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은 <맨 끝줄 소년>의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이다. 악명높은 스탈린에게 연애편지라니 오로지 작가의 상상속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다. 게다가 머나먼 스페인의 극작가가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 작가에 대해 그렸다니 의아했는데 이것은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어느 날 할인코너에서 <스탈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러시아 작가 불가코프의 책을 발견해 읽게 된다. 내용을 보니 실제로 각종 검열과 제안으로 창작의 자유를 억압받게 된 불가코프가 1930년 스탈린에게 여러통의 편지를 썼던 것. 스탈린 시대 불가코프의 작품<투르빈가의 나날들>은 여러차례 극장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심지어 스탈린이 15번이나 관람을 했지만 검열로 인해 공연이 금지된다. 이러한 창작의 억압과 체제의 모순을 계속해서 풍자하고 저항했던 불가코프는 자유롭게 출판하게 해 주거나 망명을 떠날 수 있게 해 달라는 편지를 정부에 보냈고 스탈린으로부터 직접 전화도 받게 된다.
P.21 출판사 사람들,연출가들, 모두가 나한테 전염병이 있는 것처럼 나를 멀리합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난 굶어 죽었을 겁니다. 스탈린 동지, 당신의 인도주의에 호소합니다. 내가 조국에 아무런 쓸모도 없다면 아내와 함께 소련을 떠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각색된 이 작품에서는 조금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불가코프는 아내와 함께 검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호소하기로 하는데, 좀 더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 아내가 스탈린 역할을 맡아 정부 입장을 이야기 하는 식이다. 아내는 점점 스탈린에 빙의된다.
P.35 (불가코바가 스탈린을 연기한다. 남편 앞에서 책상을 주먹으로 친다.) 이제 됐습니다,불가코프,더 이상은 한 마디도 안됩니다.! 매번 똑같은 편지를 읽는 것도 지겹습니다. 단어는 다르지요, 하지만 언제나 똑같이 고상하면서 반사회적이죠. 반성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타락한 관객들을 위해 당신 재능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게 아니라면 다시는 내게 편지를 쓰지 마십시오. 당신 작품은 소련 체제를 향해 불손함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혁명의 모든 성과를 부인하고 있단 말입니다. 부적절한 주제들만 다루고 조잡한 은유들로 포장하면서 체제를 공격하고 있죠...
이후 불가코프는 점점 스탈린에게 집착하게 되고 외출도 안하고 그의 전화만 기다린다. 작품은 뒷전이고 스탈린과의 소통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P.110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조치들은 스탈린 같은 절대 권력자의 존재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조치가 오히려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적인 집단이나 대중,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많이 행해진다. 한편 검열 위험 앞에서 저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어느선까지 표현할지 결정하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검열은 타인의 검열과 달리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뿌리부터 뽑아 버려 처음부터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기 검열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되고 만다.
(에마뉘엘 피에라 외, '검열에 관한 검은책')
불가코프는 실제로 무리한 글쓰기로 실명했다고 한다. 그런 상태였던 그가 죽기 한달 전에 아내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거장과 마르가리타>로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창작에의 열정과 신념을 담은 말이라고 한다.
P.109 "침묵하는 작가는 없다. 만약 그가 침묵하고 있다면 그는 진정한 작가가 아니다. 만일 진정한 작가가 침묵하고 있다면 그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불가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