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는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그리스 신화에선 아테네)으로 황혼녘 산책을 즐기며 그때마다 부엉이를 데리고 다닌다. 부엉이가 아니라 올빼미라는 사람도 있지만 박쥐인들 어떠랴. 프리드리히 헤겔이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는 말을 쓴 이후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보통 역사연구에서 ‘거리두기’의 지혜를 의미한다. 아침부터 낮까지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그 즉시 관찰해선 모든 걸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일이 끝난 황혼녘에 가서야 지혜로운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갖게 된 지혜의 가치를 역설할 때에 쓰이기도 한다.
예컨대 『한겨레』 논설위원 김지석은 2006년 11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 재개 합의와 관련,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지혜의 여신)는 밤이 돼야 날기 시작한다고 했다. 6자 회담 참가국들은 지난 몇 해 동안 실패를 거치면서 충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선까지 왔다. 이제 올빼미가 마음껏 날 수 있게 할 때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하루를 한 시대로 여겨, 적어도 한두 세대가 지난 다음에야 객관적인 역사 기록과 평가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고수하고 있다. 더 독한 사람들도 있다. 중국의 저우언라이(주은래)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영향에 관한 질문에 대해 “아직 얘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답했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평가인들 이르지 아니하랴.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현식은 ‘미네르바의 부엉이’ 담론엔 가치중립의 공정한 역사를 서술하기 위한 지혜가 있는 양 보이지만 ‘궤변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거리의 유지가 객관성의 의미가 아닐뿐더러 이러한 논리에 따르자면, 역사가가 다루는 사건의 종결성 여부가 역사가의 공정성과 공평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ㅡ출:선샤인 논술사전 2007.강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