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사회 - 공정이라는 허구를 깨는 9가지 질문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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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철학자 이진우 교수의 한국 사회 읽기

"공정을 간절히 외치는 사회는 불공정사회다"

'공정' 이라는 단어가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공정'이라는 단어를 입밖으로 꺼낼수조차 없던 시대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단어일텐데, 언제부턴가 사회문제를 말할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그렇게 친숙해진 이 단어는 분명 불공정한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해주는 단어일텐데 우리사회의 어떤 모습이 불공정한 것일까? 이 책에서 철학자 이진우가 불공정한 사회에 대해 9개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일한 질문에 다른 대답, 그것은 우리가 시대적 한계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도 시대의 자식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정치철할적 질문에 영원한 답은 없다. 영원한 질문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이다. (p. 6)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이 책은 또다시 정치철학의 본질적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우리 사회는 이래야만 하는가?'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정의는 과연 가능한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을 중심으로 지난 10년 동안 포스텍에서 수업한 내용을 기반으로 집필했다. (p. 8) -머리말 中-

저자의 이름은 니체의 책을 찾아 읽을때 알게 되었다. 한국니체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등을 역임한 저자의 책은 니체관련 책이 대다수이다. 니체의 책을 읽을때 저자가 니체전문 철학자인줄로만 알았었는데 주전공이 정치철학이었구나... 니체와 현실 정치철학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기분인데;;; 여하튼 니체전문가인만큼 현실의 정치철학을 논하는 중에도 니체의 철학은 자주 등장한다.

불공정사회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논하는 대신에 '부정적 자유'처럼 정의를 제한하고 침해하는 사회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었다. (p. 13)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퇴보할 수 있고, 문명은 언제나 야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부정적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가는 비판적 의심이다. 공정은 허구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정의로운 사회로 안내할 수 있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허구이다. 이러한 허구에 이끌린 이 책이 공정을 방해하는 요인들에 대한 비판적 여정의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 (p. 17) -서설 中-

의심하는 철학자라는 이진우 저자는 '공정은 허구' 이지만 '이 책이 공정을 방해하는 요인들에 대한 비판적 여정의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고 본론을 시작하지만 '30여년의 강단 생활을 마무리하며 쓴 책이 명료한 답을 제공하는 대신 여전히 질문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나의 질문에 독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기를 기대할 뿐이다. (p. 8)' 라고 시작부터 이 책은 '질문' 중심의 책임을 밝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질문의 책에서 답을 찾기를 바랬었다. 혼자 속으로 이 사회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심과 질문을 되뇌었던가? 그런데 나보다 더 진지하고 논리적으로 진중하게 오랫동안 고민해왔을 철학자에게서까지 질문만 듣고 싶지는 않았다. 철학책을 종종 읽었을 때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 재밌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나는 아무래도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법적인 것은 반드시 정당한가?

능력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가?

뛰어난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가?

내 것은 정말 나의 것인가?

부는 집중되어야 생산적인가?

경쟁은 효과적인 분배 방식인가?

연대는 언제 연고주의로 변질하는가?

정의는 이념 갈등에 중립적인가?

신뢰는 더는 사회적 덕성이 아닌가?

라는 아홉가지 질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왜 공정하지 않다고 느껴지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사실 이 아홉가지 질문은 질문이 아닌 명제로 명치를 찌르는 듯한 아홉가지 문장이기도 했다.

위의 아홉가지 질문을 바꿔말하면,

합벅적인 것이라고 반드시 정당하진 않고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뛰어난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뛰어날 수 없고

내 것은 정말 나의 것이 아니며

부는 집중되어야 생산적이지 않고

무한경쟁은 효과적인 분배방식이 아니며

연대는 쉽게 연고주의로 변질되어 집단주의화 되고

정의는 이념 갈등에 중립적이지 않아 왔으며

신뢰는 사회적 덕성이지만 현실은 너무나 저신뢰 사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왜 우리 사회에는 공정의 논란이 유독 많은가? 공정이 제도화되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공정에 대한 목소리는 크지 않을 것이다. 공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 불공정한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불공정사회의 원인일 것이다.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공정사회로 나아간다. (중략) 불공정 사회에서 공정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이렇게 의심하고 질문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p. 282)

마이클 샌델의 <공정이라는 착각>을 읽으며 느꼈던 허무감이 차라리 나았던 것 같다. 꿈같은 이상이나마 그나마 답을 주었던 그 책이 갑자기 그리워 졌다. 저자는 아홉가지 질문으로 나누었지만 사실 본내용들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볼수 있었다. 돈이 능력이 되고 학벌이 그 능력을 공고히 해주는 사회에서 특권계층이 권력을 쥐고 있는 사회가 불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아홉가지로 나눠서 현학적으로 질문하지 않아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 않나. 그런 현실에서 공정에 대한 질문만 던지고 있는 것은 사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형국이다. 우리가 그동안 정말 질문하는 능력이 없었던가? 우리가 그동안 정말 아무 의심 없이 믿고 따라만 왔던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늘 의심했고 왜냐며 따져왔다. 그래서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변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불공정사회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보다는 답을 구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어려운 질문을 쏟아놓고 독자에게 그 해답을 찾아보라는 책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오래 깊게 고민하여 답을 내놓는 철학자의 책을 읽고 싶다. 하지만 그 시작은 분명 질문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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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함께 춤을 - 아프다고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다리아 외 지음, 조한진희(반다) 엮음, 다른몸들 기획 / 푸른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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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또 다른 아픔을 얻지 않기를

자책감과 고립감으로 밤을 해매던 이들을 위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이 몸으로 써내려간 이야기

잘 아플 권리, '질병권' 이라니 이건 무슨 말일까. 아프다고 삶이 끝난건 아니지만 아프면 삶이 끝난것 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고 질병 또한 끝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아파해 왔던가? 이 책은 아픈몸에 대해 낯선 질문을 던진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씩은 아프고 만성질환 하나쯤은 개성처럼 달고 산다. 그럼에도 모두 건강 중심 세계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볼 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에 아픈 몸들이 이토록 많은데, 왜 건강한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아픈 몸을 보면서 '부족'하고 '열등'하다고 낙담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사회는 우리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여기까지는 질병이고 저기까지는 건강이며 거기부터는 장애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종종 우리 몸 안에서 질병, 건강, 장애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p. 15) 이것을 과연 언어화할 수 있을까? (중략) 우리의 이 '문제적 아픈 몸'은 건강 중심 사회에서 '실패한 몸'이 아닐 수 있을까? (p. 16)

어떤 질병이 유행할때 그 질병에 효과가 좋다는 건강식품도 함께 유행하곤 한다. 수명이 길어진 현대사회는 늘 건강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건강을 '정상성'의 프레임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건강하지 않은 몸은 비정상이고 실패한 몸이라고 판단하는 선입견을 가져왔음을 깨달았다. 저자의 말마따나 정말 만성질환 하나쯤은 개성처럼 달고 사는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정말 건강한 몸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찾아보면 사실 정말 건강한 몸을 찾긴 힘든데 왜 우리는 그 허상을 쫓아왔던 것일까?

이 책은 '질병춤' 구성원들이 짧지 않은 시간을 관통하며 몸으로 써내려간글을 수정, 보완해 묶은 것이다. 이는 당연히 질병을 어떻게 극복했다거나 질병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서사가 아니다. 아픈 몸에 대해 끊임없이 '해명'하길 요구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해명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픈 몸들이 질병과 공생하는 고유한 삶에 관한 '사소한'이야기이며,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온몸으로 분투하며 해석한 이야기다. (p. 19)

이 책은 '아픈 몸'을 지닌 이들이 3년여 동안 워크숍을 하며 깨달았던 내용들을 모아쓴 '질병 서사' 이다. 그 모임의 이름이 '질병과 함께 춤을' 이었다. 질병이 있다고 해서 힘들고 아프기만 할 필요가 있을까? 춤을 출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개개인의 아픈 몸이 다른만큼 각각의 질병 서사도 달랐지만 전문작가가 아닌 이들이 쓴 글은 날것 그대로의 진실이라는 힘이 있었다.

질병은 우리 몸을 변화시켰고 고통을 주었고 삶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해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맸고, 그 길을 가길 권장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픈 몸으로 어떻게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p. 20) 질병이 우리 삶을 낚아채서 세차게 내동댕이치는 것 같지만, 사실 상당 부분 우리 삶을 뒤흔드는 것은 생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임을 점점 더 명확하게 보게 됐다. 그리고 질병의 사회구조적 측면을 파고들수록, 우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노동조건, 성차별, 성폭력, 빈곤, 환경, 기후위기, 건강 중심 주의 등의 문제가 우리 몸에 스며 있음을 면밀히 확인하게 됐다. (p. 21)

책의 본문은 4명의 각기 다른 '질병 서사' 를 담고 있다. 각각 다른 아픈 몸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아픔이 온전히 전달되는 것 같은 진솔한 글들이었다. 난소낭종을 비롯한 식도염, 치질 등 직장인으로서의 만성 질환을 다수 보유한 사람부터 조현병, 지체장애, 류머티즘 을 앓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사람이 마치 내 앞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을 엮고 질병춤이라는 모임을 이끈 조한진희는 이들처럼 다양한 시민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을 말하고 그렇게 연대하고 그렇게 질병권(잘 아플 권리)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권한다. 이 책의 말미에는 그러한 주장들을 정리한 선언서가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아직 더 많은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프면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고 개인을 탓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진 믿음이 아픈 사람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는지 알면서도 이를 버리지 못했다. (p. 62)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건강하기 위해선 신선한 야채와 잡곡밥 위주의 건강한 밥상을 마련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충분히 휴식하면 된다. 문제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p. 64) 대부분의 고통이 그렇듯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픈 몸으로 일을 하고, 일상을 사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서 변한 것은 나 자신이다. 건강하지 못한 몸을 비난하지 않으려 애쓴다. 나의 노동과 건강에 얽힌 사회적 맥락을 읽으려고 한다. 건강해야 한다는 압박이 무엇이고, 이런 압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성찰한다. (p. 83)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질병 경험을 드러내는 순간,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순간 이는 더 이상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나의 질병 서사를 꺼내는 것 자체가 잘 아플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운동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작고 느린 움직임에 함께할 수 있어야 벅차다. (p. 86)

4가지의 사례 중 첫번째 글이 가장 일반적으로 읽히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도시로 출근하지만 집값이 비싸서 외곽에 사느라 장거리 출퇴근에 밥때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맞벌이 부부, 여성질환에 대해 자책하게끔 하는 집안 분위기, 흔한 이야기 같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일상의 질병들 그 이야기들을 개인적 소회가 아니라 사회적 프레임으로 읽는 순간 개인적 책무에서 해방될 수 있다. 어떤 질병은 내 탓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질병이 내 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늘 너는 이상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던 내게 이들이 주는 위로는 감미로웠다. (p. 116)

'내 삶에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으로 여긴 것 중 하나가 질병이었다. 그것은 쉽게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회적 자원이 취약한 사람에게 '정신병자'라는 낙인은 무서운 것이었고 자칫 소외와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p. 142)'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많은 시간을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현병과 함께 하는 사람의 글은 그 병만큼이나 혼란스러웠지만 그 혼란만큼 마음아프기도 했다. 우리는 정신병에 대한 낙인이 강한 사회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삶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질병'이 아니라 '장애'였다. (중략) 하지만 내게는 선천적으로 걸을 수 없는 질병이 있었다. (p. 161)

'의료 기기는 '정상'이라 말하는 몸에 맞춰진 검사 기구다. 나처럼 몸이 많이 틀어지고 휘고 구축된 사람들에겐 소용없을 때가 있다. (p. 172)'

지체장애의 삶을 살게 되면서 세상이 방한칸으로 정해졌을때 그 시작은 장애 이전에 '질병'이었다. 장애에 초점을 맞춘 책들은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장애 이전에 혹은 그 이후에 '질병'에 초점을 두고 읽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깨닫게 했다. 글쓴이는 불편한 몸으로 참 많은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장애극복기가 아니다. 질병 서사다.

질병이 찾아오고 나서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모두 조금씩 비틀어졌다. (중략) 병에 걸린 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노력, 시간을 들여야 했다. (p. 214)

성차별과 성폭력의 경험으로 류머티즘 까지 앓게된 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청춘의 나이였다. 의료비지원대상이 아닌 질병과 함께 산다는 것,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병으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회구조적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불가능한 회복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질병이 있는 몸에 맞는 업무의 양과 속도를 의논하는 것이 더 상식에 부합하지 않을까. '건강한 몸'으로 회귀할 것을 강요하는 대신, 일하는 사람이 자기 몸의 상태와 변화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고, 그것이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애써야 한다. 질병을 앓는 이들이 몸 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이 '배려'나 '시혜'를 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 몸 상태에 걸맞은 노동을 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p. 231)' 질병권은 개인적 권리 고통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정보의 불균형과 발언권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질병인들은 자신의 질병과 증상, 원인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또한 의료 전문가들은 질병인들이 질병을 앓는 과정에서 겪는 경험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p. 240)

질병은 의료인과 의료현장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친절한 의사는 참 드물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의사에게 환자는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의료현장뿐만이 아니다. 가족도 직장사람들도 질병에 대해 하는 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현실이 아닌 단지 '질병 이전의 삶'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왜 매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불가능의 영역을 희망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가 가진, 질병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과도 멀지 않다. 사회는 '완치'를 목표로 설정하고, 질병인에게 그것을 요구한다. 치료법이 없는 질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한부 판정을 받지 않는 이상, 치료약이 없음에도 개인이 노력하면 나을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p. 255)' 글쓴이의 일상은 차라리 시한부 삶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치료약도 없고 의료비지원도 되지않는 음성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글쓴이에게 주변사람들은 '완치'의 위로를 건낸다. 하지만 불가능한 목표는 자책감을 만들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질병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질병과 리듬을 탄다는 것인데, 이는 건강 중심 세계가 규정한 질서에 맞추는게 아니라, 아픈 몸에 맞는 질서인 질병권에 맞춰 삶을 재구성해보는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회복하기 어려운 아픈 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해지라는 요구보다는 잘 아플 권리이고, 이를 통해 보다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는 아프다는 것이 의구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병명으로 삶의 고통이 재단당하지 않는 사회, 몸이 아픈 사람도 원하는 만큼의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질병이 빈곤과 불행이 아닌 사회, 아픈 몸이 기준인 사회, 아픈 몸이 기준이기 때문에 의존과 취약함이 인간의 보편적 속성으로 수용되는 사회, 의존과 취약함이 보편적 속성이기 때문에 돌봄을 주고받는 게 인간의 덕목,권리,의무,기쁨인 사회이다. 이를 위해서는 질병과 아픈 몸을 사회정치적으로 해석해내는 서사가 필요하다. (p. 259~260 中 발췌)

그래서 이 책을 엮은이는 '저항적 질병 서사'를 제안했고 그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이 책이었다. 구성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서로의 아픔을 공감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질병과 함께 사는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몇 차례의 토론과 시민의견을 수렴하며 <아픈 몸 선언문>이 작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선언문은 아직 '작성중'인 상태다. 엮은이는 '지금도 <아픈 몸 선언문>은 열려있다. 누구나 의견을 보탤 수 있다. 아직 울퉁불퉁한 이 선언문에 다양한 시민들의 경험이 더해져 좀 더 깊이 있는 선언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p. 268)' 고 말하며, '이 선언문은 당신에게 보내는 저항에의 초대장이다. 이제 우리의 연대에 함께하자. 우리에게는 저항하고 연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p. 279)'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우리는 사실 늘 아프다. 살다보면 여기저기 쑤시고 나이가 들수록 만성질환을 달고 산다. 그런데 왜 우리는 건강한 몸만 이야기하며 아픈 몸에 대해서는 숨기려고 애써왔을까?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아픈 몸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해하고 좀더 잘 아플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자, 이제 선택의 순간이다. 이 책이 보내는 초대장을 당신은 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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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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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가가된 최초의 한국인 정신과의사,

천 번의 죽음과 천 번의 삶을 기록하다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당신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삶을 사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나는 죽음에 대한 책을 종종 읽는다. 인간은 모두 필멸의 존재인데 그것을 잊고 불멸을 원하면 파멸하고 그것을 생각하며 두려워하면 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나이가 들면서 준비하고 삶에 대한 기본 자세로 장착할 때 생은 더 의미있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이다. 죽음을 관조한 철학가의 책부터 호스피스 병동의 이야기나 죽음을 처리하는 사람의 이야기등 죽음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읽어봤는데 '정신종양학'이라는 단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죽은 사람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 책은 서른네 가지의 각기 다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부분은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몇몇은 한국과 미국의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이며, 나머지 조금은 나의 이야기다. (p. 6) 조금 덜 고통스러운 삶과 조금 덜 두려운 죽음은 어떻게 준비되는 것인지 생각해보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 한줄을 읽더라도 건조한 지식보다는 촉촉한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랐다. (p. 7)

저자는 한국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되는 모든 수련을 마쳤으나 정신종양학 전문의가 되기 위해 미국에 가서 다시 수련과정을 받고 호스피스 완화의료 세부 전문의가 되었다. '꿈이 분명하다면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지금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기에 마음이 급했다. (중략) 그래도 해야만 했다. 아니, 하고 싶었다. (p. 19)' 한번도 하기 힘든 과정을 각기 다른 나라에서 두번을 수련한 정신과 의사이니만큼 어렵고 힘든 과정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죽어가는 과정도 삶의 일부다. 그러니 죽어가는 과정도 살 만해야 한다. (p. 24)

경험이 없었던 만큼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나 또는 내 가족 중 누군가가 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을 때, '아무 도움도 없이 집으로 돌려보내진 환자와 가족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p. 24)' 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며 이것이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존재 이유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가 시작되면 환자를 포기하는 것이고,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고, 환자가 더 빨리 사망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p. 24)' 저자가 말한 그런 오해를 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해서 죽은 것은 아니었다. 죽어가는 과정이 살 만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여태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다. 이 생각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는 충분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잘못 이해한건가 의아했다. 두리번거리며 옆자리에 앉은 다른 의사들의 반응을 둘러보자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공감을 표하기만 할 뿐 누구도 나처럼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담담한 모습이었기에 금세 민망해졌다. (p. 49)

저자가 수련받던 지도교수 중 한 사람이 환자들에 대한 세미나를 하던 중 자신이 오래전부터 조울증을 앓고 있으며 증상이 심각하여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고 그때문에 정신과에서 여러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말하는 모습과 주변반응을 보고 저자는 무척 놀랐었다고 말한다. 독자로서 읽는 나도 놀랄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 보니 외국 의사들의 에세이에서는 이런 고백이 심심찮게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폴라와의 여행>이라는 책처럼 치료자는 완벽하지 않았다. 의사도 사람이라는 것,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등의 생각들은 환자가 하기 어려운 생각들이 아닐까. 하지만 정신과 의사들 중에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치료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매일같이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건강하게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 쉬울리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에 대한 질문을 받는 우리는 꿈꾸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신의 꿈을 생각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과거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은 부모들이 대신 채워놓는 일이 흔했다. (중략) 아무것도 적어내지 못한 아이들은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는 걱정을 듣기도 했다. (p. 67) 꿈이 없는 이들을 향해 혀를 차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삶에서 꿈의 중요성이 과대평가되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 뒤에 미국 의사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었다. 실현된 꿈은 다시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되었다. 그토록 꿈꿔왔던 일이지만 막상 이루어진 뒤에는 달려갈 목표를 잃은 것처럼 허무해졌다. 꿈이 없는 삶이 불편했고 허전했다. 안주하는 내가 누군가의 눈에는 게을러 보일까 봐 다시 무언가를 꿈꿔야 하나 조바심이 났다. (p. 70)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꿈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는다. 돌잡이 상에서 미래의 직업을 고르는 것부터가 어쩌면 그 질문의 시작인것도 같다. 꿈은 일단 커야 하고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꿈을 이룬 저자는 꿈을 이루고 나서 또다시 새로운 꿈을 이루고 나서 계속 꿈을 현실화하는 삶을 살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꿈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렇게 삶의 의미가 자리 잡았다. (p. 70)' 라고 말한다. 항상 거창한 꿈을 장래희망란에 기재하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현실적인 선택이 코앞에 닥쳤을때 우리 아이들의 꿈은 어떤 의미가 되어 있을까?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능동적으로 자신이 배울 과목을 선택해야 하고 모두가 다 현실적인 꿈을 가진것처럼 진행되는 현재의 교육과정에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능동적인 아이들보다는 수동적인 아이들이 많다. 꿈이 있는 아이보다는 꿈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그렇게 고등학교때부터 없는 꿈을 만들어내느라 지쳐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진다. 꼭 꿈이 있어야 하냐고. 꿈이 없어도 그냥 좀 삶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곳이 학교일 수는 없느냐고. '꿈이 손가락 마디만 한 비좁은 칸에 장래희망을 적는 것이라면, 의미는 커다란 종이 한 장에 내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고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여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넉넉하게 적어보는 것이다. (p. 72)' 라는 저자의 문장을 읽으며 못내 씁쓸해지는 이 현실이 너무... 슬펐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없는 이들은 노화가 빨리 진행되었으며 기억력도 더 젊은 나이에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고 신체 건강도 좋지 않았으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했고 결과적으로 수명도 짧았다. 행복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감내하는 역치도 높았다. 이에 반해 외로운 사람들은 통증도 더 쉽게 느꼈고 더 오래 아파했다. (p. 89)

죽을 사람이건 살 사람이건 살아있는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관계'였다.

대부분의 병원과 의사들은 이 표준 치료에 따라 진료 계획을 세우고 환자를 돕는다. 그러나 고통 완화의 측면에서는 표준이라고 할 만한 치료 방식이 없다. 고통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p. 122)

차라리 어떤 정확한 병명을 가진 질병에 대한 처방전은 '표준 치료'에 따라 똑같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다르다.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라도 죽음의 시한은 다르며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의 심리상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은 모두 다르므로. 암이라는 질병이 종양이라는 질병이 왜 '정신'에도 확장되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것도 같았다.

미국에서의 존엄사, 안락사는 한국에서의 존엄사, 안락사와 그 개념이 매우 다르다. 한국에서 존엄사는 의미 없는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뜻하며, 미국에서 말하는 좋은 죽음에 해당한다. 여기서 좋은 죽음이란 연명 의료 중단 이외에도 VSED, 즉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음식과 물을 중단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스스로 곡기를 끊는 것은 미국 전역에서 좋은 죽음의 한 형태로 인식되며 윤리적이고 법적인 측면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의 안락사는 미국에서의 존엄사와 그 개념이 같다. 존엄사는 병으로 인해 여명이 6개월 이내로 예상되는 환자가 자신을 치료하던 의사로부터 자발적으로 삶을 중단시킬 수 있는 약을 처방받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와 환경에서 스스로 약을 입으로 가져가 삼키는 것이다. 2021년 7월 현재 미국에서 존엄사가 합법화된 곳은 50개 주 중 10개 주와 미국 중앙정부가 위치한 워싱턴DC이며 점점 더 많은 주들이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는 추세다. 유럽 국가 중에서 스위스가 오리건보다 먼저 존엄사를 허용하였고 현재는 독일 역시 존엄사를 허용하였다. 한국에서는 존엄사가 불법이며 행해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안락사의 뜻은 타인이 정맥 주사를 통해 나에게 약을 주입하는 것이다. (중략) 안락사가 합법인 주는 미국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p. 158 ~159 中 발췌)

시한부 삶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한국에서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국에서 존엄사는 불법이고 안락사는 의식이 없을 때 환자의 가족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 미국에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좋은 죽음이나 존엄사가 그 방법이다. 타인에 의한 안락사는 미국에선 오히려 불법이다. 살날이 몇개월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남은 날을 병원에서 보내느냐 가족의 곁에서 보내느냐 만 선택할 수 있는 경우 죽음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고통이다. 하지만 내가 원할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삶의 의지' 적 면에서 '삶의 질'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우리는 스스로 인생을 통제하고 조절하여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인식할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죽음이 주는 무기력감을 극복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멈추기로 결정하는 것, 존엄사는 바로 이런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다. (p. 166)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결국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살다가 언제일지 모를 그 끝을 끌어안아야 하는 운명이다. (p. 185)

죽음을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삶의 마지막에 닿았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할 것이다. 죽음 그 자체보다도 제대로 끝맺지 못한 삶을 우리는 더 두려워해야 한다. (p. 200)

'크지 않은 통증이라도 이것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훨씬 더 큰 고통이 찾아온다. (p. 234)' 시한부 삶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죽음에 대한 선택권을 주고 약을 주면 바로 먹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끝나지 않은 고통에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고 질낮은 삶을 꾸역꾸역 영위하는 사람과 자신이 죽을 시간과 환경을 정할 수 있는 약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끝없는 통증으로 무기력하게 죽음에 내몰리는 것과 좀더 참아보고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준비할 수 있는 것 중 무엇이 더 인간다운 삶이고 죽음일까?

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가 내 마음을 잘 알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좌절하지 말고 나와 합이 더 잘 맞는 의사를 다시 찾아보길 권한다. 소문난 명의라 할지라도 나의 어려움을 들여다보지 못할 수 있다. 이름난 의사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의상게 도움받는 것이, 똑같은 약을 처방받아도 효과가 더 좋다. 위약효과는 실제 약의 효과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p. 243)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조언이 아니라 아픔을 공감해주는 마음과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존재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터널 바깥에서 이래라저래라 소리치기보다는 터널 안으로 들어가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이 낫다. 그게 안된다면 터널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당신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전달해주는 것도 좋다. (p. 259)' 정신과 의사가 모두 저자와 같은 태도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상담보다 처방에 집중한다. 따라서 환자의 넋두리를 들어줄 시간보다는 정확한 증상을 듣기를 원한다. 자신에게 맞는 또다른 정신과의사를 찾아간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런 에너지가 없지 않을까? 크게 결심하고 처음 찾아간 정신과의사에게서 따뜻한 눈길대신 20분 땡 하면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우울증의 많은 증상들이 약물 치료를 통해서 나아질 수 있지만 약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두 가지 증상이 있다. 첫 번째는 외로움이고, 두 번째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다. 외로움은 '연결'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우리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누군가와의 진실한 연결을 통해서 외로움을 이겨낸다. (중략) 좋은 삶 없이는 좋은 죽음도 없다. (p. 323) 현실에서 더 이상 어떤 삶의 의미도 찾기 어려울 때, 차분히 과거를 돌아보길 바란다. 내가 살아낸 시간들이 때로는 현재의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p. 327)

결국 질병보다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이었다. 아픈 사람의 병에 집중하기 보다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죽을 날이 길던 짧던 살아있는 시간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저자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삶을 더 사랑하자. (p. 332)' 라고 말한다. 내가 당장 내일 죽더라도 그에 대한 공포감이 별로 없는 것은 지금까지 잘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삶을 더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죽음을 공포스럽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읽어나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므로 어차피 읽어야 한다면 좀더 잘 읽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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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비밀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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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풍부한 일화와 말콤 글래드웰의 대중성을 갖췄다.

-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빌 브라이슨과 같은 익살스러운 입담의 소유자

-뉴 사이언티스트-

좋아하는 역사책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카이사르' 라는 이름을 제목에 달고, 올리버 색스와 말콤 글래드웰과 빌 브라이슨 등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견주어진 저자의 책이라니 기대를 솟구치게 만드는 책이었다. 미리 말해두건데 이 책은 카이사르나 역사와 아무 상관없는 과학책이다. ^^

이 이야기에서 카이사르에게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을 변형한 문제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카이사르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문제였는데, 사실 고통스러운 마지막 숨을 내쉰 사람이라면 누가 등장하더라도 상관없다. (p. 20) 세균에서부터 흰긴수염고래에 이르기까지 숨을 쉬며 살아간 생물 중 어떤 것을 선택하건, 그 생물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 중 일부가 지금 혹은 얼마 후에 여러분의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호흡에 관한 이야기에만 국한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중략) 기체 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체 대륙의 구조를 바꾸었고, 액체 바다를 변화시켰다. 지구 이야기는 '곧' 기체 이야기이다.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데, 지난 수백년 동안 특히 그렇다. (p. 21) 공기가 없다면, 기체가 없다면, 우리는 몇 분조차 살 수 없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여러분은 자신이 들이마시는 공기에 대해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은 바로 이런 태도를 바꾸게 하려고 쓴 책이다. (p. 25) -머리말 中-

반드시 '카이사르'일 필요는 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예수였어도 되고 그냥 특별하지 않은 흔하디흔한 동물이었어도 되었다. 다만 좀더 강렬한 호기심을 일으킬만한 '숨'쉬는 존재이면 되었다. 왜냐하면 공기없이는 십분도 못버티는 인간이 공기에 대해 생각해본적은 십분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존파괴니 기후변화니 등등의 환경이야기는 일상에선 좀체 느껴지지 않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숨'에서 시작함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킨다. '숨' 즉 공기 이야기는 생각보다 흥미롭고 생각보다 친숙하며 생각보다 엄청난 것임을 깨닫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

총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부 마다 3개씩의 장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지구환경적 공기의 탄생부터 인류가 공기를 인식하고 이용하게 되는 과정을 지나 지구를 넘어선 우주적 공기이야기로 확장되는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과학정보와 과학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때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못다한 이야기' 의 에피소드와 책뒤의 <노트>코너에 모아진 자잘한 참고내용들을 통해 보충되면서 깊이있는 과학책임에도 그저 이야기처럼 술술 읽게 된다.

연대기적 역사책처럼 차근차근 시간순으로 설명되어지다 보니 읽기가 더 수월했는데 흥미로운 과학적 내용들도 인상깊었지만 나도 모르게 옆길로 빠지는 생각들도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예를들면, 지구의 초기 공기 생성 이야기를 하면서 화산 분화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54p의 미국 세인트헬렌스산의 분화 사진을 보면서 그 날짜가 1980년 5월18일인 것을 보고 그때 미국의 화산이 폭발하지 않았다면 한국사회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영향력이 달라졌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양차대전에서 독일이 그런 선택들을 하게 된 배경에 '비료' 문제가 있었던 것을 읽으며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에 대해 새로운 국면을 발견한 기분이 들기도 한 그런 생각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들을 새로 발견할 때가 가장 재미있긴 했다. 예를들어, 독가스 연구를 한 독일과학자 하버를 전범으로 봐야할지 질소의 핵심인 암모니아 추출법을 알아냄으로써 식량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수백만명의 생명을 기아에서 구해낸 과학자로 봐야할지라는 노벨에 대한 평가 못지 않게 어려운 딜레마, 그 유명한 과학자 라부아지에 가 프랑스 혁명때 단두대형을 당했다는 것, 자연발화에 대해 디킨스와 과학자들의 논쟁, 노벨이 여기저기 쫓겨다니며 연구를 해야 했던 시절의 사회적 분위기, 주기율표에 새로운 기둥을 추가한 과학자들의 도전 같은 에피소드들은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하지만 과학책이니만큼 새로운 과학정보들에 더 놀라워하며 읽게되긴 했다. 예를들면, 오늘날 대부분의 곤충이 작은 이유는 공기중의 산소농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던가, 마취제의 발견과정, 와트의 증기기관이 그의 사후 75년이 지날때까지 변하지 않은채 유지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상황에 대한 과학적 상황 재연은 전해지는 이야기와 다르다는 것, 지구의 크기를 사과에 비교한다면 대기층은 사과 껍질보다도 훨씬 얇다는 사실 등등은 어려운 과학정보들 보다 재미난 깨알정보로 내게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사실 모든 과학책들의 결말은 지금 현실을 바탕으로 한 미래를 예상하는데 초점을 두기 마련이다.

1600년에 살던 사람이 18세기 초의 세계를 보더라도 그다지 큰 이질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19세기 초의 세계조차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100년을 훌쩍 건너뛰어 20세기 초로 오면 충격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중략) 1600년에 살았던 사람들이 들이마셨던 공기는 오늘날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와 똑같지 않았다. 산업 발전은 공기의 화학적 조성을 변화시켰다. (중략) 지금까지 이 책은 대기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했다. 이번에는 그것을 뒤집어 인간이 대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p. 309)

3부를 시작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이 책이 무척 극적으로 구성된 과학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없던 공기에 대해 흥미를 유발하더니 역사적으로 차근차근 이해의 과정을 밟아오며 중요성을 각인시킨 후 이렇게 중요한 공기에 대해 최근 200년간 인간의 산업 발전이 어떤 해를 끼쳤는지 설명하는 것을 읽으면 몰랐던 때보다 확실히 더 충격적으로 현실을 깨닫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과거 무분별한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성 원자들을 아직도 우리가 들이마시고 있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그 낙진의 후유증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이었는데 '1950년부터 1963년 사이에 일어난 대기권 핵실험이 공기 중의 탄소-14의 양을 약 두 배로 늘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중략) 이렇게 늘어난 농도는 아직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은 계속 그럴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이전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졌는데, 핵실험 금지 조약이 체결된 뒤에 태어난 사람도 그렇다. (p. 341)' 같은 내용은 대기오염이 그저 산업때문만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크게 놀랐다.

냉전시대의 UFO 목격담에 얽힌 모굴 계획 이야기는 군사기밀이 어떻게 감춰지는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고, 기체 분석만으로 다른 행성의 생명체 유무를 예상할수 있다는 이야기는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머물러 있던 내 상식을 업그레이드 시켜주긴 했는데 왠지 기분은 씁쓸했다. '이 접근법으로는 1905년 이전의 인류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고, 따라서 주민이 전신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행성은 완전히 놓치게 된다. 게다가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어 무선 방송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면, 지구 자체도 100~200년 안에 대체로 '전파 침묵' 상태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먼 곳에서는 지구에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다른 행성의 문명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가 그 문명을 도청할 기회의 창은 아주 좁을 것이다. (p. 419)'

이 책 전체를 걸쳐 우리는 매초 우리 폐 속을 드나들면서 주변에 떠도는 수백만, 수십억, 수십해 가지의 이야기들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단 한번 들이쉬는 숨 속에도 세계의 모든 역사가 들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은 아주 작은 규모에서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조금 더 오래 살아남게 할 것이다. 먼지는 먼지로, 기체는 기체로. (p. 437)

우리가 마시고 있는 물은 지구에서 순환되는 재활용된 물이고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는 지구에서 순환되는 재활용된 공기이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역사적 인물들의 숨이 지금 우리의 폐 속을 지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한모금의 숨이 때론 찝찝하기도 느껴질수도 있고 때론 숭고하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마지막 숨이 되었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숨을 쉴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기에 대해 좀더 주의를 기울여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공기는 지금 당장 우리를 숨쉬게 하기도 하지만 우주에서의 우리존재를 설명해주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기오염이나 기후변화에 대해 좀 다른 측면으로 공기의 소중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과학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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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 동물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 지음, 신수진 옮김 / 비룡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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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동물에 대한

300가지 재미있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보아요!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자연관찰전집을 들여놓은 집이 참 많을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밖을 제대로 나갈수도 여행을 할수도 없는 요즘엔 더욱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분야의 책이 자연관찰인지도 모르겠다. 그 자연관찰 전집의 헤드라인만 모아놓은 것 같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번쩍번쩍한 올컬러 페이지마다 굵고 강렬하게 쓰여있는 모든 정보들은 심플하게 한줄 길어야 두세줄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잡지의 표지들만 계속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ㅎㅎ

사전! 이지만 상세한 설명의 책이 아니다. 심플하게 퀴즈형식으로 문장 하나로 때로는 정보를 때로는 호기심을 툭툭 던져놓는다.

과학사전! 이지만 과학책이나 자연관찰책이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을 알려준다. 이 책을 보다가 집에 먼지 쌓이고 있는 자연관찰책을 꺼내보게 될 수도 있다.

300가지 동물정보! 가 담긴 책이지만 결코 두껍지 않다. 한 페이지를 넘겼을 뿐인데 부지불식간에 대여섯 종류의 동물정보를 이미 습득하게 된다.

기발한 구성으로

괴상한 정보들을

웃기게 풀어놓은 이 책은

출판사의 정보에 따르면 7~10세 어린이에게 유용한 동물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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