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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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내가 고 장영희 교수님을 알게 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이 책 한번 읽어볼걸~'하고 후회를 했던 차에 내게 던져졌다. 하루하루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어느날 말 그대로 내게 던져졌기에 이건 작은 '기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기가 바로 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던 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서도, 또 그 분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내가 가타부타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인권변호사로 살아오셨던 모습이나 그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존경할 만한 그 무엇이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분의 서거 소식을 듣고, 또 그것이 자살이라는 소리를 듣고서 안타까움을 금할 순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다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다가도 자살은 아닌데,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닌데 하는 모순적인 생각이 하루종일 떠나지 않았다. 얼마전 김점선 화가도, 장영희 교수님도, 여운계 선생님도 별세하셔서 요즘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병환으로 가시는 분들이 많구나~ 하고 묘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니~~ 정말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사건들로 가득한 이 때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던 바로 그 때, 내게 해답이라도 들려주시려는 듯, 아니면 다른 허튼 생각은 꿈일랑 하지 말라는 듯, 그렇게 내게 기적의 모습으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제목만 봐도 기적이라는 느낌, 삶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일 수 있다는 느낌을 물씬 풍기고, 표지도 환상적이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주기에 바라만 봐도 너무 예쁜 책이었다. 고 장영희 교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었던 지식이 없었기에(가만 보면 내가 정말 늦된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실까 궁금하게 읽었는데 한평생 장애인으로 사시면서도 행복하게 자신있게 당차게 살아오신 것 같아 정말 행복한 기운을 받으며 읽을 수 있었다. 교수님이시라니까 어딘가 모르게 우아하고 시사상식도 풍부하고 외국에서 공부할 때의 비범한 능력과 끈기로 성공했다는 스토리도 기대했었는데 그보다는 게으르고 빈둥거리고 뭔가를 하려다가도 마음이 토라져서 포기하게 되고 마감에 쫓기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너무나 정상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인 성공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제껏 내가 읽었던 성공사례를 보면 하나같이 끈기가 있고 악착같고 미루지 않으면 부지런한 모습(물론 도둑에게서 논문을 강탈당할 때는 그랬지만), 그러니까 내가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것 같은, 그런 완벽한 모습만 보아오다가 교수님의 일상을 들여다 보니까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늦된 게 아닐 수도 있구나~, 내가 다른 사람보다 뒤쳐진 게 아닐 수도 있겠다~ 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분도 나처럼 약속시간에 항상 늦고, 일찍 나서려다가도 쓸데없는 자존심에 늦게 나가기도 하고, 여유 있을 때 잘 하기 위해 미리 설쳐도 꼭 마감일에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하는 등 여러 모습이 같았다. 물론 그녀는 도전해서 성공했던 사람이고 난 아예 실패할 것을 두려워해서 시도조차 못하는 인간인 것은 변함없지만 말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저 나 같은 사람도 이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만하다는, 그런 작은 위안을 얻었다고나 할까....?

 

글 중에 교수님께 상담을 받다가 얼마 후에 메일을 쓰곤 지하철에 투신자살한 학생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 8시 16분에 메일을 쓰고 9시 50분에 투신을 했다는데 교수님은 9시 55분에 메일을 확인해버려서 그만 학생이 죽은 후에 메일을 확인해버린 게 되었다. 어쩌면 그 학생은 메일을 보내고 교수님에게서 연락오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는데... 만약에 좀 더 일찍 열어봤더라면... 만약에 좀 더 늦게 투신했더라면... 만약에... 만약...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뛰어내렸던 사람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감히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보겠냐마는 그래도 그가 조금 일찍 이 시를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을 가져왔다는 김종삼 시인의 <어부>라는 시의 끝부분이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살아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거다. 살지 않는다면 슬픔이 올지 기쁨이 올지 모르는 것 아닌가.

조금만 더 견디고, 조금만 더 부대끼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랬다면 누군가 나타나 그에게 괜찮아! 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만하면 참 잘했다' 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 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 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 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는 이 세상이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고 마음 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좀 더 기다렸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성급하게 마음을 정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좀 더 안아줄 수 있어야 할 테다. 아마 그것이 평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넘치는 웃음에너지를 나누었던 장 교수님이 바라시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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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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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아아아아~~~~!! [기프트] 닷~~~! 표지만 보고 다른 것 볼것 없이 한 눈에 올인하게 된 책, [기프트]!! 저기 표지에는 좀 어둡게 나와서 모르겠지만 실제 표지에는 멋진 미소년의 이마 쯤에 안대가 올려져 있는데, 책을 다 본 뒤에야 이 안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실제 책으로 봐도 표지의 미소년이 아주 예술이지만, 저기 네이버에서 제공된 표지는 정말 환상적이다. 원 속에 피어나는 저 오색찬란한 빛이라니~~ 아주 멋지다.

 

어슐러 K. 르귄의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힐 정도로 대단히 유명한 어슐러 K. 르귄을 난 이 책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에 이름만 봤을 땐 할아버지인 줄 알았더니만 실은 할머니셨단다. 오옷~~!! 정말 부럽고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세계 3대 판타지 소설의 작가 중의 한 사람은 여자라니, 우하하하~~ J. R. R 톨킨과 C. S. 루이스는 좀 아는 사람이고 그들의 책은 소장중이거나 봤거나 했는데 그녀의 책은 이제 처음이라니 빨리 따라잡아야겠는걸?

 

이 책은 서부 해안 연대기 시리즈의 첫 권이다. '선물', '능력'이란 뜻을 가진 '기프트'를 화두로 놓고 이야기가 전개해나간다. 제일 첫 장에 서부 해안의 지도가 삽입되어 있긴 한데, 내가 지도 보는 능력이 꽝인지 책을 읽으면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서 그냥 무시하고 설명하기로 하자. 주인공 오렉은 도시 사람들에게는 '마법사'라 불리는 족속으로 구릉지대에서 척박하고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무지렁이 농부들이지만 이런 험준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각기 족속들마다 능력이 다른데 그 능력은 자기 족속을 지키는데 필요하기에 가장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브렌터가 되어 그 족속을 지킨다. 그런데 같은 혈통끼리 혼인을 해야만 그 능력이 이어지기 때문에 만약 능력이 발현되지 않게 된다면 주위에 있는 호전적이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부족에게서 멸족을 당할 위험도 있는 것이다.

 

카스프로 일족의 능력은 '되돌림'이다. 그것은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생명체를 태초로 돌아가게 하는 능력인데, 뼈가 있는 동물이라면 척추가 다 뭉개져 죽게 되고, 식물인 경우 새카맣게 타버리게 할 수 있다. 그의 단짝 친구인 그라이는 바레 족속으로 '부름'이란 능력이 있는데 '부름'은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사냥꾼들이 사냥을 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그런데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그 능력들이 바레 족속인 그라이에게는 세 살 때부터 나타났는데 오렉에겐 열세 살이 되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데에 그 문제가 있었다. 만약 오렉에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카스프로 일족은 그 혈통을 잃게 될 것이기에~~

 

나는 그런 대단하고도 무시무시한 능력이 있는 일명 마법사 일족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참 어이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위에서 군림하여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것을 바라진 않더라도 조금은 평안하고 윤택한 삶을 영위하지는 못했던 걸까, 왜 하나같이 마법사 일족들은 '되돌림', '비틀기', '칼날', '불 피우기', 어떤 무거운 물건이나 산일지라도 옮길 수 있는 '옮기기', 다른 사람의 의지를 빼앗는 '고삐 매기', 상대의 마음을 빼앗아 머리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하는 바보로 만드는 '쓸어내기' 등의 무시무시한 능력만 갖게 된 걸까, 왜 그것이 인간들의 삶에 윤택함을 더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런 능력은 상대에게 위협만 될 뿐 하등 도움이 될 수 없잖아~ 사실 그런 능력이 발현되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이유를 찾아보면 사실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하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라이가 생각해 낸 것처럼~~

 

그러던 오렉이 의도하지 않은 때에 '되돌림'의 선물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사태는 급박해진다.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사랑하는 사람들, 엄마나 아빠, 그리고 그라이, 그외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불안은 그를 눈멀게 했던 것~~~ 그런 상태로 엄마를 보내고, 그는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보면 우리에게 해주는 말이 분명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도 사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에 얻은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남을 괴롭힐 수밖에 없어보이는 능력일지라도 다시 곰곰히 뜯어보면 달리 보일 수가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 안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여유를 가질 수가 있을 텐데... 어찌보면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일구며 살아가야 했던 마법사 일족의 삶이 오히려 탐욕이란 족쇄에서 좀 더 자유로웠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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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두의 우연한 현실 사계절 1318 문고 54
이현 지음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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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1318문고는 사계절에서 나온 열세 살에서부터 열여덟 살까지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꾸며놓은 현대문학선이다. 이 녀석과 내가 만난 지도 꽤 된 것이 벌써 햇수로만 해도 6년째다. 처음 봤던 책이 아마 미리암 프레슬러의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였던가. 독일 소설답게 정말 건조한 문체로 진행되는 고아 아닌 고아 소녀가 행복을 감지해가는 이야기가 가슴 벅차게 그려진다. 얼마 전에 봤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다른 남자> 때문에 "독일 문학은 다시는 안 봐!"라고 생각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도 역시 독일 문학이다. 또한 논술지도사 수업에서 필독서로 만난 게리 폴슨의 <다리 건너 저편에>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내겐 사계절 1318문고가 너무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 이후부터 찾아서 보게 된 것이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 페터 헤르틀링의 <크뤽케>, 로버트 뉴턴 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코닉스버그의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게리 폴슨의 <손도끼>, 지크프리트 렌츠의 <아르네가 남긴 것>, 커플책으로 크리스티앙 그르니에의 <내 남자친구 이야기>와 <내 여자친구 이야기>까지 아주 빠져서 읽었다. 처음엔 외국 작가들의 책만 즐겨 찾았었는데, 한국 작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들어 많이 생겼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차적으로 한국 소설에도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수필집으로 엮은 <사람 사이에 삶의 길이 있고>와 <조금만 눈을 들면 넓은 세상이 보인다>도 있고, 박상률 님의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이나 채지민의 <내 안의 자유>, 한창훈의 <열여섯의 섬>까지 다 좋았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 바로 이현의 <영두의 우연한 현실>인데 아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실 언니 방에서 뭘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게 사계절 1318문고란 것을 알고 바로 업어와버렸다. 이 책을 보면 요즘 청소년 문학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현재 청소년 아이들의 현실에 반영된 이야기여야 하기 때문이겠지만, 난 조금 씁쓸했다. 더 이상 잔잔하고도 심오한 이야기보다는 약간 자극적이고도 말초적인 이야기만 보게 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어쨌거나 요즘 청소년 문학의 현주소를 볼 수 있었단 것으로 만족한다.
 
단편집으로 된 사계절 1318문고는 처음인데, 이야기는 총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친구이기만 했던 이성에게 좋아하게 되었다가 고백도 못하고 실연하게 된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어떤 실연>, 이 책의 표제작이자 다중 우주이론을 토대로 한 <영두의 우연한 현실>, 강간과 사랑의 사이를 고민하게 되는 십대 소년을 다룬 <빨간 신호등>, 우주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바쁜 현실을 비판하는 <로스웰주의보>, 정리해고를 당하고 나서 알콜 중독으로 도피해버려 한 가정의 꿈과 희망을 무너뜨린 한 가장의 죽음을 통해 부모와 자식간의 올바른 소통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그가 남긴 것>, 청소년 인권 문제에 화두를 던지는 <오답 승리의 희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깜짝 놀랄 정도로 적나라한 청소년의 현실을 보여준 <빨간 신호등>이나 무너져가는 가계 경제로 인해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있을까 생각하게 해준 <그가 남긴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의식을, 성교육을 하지 못해 우발적으로 강간을 저지르게 되는, 그러나 그것이 왜 잘못인지도 혼란스러워하는 한 십대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이 과연 바른 것일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왔던가, 자문하게 했다. 영어 좀 더 잘하고, 수학 공식 하나 더 외우고, 수행평가 챙기는 것이 다가 아닌데.... 사실은 인간을 어떻게 대하고, 여성을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같이 의논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일 텐데 우리네 가정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부모-자식이 얼마나 있을까. 암암리에 야동을 구해다 보는 것이 일상사가 되고, 그것에게 주워들은 성지식이 전부인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바른 성의식을 심어줄 수나 있을까. 나도 어른이지만 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시킬 수가 있을까. 민망하다고 쉬쉬하고 넘어가버리면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뭔가 문제는 생기고야 말 것이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지만 정리해고를 당하고 그 울분을 소주로 풀다가 당뇨 합병증을 얻어 끝내 죽은 한 가장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공부는 꽤 잘했지만 아버지의 입원비용과 약값으로 가정 경제가 기우는 탓에 상고로 전학을 간 딸은 중학교 때부터 알바를 하며 아둥바둥 살아가려고 애쓰는 반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술이나 먹지를 않았으면 당뇨로 병원 신세는 안 졌을 것인데, 그랬다면 엄마가 고생스럽게 나가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집이 넘어가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하며 아버지의 무능력한 모습을 극도로 격렬히 증오했다. 그러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아버지는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다고...꿈도...희망도...행복도... 한탄하며 오열하는 딸을 보면서 돈을 못 벌어다 주는 가장은 그렇게 무시해버려도 될 존재인지, 아니면 해고를 당했다고 자신의 삶을 그저 그렇게 포기해버린 그런 아버지를 비판해야 할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그저 다만 그런 아버지가, 그런 자녀들이 너무 불쌍했을 따름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눈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감정적 공허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런지, 나는 그게 제일 걱정되었다. 아마도 내 어딘가에도 그렇게 메말라버린 눈물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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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래식을 만나다
정인섭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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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야 클래식 입문책을 겨우 하나 뗐기에 하면 아직 클래식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영화나 CF 등으로 귀에 익은 클래식은 내가 몰라서 그렇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음악을 직접 대면했을 때야 겨우 '아~ 아는 거다' 하지, 보통 이름만 나오면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런 문제를 과감히 해결해준 책이 있다면,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총 스물 여섯 편의 영화 속에서 주역의 자리를 차지한 클래식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영화에 대한 감동과 해설까지 곁들여져서 나오니 상당히 만족스럽다. 영화를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워낙에 깊이가 없는 탓에 예술 영화나 뭔가 의미있는 영화는 제쳐두고 흥미 위주로 고르다 보니 - 그나마 요즘엔 그것도 못하고 있지만 -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좋아한다. 아직은 남들 하는 이야기만 주워듣고 있지만 이런 이야기도도 쌓이다 보면 나름의 식견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에 나온 스물 여섯 편의 영화 중에서 내가 봤던 영화는 겨우 다섯 편밖에는 안 된다. <쇼생크 탈출>, <아마데우스>, <작은 신의 아이들>, <죽은 시인의 사회>, <파리넬리> 이렇게 총 다섯인데, 그나마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음악 영화였던 <파리넬리>뿐이다. 대학 때 도서관에서 봤던 그 영화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가 너무 강렬했던 탓에 아직까지 그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외 다른 영화들은 내용만 단편적으로 기억이 날 뿐 배경으로 흘러나왔던 음악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오래 전에 본 것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겠지만 우선적으로 영화를 볼 때 음악은 배경으로만 듣지, 영상처럼 그렇게 주의깊게 신경쓰지 않았던 탓이다. 특히나 그렇게도 많이 봤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흘러나왔던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으니 정말 한심할 정도이다. 아마도 지금 다시 들어보면 '아하~' 하고 알 테지만.

 

아마도 고등학교 때 음악시간에 봤던 것 - 대학 때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내 손으로 찾아서 본 것은 아니였다. - 으로 기억나는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를 상당히 경박한 인물로 그려놓은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보니 상당히 많은 클래식이 나왔는데, 다른 영화와는 달리 배경음악이 아니라 스토리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여서 좀 기억에 나는 듯도 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 내 맘 속에 끓고"]도 생각이 날듯 말듯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가장 인상깊었던 음악(장면)은 뭐니뭐니 해도 모차르트가 죽어서 미완으로 남기게 된 [레퀴엠]이다. 그가 죽게 되는 과정을 기이한 분위기로 그린 그 장면은 정말 스산했다. 특히나 그가 제3곡 "라크리모사" 8소절까지만 썼기 때문에 그 작품이 더욱 특별한데, 얼마 전에 동일한 제목의 무시무시한 소설을 본 후라 더 마음에 남는다. 역시 으스스한 내용은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

 

영화 <작은 신의 아이들>은 봤을 거라고 추정되는 영화다. 대학 때 수화 수업을 들었는데, 워낙에 까다롭게 가르치시는 교수님 밑에서 이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란 숙제를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내용이 기억안나서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가 물(수영장) 속에서 웅크리고 둥둥 떠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애인과 사랑싸움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을 텐데 역시 이 영화에서도 음악은 기억이 안난다. 그 음악은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제2악장]이다. 사랑을 엮어가는 주인공들의 어울림을 아름답게 표현한 이 음악은 오히려 농아와 정상인이 서로 사랑해서 서로 좋아하는 것(남자 주인공에겐 바로 이 음악)을 상대랑 공유하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더욱 진하게 불러일으킨다. 아, 왜 난 이런 아름다운 선율을 기억할 수가 없는 걸까.

 

이 책을 보니 듣고 싶은 클래식이 두엇 생겼다. 물론 여기 있는 영화를 다 빌려보고 음악도 따로 들어보고 싶지만, 너무 지나친 희망사항은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하니까 일단 두어 개만 정해두었다. 먼저 두 곡은 기타곡인데 영화 <금지된 장난>에 나온 나르시소 예페스의 [로망스]와 영화 <디어 헌터>에서 존 윌리엄스가 연주한 [카바티나]이다. 둘 다 클래식 기타의 대명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감동스러우면 그럴까 싶어서 꼭 들어보고 싶다. 또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에 나온 바흐의 [샤콘느]를 들어보고 싶다. 이 곡은 오직 바이올린 한 대의 악기로만 연주해야 하는 유명한 곡으로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중에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곡인데, 폐부를 찌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고 짜릿하게 들려주는 곡이란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편곡하기도 했다는데, 얼마나 뛰어나면 영화의 엔딩 14분을 고스란히 음악에 할애를 할까 싶기도 한 게 진짜 궁금하다. 그런데 이런 음악 영화에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배우를 쓰는 거겠지? 그것도 궁금하네~

 

마지막으로 가장가장 보고 싶은 영화는 책의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영화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다. 이 영화에 쓰인 클래식은 상당히 많은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일출"은 태양이 행성 뒤로 떠오르는 오프닝 신과 맞물려 장엄하게 만들고, 뼈다귀가 우주선으로 바뀌는 부분에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우주공간을 우아한 곳으로 바뀌놓는다고 하니 어찌 솔깃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특히 이 영화는 SF소설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인 아서 C. 클라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과 책에 실린 첫 사진에 나온 모노리스(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커다란 돌비석)가 아주 흥미로웠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아주 쪼그매져서 영화 속에 들어간 악동이 나오는 배경이 그 돌비석이었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영화가 그렇게 유명했구나~~

 

클래식뿐만 아니라 영화의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게 해준 이 책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다. 특히나 내게는 영화의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영화들에 대해 알게 되니까 흥미가 마구 솟구친다. 앞으로 책도 보고 영화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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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
오카다 아케오 지음, 이진주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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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이렇게 좋은 책은 일본 사람이 써야 하는지, 일본이 우리보다 10년은 더 앞서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탐이 나는 책을 쓴 게 일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이상하게도 배가 아프다. 그만큼 오카다 아케오는 서문에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문학 박사라는 사람이 대단도 하구만. 특히나 내가 음악에는 영 자신이 없다 보니, 음악사에 대한 책을 고르는 것부터가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내 지적 수준을 뛰어넘는 책을 골라서 음악은 음악대로 싫어하게 되고, 책은 책대로 버리게 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정말로 잘 골랐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 책을 만나고부터는 음악에 대해서 좀 자신이 생긴 듯 싶다. 그만큼 오카다 박사가 참 흥미롭고도 쉽게 썼다. 게다가 서문에서 18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클래식 시대'가 서양 음악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라는 편견을 고수한다는 작가의 말이 오히려 나에게 신뢰를 주었다. 음악이나 미술 분야는 개인적인 취향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에 작가가 객관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보다는 개인적인 소견을 드러내주는 것이 훨씬 더 친근하고 분명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단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나 같이 한 분야에 대한 문외한은 객관적으로 쓴 글을 봐도 그래서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차라리 딱 까놓고 자신의 관점을 설명해주는 것이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음악에 대한 개론서로서는 처음 보는 책이지만, 음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오선지에 그려져 있는 악보를 보고, '도미솔'로 끝나는 음악을 아름답게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음악의 역사가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까지는 박자감도 정확하지 않았고, 끝부분이 '도솔'로 끝나서 뭔가 안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음악을 연주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지만 그 당시엔 음악이 즐기기 위한 것이라거나 미(美)적인 것을 추구할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음악'하면 느낄 수 있는 대작곡가와 명작, 친숙한 장르, 3화음, 장조와 단조의 구별, 박자감 등이 바로 바로크 시대 이후부터 확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뭔가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듯 한데, 그 이유는 바로 현대인에게 친숙하지 않은 형식이자 현재로서는 사라진 형태의 장르가 바로크 때 번성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교향곡, 현악4중주, 피아노 소나타, 리트와 같은 장르는 18세기 후반의 빈 고전파 시대에서나 성립되며, 바로크 시대에는 중고등학교 음악책에서나 듣던 수난곡, 오라토리오, 칸타타, 합주협주곡, 트리오 소나타, 무도조곡 등이 번성했기에 바로크 시대가 확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이 시기의 음악은 영화 <파리넬리>나 <왕의 춤>에서 볼 수 있듯이 '절대왕정 시대의 음악'이자 '왕의 축전을 위한 음악'으로서 존재했다. 한 순간의 향연을 위해 수많은 수공업자, 목수, 화가, 재봉사, 정원사, 요리사들이 10만 시간 동안 일하는 그런 시대의 음악이었기에 요즘 우리가 음악회에 가서 조용히 앉아 감상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 배경음악으로서 존재했던 음악이었다니, 참 상상하기 어렵다.  
 
빈 고전파 시대로 가서야 겨우 대중을 위한 음악이 등장한다. 왕이나 귀족들만의 향연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기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하이든만 해도 영국에 가서 공개 연주회를 열어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니 그 당시에는 매니저의 준비로 대중에게 표를 팔아 이익을 얻는 방식이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요즘과는 정말 다르지만 그 당시에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실제 그 음악의 악보를 사서 집에서 연주를 즐기고 싶어했던 시기라 '악보 출판업'이 빠르게 급부상했고, 그로 인해 음악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도 있었다. 정말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마음에 호소하는 음악'이 생겨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등장한 시기도 이 시기고, 소나타와 오페라 부파(희극적인 오페라)가 탄생한 시기도 이 시기다. 정말 서양 음악사의 가장 빛나는 시기가 아니였나 생각된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수많은 음악가가 어떤 식으로 지금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 벅찬 일이다. [서양 음악사], 이 책 한 권으로 서양 음악사의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 지금 이 책을 다 소화하기에도 벅찬데, 뭘 - 그래도 첫 단추는 잘 꿰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집에 굴러다니고 있는 클래식 CD를 많이 들으면서 다시 이 책을 파고들으면 정말 나도 클래식을 잘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솟구친다. 고마워, [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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