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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유난히도 일이 많았던 날이었다. 퇴근하는 길에 음악을 즐겨듣던 평소와 달리 그날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여자친구를 사랑한 몹쓸 이야기, 고백에 성공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 대학에 떨어진 안타까운 이야기 등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빠져 같이 안타까워하고 기뻐하고 대신 화를 내기도 하고 부러워하다 보니 어느덧 집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몸을 끄집어낸 나는, 평소에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면 관심도 없던 내가 이토록 다른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단단히 밀착해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해주던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칠흑 같은 밤 야영장에서의 무서운 이야기에, 학교에 처음 들어가면 배우는 단군 신화 이야기에,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단군 신화를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만으로 살아가라고 했을 때부터 환웅은 이미 곰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환웅이 호랑이를 마음에 두었다면 호랑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줬을 텐데 말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이 만들어 낸 이야기는 일상에서도, 재판에서도, 심지어 정치적 선거 활동에서도 등장하며 큰 힘을 낸다. 인간은 이야기의 동물이기에 이야기는 삶의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사실로 인식하고 있는 역사도 단서를 캐내어 과거에 대한 전설로 엮어낸 것이며, 역사가도 결국은 이야기꾼이나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최근 광고계에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제품과 브랜드에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살은 다양한 형태의 스토리텔링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이야기 하면 사족을 못 쓰는 천성을 타고났음은 분명하므로, 항상 내면의 이야기꾼에게 악용당하고 있지 않은지 유의해야 하며, 음모론, 블로그 글 등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야기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우리가 네버랜드에 사는 이유는 네버랜드에서 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꿈을 꾸고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원래 인간은 그러도록 설계가 되어 있으니까…. 일각에서는 기술 변화나 문화적 ADHA가 소설에 사망 선고를 내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연극과 시는 더 심각한 상태이며,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저급 픽션도 내몰리고 있다. 반면, 비디오 게임을 비롯한 디지털 오락이 전통적 이야기에서 관객을 뺏으며 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소설이 죽거나 문화적으로 무의미해진다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미래를 비관하거나 비디오 게임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단지 우리 앞에는 더 풍성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텔링이 탄생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해한다면 이야기의 매력은 조금도 줄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