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는 로힝야족의 상황을 '천천히 태우는 제노사이드라고 표현했다.(중략) UN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62퍼센트가 강간당했고 여덟 달 된 아기들까지 목이 잘렸다. p.107
*제노사이드: 인종,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행위
버마군은 로힝야족의 거주지에 들이닥쳐 남성들을 불태우고 여성들을 강간, 살해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는 사실상 정부 수반이었음에도 이 일에 침묵했다. 불교인들이 다수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구더기','침략자','검은 쓰나미'라 불리우고 로힝야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르완다,보스니아,나이지리아 등 분쟁지역에서 여성들은 잔인한 전쟁무기인 강간으로 수없이 살해당했고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었다. 전쟁 후 곳곳에 남성들을 위한 기념비가 세워졌지만 여성들은 전쟁의 피해자임에도 같은 이유로 핍박당하고 손가락질당하며 역사에서 지워져왔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크리스티나 램은 인류 최악의 무기인 강간에 의해 희생당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여덟 살부터 여든 살까지 모든 여성이 강간당했다"고 붉은군대의 작전을 지켜본 소비에트 종군기자 나탈리야 게세Nataly Gesse가 말했다."그들은 강간군대였다" 당시 젊은 대위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이야기시'프로이센의 밤'에서 그 끔찍함을 묘사했다.
어린 딸이 매트리스 위에
죽어 있다. 그 위에 얼마나 많은 자들이 있었을까?
한 소대가, 어쩌면 한 중대가? P.235
전시강간은 전략적인 용도로 사용된 경우가 많았다. 지휘자의 지시나 방관으로 집단적인 강간의 광기는 질병처럼 퍼저나갔고 피해자들은 악의로 가득찬 광기에 무너져내렸다. 종교,이념,복수,이권다툼으로 범죄자들은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했고 피해자들의 침묵속에 흩뿌려진 피와 잔혹행위는 지워지고 묵인되었다. 전범으로 기소되더라도 처벌은 쉽지 않았다. 여성들은 보복의 위협과 살해협박에도 목숨을 걸고 용기를 내어 증언을 반복하면서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대량 살상에 비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으로 기소장에서 지워지기 일쑤였다. 더 기막힌 사실은 다른 종족에 대한 증오 문제로 벌어진 학살과 강간에서 바로 어제까지 이웃으로 얼굴을 맞대고 지내던 사람들이 가해자로 돌변해 마체테를 들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살인자들을 길에서 다시 마주치는 끔찍한 일들도 빈번했다.
저는 그 사람들을 알고 있었어요. 저희 이웃이었죠. 저희 가게의 일꾼도 있었고, 동네 초등학교 선생님도 있었어요.p.155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벌인 투치족에 대한 제노사이드)
강간의 피해는 남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분쟁지역에서 남성의 거의 4분의 1(23.6%)이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강간 피해자인 여성들은 남편에게 버림받거나 살해당하고 이웃으로부터 창녀 취급당하고 마을에서 쫒겨나는 경우고 있었다. 전쟁 중이 아닌 사회에서도 성범죄 피해자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어떤 범죄도 피해자다움을 요구받지 않지만 오직 성범죄피해자들은 각종 꼬리표를 달고 의혹에 맞서 싸워야만한다. 이런 여성들을 보면서 남성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제가 지켜본 바로는 치유에 확실한 도움이 되는 것은 가해자들의 처벌이에요. 그럴 때 피해자는 그 일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고 자기에겐 죄가 없다고 사회의 권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느끼거든요. p.230 ('여성의 힘'이라는 의미의 '스나가제네'라는 단체를 운영하는 브란카 안티츠스타우베르박사
읽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떻게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그렇게 잔인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건지 각종 질문들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럼에도 뉴스에서 조금씩 접하던 이야기들을 자세히 읽어보고 짚어볼 수 있어서 의미있었다. 역사가 지워버린 절반의 사실들을 어느정도 가늠한 느낌이다. 피해 여성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잡고 같이 울어주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하고 가해자들을 감옥에 보냈다. 결코 쉽지 않았다. 살인에 비해 강간에 대한 인식은 너무도 관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비록 미미한 결실이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의로운 행동이었다. 강간 피해자들에게 치유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살려내는것, 그리고 가해자들을 처벌하는것은 이들이 누려야할 최소한이다.
문학은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뭔가를 배울 능력이 없다면, 용서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p.208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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