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체호프 단편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평점 :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생계에 보탬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던 안톤 체호프는 성적부진으로 낙제를 하기도 했다. 그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생계 때문이었다. 그래도 재능이 있었으니 그것도 가능했으리라. 고학을 하고 의사가 되었고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글의 분위기가 변화한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외면적 희극성에 초점을 맞추던 과거와 달리 내면을 바라보며 존재와 삶의 허무로 향하게 된 것같다.
p.91 지평선 위에 두루미들이 가물거리고, 산들바람이 이들의 애원하는 듯한 혹은 기뻐하는 듯한 울음을 실어오기도했지만 몇 분 뒤에는 아무리 애써 푸른 저편을 응시해도점 하나 보이지 않고,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바로 이처럼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도 삶 속에서 명멸하다가는 과기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일상의 문제들, 삶의 과제들에 집중하며 죽음보다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부재와 고독은 죽음과 유사하므로 우리는 늘 관계에 목마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그 관계에서 오는 수많은 갈등과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여건들에 영향을 받으며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한편 죽어가는 것이다.
p.98 구름아래로는 종달새가 은방울 같은 울음소리를 허공 속으로뿌리며 바삐 날아다녔고, 푸르러 가는 전답 위로는 갈까마귀가 고고하게 날개를 흔들며 선회하고 있었다.
이 책에 담긴 체호프의 단편들에는 죽음이 더러 등장한다. 모멸감에 죽고 티프스에 걸려 죽고 콜레라에 죽고 어딘가로 사라진다.(부재=죽음) 그는 짧은 단편들에 삶의 극적인 인상들을 담아 결코 가볍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어떤 작품은 마치 장편을 읽은 것처럼 덮고나면 혼란스럽고 벅찬 감정이 들게 했다. 하지만 그런가운데서도 체호프는 인생과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유머와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죽음만큼 번번히 새가 등장한다.종달새,갈까마귀,두루미 등등
p.185 그는 소박하고 평범한인간으로 돌아간 자신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즐겁게 들판을뛰어가고 있고 머리 위로는 햇빛 가득한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광경을 눈에 그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새처럼 자유로우며 어디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기분이 상쾌할때도 하늘을 바라보지만 답답할 때도 하늘을 찾게 된다. 내가 닿을 수 없는 저 아득한 곳이 아름다운건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경이로움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근거일 수도 있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귀기울이면 들리는 새 소리나 바삐 울고 날개짓하는 새들도 마찬가지일 터.
작가의 어린시절 고된 생활경험과 일찍 생계에 뛰어들며 경험한 세상에 관한 인상들. 그리고 의사가 되어 여러가지 전염병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경험하는 동시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고 싶은 열망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 마음이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통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볼터치한 듯 볼그레한 볼의 직박구리와 뱁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