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글을 처음으로 읽었다. 이 책에 담긴 4작품은 두 곳의 동화집에 실려 있던 이야기라고 한다. 내가 어릴때 읽었던 일반적인 동화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성인을 위한 동화라고나 할까?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디테일,서사,약간의 섬뜩함이 있었다.
행복한 왕자
분명하진 않지만 얼핏 오래전에 이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도시의 행복한 왕자였던 사람이 죽은 후 높은 곳에 위치한 조각상이 되어 살아생전 궁궐안에만 있어 보지 못했던 시민들의 궁핍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아픈 아이를 위해 오렌지 하나 사줄 수 없는 가난한 어머니를 걱정하던 '행복한 왕자'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려던 제비에게 부탁한다. 조각상이 지니던 칼에 박힌 보석을 떼어 그 집에 가져다 달라고. 제비는 '행복한 왕자'의 이타심에 감동해 하나둘씩 부탁을 들어준다. 그러다 추운 겨울이 오고 제비가 더 지체하면 얼어죽을 위기에 처한다. 진실된 사랑을 찾던 제비와 뒤늦게 타인들의 아픔에 스스로를 희생하던 '행복한 왕자'의 만남이 너무나 순수하고 고귀하게 느껴져서 감동적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올랐다. 제비가 '행복한 왕자'를 만나기 전 갈대아가씨에게 반해 구애하는 대목을 옮겨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제비는 대뜸 말했습니다. 곧장 요점에 이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갈대 아가씨는 나붓이 고개를 숙여 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 주위를 빙빙돌며 날개로 수면을 스쳐 은빛 물살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그가 사랑을 나타내는 방식이었고, 그 사랑은 여름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p.10
어부와 그의 영혼
이 책에 있는 4작품 모두 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랑은 많은 소설에서 주제가 되곤 하지만 이 작품들을 읽다보니 오스카 와일드에게 사랑이 참 아프고 중요한 가치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아름다운 인어에게 한눈에 반한 어부가 나온다. 그는 영혼을 버려야만 인어와 함께 살수 있다는 걸 알고 마법의 힘으로 영혼(그림자)를 잘라낸다. 그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던 영혼을 하찮게 여겼던 것이다. 버려지게된 영혼은 어부에게 마음과 함께 떠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마음을 달라고 부탁하지만 어부는 인어와 사랑하려면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거절한다. 영혼은 홀로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한번씩 어부에게 돌아와 경험담을 들려주며 자신을 다시 받아달라고 한다. 하지만 매번 거절하던 어부는 마지막에서야 부탁을 들어주게 되고 영혼과 다시 합쳐진다. 뒷 이야기는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것 같다. 독일 작가인 아델 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뒤집어 놓은 느낌이라고 해설에 나와 있다. 영혼이 경험담을 이야기할 때 한번씩 구체적인 설명을 회피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오스카 와일드가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울 공간을 남긴거라 짐작해본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짓을 했어. 그게 뭔지는 말할 것 없지만. 난 여기서 하룻길쯤 떨어진 동굴에 그 부의 반지를 숨겨 놓았지. 여기서 하룻길밖에 안되고 ,반지는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p.83
세상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것을 보고 비둘기들 왈.
「지구가 결혼을 하나 봐. 이건 신부 옷일걸.」 사이좋은 멧비둘기들은 소곤거렸습니다. 비록 분홍빛 나는 작은 발은 동상에 걸렸을망정, 그들은 모든 일을 낭만적으로 보는것을 자기들의 임무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 P104
이제 이만큼 읽음. 13권 남았다!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