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 어느 날 갑자기 가십의 주인공이 돼 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
세라 자르 지음, 김경숙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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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자신이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도, 쳐다봐주지도 않는다면...? 그것도 그 대상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디에나는 삼년 전에 저지른 짓 때문에 온 가족에게는 물론 온 동네에 모조리 소문이 퍼진다. 디에나는 "헤픈 여자"라고~~~

그런 그녀를 믿어주는 건 오랜동안 친구 사이로 지내온 사려깊은 남자, 제이슨과 조그만 동네인 퍼시피카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디에나에 대해 선입견이 없었던 멋진 여자, 리 뿐이었다. 물론 엄마나 대런 오빠나 아이가 생겨 오빠랑 결혼하게 된 스테이시 언니는 제외지만. 그런데 그 멋진 두 친구가 서로 사귀는 건 한편으론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마음 한쪽이 쓰린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마음씨 좋은 두 친구 사이에서 질투심이나 속으로 삭혀야 하는 디에나는 지금 엉망진창이다. 어쨌든 삼년 전의 그 선입견 때문에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치근거림을 견뎌야 하고, 눈도 안 마주치는 아빠와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사는 것도 숨이 막히는 그녀는 오빠와 스테이시와 그들의 딸, 에이프릴과 함께 집을 나가 따로 살 공간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학 동안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돈을 보태 부모님의 지하실에서 살고 있는 그들과 새출발을 하기로 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디에나의 혼자만의 계획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디에나의 독립하기 작전은 시작부터가 엉망이었다. 이미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자리가 찼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없었고 더구나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왠지 소문을 믿고 있는 것 같았기에 두려웠던 것!! 결국 디에나는 위생상 문제가 있어 지원자가 거의 없는 피카소 피자집에 겨우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디에나를 소문의 주인공으로 만든 토미가 바로 그 피자집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 이런, 이런, 이런~~~ 토미는 대런 오빠의 친구여서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오빠가 그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은 말 안해도 잘 알겠지? 그와 같이 일한다는 것을 알면 오빠가 가만 두지 않을 텐데... 고민하다 디에나는 오빠에게 알리지 않기로 마음 먹고 일을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토미는 역시나 아직까지도 그녀가 그 사건 때문에 힘들어했던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사건이야 그녀도 동의했던 일이지만, 토미가 있었던 일을 남김없이 사람들에게 까발린 것은 그녀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런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 하나 없이도 디에나는 변함없이 지지해주는 제이슨 덕분에, 점차적으로 성장하는 자신 덕분에 스스로 이겨낸다. 집에 와도 누구 하나 잘 왔냐고 물어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누군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준다는 기분을 맛보고 싶었던 열세 살 짜리 어린애가 이제 스스로의 틀을 깨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던 것~~! 그랬기에 자신에게 상처를 준 토미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그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한 후에 토미가 무엇을 잘못했고, 자신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똑바로 이야기하고, 결국 사과를 받아내었다. 그것으로 디에나는 어른으로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번에 아빠차례다!! 아빠랑 한 번도 그 일에 대해서 터놓고 말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날 모든 것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설마 내가 궁금해할 이유가 없다는 뜻은 아니겠지."

"아빠는 언제나 나를 미워하고 있어요. 내가 열세 살 때 저질렀던 일 때문에."

나는 정말로 흐느끼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그거냐? 내가 널 미워한다고?"

아빠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빠는 디에나를 전혀 미워하지 않았다. 사랑하고 걱정했을 뿐. 아빠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는 것이다. 그것이 디에나에겐 거부의 뜻으로, 미움의 뜻으로 느껴지게 되었다는 것은 아빠는 몰랐을 뿐. 가족끼리에서의 침묵은 단절을 가져오기가 그래서 쉽다. 서로 너무 친하고, 친해서 그래서 서로 상처주는 그런 관계. 그런 관계를 디에나는 잘 다져가고 있었다. 이젠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도 포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잘못을 했을지라도 용서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디에나는 뼈아프게 깨달았으니까~!

 

"글쎄, 알겠지만 스테이시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것과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걸 증명해야겠지."

"아빠가 내게 바라는 것처럼?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내가 증명하길 바라는 것처럼?"

"난 아빠와 달라."

"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계획하지 않았던 아이를 가져 아직 어린 나이에 찌든 삶의 굴레를 쓰게 된 스테이시가 어느 날 하루 일탈을 꿈꾸었을 때, 아무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며칠 후에 집에 들어오곤 미안하다고 사과했을 때 디에나는 알았다. 그런 잘못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특히 가족이라면 더욱 말이다. 이렇게 보면 디에나의 내적인 성장이 디에나의 가족을 성장할 수 있게 했다고 과감하게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가족 모두에게 안식과 평온과 희망을 찾아주었다고 말이다. 디에나,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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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 기자의 도시락 경제학 - 매일매일 꺼내 읽는 쉽고 맛있는 경제 이야기
김원장 지음, 최성민 그림 / 해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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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몇 권의 경제학책을 읽으면서 경제 용어들에 익숙해질만해서 이 책에 도전했다. 물론 [도시락 경제학]이라는 참신한 제목도 이 책을 선택하는데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도시락이니까 쉽게 쏙쏙 뽑아먹을 수 있겠지? 역시 기대했던 대로 여러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된 경제학을 도시락처럼 쏙쏙 뽑아먹을 순 있었다. 다만 책의 내용이 단락별로 나뉘었기에 책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는 다른 책보다는 책의 수준이 조금 높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여러 권의 경제책을 조금 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다른 경제책(<금융 위기>였었나..?)을 처음 봤을 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날라들어온 '헤지 펀드'니, '디폴트'니, '금본위제', '서브 프라임', '헤게모니'(이건 좀 다른 용어지만..) 등등 생소한 용어들을 일일히 찾아보면서 읽었기에 이 책의 친절한 설명이 더 와닿았다.

 

경제학의 기본적인 용어들과 개념들에서부터(1장_시장의 주체는 이기적 인간) 환율과 금리, 인플레이션이 등장하기도 하고(2장_경제는 이자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며 시장 경제의 자유를 강조했던 것에서 점차 정부의 '보이는 손'을 필요로하고 있다는 이야기(3장_국가와 시장의 한판 승부)와, 제테크의 대명사인 증시 이야기(4장_불타는 증시로 번지점프!)도 짚어주고, 달러의 가치절하 된 이야기(5장_추락하는 달러에는 날개가 없다)를 하고나서 마지막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집에 대해서 이야기(6장_부동산 잔치에 훼방 놓기)하고 마무리 짓는다. 읽다보면 우리 경제학자가 써서 그런지 요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한 번쯤 궁금했던 사항에 대해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 전에 봤던 책은 일본 저자나 미국 저자밖에 없어서 그런지 그런 맛은 좀 덜했었다. 한 글자를 써도 다정하게 우리의 위기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그런 맛은 이 책에서만 느낄 수 있다.

 

주식 투자는 전혀 하지 않아서 4장보다는 6장에 나온 부동산 잔치에 대해서 신기해하며 읽었다. 4장에서 주식시장에 투자할 때는 오랫동안 공부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 이렇다할 새로운 것이 없었는데 6장에서는 부동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집값이 정상적인 집값인지 거품 비용이 들어간 것인지를 계산하는 세 가지 방법(1_다른 지역 주택 상승치와 비교/2_소득 수준과 비교/3_전세가격으로 집에 거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치 평가)이나 부동산에 대한 우리의 오해 5가지 등 정말 새로운 이야기였다. 특히나 오해 5가지 중에 제일 신기했던 것은 '우리는 왜 아파트를 선불을 내고 사는가?'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도 않는가 본데, 우리나라에서는 모델하우스만 보고 분양을 받아 3년 뒤에 들어간다. 3년 간이나 사용하지도 못할 아파트 대금을 미리 내는 것은 그렇다치고, 입주를 한다고 해도 문제는 생긴다. 모델하우스의 모습과 달라 베란다는 좁고, 가구는 안 들어가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환불받을 수조차 없으니 이 어찌 고객 맞춤 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건설사 입장만 맞춰주기 위해 선분양으로 소비자가 낸 돈을 받아서 은행에 빌린 돈을 착실하게 갚아나가는 이런 속 없는 짓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예전엔 당연히 그런 줄만 알고 있었던 것이 요렇게 책 하나로 다르게 보이다니, 정말 아는 게 힘이다.

 

사실 이 책을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해주는 경제신문을 들여다보면서 주식이면 주식에 대해서, 환율이면 환율에 대해서 몇 번이고 다시 봐야 더 머릿속에 잘 박힐 텐데 아쉽게도 신문을 읽는 것이 버릇되지 않는 까막눈이다 보니까 이 책을 100% 활용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쉽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본 게 어딘가~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고 다시금 필요할 때마다 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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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의 명사 이순신을 말하다
김성수 외 지음 / 자연과인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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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을 말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이 '백의종군'이다.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을 때는 제일 먼저 '거북선'을 떠올렸었는데 이제 어른이 되어 그런 인물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절절하게 알고 나니까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나라를 위했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백의종군'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렇게나 유명하고, 온 나라가 환호하는 그 위대한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나는 자세히 알지를 못한다. 그저 늦깍이로 무과 과거시험에 응시해서 아주 성실하게 나랏일을 감당했다는 것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어렸을 적에는 거북선의 존재가 이순신 장군의 창의력과 천재성을 증명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장군이 전체적으로 지휘는 했겠지만 거북선을 실제로 만들어낸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수하였을 수도 있다는 의혹 섞인 말에도 금방 흔들려버리니 그의 위대함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누가 만들었든간에 지금은 그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거북선의 매력도 사그라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 참에 만난 이 책은 너무 새롭다. 충무공 이순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디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을 본받기 위해 '이순신리더십연구회'라는 단체도 설립해서 뭔가를 한다고도 하고, 순천향대학교에서는 '이순신연구소'를 세웠다기도 하고, 어떤 카페에서는 '이순신레인보우강사 프로그램'도 있다고도 들었는데 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회도 결성하고,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로의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말고는 없다 생각했는데, 이럴수가~ 진짜 입이 떠억 벌어질 만큼 대단한 내용이 들어있다. 특히나 변호사, 판사,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장, 해군사관학교교장, 소설가, 외교안보연구원장, 한국토지공사 단장, 국무총리 직속 새만금위원회 위원, 경영학 박사 등 내노라 하는 각 분야의 명사들이 한 편씩 쓴 것을 묶은 책이다보니까 뻔한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지도 않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이 알고 있고 연구했던 충무공에 대해 아주 논리적으로 풀어놓는다. 사실은 서영길 해군 중장께서 쓰신 <명량해전과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을 보았을 때는 살짝 눈가에 물기가 어리기도 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을 내가 잘 알지 못했구나~'하는 자괴감과, '그렇게 몸 바쳐 나라를 구했기에 21세기에 내가 이렇게 살아숨쉴 수 있는 것이구나~'하는 감탄 때문에 말이다.

 

백전백승을 기록했던 충무공의 전투는 하나같이 모두 훌륭하지만 그중 그의 리더십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표적인 전투가 바로 명량해전이다. 임진왜란 중에 일어난 해전 중에 가장 열악했던 조건을 가지고도 대승을 거둔 해전이기에 명량해전을 살펴봐야 충무공의 리더십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을 살펴보면 정말 가관이다.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이 감옥에서 모진 고초를 받고 나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백의종군을 해야 하는 것도 기가 찰 일인데, 삼도수군의 지휘권을 빼앗은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이순신이 5년 동안 피땀 흘려 가꿔온 조선의 수군을 전멸시켜버렸단다. 아이구야~ 그런 상황에서 나라에서는 그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했으니, 군사도 없고, 무기도 없고, 배도 없고, 심지어 부임지도 없는 그 상황에서 기가 차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하된 도리로서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했을 뿐. 나처럼 지나간 일에 원한을 두고두고 품어서 가슴에 독을 만들어 살진 않았기에 충무공이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제 감정 처리도 못해서 이리저리 티를 팍팍 내고 다니는데, 충무공은 면목이 없어진 조정에게서 육군에 들어가 싸우라는 명을 받았을 때도 침착하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신에겐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비록 전선이야 적지만 신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이렇게 말했다면, "저, 싹수가 노란 놈~"이란 말이나 들었을텐데 충무공의 입에서 흘러나온 저 말은 그 자체로 생명이 있는 듯 하다. 그렇게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충무공은 여러 병법을 사용해 1 대 30의 열세 상황을 1 대 3으로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 방법은 이러하다. 1) 탐망선 등 다종의 정보 획득원의 활용, 2) 선승구전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 선택, 3) 전투 해역과 시간 선택으로 전장의 주도권 장악, 4) 판옥선의 장점인 화포 운용의 적절성 으로 평소에 공부해왔던 많은 병서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미리부터 판옥선이라는 새로운 배를 개발했는데 왜군들의 전투 방식이 적의 배에 뛰어내려 1대 1의 백병전으로 함을 알고 배에 적군들이 들어올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또한 상하동욕하는 정신력으로 무장하도록 해서 군사들이 전쟁 중에 도망쳐 대열을 무너뜨리고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미리부터 엄(嚴)과 신(信)을 이용해 군사들의 정신을 무장시켰다는 것이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충무공일지라도 그를 받쳐주는 군사들이 없었다면 명량해전의 승리는 이룰 수 없었을 것이기에 평소부터 엄하게 다스리면서도 자신을 따르면 승리가 온다는 믿음을 줘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했단다. 리더로써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기업이든 더 성장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전략을 세워 전쟁을 할 일은 없겠지만 충무공의 리더십을 가지고 세상에 나간다면 온 세계가 내 손 안에 있지 않을까. 이런 음흉한 생각을 하지 않아서 더욱 대단한 충무공은 전쟁의 상대국인 일본까지도 인정하는 위대한 명장이 아닐 수 없다. 아~ 이런 영웅, 또 안 나타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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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베 난징의 굿맨
존 라베 지음, 에르빈 비커르트 엮음, 장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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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베라는 사람을 들어보았는가? 유대인들이 학살당할 때 구원한 쉰들러와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 다만 그 장소가 중국의 난징일 뿐. 난징대학살이 일어날 때 지멘스 회사원으로 난징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치당 존 라베는 인도주의적인 생각으로 피난을 떠나라는 회사의 명령도 뿌리치고 그 곳에 남아 가난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안전지대가 되어 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일본과 사이가 좋았던 독일이었기에 나치당 표지만 들이대도 중국 여성을 강간하려던 일본놈들이 도망까지 쳤다고 하니까 오히려 존 라베가 나치당이었던 것이 일을 더 쉽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자기 집 앞마당에 큰 나치당기를 펼쳐놓아 폭격을 막기도 했다니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존 라베를 '살아있는 부처'라고 칭할 정도로 숭배했는데 그가 자기를 버리고 떠날까 봐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단다. 시도 때도 없이 일본군들이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강간하고 죽여버리는 모습을 보아온 존 라베도 당연히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을 지켜주었다. '중국의 쉰들러'라고도 불린다는 존 라베를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이를 계기로 이름만 알고 있었던 오스카 쉰들러에 대해서도 책 좀 찾아 읽어봐야겠다. 에구에구~ 아직 영화<쉰들러 리스트>도 안 봤는데~

 

그런데 누가 독일인이라서, 누가 일본인이라서 좋고, 싫거나 착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품성으로 그들이 '좋다', '싫다', '착하다', '나쁘다'가 결정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존 라베나 오스카 쉰들러가 유대인 학살했던 독일인들 중 하나라서 신기해보이긴 해도 그저 한 인간으로서 위험을 감수하며 인간을 사랑한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독일인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상식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이라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나라로 바뀌면 그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온 난징에서 벌어진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자행하는 일본놈들을 보고도 중국인들과 똑같이 당했던 우리 선조가 생각나 도저히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일본군들은 그런 짓거리를 했을런지는 몰라도 모든 일본 사람들이 그 일에 찬성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 정말 답답하다.

 

일찍감치 모든 중국 정부와 관리들이 버리고 가버린 난징에 남은 사람들이라곤 그저 찢어질 듯 가난해서 어디론가 떠날 차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전쟁 중에 부상당한 군인들도 더러 섞여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 모두 패잔병들로 온갖 첨단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일본군들은 난징을 점령하고선 보이는 족족 중국인들을 사살해버렸다. 부상병들도, 존 라베의 난민구에 있던 중국인들도 몇 백명, 몇 천명씩 모아다가 총살해버렸던 것!! 군인이 아니여도 중국인 남자들은 모조리 잡혀갔다. 그리고 집마다 모두 약탈당해서 집에 남아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비단 일반 중국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존 라베와 같이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집에도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물건을 집어가고 약탈해가는 것이 다반사였으니 중국인이라면 언제 어느 때 잡혀서 죽을지 몰랐다. 여자와 아이들은, 심지어 할머니들도 강간당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존 라베가 말하길, 질 속에 죽창이 꽂혀 죽은 여성의 시체가 너무 많아서 구역질이 날 정도라고 했으니 그곳은 아마도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서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한 순간에 폭격을 맞거나 총질을 당할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도 존 라베는 그나마 보잘것없는 자신이여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힘없고 약한 중국인들을 지켰다.

 

그와 반대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떠나버린 난징 땅에서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은 끝까지 일본군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명예를 중시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황 대령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솟을 뿐이다. 그러고선 자신은 내빼고 말이다. 유대인 학살이야 인종청소여서 자신을 방어할 조직이 전혀 없었던 사건이었지만 이 난징대학살은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침범한 전쟁이었지 않은가. 일본은 그렇다치고 중국에서조차 그 일을 '전쟁'이 아닌 '사건'으로 취급하며 자국민의 안전, 특히 가난한 국민의 안전을 무시했던 것을 보면 중국놈들도 악랄한 일본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놈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존 라베의 인품이 더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여기 그가 난징에 남으면서 한 말이 있다.

 

"30년 이상을 이 나라에서 활동하고 거의 전 생애를 여기서 보냈으니만큼

이 일을 위해 한번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순수한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켰던 존 라베는 영웅 중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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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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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소설은 표지를 보고 고를 때가 많은데, 이 소설은 띠지가 있을 때와 띠지가 없을 때가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아아~ 악몽이라니까 좀 힘든 내용이겠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띠지를 벗겨놓고 보니까 그 악몽의 수준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확~ 와닿는다고나 할까. 이 소설이 기노시타 한타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그 처녀작이 바로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띠지 뒷면) '정말 대단히 글 잘 쓰는 작가다!!' 하는 생각에 가슴까지 설레였던 것을 생각하면 좀 억울하다. '악몽'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부터가 부정적인데 그런 뻔한 의미를 파악하지조차 못하다니!!! 괜스레 순진하게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어 보인다. 내가 좀 스릴러, 서스펜스 같은 종류의 책은 무서워하는데, 이 소설은 등장인물 중 하나인 가오루의 말을 빌리서 말하면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조합되어 있는 소설이다. 조마조마한 점은 서스펜스적이고 마지막에 결국 사건 해결은 못하지만 수수께끼가 풀린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라서 처음부터 순서대로 봐야 이야기의 구성이 잘 갖추어지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이런 구성을 가진 이유를 나가에 아키라 씨는 작가가 간사이에 둥지를 두고 활약하는 배우이자 극작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럴싸하다싶다. 편집을 하지 못하는 연극에서는 오로지 구성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갈 테니까. 그래서 꼭 순서대로 보란 당부를 하고 싶다. 나는 뒤에 있는 해설을 먼저 읽다가 한 장면에 눈이 꽂혀서 봤더니만 처음부터 읽은 감동이나 깨달음은 별로고,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만 하고 봤기 때문이다. 소설은 세 가지 악몽으로 구성된다. 먼저 오가와의 악몽, 마키의 악몽, 사부로의 악몽~ 영화 <밴티지 포인트>처럼 한 사건(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관점이 제시되는 것처럼 이 소설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스물 여덟 살의 오가와 준의 악몽이 나온다. 오가와는 아내의 급한 전화를 받고 엘리베이터에 탄 것을 끝으로 기절을 했다. 그리곤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세 사람과 같이 갇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사람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오가와는 극도의 공포에 질리게 된다. 

 

두 번째 마키의 악몽을 읽으면 별일이 아니라고 금방 마음을 놓을 수가 있다. 그 때 사부로의 악몽에서 크나큰 반전을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고 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마음을 놓지 말고 끝까지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사실 상황은 점점 악몽같게 변해가면서도 나로선 왠지 현실감이 없는 느낌이 들어 멍~하니 있다가 마지막까지 읽어보니 진짜 반전으로 배후의 인물이 있었다. 상황이 계속 꼬이는데도 내게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 게 배후의 인물이 있다는 것을 감으로 알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어쩜, 사람이 저렇게 절망적일 수가 있을까. 악몽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가 보던데 내겐 좀 버거울 것 같은 시리즈이다. 아깝네~ 난 시리즈, 정말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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