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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베 난징의 굿맨
존 라베 지음, 에르빈 비커르트 엮음, 장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존 라베라는 사람을 들어보았는가? 유대인들이 학살당할 때 구원한 쉰들러와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 다만 그 장소가 중국의 난징일 뿐. 난징대학살이 일어날 때 지멘스 회사원으로 난징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치당 존 라베는 인도주의적인 생각으로 피난을 떠나라는 회사의 명령도 뿌리치고 그 곳에 남아 가난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안전지대가 되어 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일본과 사이가 좋았던 독일이었기에 나치당 표지만 들이대도 중국 여성을 강간하려던 일본놈들이 도망까지 쳤다고 하니까 오히려 존 라베가 나치당이었던 것이 일을 더 쉽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자기 집 앞마당에 큰 나치당기를 펼쳐놓아 폭격을 막기도 했다니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존 라베를 '살아있는 부처'라고 칭할 정도로 숭배했는데 그가 자기를 버리고 떠날까 봐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단다. 시도 때도 없이 일본군들이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강간하고 죽여버리는 모습을 보아온 존 라베도 당연히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을 지켜주었다. '중국의 쉰들러'라고도 불린다는 존 라베를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이를 계기로 이름만 알고 있었던 오스카 쉰들러에 대해서도 책 좀 찾아 읽어봐야겠다. 에구에구~ 아직 영화<쉰들러 리스트>도 안 봤는데~
그런데 누가 독일인이라서, 누가 일본인이라서 좋고, 싫거나 착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품성으로 그들이 '좋다', '싫다', '착하다', '나쁘다'가 결정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존 라베나 오스카 쉰들러가 유대인 학살했던 독일인들 중 하나라서 신기해보이긴 해도 그저 한 인간으로서 위험을 감수하며 인간을 사랑한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독일인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상식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이라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나라로 바뀌면 그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온 난징에서 벌어진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자행하는 일본놈들을 보고도 중국인들과 똑같이 당했던 우리 선조가 생각나 도저히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일본군들은 그런 짓거리를 했을런지는 몰라도 모든 일본 사람들이 그 일에 찬성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 정말 답답하다.
일찍감치 모든 중국 정부와 관리들이 버리고 가버린 난징에 남은 사람들이라곤 그저 찢어질 듯 가난해서 어디론가 떠날 차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전쟁 중에 부상당한 군인들도 더러 섞여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 모두 패잔병들로 온갖 첨단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일본군들은 난징을 점령하고선 보이는 족족 중국인들을 사살해버렸다. 부상병들도, 존 라베의 난민구에 있던 중국인들도 몇 백명, 몇 천명씩 모아다가 총살해버렸던 것!! 군인이 아니여도 중국인 남자들은 모조리 잡혀갔다. 그리고 집마다 모두 약탈당해서 집에 남아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비단 일반 중국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존 라베와 같이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집에도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물건을 집어가고 약탈해가는 것이 다반사였으니 중국인이라면 언제 어느 때 잡혀서 죽을지 몰랐다. 여자와 아이들은, 심지어 할머니들도 강간당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존 라베가 말하길, 질 속에 죽창이 꽂혀 죽은 여성의 시체가 너무 많아서 구역질이 날 정도라고 했으니 그곳은 아마도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서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한 순간에 폭격을 맞거나 총질을 당할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도 존 라베는 그나마 보잘것없는 자신이여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힘없고 약한 중국인들을 지켰다.
그와 반대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떠나버린 난징 땅에서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은 끝까지 일본군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명예를 중시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황 대령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솟을 뿐이다. 그러고선 자신은 내빼고 말이다. 유대인 학살이야 인종청소여서 자신을 방어할 조직이 전혀 없었던 사건이었지만 이 난징대학살은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침범한 전쟁이었지 않은가. 일본은 그렇다치고 중국에서조차 그 일을 '전쟁'이 아닌 '사건'으로 취급하며 자국민의 안전, 특히 가난한 국민의 안전을 무시했던 것을 보면 중국놈들도 악랄한 일본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놈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존 라베의 인품이 더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여기 그가 난징에 남으면서 한 말이 있다.
"30년 이상을 이 나라에서 활동하고 거의 전 생애를 여기서 보냈으니만큼
이 일을 위해 한번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순수한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켰던 존 라베는 영웅 중의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