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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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소설이라고? 차라리 에세이라고 하지 (처음두 개의 단편은 분명 그렇게 느꼈다.)근데 에세이도 아니라고? 읽다보면 뭔가 리얼리즘 특유의 디테일하고 씁쓸 퀴퀴한 냄새가 진한데?
읽다가 몇번이나 표지를 다시 확인한다. 소설이라고 쓰여 있다. 잘못본게 아니다. 음..근데 뭔가 수상하다.보통 굳이 표지에 소설이라고 잘 안 쓰지 않나? 가지고 있는 소설 책 몇권을 뒤적거려 표지를 살펴본다. 역시 매번 소설이라고 적시하진 않는 듯 하다. 그런데 왜 적어놨지? 작가 본인도 믿기지 않아서 써놓자 한거 아닐까? 스스로 다짐하듯 제발이 저려서? 이런 나름의 얼토당토않은 의구심이 뭉글뭉글 솟아난다.감정을 배제한 리뷰를 쓰고 싶은데 이번에도 실패다. 


P.122 그다음엔 누구였더라?˝ 나는 은주가 고등학생 때 처음 좋아하게 된 한 학년 위의 선배부터, 대학 때 소개팅으로 만난 명문대 공과생을 거쳐, 여기저기서 어찌저찌 알게 된 몇 명의 시시한남자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진지하게 관계를 이어오다가 나를 만나기 직전 헤어지면서 그녀에게 강렬한 무력감과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한 다섯 살 연상의 법조계 종사자까지 그녀의 연애사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어느 정도 섭렵할 수 있었다.

8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이런저런 인연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짧고 때로는 긴 만남들 속에서 평범하고 또는 특별한 경험들이 작가의 정서와 입담으로 잘 버무려져 있다. 21세기 베르테르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분명 읽다보면 남의 개인사를 진지하게 듣고 아니 읽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뭐야 왜이렇게 재밌고 비유는 왜이렇게 적절해. 이 이야기 또 저 이야기로 줄기를 타고 연결되어 화자 나름의 소회, 감상이라던지 당시의 고뇌도 꾀나 납득이 되고 매 순간 솔깃했다.

P.133우리는 고작 십대 후반이었지만 마치 세상을 다 경험해본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비웃곤했다. 몰지각한 사람들, 몰취향인 사람들, 부주의한 사람들, 부도덕한 사람들, 가벼운 사람들, 지루한 사람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그녀의 냉소가 비교적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안온하게 자랐다는 나름의 자격지심으로 인한 자기비하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는 반대로 무언가를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피해의식으로 인한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냉소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둘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닮은 점이 많다고 여기곤 했다. 

P.11희망이란 때때로 멀쩡하던 사람까지 절망에 빠뜨리곤 하지 않나? 아니, 오로지 희망만이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희망은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면이 있는데, 우리는 대체로 그런 탐스러워 보이는 어떤 것들 때문에 자주 진이 빠지고 영혼의 바닥을 보게 되고 회한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P.60말의 품종에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나는 혹시라도 잘못된 이름을 적어넣을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나중에는 구약을 방불케 하는 말의 계보를 거의 외울 지경이 되긴 했지만(트라케너는 홀스타인을 낳고, 홀슈타인은 비엘코플스키를 낳고.....)

이 사람의 글은 뭐랄까 나도 뭐든 쓰고 싶게 만든다. 이런저런 유사한 기억일지 느낌을 머리에서, 아득한 저 먼 곳에서 불러오게 만든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읽다가 자주 멈췄다. 대신 지루해서 멈춘것이 아니므로 다시 펼치면 어느새 다시 아까 달리던 그 길, 그 속도, 그 기분이다.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의 이야기가 제법 재밌으면 덩달아 나의 추억도 이것저것 떠올라 말하게되고 정신차리지 않으면 간도 쓸개도 보여주다 뒤늦게 왜 그런것까지 얘기했지 하며 후회하고 놀라는 결말로 가는 그 분위기. 자꾸 내가 가진 패와 속살을 꺼내고 싶게끔 만드는 그런 분위기란게 있지않나. 그런걸 깔아주는 느낌의 이야기들이다. 정영수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아로새겼다.


P.154나는 옆 테이블에서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던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고 ‘저기, 우리랑 같이 놀래요?‘ 하는 식으로 말을 건넨 건 아니고 그저 불쌍한 내 친구에게 위로의 말씀 한마디만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녀들은 당연히 황당하다는 반응이었고(그곳은 내가 살던 주택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호프집이었고 결코 그런 식으로 말을 걸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다) 나 또한 곧바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사색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말을 철회하지도 못했다.



Lou Reed- perfect day

Just a perfect day
완벽한 날이야

Drink Sangria in the park.
공원에서 생그리아를 마셨지

And then later, when it gets dark, We go home
주위가 어두워 졌을때 우린 집으로 향했어

Just a perfect day
완벽한 날이야

Feed animals in the zoo
동물원에서 동물에게 먹이도 줬어

then later, a movie too,
그후에 영화도 봤지

And then home.
그리고 집으로 갔어

Oh it's such a perfect day,
오 정말 완벽한 날이야

I'm glad I spent it with you
난 당신과 함께 한 하루가 좋았어

Oh such a perfect day,
정말 완벽한 날이었어

You just keep me hanging on,
당신은 날 살게 해 

You just keep me hanging on.
당신이 날 살게 하지

Just a perfect day,

완벽한 날

Problems all left alone,
걱정꺼리는 모두 떨치고.

Weekenders on our own.
주말은 우리의 것

It's such fun.
꾀나 즐겁지

Just a perfect day,

완벽한 날

You made me forget myself.
당신은 나자신조차 잊게 만들지

I thought I was someone else,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

Someone good.
어떤 좋은 사람이라고

Oh it's such a perfect day,

I'm glad I spent it with you.
당신과 함께라서 기뻐

Oh such a perfect day,

You just keep me hanging on,

You just keep me hanging on.

You're going to reap just what you s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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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3-21 18: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웰컴투 정영수 월드네요 ㅎㅎㅎ 저 처음 단편 하나씩 읽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래 갈고 닦으면 이만큼 공명이 생기나 봅니다.

미미 2021-03-21 18:27   좋아요 3 | URL
그런 거예요? 제가 적당한 때 입장했군요ㅋㅋㅋㅋ😆다른 책들도 궁금해요. ‘젊은작가상‘ 빼고 읽어보려구요.

바람돌이 2021-03-21 2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책 표기가 강렬해서 관심두고 있었는데 미미님 글로 역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노래 듣다가 그래 주말은 나의 것이고 완벽한 날이야. 그런데 이 주말이 가는 것을 이리도 쓸쓸하게 노래하다니 야 너 좀 멋진데 하면서 제 멋대로 해석하네요. ㅎㅎ
남은 주말 푹 쉬시고 다음 주도 주말을 기다리며 힘내요. ^^

미미 2021-03-21 21:04   좋아요 2 | URL
그쵸?😉표지가 감각적인게 저도 끌렸어요ㅋㅋ다 읽고 나니 이 노래가 잘 어울릴듯 하더라구요.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안그래도 유튭영상 바로 띄우는거 오늘 처음 알게되서 많이들 들어보셨음하고 바랬음요.ㅋㅇㅋ

새파랑 2021-03-21 2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읽어보고 싶었는데 리뷰 보니까 읽어야 겠어요~(Perfect day 노래 좋죠^^ 이런 리뷰 좋은거 같아요)

미미 2021-03-21 21:07   좋아요 3 | URL
너무 즐겁게 읽었어요! 외국 소설 주로 읽다가 신선한 느낌에 더 좋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저런 유사한 사고방식?때문일수도 있고요. 아무튼 추천드림요ㅋㅋㅋ

scott 2021-03-21 21: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루 !리드 퍼펰 데이~ 오늘 처럼 차가운 바람에 딱 어울리는 다크 쵸코 80퍼센트 함유된것 같은 스토리 사알짝 앤드류 포터의 향기가~미미님 덕분에 새로운 작가 영수 ~장바구니 속으로 주섬~@@@

미미 2021-03-21 21:10   좋아요 3 | URL
아 나의 스콧님~♡ 또 저를 딱 간파하시고 안그래도 읽고싶던 책을 더 서둘러읽게 만들어주시네요ㅋㅋㅋ내일 저 바로 도서관 달려갑니다.🥲🙆‍♀️

페넬로페 2021-03-21 23: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플을 통해 정영수작가의 이름을 알았는데 미미님의 리뷰로 더 읽고 싶어져요. 소설이 에세이같다!
흥미로워요^^

미미 2021-03-22 00:00   좋아요 3 | URL
히히♡ 아무래도 본인 이야기가 많이 담긴것 같아요. 결론은 그래서 더 좋았고 여기저기서 많이 웃었음요ㅋㅋㅋ꼭 한번 보세요!😊

mini74 2021-03-22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들 생각은 비슷한가봐요 ㅎㅎ 저도 표지가 끌렸는데, 에세이같은 소설이라니. 넘 읽고 싶어집니다. 저는 감정 가득한 서평이 더 좋아요. 공감가고 ㅠㅠ 저도 매번 뭔가 도시녀같은 딱 부러지는 서평을 쓰고 싶은데. 쓰다보면 봄나물 캐러나왔다가 옆집 아지매랑 수다 떠는 형태가 되는 것 같아서 서평고수님들 앞에서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미미 2021-03-22 14:40   좋아요 1 | URL
저도요!😭 하긴 저도 그런 서평에 끌리네요!ㅋ 저보다 더많이 읽어낸 미니님도 그러시다니 위안이 됩니다!ㅋㅋㅋ초고수가 되어야 덤덤해 지는 걸까요? 봄나물..비유가 참 따뜻해요~♡

책읽는나무 2021-11-21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에 쓴 리뷰이신데 오늘 제게 읽어보라고 날아왔지 뭡니까?편지처럼요^^
정영수 작가 이름도 처음은 아닌데 처음인 것 같고,작품 제목은 처음이네요?
제가 한 2 년여 잠수 탔다가 거의 올 여름부터 북플 시작해서 이 책이 나왔었는지 더 몰랐었나 봅니다ㅋㅋㅋ
오호~에세이 같은 소설이라구요?
제목 기억해 놓아야 겠군요^^
퍼펙 데이~~덕분에 또 듣네요^^
오늘도 마트에 가서 장을 봤어요.마트 입구에 또 크리스마스 트리 봤거든요~또 사진 찍고 싶더라는!!ㅋㅋㅋ 징글벨 종?에 또 내가 찍혀 나올까봐 참았네요ㅜㅜ
암튼 계속 혼자 크리스마스 중인데 이 노래가 딱 또 그런 흥이 나는 듯 하네요.쓸쓸한 겨울 노래 같아요.^^ 거실에서 좀 크게 틀었더니 막내 딸이 저더러 갬성 찾는다고 하네요ㅋㅋㅋ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미미 2021-11-21 22:38   좋아요 1 | URL
덕분에 저 소환되었습니다~~🤭ㅋㅋㅋㅋ네 ~ 좋은 기억으로 남은 책이예요! 제 글도 이렇게 추천 되는 날이 와서 너무 기뻐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가보네요. 나무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정말 이노래 차분한 크리스마스이브의 느낌도 나는듯해요!
나무님 피자 사진때문에 오늘 저도 맛있게 페페로니와 고르곤졸라 피자 반반을 때렸습니다ㅎㅎ
남은 일요일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