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빵 [정희진의 공부]에서 언급된 책인데 요즘 읽고 있다. 일본의 시각장애인 언어학자가 쓴 글이다. 그가 강연을 할 때 무심코 사람들이 그에게 하는 말들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보다'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그냥 직접적인 뜻보다는 다양한 상황을 담고 있다는 것. 메타포로 작용한다는 것.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가리키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면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의 단어(실상은 소유적인 것이 아님에도)를 사용하면 놀란다는 점등이 그랬다. 저자가 일상에서 경험한 일들을 언어학자의 입장에서 잘 구성했는데 유쾌한데다 입담이 좋다.
친구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드뷔시가 색이라면 라벨은 빛, 드뷔시가 그림이라면 라벨은 사진 같은 느낌이야. 안 그래?" "아니, 그거 정말 절묘한 표현인데!" 눈으로 볼 수 있는 친구는 그렇게 쾌재를 불렀고, 우리 대화는 한층 더 즐거워졌다. 나는 어떤 허세도 부리지 않았을뿐더러 발돋움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마음속에 생긴 이미지를 말로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다.-호리코시 요시하루
어떨 때는 의뢰가(강연) 너무 많고 없을 때는 정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 또한 신기하게도 항상 주제가 결정되어 있다. '차별','인권', '장애인 문제' 같은 주제로 말이다. '영어교육의 여러 문제'라든가 '[나니아 연대기]에 관하여' 같은 주제는 일단 없다. 그러니 "제 전공이 아니라서"하며 거절하는 게 옳은 상황이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의뢰를 받아버리는 부분이 나의 얍삽한 구석이다. 이거 뭐, 언제 사기 용의자로 붙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호리코시 요시하루
스위스 출신인 알렉산드르 졸리앙은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갖고 있는데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탯줄이 목을 감고 있었다고 한다. 의사들이 걷지 못할 거라고들 했지만 지금까지 잘 걷고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길을 걸으면 사람들은 술 취한 사람인 줄 안다고. 나라면 안 그랬을거라고 말 할 자신이 없다. 그가 출연한 방송을 봤다. '거리는 거대한 인생 학교다'라고 말하는 졸리앙은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말을 걸고 무료 급식소를 찾아갔다가 한 어르신을 따라 쪽방촌에 가서 커피를 얻어 마시기도 한다. 졸리앙이 아이들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어르신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이 났다. 그분은 졸리앙에게 방문해주어 고맙다고 마음을 전했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의외로 아주 간단한 일일 수 있다. 찾아보니 국내에도 여러권 그의 책이 번역되어 있었다.
[인간이라는 직업]은 제목이 재밌다. 절판 되었는데 이 책이 가장 궁금하다.
이유 없이 산다는 것은 차츰차츰 '남들이 뭐라고 할까'라는 부담을 벗는 것이며, '훗날'이라는 것의 독재에서 풀려나 나 자신을 온전히 현재에 내어주는 것이며, 쓸데없는 목표 같은 것을 줄이고 유보조건 없이 인간이라는 직업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르 졸리앵
민족해방전쟁은 특히 독일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는데, 독일인은 남성들 사이의 우정을 예찬하면서 이를 애국주의와 연결시켰다. 그리고 우정이 남성의 성적 열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이성애적 사랑보다 우월하다며 찬미했다. 섹슈얼리티는 우정에 흡수되고 통제되어야 했다. 남성의 열정은 점점 민족적 이상을 지향했고, 남성성은 조국을 위해 어떻게 죽을지를 아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정은 보다 호전적인 동맹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남성 간의 우정은 집단에 대한 충성이 되었고, 이는 젊은 남성들을 국가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은 배제되었다. 결국 민족주의는 남성성과 동일시되면서 이상화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로서 동일성을 상정하고 결속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으며, 민족이라는 타자에 대한 환상이 지배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민족 담론은 서구의 근대 국민국가에서든, 아니면 비서구 국가의 저항적 민족주의에서든 인간의 불완전성을 채워줄 논리이자 환상으로서 제 구실을 다했다.- 오은경
이 책을 이제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 올해 들어서 가장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12권? 크리스테바의 책이 어려워서 이러고 있는건가...엉덩이가 아프다. 1분 운동이라도 뇌세포를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서 나빠진 머리에 도움이 될까하고 틈틈히 스쾃을 했더니 어제 자세가 틀어졌던 것 같다. 내년에 북유럽을 가기 위해 체력을 좋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런데 핀란드와 러시아 접경 지역에 러시아 군사시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다. 올해는 중국과 대만 사이가 위태롭고 내년에는 나토 가입 문제로 불쾌해진 러시아가 핀란드 등 몇몇 인접 국가에 전쟁 위협을 할 거라는 소식. 몇 년 만에 해외 땅 좀 밟아보려고 했는데 과연 갈 수 있을까. 일단 몸도 만들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려고 한다. 태권도도 다시 하려는데 마침 어제, 다니던 도장 사범님을 만났다. "진짜 올해에는 다닐 거예요"라고 말하는 내게 김사범님은 일단 놀러 오라면서 본인은 올해 까지만 이곳에서 일하고 내년에는 다른 곳으로 옮길 거라고 하신다. 나는 "사범님 몇 년 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라 말하고 함께 빵 터졌다. 우리는 그렇게 또 지키지 못할 말을 서로에게 하고 즐겁게 돌아섰다. 새치가 풍성해지기 전에 (그럼 주목받을테니까) 올해는 꼭 가야지. 오늘의 T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