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내가 고 장영희 교수님을 알게 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이 책 한번 읽어볼걸~'하고 후회를 했던 차에 내게 던져졌다. 하루하루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어느날 말 그대로 내게 던져졌기에 이건 작은 '기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기가 바로 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던 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서도, 또 그 분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내가 가타부타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인권변호사로 살아오셨던 모습이나 그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존경할 만한 그 무엇이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분의 서거 소식을 듣고, 또 그것이 자살이라는 소리를 듣고서 안타까움을 금할 순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다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다가도 자살은 아닌데,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닌데 하는 모순적인 생각이 하루종일 떠나지 않았다. 얼마전 김점선 화가도, 장영희 교수님도, 여운계 선생님도 별세하셔서 요즘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병환으로 가시는 분들이 많구나~ 하고 묘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니~~ 정말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사건들로 가득한 이 때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던 바로 그 때, 내게 해답이라도 들려주시려는 듯, 아니면 다른 허튼 생각은 꿈일랑 하지 말라는 듯, 그렇게 내게 기적의 모습으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제목만 봐도 기적이라는 느낌, 삶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일 수 있다는 느낌을 물씬 풍기고, 표지도 환상적이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주기에 바라만 봐도 너무 예쁜 책이었다. 고 장영희 교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었던 지식이 없었기에(가만 보면 내가 정말 늦된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실까 궁금하게 읽었는데 한평생 장애인으로 사시면서도 행복하게 자신있게 당차게 살아오신 것 같아 정말 행복한 기운을 받으며 읽을 수 있었다. 교수님이시라니까 어딘가 모르게 우아하고 시사상식도 풍부하고 외국에서 공부할 때의 비범한 능력과 끈기로 성공했다는 스토리도 기대했었는데 그보다는 게으르고 빈둥거리고 뭔가를 하려다가도 마음이 토라져서 포기하게 되고 마감에 쫓기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너무나 정상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인 성공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제껏 내가 읽었던 성공사례를 보면 하나같이 끈기가 있고 악착같고 미루지 않으면 부지런한 모습(물론 도둑에게서 논문을 강탈당할 때는 그랬지만), 그러니까 내가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것 같은, 그런 완벽한 모습만 보아오다가 교수님의 일상을 들여다 보니까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늦된 게 아닐 수도 있구나~, 내가 다른 사람보다 뒤쳐진 게 아닐 수도 있겠다~ 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분도 나처럼 약속시간에 항상 늦고, 일찍 나서려다가도 쓸데없는 자존심에 늦게 나가기도 하고, 여유 있을 때 잘 하기 위해 미리 설쳐도 꼭 마감일에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하는 등 여러 모습이 같았다. 물론 그녀는 도전해서 성공했던 사람이고 난 아예 실패할 것을 두려워해서 시도조차 못하는 인간인 것은 변함없지만 말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저 나 같은 사람도 이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만하다는, 그런 작은 위안을 얻었다고나 할까....?

 

글 중에 교수님께 상담을 받다가 얼마 후에 메일을 쓰곤 지하철에 투신자살한 학생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 8시 16분에 메일을 쓰고 9시 50분에 투신을 했다는데 교수님은 9시 55분에 메일을 확인해버려서 그만 학생이 죽은 후에 메일을 확인해버린 게 되었다. 어쩌면 그 학생은 메일을 보내고 교수님에게서 연락오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는데... 만약에 좀 더 일찍 열어봤더라면... 만약에 좀 더 늦게 투신했더라면... 만약에... 만약...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뛰어내렸던 사람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감히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보겠냐마는 그래도 그가 조금 일찍 이 시를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을 가져왔다는 김종삼 시인의 <어부>라는 시의 끝부분이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살아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거다. 살지 않는다면 슬픔이 올지 기쁨이 올지 모르는 것 아닌가.

조금만 더 견디고, 조금만 더 부대끼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랬다면 누군가 나타나 그에게 괜찮아! 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만하면 참 잘했다' 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 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 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 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는 이 세상이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고 마음 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좀 더 기다렸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성급하게 마음을 정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좀 더 안아줄 수 있어야 할 테다. 아마 그것이 평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넘치는 웃음에너지를 나누었던 장 교수님이 바라시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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