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챘다.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여기서 중립적이라 함은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ㅡ<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





저항은 봉기나 도망, 사보타주보다 더 미세한 형태를 띨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저항 중에는 읽고 쓰는 능력을 은밀하게 습득하기, 그 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기 같은 것도 있었다. (...) 루이지애나 나체즈에서는 한 노예 여성이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야학'을 운영하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가르쳐 수백 명을 '졸업' 시키기도 했다. P.55




백인 교사였던 프루던스 크랜들은 자신의 학교에 흑인 소녀를 받음으로써 인종분리에 맞섰다. 캔터베리 주민들은 크랜들이 더 많은 흑인 학생들을 모집하려하자 비품 판매를 거부하고 의사는 진료를 거절했으며 약사들은 약을 주지 않았다 여러차례 방화 시도도 잇따랐다. 워낙 당시 그녀의 저항이 상징적이었기 때문에 당국에 의해 체포 명령이 내려졌지만 크랜들은 패배가 아닌 승리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백인 여성들은 노예제 반대 운동을 후원하고 참여하며 착취와 억압의 현실에 대해 배우고 권리의 중요성에 눈뜨게 된다. 그림케 자매는 흑인해방투쟁과 여성해방투쟁이 불가분의 관계란 사실을 알았다. 




반면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을 비롯한 여성 권익 운동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관련성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여성참정권 운동 내부에 인종주의가 싹을 티웠다. 1900년 열린 열 번째 창립기념일에서 여성클럽총연합은 친인종주의적이었다. 그들은 보스턴여성시대클럽에서 보낸 흑인 대표를 배제했던 것이다. 이들의 선택이 당시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폭력의 주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1890년대는 노예제 폐지 이후 흑인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린치가 횡행했고 흑인 남성들은 폭도들에 의해 잔인하게 목숨을 잃었으며 흑인 여성들은 강간의 표적이 되었다. 





백인 여성운동가들이 인종주의와 손잡지 않았다면, 대신 흑인 여성단체와 연대하고 인종주의에 대항해 싸웠다면 흑인들의 권리도 여성의 권익도 더 빨리 나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된 선택은 인종주의가 백인 사회 전반에 만연하다는 사실과 달라보이는 각 사회 문제의 연관성에 대한 몰이해는 위태로운 주장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즉 당시 위선적인 진보운동은 실은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가 긴밀하고 인종주의가 여성차별과도 얽혀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흑인 여성들은 여성차별 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와도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두 가지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했다. 이런 차이는 훗날 재생산권과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이어진다.  






북부의 자본가들이 남부의 경제를 식민화하면서 린치는 가장 강한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테러와 폭력을 동원해서 흑인을 점점 늘어나는 노동계급 내에서 가장 야만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이중의 이익을 향유 할 수 있었다. 흑인 노동의 초과 착취에서 추가적인 이익이 발생하고, 고용주를 향한 백인 노동자들의 적개심은 누그러들 것이기 때문이다. 린치에 찬성하는 백인 노동자들은 필연적으로 실제로는 자신을 억압하는 백인 남자들과 인종 연대의 태도를 취했다. P.290




흑인 남성에 대한 '강간범 신화'도 마찬가지였다. 조작된 강간 고발은 폭도들에게 흑인 남성에 대한 '살인면허'와 동시에 흑인여성에 대한 '강간면허'를 주었다. 폭도들이나 폭력에 눈 감은 사람들은 외면했지만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는 경제적 착취의 바탕이 되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젊은 남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보수와 연대하게 하려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불의에 눈 감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와 관련이 전혀 없을 거라는 판단이다. 또는 그들을 돕다가 내가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저항해야 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불의에 대한 무언의 긍정이다. 과거의 시행착오는 오늘의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냐고. 




듀보이스, 아이다 B.웰스 , 프레더릭 더글러스 , 소저너 트루스 , 프루더스 크랜들, 루시 파슨스, 프랜시스 E. W. 하퍼,등 수많은 사람들은 용기를 내 싸웠고 서로가 서로의 연결고리가 되었고 역사가 되었다.  



 

우리가 비판 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 ㅡ 나혜석




"여성적" 읽기 실천에서는, 텍스트가 읽히는 "순서"와 "질서" 뿐만 아니라 독자와 텍스트 간의 거리도 철저히 사유되어야 한다. 시선은 텍스트가 관점을 안팎으로 드나들 때 끊임없이 집중되고 또 집중되어야 한다. (...) 텍스트가 읽혀야 하는 곳은, 근접한 곳도 아니요, 거리를 두고서도 아니다. 바로 그 둘의 조합에 있다.  ㅡ <엘렌 식수> 이언 블라이스. 수전 셀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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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09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미미 님. 이번 도서 1등이신듯 합니다.
쉽지 않은 내용인데 읽느라 고생하셨고요. 저는 미미 님 덕분에 <카스트>도 주문했답니다. 그것도 함께 읽으면 좋을 책 같아서요. 그런데 저는 <여성,인종,계급>오늘 시작했는데, 거기에 이 책이 언급되더라고요. 주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이 다 차별할 때 나는 그 차별하는 자의 편에 서지 않겠다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는 어떻게 생겨나는걸까요? 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 를 스스로 묻곤 하는데 ‘그렇다!‘는 대답이 금세 나오진 않더라고요. 용기는 필요하고 용기는 중요하지만, 그러나 누구에게나 용기가 찾아들진 않는것 같아요. 용기를 갖는 것도 용기이겠지요.

저는 아직 이 책을 읽기 전이고,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어떤식으로 생겨나거나 바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눈앞의 문제를 보고 바꿔나가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다른 계급(인종, 성별등)의 차별까지 두루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한 번에 그 멀리까지 그렇게 더 넓게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요. 그러니까 제 경우에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동물권은? 환경은? 난민은? 가난한 사람은? 이라고 묻는 것이 과연 더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요. 그건 제가 아마도 정희진 쌤이 해제에서 언급하신 ‘심지어 이런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라는 쪽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차차 생각을 정리하고 또 가급적 글로도 정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청아 2023-02-09 18:00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덕분에 이렇게 또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독후감 쓰고 책을 다시 펼쳐보니 앤절라 Y.데이비스의 삶도 투쟁 그 자체였네요!
<카스트>는 화가님 페이퍼에서 보고 주문했어요.^^*

이런 용감한 사람들의 자취를 읽고나면 가슴이 뛰어서
자제하려고 해도 거창하게 쓰게 되는데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우는 인용한 내용에 있는 것처럼 ‘저항의 미세한 형태‘에 조금이나마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음 다행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이런 책들이 계속 알아가려고 하는 의지에 동력이 되는 건 분명하다고 느낍니다.ㅎㅎㅎ

아! 백인 여성단체 리더들의 다소 충격적인 일화들이 담겨 있어요. 초반에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가 이후 인종주의적 태도를 분명히 하더라구요. 시작은 ‘여성참정권‘을 쟁취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는데 상황이 달라지는.... 데이비스가 이런 과거들을 굳이 드러냄으로써 강조하려는 게 뭘까 읽으면서도 고민했어요. 어쩌면 여성주의가 결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을, 더 폭넓은 시각을 가져야 함을 반증했단 생각이 들고요. 그런 면에서 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자기반성, 문제의식이야말로 가치 지향적이라고 느껴져서요.

다락방님은 댓글마저 생각의 물꼬를 틀어주는 힘이 담겨있네요. 어떤 글을 써주실지 기다려집니다.

persona 2023-02-09 18: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Dry September 떠오르네요. 윌리엄 포크너의 여러 소설을 좋아하고 흑인 인권 관련 책은 좋아하는 책들이 꽤 있는데, 제가 영어권 흑인에 대한 인권과 동일하게 다른 데에서도 인권의 편인지는 모르겠어요. 특정 나라, 특정 종교의 개인적인 친구들은 좋아하는데, 그들의 종교나 국가가 저와 입장이 다르면 그들과 국가/종교의 차이를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연대하기도 부족한데 배신감을 느끼면 바로 여적여를 들먹이며 화를 내기도 하고요. 여혐, 남혐이 가끔 저에게 동시에 일어나기도 해요.
그래서 인권 공부와 체화가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들었네요. 좀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겠다 싶어지네요.
좋은 페이퍼 감사드립니다.

청아 2023-02-09 19:41   좋아요 3 | URL
이 책에도 윌리엄 포크너가 한 번 언급됩니다. 포크너의 단편 제목이겠죠? 아휴...복잡한 문제 같아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저도 그래요 페르소나님! 읽을 때마다 반성하고요. 그러면서
또 실수하고 또 깨우치고.ㅎㅎㅎ 그래서 작가들은 모든 문제에 대해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한다고 하나봐요.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다 매사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들이 따라주어야 입장이란게 세워지니까
그런거겠죠? 글에서 그런 관점들이 은연중에 다 드러나기도 하고요.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해요*^^*

persona 2023-02-09 21:36   좋아요 1 | URL
네. 강간범 신화라고 하니까 생각이 났어요. 거기서도 백인 여성과 관련한 소문만 믿고 진상을 따지지도 않은 채 백인남성들이 흑인만 일방적으로 끌고가 죽여요. 근데 죽고 나서의 진상 묘사를 보면 열불나고 속터지죠.
덕분에 이런 저런 생각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3-02-09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미미님의 독서능력은 다락방님급입니다~!! 차별받는 사람끼리 서로 힘을 합지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ㅡㅡ

청아 2023-02-09 21:47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은 독보적인 분이고 저는 그냥 따라공부하는 팔로워입니다^^*
네! 성차별과 인종주의가 서로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걸 인식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인종주의가 그만큼 강했던 것 같아요.
당시 문제들은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느꼈어요. 물론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겠죠.

새파랑님 즐거운 저녁시간 되시길요!

페넬로페 2023-02-10 00:05   좋아요 2 | URL
미미님, 청출어람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탁월하십니다~~
이 책 읽고 싶어졌어요^^

청아 2023-02-10 06:59   좋아요 3 | URL
아직 요약 정도밖에 할 수가 없어서 부끄럽네요^^;
계속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이 책 정말 재밌어요 페넬로페님! 역사 공부도 되고 오늘날 미국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렇게 훌륭한 여성들이 잔뜩 있는데 여성위인전의 목록이 참 빈약하다고 느낍니다. 갈수록 나아지겠지만요^^*

은오 2023-02-10 07: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미미님!!! 이 페이퍼도 미미님도! ㅠㅠ 나혜석 책 담아갑니다💕

청아 2023-02-10 10:30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은오님💕
저도 은오님 좋아하는거 아시죠?*^^*

scott 2023-02-10 14:20   좋아요 2 | URL
저도🖑두분 모두 💖ㅅ💖

은오 2023-02-10 15:19   좋아요 2 | URL
헤헤 저도요>< 💖ㅅ💖

책읽는나무 2023-02-10 14: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아직 책을 시작도 안 했지만, 조금씩 가닥을 잡게 되는 것 같아요.
인종차별을 받는 흑인들이라 서러운데, 여성들이라면 더더욱 힘든 삶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중의 차별이어 그 설움과 고통이ㅜㅜ
과거의 시행착오는 오늘의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냐는 문장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나라면? 정말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어렵고, 주춤해지게 됩니다. 그래도 정신적 무장을 해서, 선을 위해 행동하려면 많이 알아가는 게 답이겠죠?
많이 읽어 볼 필요가 있어요.
미미님의 글을 통해서두요^^

청아 2023-02-10 16:05   좋아요 2 | URL
무거운 내용들이지만 읽기에는 수월하실거예요. 흑인 여성들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단걸 이 책 읽으며 절감했어요. 페미니즘 내부에도 각자의 다양한 삶이 있는데 대의를 따르다보면 그 안에서도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의견은 또 갈리겠죠. 어떤 면에서 부분적으로 실패의 이야기기, 치부같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을 짚어주어 앞으로의 나갈길을 밝혀주는 느낌이었어요. 읽어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무님 나무님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실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