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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
오카다 아케오 지음, 이진주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왜 꼭 이렇게 좋은 책은 일본 사람이 써야 하는지, 일본이 우리보다 10년은 더 앞서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탐이 나는 책을 쓴 게 일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이상하게도 배가 아프다. 그만큼 오카다 아케오는 서문에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문학 박사라는 사람이 대단도 하구만. 특히나 내가 음악에는 영 자신이 없다 보니, 음악사에 대한 책을 고르는 것부터가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내 지적 수준을 뛰어넘는 책을 골라서 음악은 음악대로 싫어하게 되고, 책은 책대로 버리게 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정말로 잘 골랐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 책을 만나고부터는 음악에 대해서 좀 자신이 생긴 듯 싶다. 그만큼 오카다 박사가 참 흥미롭고도 쉽게 썼다. 게다가 서문에서 18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클래식 시대'가 서양 음악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라는 편견을 고수한다는 작가의 말이 오히려 나에게 신뢰를 주었다. 음악이나 미술 분야는 개인적인 취향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에 작가가 객관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보다는 개인적인 소견을 드러내주는 것이 훨씬 더 친근하고 분명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단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나 같이 한 분야에 대한 문외한은 객관적으로 쓴 글을 봐도 그래서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차라리 딱 까놓고 자신의 관점을 설명해주는 것이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음악에 대한 개론서로서는 처음 보는 책이지만, 음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오선지에 그려져 있는 악보를 보고, '도미솔'로 끝나는 음악을 아름답게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음악의 역사가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까지는 박자감도 정확하지 않았고, 끝부분이 '도솔'로 끝나서 뭔가 안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음악을 연주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지만 그 당시엔 음악이 즐기기 위한 것이라거나 미(美)적인 것을 추구할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음악'하면 느낄 수 있는 대작곡가와 명작, 친숙한 장르, 3화음, 장조와 단조의 구별, 박자감 등이 바로 바로크 시대 이후부터 확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뭔가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듯 한데, 그 이유는 바로 현대인에게 친숙하지 않은 형식이자 현재로서는 사라진 형태의 장르가 바로크 때 번성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교향곡, 현악4중주, 피아노 소나타, 리트와 같은 장르는 18세기 후반의 빈 고전파 시대에서나 성립되며, 바로크 시대에는 중고등학교 음악책에서나 듣던 수난곡, 오라토리오, 칸타타, 합주협주곡, 트리오 소나타, 무도조곡 등이 번성했기에 바로크 시대가 확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이 시기의 음악은 영화 <파리넬리>나 <왕의 춤>에서 볼 수 있듯이 '절대왕정 시대의 음악'이자 '왕의 축전을 위한 음악'으로서 존재했다. 한 순간의 향연을 위해 수많은 수공업자, 목수, 화가, 재봉사, 정원사, 요리사들이 10만 시간 동안 일하는 그런 시대의 음악이었기에 요즘 우리가 음악회에 가서 조용히 앉아 감상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 배경음악으로서 존재했던 음악이었다니, 참 상상하기 어렵다.
빈 고전파 시대로 가서야 겨우 대중을 위한 음악이 등장한다. 왕이나 귀족들만의 향연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기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하이든만 해도 영국에 가서 공개 연주회를 열어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니 그 당시에는 매니저의 준비로 대중에게 표를 팔아 이익을 얻는 방식이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요즘과는 정말 다르지만 그 당시에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실제 그 음악의 악보를 사서 집에서 연주를 즐기고 싶어했던 시기라 '악보 출판업'이 빠르게 급부상했고, 그로 인해 음악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도 있었다. 정말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마음에 호소하는 음악'이 생겨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등장한 시기도 이 시기고, 소나타와 오페라 부파(희극적인 오페라)가 탄생한 시기도 이 시기다. 정말 서양 음악사의 가장 빛나는 시기가 아니였나 생각된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수많은 음악가가 어떤 식으로 지금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 벅찬 일이다. [서양 음악사], 이 책 한 권으로 서양 음악사의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 지금 이 책을 다 소화하기에도 벅찬데, 뭘 - 그래도 첫 단추는 잘 꿰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집에 굴러다니고 있는 클래식 CD를 많이 들으면서 다시 이 책을 파고들으면 정말 나도 클래식을 잘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솟구친다. 고마워, [서.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