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랬구나. 루브르 박물관의 세 곳 중에서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있는 드농관에 몰려든다고 하는데 나는 한적하다는 리슐리외관에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 인류문명의 시작은 메소포타미아였으므로 연대순서상으로도 그곳이 가장 먼저 아닐까 싶기도 하고. ㅎㅎ
하루에 한두작품씩 감상하다보면 책 한권으로 백여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봐도 좋고 전시관의 순서를 달리 해서 읽어도 좋고 책의 뒤쪽에 있는 작품리스트(책 뒤에 '미술사 흐름에 따라 보기' 라고 작품의 리스트를 연대별로 간략하게 정리해 놓은 리스트가 있다)에서 원하는 페이지로 찾아가 읽어도 좋다. 박물관 투어이다 보니 역사적 에피소드가 빠질 수 없는데 가이드가 해주는 설명들은 간략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초청하고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이후 유럽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이라는 <프랑수아1세 초상화> (p. 76)
원래도 좋아했지만 작은 그림 속에 수많은 상징과 의미를 숨겨놓은 디테일한 표현에 대해 알고 나니 더 좋아진 얀 반 에이크의 <대법관 롤랭과 성모 마리아> (p. 85)
루이14세가 침실에 걸어놓고 죽는 순간까지 수십 년 동안 바라보았다고 하는 푸생이 그린 <아르카디아의 목동들> (p. 124)
종교 개혁으로 인해 개신교가 자리 잡은 북유럽에서 우상숭배가 금지되면서 유행한 풍경화의 대가 로랭의 <크리세이스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오디세우스> (p. 133)
바로크 시대의 거장이자 빛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을 렘브란트의 <명상 중인 철학자> (p. 157)
니케 여신상은 알았지만 원래 모습대로 배의 형상위에 올려놓아 '산을 파서 신전을 만들고 분수에 물을 채운 뒤 물에 떠 있는 듯 설치'했다는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조각상 <니케> (p. 294)
모나리자 보다 더 요모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실물이 궁금해지는 다빈치의 마지막 완성작으로 알려진 <세례 요한> (p. 368)
천장화 하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만 떠올랐었는데 프랑스의 영광을 나타내며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을 하나로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살롱 드농의 천장화> (p. 438)
등이었다.
그리고 작품도 작품이지만 깨알같은 역사적 상식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가톨릭은 종교적 색채도 예술도 달라졌는데 십계명 조차도 그랬다는 것, '개신교와 가톨릭의 십계명도 다릅니다. 개신교의 십계명 중 1계명과 2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너에게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즉, 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만들면 안 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플랑드르 지역에는 성상 파괴령이 내려졌고 그림을 그릴 때도 종교적 인물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화가들은 일상생활 모습 속에 상징물들을 그려 종교적인 메세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p. 97)' 성상파괴령이라... 동로마도 생각나고 이슬람도 생각나고 그런데 지금의 교회와 성상파괴령이 딱히 매칭되지는 않고 ㅎㅎㅎ
'1748년에 프랑스 주도로 본격적인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 대한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프랑스는 고전(그리스·로마 시대)에 대한 새로운 추종기에 들어갑니다. (p. 217)' 나 '<밀로의 비너스>의 발견으로 다시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찬양이 일고 사람들이 그리스의 독립에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석상의 프랑스 입성은 그리스의 유럽 복귀를 알리는 듯했고 그리스 자유의 상징처럼 되었죠. 더불어 당시 프랑스가 <라오콘>을 이탈리아에 반환하면서 내세울 만한 그리스 작품이 없었던 차에 루브르 박물관의 명성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p. 289)' 를 보면서 아테네 신전을 뜯어다 놓은 듯한 대영박물관이 생각나기도 했다.
치마부에의 작품 <마에스타>를 설명하면서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검지와 중지를 펼쳐 보이는 아이의 정체는 예수입니다. (p. 331)' 라는 문장을 보면서는 검지와 중지라면 사진찍을 때 우리가 흔하게 하는 V 의 그 손가락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V 포즈가 탄생한건가 하는 생각에 혼자 웃어보게도 됐다.
'세속의 비너스를 뜻하는 그리스어 '판데모스'는 '팬데믹'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p. 356)' 에서는 고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중세시대에 타락의 이미지를 얻으며 현대에 와서는 '팬데믹'으로 까지 변화된 것에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루브르에서 자신의 회고전을 연 화가는 총 3명뿐입니다. 피카소, 샤갈, 그리고 2019년에 피에르 술라주라는 화가가 자신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회고전을 치르면서 세 번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고전이 아닌 개인전으로 영역을 넓히면 몇 명이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따라가면 프랑스 혁명기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나옵니다. (p. 445)'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라는 단 한 작품만을 걸어놓고 첫번째 개인전을 유료로 열었다는 화가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여러모로 참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또한번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현대 이전에 탄생한 회화를 전시하는 곳에서 전시실의 벽지를 어두운 색으로 교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고전 미술은 어두운 곳에서 봐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랍니다. (p. 484)' 라는 문장에 고개 끄덕여졌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그 작품을 그렸던 당대는 어두웠을 것이다. 전깃불로 환해진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그림이 그려진 당대의 시각을 갖고 당시 사람들이 봤을 색채를 느끼며 작품감상을 하려면 너무 환한 전시장 보다는 작품에 몰입되는 환경을 찾는 데 좀더 신경써야 할 것 같긴 하다.
루브르 박물관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박물관이고 이 책을 쓴 저자들은 모두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이다 보니 읽는 내내 프랑스와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져서 영국을 대표하는 대영박물관과 차이를 느끼게 했다. 대영박물관에도 국가 공인 가이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가봤던 대영박물관에서는 사실 영국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전세계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만으로도 루브르 박물관에선 프랑스가 느껴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차이점에 대해 좀더 생각해 봐야 겠다. '아듀adieu는 프랑스의 작별 인사인데, 원래 뜻은 '신 앞에서 만날 때까지'à dieu입니다. 'dieu'는 프랑스어로 신을 뜻하며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를 어원으로 합니다. (p. 262)' 아듀... 비록 그 신이 제우스에서 다른 신으로 바뀌었을지라도, 언젠가 만날수 있게 될지 어쩔지 몰라도, 여하튼 아듀, 박물관 앞에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