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와이프
JP 덜레이니 지음, 강경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비밀을 가둔 상자, 진실로 향하는 잠긴 문

사라진 그녀보다 더 그녀다운 존재

당신에게 어울리는 완벽한 아내

퍼펙트 와이프 라는 제목부터 '완벽한 삶, 완벽한 사랑 그리고... 완벽한 거짓말 / 당신이 완벽하다고, 유일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 남자를 조심하라' 등의 홍보문구를 봤을때 그냥 평범한?! 치정스릴러 소설이 아닐까 예상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작품은 굉장히 현실적 SF 문제를 건드리는 최첨단서스펜스 소설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책장이 술술 아주 잘 넘어간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이 책의 첫장에 인용된 문구를 다시 보라, 소름이 쫙 돋을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이 여자들의 행동을 보고 자신이 여성에 불어 넣은 많은 결함에 혐오를 느꼈고 잠자리를 함께할 아내 없이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냈다.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

인용구에서 예견되듯이 이 소설은 피그말리온 신화를 큰 뼈대로 한다. 고대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조각상을 사랑하고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아프로디테여신이 조각상에 생명을 주어 진짜 사람이 되게 해주었다는 이 이야기는 남자의 절절한 로맨스로 윤색되기도 하고 학식있는 남자가 철모르는 소녀를 숙녀로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로 각색되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는데 현대에 와선 AI와 접목되다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안 느껴질 수가 없다.

[ 당신은 다시 그 꿈을 꾼다 (p. 9) ] 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어쩌면 누군가의 '꿈' 같은 이야기이다. 다만 그 꿈을 꾼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도 할수 있거나( 이 경우는 현실이 아닌 어떤 세계에서 인간 아닌 존재로 계속 꿈을 꾸는 판타지적인 경우이고) 영원히 반복 부활된다고도 볼 수 있는 (이 경우는 현실에서 같은 내용의 꿈을 계속 꾸는 실존적 존재가 있지만 그 존재가 계속 바뀐다는 현실적인 경우이다), 꿈일수도 있고 기억일수도 있는 묘한 문장이라는 것을, 첫페이지의 인용구 못지 않게 책을 다 읽고나서 더 진하게 남는 첫 문장이었다.

꿈에서 여자가 깨어나는 것 같은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여보, 내가 설명할 게 있어 (p. 12)' 까지만 보면 니콜 키드먼 주연의 '내가 잠들기 전에'라는 스릴러 영화가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 소설은 현실 스릴러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당신이 꾼 건 꿈이 아니야. 업로드였어 (p. 12)' 업로드! 최근 SF 소설에서 각광받는 뇌업로드라는 소재를 기본설정으로 한 것이다. SF소설에서 업로드는 굉장히 미래적 실존문제를 건드린다. 예를들면 당신은 죽기전 기억을 업로드 하고 싶은가? 내지는 신체가 없는 업로드된 데이터적 존재는 실존인가 아닌가 하는 식의 문제... 하지만 이 소설에서 업로드는 이미 벌어진 현실에서 다른 각도에서의 실존문제를 건드린다. 예를들면 뇌를 업로드한 인간의 관점이 아닌 기억을 업로드 당한 AI의 관점에서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 아이러니에 빠진달까. 하지만 이 소설은 SF판타지가 아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심리스릴러 소설이다.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당신은 악몽에 갇힌 채 충격으로 꼼짝도 할 수 없다. (p. 19)

그는 선지자였고 신동이었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애초에 그 회사에 발을 내디딘 이유였다. 개인용 컴퓨터하면 빌 게이츠, 스마트폰 하면 스티브 잡스, 전기차하면 일론 머스크가 떠오르듯 AI하면 팀 스콧이었다. (p. 25) 이런 분위기는 때때로 컬트 집단 같았다. 우리가 실리콘 밸리에서 괜히 '스콧봇'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임무를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야 괜찮지만 임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지도자에게 단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틀릴 수는 없었다. (p. 27)

"당신은 항상 유일했어. 애비. 대체불가능한 존재. 완벽한 아내. 완벽한 엄마. 내 평생의 사랑. 모두가 하는 말이지만 난 진심이야. (p. 35)"

대부분의 소설은 '나'로 서술되는 1인칭이거나 '그/그녀'로 서술되는 3인칭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2인칭이다. '당신은 이런 생각이 든다, 당신은 그를 본다' 이런식으로 서술되는 시점이 생소하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주인공에 대한 서술과 회사사람의 관찰에 의한 서술이 교차되면서 독특한 관찰자적 시점은 무척 자연스럽게 읽혀진다. 그래서 처음엔 서술자가 2인칭이라는 것도 몰랐다.하지만 읽을수록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는 울었다' 도 아니도 '그녀는 웃었다' 도 아닌 '당신은 안다' 라는 식의 이 낯선 표현은 팀이 만들어낸 죽은 아내의 코봇(아내의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공감능력이 있으며 외모도 똑같은 AI로봇)을 독자에 따라 '나'로도 '그녀'로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독자의 고민지점을 달리 만들고 있었다.

애비의 모습으로 애비의 정신세계를 업로드당한채 깨어난 코봇 애비는 지금의 현실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애비의 기억들이 떠으르고 애비의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애비의 감정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다. 팀은 괴팍하지만 천재적인 AI리더였고 애비와 결혼10년차 부부였다. 둘 사이에는 대니 라는 아들이 있었다. 대니는 5년전 핼러 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남편인 팀에 대해서 데이터상의 빈곳들이 너무 많았다. 뭔가 이상했다. 숨겨진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데이터의 빈 곳들은 스스로 메꿔나가야 했다. AI 니까 가능했다. 어떤 생각으로 발전하고 느끼고 깨우치게 될지는 만든 사람도 알 수 없는 것이 AI 였다.

대니는 핼러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아동기 붕괴성 장애를 앓는다. 워낙 희귀한 증상이다 보니 대부분의 소아과 의사들은 사례를 보는 경우도 드물다. 도리어 그들은 네 살까지 잘 자라던 아이가 무시무시한 몇 주 사이에 갑자기 심각한 자폐증에 걸릴 리가 없다고 당신을 가르치려들 것이다. 온전한 문장으로 말하던 아이가 갑자기 퇴행해서 끽끽대는 소리와 신음 소리를 내며 텔레비전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화의 짧은 파편들로 말을 할 리가 없다고, 갑자기 카펫에 오줌을 누고 변기 물을 마시려 할 리도 없다고, 난데없이 자기 머리를 잡아 뜯거나 피가 날 때까지 팔을 물어뜯을 리도 없다고. 아이가 죽으면 세상은 그걸 비극으로 여긴다. 부모는 슬퍼한다. 하지만 그 슬픔이 언젠가는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CDD는 아이를 빼앗아가는 동시에 그 자리에 이방인을 갖다놓는다. 당신 아이의 몸에 침을 흘리는, 망가진 좀비를 갖다놓는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보다 더 지독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아름다운 이방인을 계속 사랑하는 한편 당신이 잃어버린 그 사랑스러운 어린 사람을 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p. 36)

CDD라는 핼러 증후군 이라는 퇴행성 자폐증을 처음 알게 됐다. 정말 무시무시한 병이 아닐 수 없다. 대니와 애비의 아들은 그들의 결혼 5년차에 그 병을 판정받았다. 그리고 얼마 안돼서 애비가 실종되었고 그이후 5년만에 팀은 애비를 만들어냈다. 공감능력이 사라진 자폐증 아들과 공감능력을 가진 AI 엄마라는 대칭 또한 먹먹한 슬픔 못지 않은 '인간성' 이랄까 '인간만의 공감능력' 이랄까 하는 SF적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런 실존적 문제에만 집중하진 않는다. 애비는 죽은 것이 아니라 '실종'된 거였다. 5년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엇을 그려야 할까? 당신은 뭔가를 창조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도 팀에게는 중요한 일인 것이 분명하니 애써 시도해보려 한다. (p. 51)

당신은 그녀가 당신이 아니라 애비라고 말하는 것에 주목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당신을 그것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매일 당신은 사랑에 빠지고 매일 마음을 다친다. (p. 59)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당신하고만 할 이야기가 있어요. (p. 77)"

애비는 예술가였다. 그림을 그리고 설치미술작품을 만들고 서핑을 즐겼다. 하지만 새로 태어난 애비는 예술적 욕망을 느끼진 않는다. 하지만 모성애는 진하게 느낀다. 사람들은 그녀를 애비로 인정하지 않는다. 애비는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마이크가 찾아왔다. 팀의 동업자이자 유일한 친구인 마이크가 팀 몰래 애비를 만나러 왔다. 그가 말한다. "누구든 자기 기억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게 좋죠. 이제까지 아무 문제도 느끼지 못하셨나요? (p. 82)" 우리의 기억은 늘 불완전하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의 기억을 업로드받고 그 사람의 사고체계를 전달받아 스스로 생각하는 AI의 기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무엇을 믿어야 할까?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걸까? 마이크가 정말 경고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4년 전, 팀 스콧은 아내 애비게일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어요. (p. 112)"

실제로는 먹지 않으면서 남편에게는 항우울제를 먹는 척하는 여자. 병에 남은 알약을 세는 남편. 일에 집중하며 떨어져 지내는 생활. 이런 것들이 평범하고 건강한 결혼생활이었을까? (p. 125) "애비, 우린 행복했어. 아주 행복했어. 어쩌면 우리의 결혼이 평범하지는 않았겠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어떤 결혼이든 그렇지 않겠어? (p. 126)"

회사에서 팀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다. 그의 막말과 비하를 견디면서 그의 아래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스콧봇이라 불리면서까지 남아있는 이유가 있었다. 팀이 말하는 비전은 프로그래머들에게 절대적 힘을 발휘했다. "내 비전은 지능적인 자율 로봇들이 요즘의 컴퓨터처럼 흔해지는 사회에요. 생각해봐요.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를. 질병과 기아, 생산과 디자인 문제를 모두 AI로 해결하는 세상을. 그게 우리가 겨냥하는 혁명입니다. 숍봇은 우리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게 해주죠. 그뿐인 겁니다. 그리고 그거 알아요? 이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몇몇에게 이상주의는 그저 사정거리가 긴 현실주의일 뿐이니까.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이 개떡같은 상황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은 이 변화의 일부가 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옆에서 구경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나 하고 싶은 건가요?(p. 179)" 이상주의는 그저 사정거리가 긴 현실주의라는 것을 증명해낸 사람이 팀 스콧이었다. 업계에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사람이 팀이라고 생각했다. 애비도 그의 연설에 반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적어도 결혼생활에서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용인 가능성이라는 문제가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 로봇이 감정을 가지는 걸 원치 않거든. 기계가 사람처럼 감정을 가진 존재라면, 동정심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처럼 대우해야 한다고 판단하거든. 그러면 AI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그 모든 주장이 사라져버리지. 밭을 쟁기질하고, 노동 현장에서 힘들 게 일해야 하는데 갑자기 사람과 차별성이 없어지잖아. 사실, 사람을 만드는 건 싸잖아요. 그렇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 AI는 그 반대가 돼야 해요. 로봇에게 사람과 똑같은 권리, 똑같은 배려, 심지어 똑같은 보수를 주기 시작하면 경쟁력이 어디에 있지? (p. 221)"

애비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팀의 회사엔 위기가 닥친다. 언론에서는 공감능력을 가진 AI 의 존재적 필요성에 대해 위험을 경고하고 투자자들은 경제적 가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팀은 또한번 특유의 천재적 기지를 발휘한다. "빌어먹을 더 큰 그림을 봐야지. 잠시 로봇은 잊어봐. 로봇은 그냥 전달 매커니즘일 뿐이니까. 애비의 정신은 이제 순전히 디지털적인 것으로 존재하지. 그래서 이전이 가능해. 그 잠재력이 뭔지 모르겠어?" 그가 손짓으로 당신을 가리킨다. "그녀는 망할 장난감이 아니라고, 사실상, 불멸이야. (p. 227)" 팀은 투자자의 욕망을 건드린다. 역사속에서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욕망했던 그것을 건드린다. 바로 불멸. 필멸의 존재가 불멸을 원하는 순간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어지는지 그 수많은 역사를 알고도 인간의 욕망은 그 앞에서 눈을 뜨지 못한다. 여전히.

"왜 갈라테이아 증후군이라 불리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어요.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의 이야기죠. 키프로스의 모든 여자들이 경박하고 천박하다며 거부한 사람이에요. 어느날 그는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상을 조각했고 그 조각상을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게 됐어요. 그러자 조각상이 살아나서 그를 사랑했고요. 그는 그녀에게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는 사람이 아니라 이상을 사랑했던 거겠죠. (p. 322)"

갈라테이아 증후군은 본질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깊은 양면성의 발현이다. 어떤 남자들에게 '완벽한' 여성은 항상 그들의 어머니, 곧 그들이 필연적으로 성관계를 즐길 수 없는 여성이어야 한다. 이런 남성은 마음속으로 모든 여성을 성모 마리아와 창녀, 두 범주로 나눈다. 곧, 그들이 숭배할 수 있는 이상화된 '좋은' 여성이거나 성적 충동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버리는, 경멸적인 상대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런 남자들은 사랑하는 곳에서는 욕망할 수 없고 욕망하는 곳에서는 사랑할 수 없다. 이런 분열은 자녀가 태어난 뒤에는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그가 결혼한 여자는 더 이상 여자친구가 아니라 어머니이다. 그는 자신의 천한 욕망으로 그녀를 범하길 거부한다. (p. 335)

애비는 애비를 추적한다. 애비의 실종을 추적하면서 팀의 이면을 알게 되고 결혼생활의 문제점들을 공감하게 된다. 사랑하는 곳에서는 욕망할 수 없고 욕망하는 곳에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팀은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이상을 사랑했던 사람, 팀은 피그말리온이었다. 그리고 팀도 실종된 애비를 찾고 있었다. 애비는 실종된 것일까? 죽은 것일까?

흡족하게도 그녀보다 당신이 대니와 소통이 더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은 그게 당신이 대니의 엄마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얼굴 표정은 인간보다 훨씬 덜 빈번하게, 더 좁은 범위에서 변한다. 당신의 시선은 흔들임이 없고, 다른 사람들처럼 까다로운 눈 맞춤을 요구하지 않는다. 보디랭귀지는 침묵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하다. 당신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꼬마기관차 토마스에 가장 가깝다. 젠장. 정말이지 당신은 이 가족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어이없게도. (p. 352)

애비인듯 애비아닌 애비같은 애비는 애비를 학습한다. 매번 사건이 폭탄처럼 터지는 상황에서도 애비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려 노력한다. 학습되지 않고 훈련되지 않아도 유일하게 애비와 똑같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모성애'였다. 자연스러운 모성애라는 모성신화에 반감이 있는 나로서는 공감능력이 있는 AI에게조차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이 모성애라는 것에 대해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내 그 불편함이 사라졌던 이유는 소설속 애비의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후기에서 작가의 아들이 자폐증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그 진심이 더욱 애비의 감정에 몰입하게 해서 모성애신화는 뒤로미뤄놓을 수 있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진심이 담긴 허구는 늘 공감도를 배가시키기 마련이다.

애비를 추적하는 애비의 행로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소설이었다. 애비는 실종일까 아닐까, 팀은 살인자일까 아닐까 라는 스릴러적 여정부터 애비아닌 애비의 존재성, IT업계에서의 여성, 자폐증 아이를 둔 부모의 심정, 인간다운 공감능력이란 무엇일까 등 휘몰아치는 물음표들이 소설의 여운을 길게 만들었다. 그 물음표들에 대한 답은 아마 읽는이마다 다르지 않을까? 그 답들이 모여 현실세상을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로 만들수 있는게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의 능력이 정말 감탄스러웠다. 예상보다 정말 너무너무 멋진 작품이었다.

로봇의 성격을 창조하기 위해 로봇과 사용자의 상호작용을 위한 방법과 기술이 제공된다. 로봇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를테면... 세상을 떠난 사람이나 유명 인사)의 성격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될 수 있다.

- 미국 특허 No. 8996429 로봇 개성 개발을 위한 방법과 시스템. 2015년 구글에 승인. (p.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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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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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의 미술관에는 없는 미술 이야기

몇년전에 박물관에서 전시중이던 에트루리아전을 보러 가기위해 사전준비 차원에서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2 - 그리스 로마 문명과 미술>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너무 재밌게 잘 읽혀서 책을 읽는 내내 언젠가 6권인 이 시리즈를 완독하고 말리라 생각했었더랬다. 비록 그 시리즈는 여전히 읽고싶은 책 목록에 남아있는 상태이지만 저자의 쉬운 설명과 풍부한 자료는 여전히 흡족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책의 저자가 바로 <벌거벗은 미술관>의 저자인 양정무 님이었다. 그러고보니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으며 왜 우리나라엔 이런 책이 없나 아쉬워했던 것이 미련스럽게 느껴진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로 미술사를 읽었으면 됐을 것을 이렇게 뒤늦게 생각나다니;;;

여하튼 저자는 국내 미술사 분야에서 대표적인 학자라고 볼 수 있다. 미술의 역사를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대중서 집필과 강연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무척 존경스러운 분이다. 무엇보다 잰체하지 않고 쉽고 재미있게 미술과 미술사 이야기를 풀어내준다는 점에서 저자의 책은 늘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코로나시대에 생각해봤음직한 역사속 주제들을 흥미로운 미술사이야기로 엮어낸 책이다. 이렇게 장기화될 줄 몰랐던 코로나시대에 살면서 고전이나 르네상스 그리고 박물관에 대해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몰랐던 부분을 깨닫게 하여 예상치 못했던 시대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시도하게 해준달까.

클래식, 또는 고전이라는 용어 속에는 그리스·로마의 것을 최상의 것으로 보는 인식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로마의 것은 최고'이며, 이것을 뒤집어 '최고의 것은 그리스·로마에서 왔다'라는 인식까지도 담겨 있습니다. (p. 20) 고전미술을 추종했던 르네상스 시기부터 18,19세기까지만해도 이것들이 로마시대의 복제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가 20세기부터 미술사학이 고도화되면서 실증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중략) 다시 말해 고전미술의 실체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전미술을 향한 신화와 예찬이 더 극적으로 이뤄졌을지도 모릅니다. (p. 23) 고전기 조각의 정수로 알려진 작품들은 원래는 상당부분 색이 칠해져 있었습니다. (p. 24) 그리스 조각에 대한 관심이 샘솟던 르네상스 시기부터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이 원래 채색되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이런 이유로 르네상스 이후 '조각 하면 순백색 대리석 조각'이라는 공식이 생겼던 겁니다. 그러다 18세기에 이르면 순백색 대리석 조각을 이상적인 피부의 재현으로 미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게 됩니다. (p. 25) 18세기 당시 고전미술에 대한 예찬은 대단했습니다. (중략) 어떤 집단이 성공하면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스멀스멀 생겨납니다. '우리의 조상은 누구이고 어디서 왔을까?' 유럽인들의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빙켈만 같은 이는 그들의 뿌리가 그리스에 있다고 말해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p. 28)

서양미술에서 고전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로마 시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리스·로마 시대를 유럽의 뿌리로 인식하고 고전이라 부르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고 좀더 파고들어가보면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한상태에서 자리잡은 개념이었다. 그 착각과 허술함은 이미 밝혀진게 상당히 많지만 그리스·로마 문명에 대한 서양의 예찬은 아직 현재 진행중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는 2천년 전에 쌓아놓은 명성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럽 문명의 종주국으로 큰소리치고 있고, 그것이 유럽의 현실 정치에서 어느정도 힘을 발휘(p. 38)' 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문명의 기원을 쫓아올라가면 그리스·로마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터키(수메르) 등 유럽인들이 동방의 문명이라 부르는 문명으로 가야하는데 자신들의 뿌리가 동방에서 시작됐다고 말하기 싫어서 유럽의 뿌리는 그저 그리스·로마 시대다 라고 더이상 캐지 않고 덮어놓고 있는 것 같달까. 하지만 이렇게 그냥 덮어놓음으로써 18세기에 유럽에서 만들어진 미술사와 미학이라는 학문과 동시에 생겨난 인종(p. 43)이라는 개념에 대한 편견도 여전히 존속되고 있는게 아닐까. 가장 고리타분할 수 있는 '기원'이라는 문제가 시대를 거듭하며 점점더 첨예해진다는 것또한 인간문명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학의 문제는 미학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곧 뛰어난 것, 우수한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까지 자라나게 된 겁니다. (p. 48)' 라는 문장에서 알수 있듯이 미술사의 미적 변화는 역사에 던지는 시사점이 의외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점에서 유럽의 고전시대인 고대그리스사회를 '육체의 파시즘 사회(p. 63)' 라고 한 저자의 표현은 신선하고도 울림이 컸다.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누드 미술은 인간의 신체가 아니라 '신의 옷'인 셈(p. 66)' 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미에 관해서 열린 생각을 존중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미술도 열린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p. 75)' 라는 저자의 의견은 고전미술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해준다. 고전미술이 왠지 고급지고 멋지고 아름답고 신비롭다고 생각해왔다면 '우리가 아는 고전미술은 사실 '짝퉁'이다! (책의 띠지 문구 中)' 라는 발칙한 문장에 함께 미소지어보는 것은 어떨까,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ㅎㅎㅎ

유럽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그리스·로마 시대엔 희비극 공연이 유명했다. 배우들이 쓰는 가면엔 인간의 감정이 크고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곤 했다. 하지만 플라톤 이후 조각상들은 무표정해지고 중세의 초상화들에서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미술사에서 '문명의 표정'을 읽어내려 한다.

특정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초상을 굉장히 견제하던 시기였기에 이 시기의 무표정은 누구도 아니고, 누구도 될 수 없는 극도로 이상화된 얼굴을 표현한 결과였습니다. (p. 90)

유명세를 따지자면 <모나리자>를 이길 수 없겠지만, 15~16세기 유럽 전역에 등장한 상인이라는 새로운 세력의 영향력을 염두에 둔다면 당시 사업가였던 크렐의 표정도 르네상스를 대표할 자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p. 111)

볼테르는 회화, 조각, 판화 등 어떤 매체에서도 항상 웃고 있습니다. 볼테르만큼 회화나 조각으로 많이 만들어진 철학자는 드물 것입니다. (p. 134)

무표정하고 근엄했던 표정들 사이에 상인 계층의 개성적인 얼굴이 등장하더니 철학자의 미소까지 미술은 늘 시대의 인물을 그려왔다. 지금 우리 시대의 초상화는 어떤 표정일까? 이시대의 표정을 생각하기 어렵다면 일단 책의 표지 먼저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은 겉표지를 벗겨내면 앞뒤 페이지를 초상화로 채우고 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4가지 주제 중에서 표정에 관련된 두 그림을 표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많은 초상화들 중 이 두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책의 띠지에 쓰여있는 표현을 빌려말하자면, 저자는 우리가 아는 고전미술은 사실 '짝퉁'이고 초상화에 웃는 얼굴이 드문 이유를 설명한 다음의 반전의 서사는 박물관에서 풀어낸다.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박물관이 사실은 얼마나 잔혹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곳인지.

누가 고전을 중심으로 세기의 명작을 차지하는가는 곧 누가 유럽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하는가의 문제, 즉 유럽 전역에서 권위를 발휘할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벌인 이같은 약탈극은 고전의 지위를 한층 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자유라는 혁명의 이념이 약탈의 정당한 근거로 둔갑한 걸 보면 조금 무시무시한 반전이라는 느낌도 들죠. (p. 155) 루브르 이전에 세워진 유럽의 초기 미술관들도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어느정도 예견했지만, 지배층이 베푸는 시혜까 아니라 시민들의 주조하에 확실하고 극적인 변화로 이끌어낸 곳이 바로 루브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p. 161) 유럽 각지에 박물관과 미술관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p. 164)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관 박물관은 나폴레옹의 약탈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국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제국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 것 그것이 박물관의 시작이었다. 영국박물관은 나폴레옹과 같은 리더의 대대적 약탈로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소소하게 모여지는 재미가 있었다. 영국박물관은 슬론의 기증으로 시작되어 처음엔 자연사박물관 같았으나 윌리엄 해밀턴이 이탈리아에서 모은 소장품을 기증하면서 업그레이드 되었다가 엘긴백작이라 불리는 토머스 브루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엘긴 마블로 채워진 영국박물관도 결국은 약탈품 전시관인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사이어티 오브 딜레탕티' 라는 클럽의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18세기 영국은 그야말로 클럽의 시대였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에드워드 기번도 사무엘 존슨의 클럽 멤버였는데 이 클럽의 창립멤버인 조슈아 레이놀즈의 '소사이어티 오브 딜레탕티'라는 그림(p. 170)을 보고있자니 그들의 사치와 지적 여흥이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왔다. 역사적으로 내내 충돌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박물관에서도 서로를 경쟁하듯 의식하는데 '프랑스가 굉장히 대담한 방식을 통해 박물관의 변혁을 건축적으로 추구해다면, 영국은 원래 있던 것들을 그대로 존중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 200)' 에서 확인되듯이 영국의 귀족문화가 여전한 것이 또한번 엿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몇 개나 있는지 아시나요? 놀라지 마세요. 영화관보다 훨씬 많답니다. 2018년을 기준으로 전국에 위치한 영화관은 483개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은 총 1124개가 있습니다. 이중 박물관이 873개, 미술관이 251개고요. 어마어마하죠? (p. 203)

정말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광복이후 시작된 미술관 박물관이 저렇게나 많다니. 빠르게 세워진 만큼 부실하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일단 초석은 잘 깔아놓은게 아닐까 싶다. 저자가 말하는 '인간을 위한 발전의 장소'인 박물관으로서 국내의 박물관들이 잘 성장하길 응원해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E.H.카 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에 나온 날인데, 미술의 역사를 공부하는 제가 경구처럼 되뇌는 소중한 문장입니다. (중략) 과거를 이해하려면 바로 이 시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역사학자의 관심사 중 절반은 항상 현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p. 209)

E.H.카 의 저 문장은 정말 유명한 문장이고 나도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다. 역사를 읽는 것은 과거의 시간을 읽는 것이지만 현재를 알기 위해 읽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술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자꾸 과거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이유중엔 이러한 역사적 의미도 숨어 있는게 아닐까.

우리가 말하는 르네상스는 흑사병의 병마가 가장 맹위를 떨치던 대역병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르네상스란 흑사병이라는 가공할 공포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였던 거죠. 흑사병은 서양미술의 흐름을 크게 뒤바꿔놓은,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p. 226) 흑사병은 미술의 대중화에 상당부분 공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p. 234) 역사적으로 흑사병은 르네상스로 이어진 반면 스페인독감은 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두 갈림길을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에 투영해본다면 우리에게는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장밋빛 세계의 가능성과, 지금보다 더 파괴적인 대재앙의 가능성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극단적인 좌표 속에서 어떤 길로 들어서게 될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문명은 또다시 역사의 기로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p. 258)

코로나19 시대가 길어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들 이야기한다. 지금은 체감하지 못할지라도 몇년 후 우리는 코로나19 시대가 바꿔놓은 것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니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남기는 여운이 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 '예술은 크게 보면 완벽과는 거리가 먼 오류의 세계(p. 261)' 라고 저자는 예술에 대한 벽을 낮춘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보며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완벽함과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과 그것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온다.(p. 264)' 라며 저자는 미술에서 인간성을 찾는 시선을 보여주기도 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미술의 관점에서 풀어보려(p. 270)' 했다며 미술을 통해 본 인간의 모습은 '인간은 방황하지만 그것에 도전해서 변화를 일으키는 자(p. 271)' 라고 답하며 미술을 더욱 인간적으로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미술의 역사는 도리어 실패와 미완성으로 이루어진 고뇌와 좌절의 역사이기 때문(p. 271)' 이라고 그렇게 '이 책은 미술과 인간의 관계가 지닌 복잡성을 인정하면서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문제로 나아가려 했다.(p. 274)' 고 저자는 책을 마무리한다. '이같은 저의 도전이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다면 그것으로도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p. 274)' 라는 저자의 겸손에 미소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무거운 주제일수도 있지만 가볍고 신선하게 읽히는 책이었기에 저자의 도전이 앞으로도 계속되어 또다른 책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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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 Philos 시리즈 7
제프리 삭스 지음, 이종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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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지 않으면서 인류의 역사를 경제학적으로 모두 정리해내고 있어서 재밌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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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 Philos 시리즈 7
제프리 삭스 지음, 이종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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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부와 빈곤부터 지속가능성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교류가 이끌어갈 미래를 예측한 대작

인문대중서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읽었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는 그야말로 충격에 가까운 깨달음을 준 책이었다. 역사에서 '지리'의 중요성을 그토록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알려준 책은 처음이었다. 그러한 명저를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찬사에 가까운 추천문장을 달고 나온 이 책을 보고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7만 년의 변화를 관통한 단 한 권의 책! 인류의 역사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만을 탁월하게 정리해놓았다' 라니, 그런데 그 방대한 역사를 담았다는 책 치고는 비교적 얇은 두께의 책이라니 대체 어떤 책일까...

원제가 <The Ages of Globalization 세계화의 시대>라는 것에서 알수 있듯이 저자는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7번의 세계화시대로 구분지어 인류 역사를 '세계화'라는 주제에 맞춰 정리하고 있다. 왜 이러한 구분이 가능한지 1장에서 '세계화의 역사' 개요를 설명하고 각 7 시대를 풀어낸 다음 마지막 9장에서 '21세기 세계화를 위한 조언'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러니까 '미래를 예측했다' 기 보다는 저자가 꿈꾸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조언' 을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이러한 해악이나 위협에 대하여 간명한 해답이나 처방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세계화의 역사는 인류의 영광스러운 업적, 잔인함, 스스로 가한 해악 등의 역사이고, 동시에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발전을 성취해온 아주 복잡한 역사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세계화는 자연지리, 인간의 제도, 기술적 노하우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중략) 나는 이 책이 전 지구적 상호연계썽의 오랜 체험을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생활과 사회를 형성해온 세계화의 역할을 더 잘 알게 해주는 밝은 빛이 되기를 희망한다. (p. 23 -머리말 中-)

지금의 시대가 불운하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만큼 역설적으로 저자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세계화' 라는 이슈에 맞춰 더 강력하게 주장한다. 저자의 본업이 경제학자인만큼 '세계화' 라는 주제로 풀어내는 인류의 역사는 경제 그중에서도 세계경제의 중심인 '무역'을 중심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원시적 무역에서부터 현대의 무역까지 그 중심에는 지리, 기술, 제도 가 있었음을 논증하여 7만년의 역사를 굉장히 압축적으로 간결하게 이해시켜주고 있다.

지리, 기술, 제도의 상호작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21세기에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를 잘 헤쳐나가는 기본적인 길잡이가 되어준다. 우리는 세계화의 역사를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현재 사회와 우리 시대의 경제를 위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p. 27)

세계화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일곱 시대로 뚜렷하게 구분지어 설정한다.

첫째는 구석기 시대로 인류가 아직도 수렵채집자로 살아가던 선사시대이다.

둘째는 신선기 시대로 인류는 이 시대에 처음으로 농업을 시작했다.

셋째는 기마 시대로 야생 말을 순치(길들이기)시켰고 원시문자가 개발되어 장거리 교역과 통신이 가능해졌다.

넷째는 고전 시대로 이 시기에 대규모 제국이 처음 생겨났다.

다섯째는 해양 시대로 제국들이 최초로 본국의 생태적 지역을 넘어서서 5대양으로 뻗어나갔다.

여섯째는 산업 시대로 대영제국이 선도하는 소수의 사회들이 산업 경제를 부흥시킨 시대이다.

일곱째는 디지털 시대로 온 세상이 디지털에 의해 즉시 연결되는 시대, 즉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이다.

위와 같은 시대구분과 간략한 특징들을 저자는 깔끔하게 하나의 표로 보여주기도 하는데 아주 정리가 잘 된 표였다.

인류의 체험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살펴볼 때, 대부분의 경제·인구·통계적 변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것이었다. 그런 변화는 지난 200년 동안 발생했는데, 이 정도의 시간은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 존재해온 30만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잠깐 사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장기적인 전 지구적 변화에서 얻을 수 있는 첫번째 교훈은 최근 200년 동안 벌어진 대대적 변화들이 초기하급수적으로, 즉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p. 35)

'초기하급수적 성장을 보인 이 세가지 사례는 아주 극적인 것이다. 이 사례들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극적인 변화가 발생했음을 상기시킨다. (p. 39)' 인류의 총인구수, 도시화비율, 1인당 전세계 생산량으로 살펴본 최근 200년간의 초초초기하급수적 변화에 대한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경제학적 분석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의 역사는 곧 일련의 규모 확대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p. 40)' 그러므로 글로벌시대라고 일컬어지는 현대사회를 이해함에 있어서 '세계화'의 시대로 역사를 정리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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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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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의 유한한 날들을 영원한 기록으로 잇는 나 자신과의 대화

서른 다섯살의 젊은 소설가가 있다. 그는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모든 것들의 끝에서 남긴 메모' 라는 제목을 붙인 글을 일기처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삶과 죽음에 대한 단편적인 사색을 일기 형식의 에세이로 기록했다는 것은 사실 '설정' 이다.

아무 사전정보 없이 이 책을 읽다보면 자전적 에세이인가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뒷표지에 쓰여있는 추천사에서 이다혜 작가의 '사고실험' 이라는 단어가 그나마 아무 정보없이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던 독자에게 주는 유일한 힌트라면 힌트이다. 출판사의 포스팅 글을 통해 이 책에 대한 설명을 찾아 읽을 수 있었다. 픽셔널 에세이 fictional essay. 논픽션은 아니지만 소설이라 볼 수 있고 허구의 인물이지만 실제 에세이처럼 읽히는 이 책을 '픽셔널 에세이'로 칭하고 있었다. '서른 다섯, 젊은 소설가가 남긴 죽음과 삶의 이야기, 끝에 이르러서야 닿을 수 있었던 진정한 내면의 기록들'이란 표현은 사실 허구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가족은 어머니 한명 뿐인 외동아들인 '나'는 혼자 사는 소설가 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러서 사랑하는 사람은 없고 괴팍하다 싶은 시니컬한 성격의 나는 늘 자신의 자아와 대화하기를 즐기고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인 사람이다. 그런 '나'가 어느날 갑자기 악성 뇌종양 말기 진단을 받았다.

아직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내 생각에 이전과 똑같은 일들을 하면서 앞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내가 언제나 해왔던 일들을 할 것이다. 그 외에는 특별히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으니까. (p. 19)

원래 성격이 그러했기에 갑자기 악성 뇌종양 말기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나'는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만들지 않는 유형이다. 이점은 나와 굉장히 흡사하다. 나도 어느날 갑자기 암진단을 받는다고 해서 일상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그렇게 되고나서야 진정 나만을 생각하며 조금은 욕심내서 남은 시간을 즐기려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암진단을 시한부삶이라는 것을 좀 선망하는 타입이다.

시간은 돈과 다르지 않다. 시간은 쓰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무언가에 소비했을 때만 중요하다. 시간이든 돈이든 쓰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개념일 뿐이다. (중략) 마찬가지로 시간은 시간 자체가 아닌 다른 무언가와 교환할 때만 가치가 있다. 돈과 시간의 뚜렷하고 확고한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 잠재적으로 상당한 양의 시간을 부여받는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생득권 혹은 탄생 선물처럼 시간을 일시불로 받는다. 또 시간만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매분 매초 써야만 한다는 것이다. 조금도 아껴두었다가 쓸 수 없고 저축할 수도 없다. 물론 주어진 분량 이상으로 차지할 수도 없다. 쓰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으며 소유를 의식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시간을 쓰고 있다. (p. 34)

이 책이 소설처럼 읽히지 않는 이유는 한 사람의 화자가 내밀한 자신의 시한부 삶을 받아들이며 생각해봄직한 것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도 없고 주인공도 없고 그저 '생각'뿐인데 누가 이 글을 읽으며 소설인줄 알겠는가?! 더구나 그 생각 깊이가 좀 남다르다. 얇은 두께에 많지 않은 글밥인데도 한페이지한페이지 힘겹게 넘어간다. 그 무게감이 시한부 라는 설정 때문인지 다루고 있는 철학적 주제 때문인지 잘 구분이 되진 않는다.

가족이란 개념은 정말 이상하다. 임의적인 혈연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도 없고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평생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마치 내가 선택하지 않은 친구의 친구들 같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줄 알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p. 61) 나는 항상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고, 이 또한 지치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할 때처럼 힘들지는 않다. 이제까지 내가 했던 최고의 대화는 나와의 대화였다고 할 수 있다. (p. 64) 내게 남은 시간이 한 줌밖에 없다면, 그러니까 내가 다시는 이 사람들 얼굴을 볼 수 없고, 그 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남길 기회가 없다면, 그동안의 인연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나누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내가 가장 오래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남이 아닌 나 였다. (p. 72)

'나' 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내 줄곧 고독을 원했기에 고독하게 살았고 그 고독을 즐겼다. 그러니 시한부 삶이 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별로 없었다. 여전히 자신과 대화하고 주변 사람들과 거리감을 유지한채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고독을 원했다. '나' 의 인간관계는 이 한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 한 명의 좋은 친구는 백 명의 친구만큼 가치가 있다. 그리고 평화로운 고독은 천 명의 친구만큼 가치가 있다. (p. 75) ] '나' 에게는 한 명의 친구 도 없고 그저 평화로운 고독 뿐이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러니 이 책이 하고 있는 '사고실험'은 일반적 캐릭터로 볼수 없어 보인다.

나의 건강이 섣부른 위로는 의도와는 정확히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만들어 정당화하고 어떻게든 개입하려고 했다. 잔인하고 부당하고 까닭없는 나의 상황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p. 111)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무 근거가 없는데도 억지로라도 이유를 찾아내어 정서적인 안정을 구하려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중 가장 최악은, 분명 신의 부재가 가장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이 시기에 나에게 신을 설교하려는 사람들이다. (중략) 그들이 말하는 바로 그 신이 아마도 나의 이른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앞뒤가 맞는 말이며 어떻게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신이 존재한다 해도, 그 신을 사랑하거나 믿거나 아는 일은 나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p. 112) 신이나 그와 비슷한 존재를 말하면서, 믿음에는 증거가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맹목적인 믿음, 신실하고 순수한 신앙만 있으면 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나는 바로 그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는 신앙이 곧 이유이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위한 이유다. 만약 필요해서 만든 이유에 지나지 않고 그외에는 마땅한 이유가 없다면, 신앙이란 부조리와 무의미로 붕괴되는 타락과 후퇴의 순환일 뿐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무엇을, 그저 더 좋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믿는다는 것은 희망이나 신실한 신앙의 표시가 아니라 절망의 증거일 뿐이다. (p. 116)

'나' 는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이긴 하나 그렇기에 '나' 만의 시니컬한 철학적 논리가 내게는 잘 맞았다. 이 책이 허구적 소설형식 에세이이고 일종의 '사고실험'이라면 적어도 내게는 그 실험이 어느정도 가능했다는 말이다. [ 나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강하다. 언제나 그래왔기에 어쩔 수가 없다. 어머니만이 나를 도울 수 있게 허락한 유일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나마도 최소한이길 바란다. (p. 185) ] 나에게 책속의 '나' 와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한 가정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던져주는 '사고실험'은 내게 충분히 실험적이었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인생이라는 조건과 한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해답은(만약 해답이라는 것이 있다면) 애초에 그 해답을 찾으려는 의도 자체를 전복시키는 것이 아닐까. 문제의 해답은 역설적인 접근 방식으로 해답 찾기를 멈추었을 때 비로소 떠오른다. 인생의 해답은 어쩌면 해답이 아니라, 해답의 필요성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p. 166)

만약 이 책이 허구 인줄 모르고 '나' 의 상황이 '소설적 설정'인줄 모르고 읽은 독자라면 젊은 소설가의 시한부 삶을 애도하며 그저 강건너 불구경하듯 읽고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이 책 어디에도 이 책이 소설이라는 안내가 없는 것은 아마 의도적으로 이 책을 진짜 어떤 소설가의 이야기로 읽히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인 접근 방식으로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을 드러냈어야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사고실험'이 더 제대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당신이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산다면, 당신은 오늘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이 내일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면,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든 죽을 수 있지만 아마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과, 언젠가는 반드시 죽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 사이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계속 우리를 끌어당기면서 종종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가 되도록 만든다. (중략) 우리가 하루하루를 온전하고 충실히 산다는 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p. 207)

이 책속의 '나'에게 닥친 것처럼 갑자기 내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지금,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사는가 내일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가? 오늘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있을까 아니면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을까?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은 태어난 이상 내내 갖고 다니는 숙제같은 화두다. 그 화두가 시한부 삶으로 구체적으로 던져졌을때 글을 쓴다면 우리는 무엇을 쓰게 될까? 이 책은 그러한 '사고실험'을 아주 진지하고 철학적으로 고민해본 누군가의 내면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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