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12형제 중 부지런하고 책임감 강한 둘째였다. 엄마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내게 이렇게 표현한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가 태어났어˝ 엄마는 태어나는 동생들을 마치 자기 자식인것처럼 키워내야했고 꽤 오랜 시간 그런 역할을 거듭했던것 같다. 지금도 나머지 형제들이 엄마를 자기 엄마처럼 챙기고 사랑하는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이 된다. 질병등 여러 이유로 몇몇은 살아남지 못했고 그럼에도 형제가 많아 항상 부족한 먹거리에, 물도 길어오던 시절이라 사는게 무척 힘들었다고 내게 자주 이야기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식을 많이 낳고 싶지 않았다. 나 하나를 낳고 더는 안낳기로 결정했고 나는 아주 어릴땐 그점이 못마땅했지만 혼자가 편해지자 그 선택에 항상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아예 아이를 낳지 않았다.
아이를 갖지 않는 선택을 주변인들에게 또는 내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인정받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예 결혼조차 하지 않던, 믿었던?친구마저 급속으로 결혼을하고 돌을 맞자 친구 따라 강남가볼까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고단했던 삶과 딸 하나를 낳았음에도 자유롭지 못했던 너무 애쓰는 삶을 바라보면서 결국 나는 나 하나 감당이나 잘하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도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도 나를 무척 따르는 탓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놀았던 때가 직업생활중 가장 보람있고 행복했다. <다섯째 아이>를 읽으며 이런 나와 전혀 반대의 선택을 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몸을 다 추스릴 시간도 없이 그녀는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다가 결국 다섯째를 낳는다. 마치 엄마에게 들었던 외할머니의 출산 이야기 같았다. 소설 속에서 첫 아이가 1966년생 생이었으니 이른바 베이비 붐 시대이긴 한데 이 부부 주변에서도 두 사람의 목표인 자녀8의 계획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분위기다. 그래도 그들은 다섯째 아이의 문제가 생기기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들은 유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유모들은 모두 아기가 하나 또는 그저 둘 정도인 가족들과 외국으로 가기를 또는 런던에 살기를 원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애가 넷에다 또 하나가 더 생길 예정인 집은 모두들 마다했다. p.53
유모들도 마다하는 이 많은 아이들을 해리엇이 계속 낳을 수 있었던건 해리엇의 엄마인 도로시가 육아를 거의 담당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도로시가 그렇게 돕지 않았다면 해리엇이 다섯이나 낳을 생각을 할수나 있었을까? 마침 해리엇은 다섯째를 가졌을 때 지친 엄마에게 사실을 알릴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처음으로 네 아이를 홀로 건사하며 임신으로 인한 고통까지 감내해야만했다. 거듭된 출산과 임신의 반복으로도 많이 지쳐있던 그녀는 뱃속의 아이를 끔찍하게 생각하게된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발길질과 그로인한 말로 표현못할 통증으로 점점 그녀는 고립감을 느끼고 내부의 고통뿐 아니라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의 시선과도 싸워야 하는 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태어난 다섯째 아이 벤은 넘치는 힘에 악의로 가득찬 괴물과 같았다. 집안의 분위기는 갈수록 어두워진다.
어느 날 아침 해리엇이 애들에게 줄 아침을 준비하려고 내려와 보니 개가 부엌 바닥에 죽어 있었다. 심장마비인가? 그녀는 갑자기 의심이 들어 벤이 자기 방에 있는지 보려고 달려갔다. 그 애는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가자 그 애는 그녀를 쳐다보고는 소리없이 이를 다 드러내고 웃었다. p.84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다 벤이 또 어떤 일을 벌일지 두려움에 떨면서 페이지를 넘기고 넘겼다.
그는 분명 악의에 차 있으며 그것은 누구보다 자신의 엄마에게 향해 있는 듯 보였다. 분명 다른이들처럼 그를 두려워함에도 동시에 가장 그를 안타까워하는 엄마를 말이다. 과연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벤은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타자의 시선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그의 마음이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어느순간 이건 작가에 의해 의도된 것이란 생각을 했다. 상대가 우리와 다를때, 진심을 알수 없을때 우리는 더욱 그것에 집중하고 또는 두려움을 느낀다. 벤을 낳기 전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지던 가족들과 친척들의 모습은 이후 급변하며 여러가지 철학적인 질문들을 낳는다. 세상은 규칙을 만들고 일정한 틀에 맞춰 사람들이 살아가도록 획일화한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들은 쉽게 권리를 침해당하고 때로 배척당한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다수의 만족과 안정을 위해 소수는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 걸까? 도리스 레싱은 이 소설을 통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어느 날 그녀는 그 애를 잡으려고, 빵빵대는 차들이나 경고하는 사람들의 비명을 무시하고 신호등을 건너는 뭉퉁하게 웅크린 작은 모습만 보면서 1마일 이상 뛰었다.(...)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애를 잡으려고 결사적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오, 그애를 치어요, 제발, 그래요...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p.85
그녀는 작가의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소설가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우리가 자기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 보는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p.190, 레싱의 생애와 작품세계 중에서.
단지 군침만 도는 원서. 재밌겠...
다섯째 아이의 후속작 '세상 속의 벤'
읽어보고 싶은 그녀의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