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초록색 조끼를 입은 세븐일레븐의 사장이 내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엉겁결에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손에 들린 리더기가 잽싸게 컵라면의 바코드를 읽어낸다.
"여기 사세요?"
구리색 피부에 살집이 좋다. 나는 컵라면 값 650원과 함께 네, 라는 말을 지불하며 세븐일레븐을 황급히 나온다.
그런데 그후로 세븐일레븐에 갈 때마다 그 남자는 내가 물건을 사는 족족 말을 걸기 시작한다.
"학생이세요?"
"네."
"3학년?"
"네."
"여기 K대학?"
"아니오."
"그럼 어느 학교 다녀요?"
나는 대충 학교 이름을 얼버무린다. 그러곤 다음 질문이 설마 '전공이 뭐예요?'는 아니겠지 생각한다. 그가 묻는다.
"전공이 뭐예요?"
아마 내가 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그는 자신의 문학관에 대해 열변할 것이고, 미술을 전공한다고 하면 개중 유명한 미술작가를 들먹일 것이며, 이벤트학이나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하면, 또 '그게 뭐 하는 과냐' '언제 생겼냐' '그거 졸업하면 뭐 하게 되냐'등의 질문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는 나를 '안다'라고 말하겠지.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식품공학. 그는 "어유, 그럼 살림 잘하시겠네"라고 농담을 건다. "그럼 언제 졸업....."이라고 남자가 다음 말을 이으려 한다. 그때 만일, 전자레인지가 삐ㅡ 소리를 내지 않았고, 잘 익은 햇반이 내게 무사히 건네지지 않았다면, 그는 내게 '좋아하는 체위는 뭐냐'고까지 물어봤을지 모른다. 내가 세븐일레븐 로고가 새겨진 반투명 비닐봉지를 들고 황급히 나가려 했을 때, 그는 내ㅐ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한 여고생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언니 잘 있어요? 그 시립대 다닌다는....."
나는 그 후로 세븐일레븐에 가지 않는다. -김애란
닉네임을 바꿨다. 내가 닉네임을 바꾸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릴 적 떠나보낸 내 이름과 비슷하다. (고맙게도 엄마가 보내주었다.) 그 이름이 촌스러워서 싫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사정을 알게 된 당시 남자친구가 이름이 뭐길래 그렇게 싫었냐고 집요하게 묻자 "청아"라고 거짓말했다. 당시 이청아 배우가 활동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차라리 '청아'면 낫겠다 생각하고 뱉었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뭘 말해야 할까? 너무 오래 고민했다. 결론은 말하고 싶다. 못 견딜 만큼. 그래서 바꿨다. 자유롭게 말하고 싶은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