도 당황을 했는지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점차적으로 무시하는 법을 배우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파파라치가 쫓아다니면서 자기 사진을 찍어대는 것은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닐거야~

그래서 얼핏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거 음모론 아니야?

왠지 오프라에게 어떤 모종의 비리가 있을 법도 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문장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난 그녀를 모른다.

그녀가 얼마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났는지,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는지, 얼마나 화려하게 사는지 몰랐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다른 나라 토크쇼 진행자의 인생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구~

그런데 워낙 오프라~오프라~ 하는 말이 들리니까 (오프라가 추천하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며..?)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는 의미에서 한번 들쳐다 본 것 뿐이다.

흥~ 그저 그렇네~ 선행을 많이 한다면서 한꺼번에 집이 세 채나 있고, 강아지를 아홉이나 키우고, 차도 빵빵한 거고...

그런 화려한 생활이 눈에 거슬렸다. 못 가진 자의 배아픔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 불우한 생활을 한 만큼 그녀가 즐기지 못할 게 무어냐란 생각도 든다.

그녀는 선교사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그저 한 유명인일 뿐인데....천박하게 섹스 파티나 벌이는 사람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열심히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자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일 뿐인데, 내가 너무 기대를 했나 싶었다.

그녀도 사람이니 아픔도 느끼고, 무서움도 느끼고, 즐거움도 느끼고, 충동도 느낄 것을,

체중 감량에 대해 완전 대단하게 써놓은 부분을 보고 어이없다 생각했다. 죽어라고 운동하면 되지, 뭐!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으니.

그 점은 좀 미안하다. 도대체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편견에 가득차 있는 놈이 누구야~~~

가지지 못한 자로서, 유명하지 못한 자로서,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 자로서

그녀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름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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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The Present
정다움 지음 / 발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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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으러 살아가는 거예요. 바로 시한부 인생인 거죠. 그 기간이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일 년이 될 수도 있고 30년, 60년, 길게 100년을 산다고 해도 그 끝엔 언제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돈이 많든 적든, 화장이 돼 육신의 재가 훨훨 뿌려져도, 아무리 넓은 땅을 차지하고 묻혀도 결국은 다 똑같은 끝인 거죠.”

 

인간의 삶을 시한부 인생이라고 여기며 오늘 꼭 재미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말하는 여자, 서재인.

미래를 바라보며 성공을 이루었으면서도 과거의 한 자락이 발목을 잡아 엉거주춤 멈춰선 남자, 이준하.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아마 운명적이었을까. 운명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걸까.

 

외국계투자회사에 다니는 재인은 촌스러우면서도 묘하게 그녀에게 어울리는 뽀글이 파마를 하고 몸매를 전혀 드러내주지 않는 회색 슈트에 바닥에 딱 달라붙을 만한 펌프스까지 완전 무장을 한 상태로 오늘도 어김없이 씩씩하게 하루를 산다. 지하철에서 변태 때려눕혀야지, 대현그룹의 회장이 쓰러지신 것이 금융계에 어떤 현상을 일으킬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야지, 사내에 새로 부임한 지사장의 속내와 그를 둘러싼 여러 정황을 파악해야지...

천재적인 기억력과 그로부터 파생된 정확한 분석력과 추리력으로 어딜 파고 어딜 건드리면 돈이 될지를 아는 그녀는 사내에서 다른 사람에게 은연중에라도 도움을 준다. 아마도 그녀의 부서에 있는 직원치곤 그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은 학벌에 좋은 능력에 뭇 여성들의 질투를 받을 만도 하지만 도움을 줬다고 생색을 내지도 않고 어느 때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그녀에게 질투하는 여사원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뽀글이 파마가 가장 큰 공헌을 했지만.

 

뉴욕 본사에 발령난 전 지사장 대신 새로운 지사장이 부임을 했다. 그가 바로 이준하. 십대 때 떠났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어느 한 사람 표정이 있는 사람이 없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고국과의 조우를 한 그에게 뽀글이 여성의 변태 때려잡는 모습은 환상적으로 유쾌한 일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모른 채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이래서 운명이라는 말이 생긴 걸까. 바로 그 뽀글이가 그의 회사에 다니다니, 그것도 압도적인 기획안을 제시하고서, 그것도 자신의 목구멍을 조이고 있는 바로 그 대현그룹에 대한 기획안을 제출하고서 말이다. 자신이 생각했던 시나리오를 뛰어넘는 그 기획안으로 그 뽀글이, 아니 서재인은 지사장의 대리가 되었다. 물론 많은 사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뽀글이와 자연스런 일처리로 윗사람들에게 그다지 깊이 각인되지 않았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파격승진을 했던 것.

 

솔직히 요즘에는 가시적인 매력이 없으면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자신의 뛰어난 재능으로 인해 질투하게 될 상황을 막고자 화장도 안 해, 쇼핑도 안 해, 그야말로 폭탄인 상태로 지내는 그녀, 재인의 매력에 준하는 푹 빠졌다. 처음에는 특이한 외모 때문에, 그러다 비범한 능력으로, 마지막으로 그녀 주위에 맴도는 멋진 남자들로 인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결정적인 이유는 감히 그 누구도 눈을 직접 마주치지 못하는 그에게 할 말은 다 하다가도 그가 힘들 때는 단지 몇 마디로 마음을 따스히 감싸주는 그런 마음씀씀이 때문일까.

 

과거의 상처로 인해 아파하는 준하에게 재인이 해준 말.

아홉 살 때부터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매일 매일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했던 재인의 인생 모토.

 

“사람들은 무심하게 오늘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은 꼭 해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내일이 안 올 수도 있다는 걸 자꾸 잊어버려요. 만약 내일이 없다는 걸 미리 안다면 오늘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러니 내일 당장 인생의 끝이 온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게,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거예요.”

 

대놓고 부아가 치밀도록 밉상으로 말을 해도 싱글싱글 넘어가버리고, 양다리를 걸치냐는 비아냥에도 꿋꿋한 재인에게 남자의 자존심으로 버텨보지만 더 이상 당할 재간이 없다. 처음부터 남자를 자신의 인생에 들여놓을 생각이 없었던 재인은 그저 상황에 맞게 맞장구쳐주고 두루뭉술 넘어가려고 했지만 자존심도 버리고 달려드는 준하에게 당할 재간은 없는 셈.

그렇다고 이렇게 싱겁게 이루어질까. 아니다. 준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재인을 이해하려면 끝까지 봐야한다. 그녀의 가슴 깊이 묻어있는 두려움을. 그 두려움을 이겨냈을 때야 비로소 과거에 얽매여 살았던 준하에게도, 현재만을 위해서 살았던 재인에게도 새로운 인생이 열리지 않겠는가 말이다.

 

정말 오랫만에 내 가슴을 적시는 멋진 로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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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 말의 권위자 다카시가 들여다본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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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글은 처음이다. 말의 권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어떤 사람이

소설 속의 사랑이야기를, 그 사랑의 언어를 면밀하게 분석해내는 이런 글은...

그러니까 비디오 테이프를 다시 되감기를 해보면서 이럴 땐 이런 말을 쓰는 게 좋아~ 하고 알려준다고나 할까.

마치 사랑의 언어에 정석이 있다는 듯이.

물론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옛말처럼 어떤 뉘앙스로 말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매끄러워질 수도,

악화일로로 치달을 수도 있는 거지만 그렇다고 그런 아주 미묘한 이야기를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평가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이 책의 분류를 에세이로 했다. 그저 다카시의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그러니까 세상 사람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생각들.

 

하지만 내가 그의 글에 반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마치 바람둥이인 줄 알면서 끌려들어가는 여인네의 마음처럼.

그렇게 그의 글은 신선하면서도 매끄럽고, 예리하면서도 부드러우니 여심을 잘 집어낼 수밖에 없다.

표지부터가 예사롭지 않은가. 나조차도 표지를 보고선 한 눈에 뽕~ 갔으니.

 

일본 연애소설 몇 가지를 두고, 이 소설이 갖는 묘미나 아름다움, 남주인공의 유려한 말솜씨를 증거로 제시해내면서

사랑을 하는 남자들은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이런 언어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들이댄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다_[상실의 시대]

드라이하면서도 쿨하게 사랑하다_[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짧은 사랑을 한 후 떠나다_[1973년의 핀볼]

나쁜 남자가 사랑을 하다_[금각사]

머뭇거리다 되돌아서는 사랑이 있다_[산시로]

그 사랑이 어 사랑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다_[겐지 이야기]

처음처럼, 다시 사랑하다_[지금 만나러 갑니다]

투명할 정도로 푸르른 사랑 한 조각을 먹다_[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제가 감히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_[선생님의 가방]

스텝 바이 스텝으로 사랑하다_[전차남]

 

제목부터가 뭔가 그윽하다. 역시 말의 권위자답게.

희한한 것은 여기에 나온 소설을 하나도 내가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이 다카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 새 종착지에 다다랐다. 그리고 책장을 덮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것이 플러스가 되었는지 마이너스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받은 감동으로 볼 땐 아무런 정보없이 보는 것도 신선할 거라 생각된다.

특히 어려워만 보이던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말하는 방식까지도.

그런 존재가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나눌 땐 어찌 마찰이 없을까.

그런 마찰을 줄이기 위해 [상실의 시대]의 '나'는 아주 지능적으로 접근한다.

여자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둘러서 말하거나 하소연이나 힘들었던 일을 들어줄 때 덤덤하게 받아들여준다거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달라고 할 때 참신한 표현으로 녹아버리게 만드는 등~

과연 연애의 고수라 할 만하다. 진짜 신기한 건 이 글을 읽고 있으며 실제로 저런 사람이 있을 성 싶다는 거다.

내가 여심을 가진 여성이라는 게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한 요소겠지만,

어리석은 여심이기에 그저 믿고 싶은 맘은 어쩔 수 없다.

 

"봄날의 곰만큼 좋아."

 

얼핏 들으면 무슨 말인지 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가까이 가져다가 곰곰히 봐도 영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왠 뜬금없이 봄날의 곰? 어떻게 곰이 좋아하는 크기를 가늠하는 대상이 되었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이 표현 하나로 내 생각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저런 희한한 표현을 듣고서 싫어할 여심은 없다는 것.

안드로메다에 생각을 다 두고 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ㅋ

 

연애에 젬병이거나 여심을 도통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뭇 남성네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물론 처음부터 나오는 닭살스런 내용에 거부감을 감수해야하는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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