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회사 오신 날 - 사무실에서 따라 하면 성과가 오르는 부처의 말씀들
댄 지그몬드 지음, 최영열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직장생활이 어려운 당신을 위한 부처의 처방전

일도 챙기고 마음도 챙기는 오늘의 말씀

책날개에 쓰여있는 저자 이력이 신선하다. '작가이자 데이터 과학자면서 선승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굴지의 미국기업에서 일하면서 수도하는 선승이라니... 파란눈의 스님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저자의 글은 첫장부터 스님같은 인상을 싹 지워버린다. 통통 튀고 재치있으며 실용적이다.

부처는 평생 단 하루도 일하지 않았다. 약2500년 전 고대 인도에서 태어나 응석받이 왕자로 자란 싯다르타는 부유한 삶을 버린 채 떠돌이 수도승이 되었고, 존경받는 영적 스승으로 일생을 마쳤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급여를 받고 일한 적은 없었다. (p. 6)

서문의 첫 문장부터 웃음이 나왔다. 이런식으로 부처를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부처를 결코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의 말씀을 회사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므로.

큰 깨달음을 얻고 말 그대로 부처가 된 싯다르타는 깨달음의 여덟 가지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올바른 생계'를 꼽았다. 부처는 일의 중요성과 더불어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 8) 부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온전히 수도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이 올바르게 일할 수 있게 돕는 것이야말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일이 아닌, 진정으로 깨어나도록 하는 필수 요소로서의 일.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다. (p. 9)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하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수련한 후에 찾아오는 커다란 깨달음... 뭐 이런 것들이 떠오르지만 저자는 부처의 가르침을 가볍게 풀어낸다. '직장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주는요소는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 행복과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p. 13)' 라며 부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 자기계발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한다.

부처는 일과 가정생활의 정반대 방향에 모든 소유물과 애착을 포기하는 삶이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즉, 떠돌이 승려로 사는 쪽이 깨달음을 얻는 데 좀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길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다. 한편 부처는 자신의 행복을 좇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부처는 '정직한 직업'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p. 22~23)

부처의 가르침을 직장생활에서 적용하려면 먼저 가르침의 핵심과 일상에서의 접목이 필요하다. 저자는 어려운 경전을 인용해와서 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하고 깨달은 것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실용적으로 설명한다. 핵심은 분명하다. '행복은 직업적 성공으로 이어진다. 절대로 그 반대가 아니었다. (p. 29)' 다시말하자면,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이다.

스타트업의 생리가 그렇듯 불교가 성공한 궁극적인 이유는 품질에 있었다. 무엇보다 부처가 찾아낸 상품에 그 요인이 있었다. 부처는 고통이라는 문제를 보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효과가 있었다. 기적처럼 알아서 팔려나가는 제품이 출현하자, 그 뒤로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p. 37)

스타트업이라니 ㅋㅋ 절묘한 표현이다. 이 책이 술술 읽히는 재미는 이런 식의 표현에 있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말은 글로 남은 그의 가르침을 인용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처의 강연은 녹음된 적이 없고, 부처가 직접 글로 쓴 적도 없다. 심지어 부처가 쓰고 읽을 줄 알았는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p. 39) 부처가 세상을 떠나고 몇 달 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신도 500명이 지역 왕의 초대로 모였다. (중략0 그들은 교대로 한 명씩 부처의 강의를 시연하며 암송했다. 그 내용이 몇 세대에 걸쳐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서서히 불교가 퍼져나갔다. (p. 40)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복사본은 그로부터 적어도 1000년 후에 기록되었다. (p. 41) 다시말해, 내가 이 책에 인용한 부처의 말은 누군가 부처의 가르침을 암기한 내용을 부처 사후 수 세기 후에 최초로 글로 옮긴 뒤, 번역에 번역을 거듭한 사본을 출처로 한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 선이다. 하지만 그렇게 남아 있는 글에 따르면 부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고 한다. 방황하는 왕자 시절에 싯다르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p. 42)

예수도 마호메트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그리고 부처도 그 누구도 직접 글로 쓴 것을 남긴 적은 없다. 후대가 외우고 서로 짜맞추고 정리하여 경전이 되고 교리가 된 것이다. 결국 각자의 해석이 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부처의 가르침 중 중요한 것은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나서 고통받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고통받는다. (p. 44)' 라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런 문제가 일어난 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한다고 부처는 가르친다. (p. 46)' 라면서 '부처는 이 길을 걷는 데 도움을 줄 중요한 기술을 발견(p. 46)' 했으므로 이에 관해 상세히 이야기하겠다며 본론을 펼쳐낸다. 이 본론은 책의 2장의 내용이고 직장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 예시들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그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소개해본다.

>> 지혜의 반대말은 무지가 아니라 오만이다. 무지는 온전히 존중받아 마땅한 상태다. 무지는 모든 궁극적인 지식의 근원이다. 오만은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초심자여서 좋은 점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때때로 그것을 잊곤 한다. (p. 72) <<

>>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초심자의 마음으로 당신의 삶 전체를 대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깨달음이란 모든 것을 아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쪽에 훨씬 가깝다. (p. 78)<<

소크라테스가 생각나지 않는가?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자신의 이름이 신전에서 호명되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라고. 삶의 지혜를 담은 철학은 서양이고 동양이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진리 뭐 그런 것인가 보다.

어떤 사람들은 부처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고 말하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p. 131) 부처는 일반적으로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대개 평화롭고 만족스러워 보이며, 위엄있고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절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사실 부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타입이 아니었다. 부처는 노력했다. 본인이 열심히 노력한 것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랐다. (p. 132)

저자는 부처의 가르침과 수행법에 대해 유머러스하다 싶을 만큼 가볍게 쓰면서도 기존의 편견들을 과감히 깨뜨린다. 명상, 마음챙김, 호흡법 같은 익숙한 단어들이 제시될 때는 그런가보다 하다가도 이렇게 색다른 표현이 등장할 때면 더 깊이 아 그렇구나 하게 된다. 붓다의 가르침을 이렇게 웃어가며 읽게 될 줄이야 ㅎㅎㅎ

이 책의 목적은 당신을 불교신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내 목표는 그보다 훨씬 소소한 동시에 원대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덜 고통받는 데에 부처의 가르침 중 일부를 참고하도록 돕는 것이다. 주로 직장생활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당신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잠시 행복한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닌 참되고 깊은 행복을 누리길 기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깨어났다' 라고 표현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같은 의미다. (p. 228~229)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법을 배우게 되면서도 자기계발서로 읽게 되는 이 책은 가볍지만 나름 치열하고 치열하지만 나름 평온하다.

자, 이제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깨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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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 루브르에서 여행하듯 시작하는 교양 미술 감상 Collect 8
이혜준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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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기 좋은 좋은 책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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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 루브르에서 여행하듯 시작하는 교양 미술 감상 Collect 8
이혜준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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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와 찬찬히 둘러보는

하루 1작품 루브르 박물관 집중 투어

'여행' 이란 단어가 '꿈' 처럼 멀어진 것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고 그게 비행기를 타고 머~얼리 가는 것이면 더 좋겠고 그렇게 떠나봐야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질 텐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런 '자유'가 요원해 보이니 책으로나마 그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은 도시들 중에서 '파리'는 아마도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도시일 것이다. 그 이유중 하나는 아마도 '루브르'박물관 때문일 것이다. 파리에 가보고 싶은 적은 없지만 루브르는 궁금했었다. 이런저런 미술책을 읽어봤지만 가이드가 소개해주는 것은 또다를 것 같아 기대가 됐다. 그야말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박물관이며, 기원전 4000년부터 19세기까지 거의 모든 미술사를 아우르는 유물과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고 있는 곳,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입니다. 하지만 60만여 점을 소장하고 3만 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방대한 규모에 여행객들은 어디부터 어떻게 관람을 해야 할지 길을 잃곤 하죠. 이 책에서는 유로자전거나라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4명의 해설로 루브르의 핵심 작품들을 생생하게 소개합니다. (p. 4)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작품들에 대해 이런저런 책에서 조금씩 본적은 있었어도 루브르박물관 자체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루브르박물관이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인 1793년'에 공식 개관했고 '작품 한 점을 1분씩만 보아도 2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리며 박물관 건물 자체도 900년 역사의 유물이라는 것은 프랑스가 자랑하기에 충분한 배경이 되어 보였다.

루브르 박물관은 리슐리외관, 쉴리관, 드농관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세 관의 이름은 현재 루브르박물관이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한 인물들의 이름입니다. 드농(1747~1825)은 나폴레옹1세 시절 전리품들을 관리하며 루브르의 초대 관장으로 일한 인물이고, 쉴리(1559~1641)는 앙리4세때, 리슐리외(1585~1642)는 루이13세때 저명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들의 수완으로 많은 예술 작품이 프랑스에서 탄생하고 모일 수 있었습니다. 리슐리외관에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물들과 더불어 18세기 프랑스 조각, 17세기 북유럽 회화, 나폴레옹3세의 화려한 아파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쉴리관에서는 스핑크스와 이집트의 고미술품들, 프랑스 회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드농관은 고대 그리스 조각들과 중셉터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작품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리슐리외관에서 쉴리관, 드농관으로 옮겨가는 코스로 작품을 만나보겠습니다. (p. 29~31)

음~! 그랬구나. 루브르 박물관의 세 곳 중에서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있는 드농관에 몰려든다고 하는데 나는 한적하다는 리슐리외관에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 인류문명의 시작은 메소포타미아였으므로 연대순서상으로도 그곳이 가장 먼저 아닐까 싶기도 하고. ㅎㅎ

하루에 한두작품씩 감상하다보면 책 한권으로 백여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봐도 좋고 전시관의 순서를 달리 해서 읽어도 좋고 책의 뒤쪽에 있는 작품리스트(책 뒤에 '미술사 흐름에 따라 보기' 라고 작품의 리스트를 연대별로 간략하게 정리해 놓은 리스트가 있다)에서 원하는 페이지로 찾아가 읽어도 좋다. 박물관 투어이다 보니 역사적 에피소드가 빠질 수 없는데 가이드가 해주는 설명들은 간략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초청하고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이후 유럽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이라는 <프랑수아1세 초상화> (p. 76)

원래도 좋아했지만 작은 그림 속에 수많은 상징과 의미를 숨겨놓은 디테일한 표현에 대해 알고 나니 더 좋아진 얀 반 에이크의 <대법관 롤랭과 성모 마리아> (p. 85)

루이14세가 침실에 걸어놓고 죽는 순간까지 수십 년 동안 바라보았다고 하는 푸생이 그린 <아르카디아의 목동들> (p. 124)

종교 개혁으로 인해 개신교가 자리 잡은 북유럽에서 우상숭배가 금지되면서 유행한 풍경화의 대가 로랭의 <크리세이스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오디세우스> (p. 133)

바로크 시대의 거장이자 빛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을 렘브란트의 <명상 중인 철학자> (p. 157)

니케 여신상은 알았지만 원래 모습대로 배의 형상위에 올려놓아 '산을 파서 신전을 만들고 분수에 물을 채운 뒤 물에 떠 있는 듯 설치'했다는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조각상 <니케> (p. 294)

모나리자 보다 더 요모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실물이 궁금해지는 다빈치의 마지막 완성작으로 알려진 <세례 요한> (p. 368)

천장화 하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만 떠올랐었는데 프랑스의 영광을 나타내며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을 하나로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살롱 드농의 천장화> (p. 438)

등이었다.

그리고 작품도 작품이지만 깨알같은 역사적 상식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가톨릭은 종교적 색채도 예술도 달라졌는데 십계명 조차도 그랬다는 것, '개신교와 가톨릭의 십계명도 다릅니다. 개신교의 십계명 중 1계명과 2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너에게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즉, 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만들면 안 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플랑드르 지역에는 성상 파괴령이 내려졌고 그림을 그릴 때도 종교적 인물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화가들은 일상생활 모습 속에 상징물들을 그려 종교적인 메세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p. 97)' 성상파괴령이라... 동로마도 생각나고 이슬람도 생각나고 그런데 지금의 교회와 성상파괴령이 딱히 매칭되지는 않고 ㅎㅎㅎ

'1748년에 프랑스 주도로 본격적인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 대한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프랑스는 고전(그리스·로마 시대)에 대한 새로운 추종기에 들어갑니다. (p. 217)' '<밀로의 비너스>의 발견으로 다시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찬양이 일고 사람들이 그리스의 독립에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석상의 프랑스 입성은 그리스의 유럽 복귀를 알리는 듯했고 그리스 자유의 상징처럼 되었죠. 더불어 당시 프랑스가 <라오콘>을 이탈리아에 반환하면서 내세울 만한 그리스 작품이 없었던 차에 루브르 박물관의 명성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p. 289)' 를 보면서 아테네 신전을 뜯어다 놓은 듯한 대영박물관이 생각나기도 했다.

치마부에의 작품 <마에스타>를 설명하면서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검지와 중지를 펼쳐 보이는 아이의 정체는 예수입니다. (p. 331)' 라는 문장을 보면서는 검지와 중지라면 사진찍을 때 우리가 흔하게 하는 V 의 그 손가락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V 포즈가 탄생한건가 하는 생각에 혼자 웃어보게도 됐다.

'세속의 비너스를 뜻하는 그리스어 '판데모스'는 '팬데믹'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p. 356)' 에서는 고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중세시대에 타락의 이미지를 얻으며 현대에 와서는 '팬데믹'으로 까지 변화된 것에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루브르에서 자신의 회고전을 연 화가는 총 3명뿐입니다. 피카소, 샤갈, 그리고 2019년에 피에르 술라주라는 화가가 자신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회고전을 치르면서 세 번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고전이 아닌 개인전으로 영역을 넓히면 몇 명이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따라가면 프랑스 혁명기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나옵니다. (p. 445)'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라는 단 한 작품만을 걸어놓고 첫번째 개인전을 유료로 열었다는 화가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여러모로 참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또한번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현대 이전에 탄생한 회화를 전시하는 곳에서 전시실의 벽지를 어두운 색으로 교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고전 미술은 어두운 곳에서 봐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랍니다. (p. 484)' 라는 문장에 고개 끄덕여졌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그 작품을 그렸던 당대는 어두웠을 것이다. 전깃불로 환해진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그림이 그려진 당대의 시각을 갖고 당시 사람들이 봤을 색채를 느끼며 작품감상을 하려면 너무 환한 전시장 보다는 작품에 몰입되는 환경을 찾는 데 좀더 신경써야 할 것 같긴 하다.

루브르 박물관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박물관이고 이 책을 쓴 저자들은 모두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이다 보니 읽는 내내 프랑스와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져서 영국을 대표하는 대영박물관과 차이를 느끼게 했다. 대영박물관에도 국가 공인 가이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가봤던 대영박물관에서는 사실 영국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전세계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만으로도 루브르 박물관에선 프랑스가 느껴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차이점에 대해 좀더 생각해 봐야 겠다. '아듀adieu는 프랑스의 작별 인사인데, 원래 뜻은 '신 앞에서 만날 때까지'à dieu입니다. 'dieu'는 프랑스어로 신을 뜻하며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를 어원으로 합니다. (p. 262)' 아듀... 비록 그 신이 제우스에서 다른 신으로 바뀌었을지라도, 언젠가 만날수 있게 될지 어쩔지 몰라도, 여하튼 아듀, 박물관 앞에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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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들꽃 산책
이유미 지음, 송기엽 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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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진심인 식물학자와 평생 들꽃을 기록한 사진작가의 이야기

다정한 이웃이자 위로가 되어 준 마음속 들꽃을 찾아서

어릴때 자연관찰 책을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느낌은 주로 움직인다와 동의어로 다가왔던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로 동물 책들을 보고 그렇게 커서 동물원에 가면 신기해하며 구경하고 그러다 어른이 되면 자연이고 뭐고 먹고살기 바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꽃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어쩌면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는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물을 쫓던 내 눈길은 있는줄도 몰랐지만 늘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식물에 머물게 된다. 갑자기 자연에 감사하고 숲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런 나와 달리 평생 식물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합작품인 이 책을 읽는 것은 지금의 내게 적절한 인생의 단계 같았다.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과 <내 마음의 나무 여행> 두 권을 한데 묶고, 내용을 가다듬은 이 책으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첫 마음과는 달리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추억과 인연을 충분히 사색하지 못해 선생님의 주옥같은 사진들이 빛바랠까 걱정했던 초판의 부족함을 보완하고자 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디 선생님의 사진에 담긴 수많은 순간순간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제 모자란 글이 이 땅에 사는 우리 식물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보고자 마음을 품는 독자분들의 여정에 참고가 된다면 행복할 듯합니다. (P. 5 - 여전히 제 마음을 흔드는 존재는 들꽃입니다 中-)

저자는 평생을 우리나라의 식물을 연구해온 학자인데 과거에 '한국의 야생화' 탐사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했던 야생화전문 사진작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전문가의 사진과 전문가의 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것이다. 기존에 나왔던 두 권의 책을 합본한 책이니만큼 책은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는 '아름다운 들꽃 산책' 이고 2부는 '행복한 나무 산책' 이다. 구분을 月단위로 했기때문에 한달한달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1년을 책 한권으로 둘러본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식물이 이토록 다채로웠나 새삼 놀라게 된다.

사실 알고 보면 숲속은 이 햇볕을 차지하기 위한 긴장감 넘치는 경쟁터입니다. 하지만 부지런한 초봄의 꽃들은 나무들이 잎을 펼쳐 하늘을 가리기 전에, 주변의 다른 풀들이 키를 올려 그늘을 만들기 전에 남보다 먼저 열심히 올라와 꽃을 피워 아무도 가리지 않는 이른 봄의 햇볕을 독차지합니다. 이런 혜택을 받기 위해선 언제나 남들보다 한발 앞서야 합니다. (P. 12)

봄꽃들을 보며 그저 대견하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앞다투어 꽃을 피워낸 식물들은 그 누구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거였다. 길가에 피어난 작은 풀꽃 조차도.

바람꽃 집안은 학명으로는 아네모네속 입니다. 아네모네는 희랍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니 우리말 이름이 '바람꽃'이란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지요. (P. 18)

색깔 중에서 보라색을 '바이올렛'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제비꽃의 보라색을 보고 이름 붙였기 때문입니다. (P. 34)

붓꽃은 그 꽃봉오리가 글씨를 쓰려고 먹물을 찍은 붓과 같아 '붓꽃'이라고 합니다. (P. 54) 붓꽃 집안을 통틀어 부르는 집안 이름, 즉 속명은 아이리스 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지요. 붓꽃의 꽃잎에 있는 알록한 무늬가 무지개 같아서 붙은 이름이랍니다. (P. 56)

연보라색 꽃잎들 중 위에 달린 꽃잎 1장만 색이 진하고 노란 점이 박혀 있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봉황의 눈을 가진 연꽃'이라 하여 '봉안련'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부레옥잠 p. 132)

약모밀, 메밀과 비슷한 잎을 가졌는데 약이 되는 식물이어서 '약모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모밀은 '어성초'란 이름으로 훨씬 유명합니다. (중략) '어성초'라는 이름은 한자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잎을 데어 살짝 비벼보면 정말 비릿하고 유쾌하지 않은 생선 비린내 같은 것이 풍겨 옵니다. (p. 148)

냄새 나는 살구색 열매 껍질을 벗기면 딱딱한 은빛의 중간 껍질이 나오고, 그 속에는 갈색의 얇은 속껍질이, 그리고 기름에 살살 볶아 먹으면 맛나는 알맹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은 은 銀' 자와 '살구나무 행 杏' 자를 써서 '은행나무'가 되었답니다. (p. 250)

잎을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흘러나와서 물푸레나무가 되었답니다. (p. 306)

꽃 이름이나 유래를 알게 되는 과정은 무척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 많은 식물명을 한번에 다 기억할 순 없다. 저자는 과학적 체계를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며 ' '먼저 집안의 특징을 알고 그 안에서 다른 식별 포인트를 기억하라' 이것이 제가 권하는 식물을 제대로 익히는 비결의 하나입니다. (P. 33)' 라는 팁을 알려준다. 여하튼 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알아두는 것은 자연을 숲을 더 친근하고 반갑게 느낄 수 있는 첩경인것 같긴 하다. 이름의 유래와 상관없이 '음나무'가 등장했을때 사진을 보고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집 현관에 그 나무 가지가 걸려있다. 액운을 막아준다며 이사할때 집안어른이 걸어주신 건데 경상도분이신지라 '엄나무' 라고 부르셨고 나는 여태껏 그 가시나무가 '엄나무' 인줄 알았다. 그런데 '음나무' 였네. ㅋㅎㅎ

우리나라 숲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가장 많이 땅 위를 덮고 있는 풀은 무엇일까요? (P. 38)

꽃이 피지 않는 나무, 꽃이 없는 나무도 있을까요? (p. 255)

무궁화 꽃은 여름이다 싶으면 하나둘 피기 시작해 한창 피다가 가을까지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무궁화 꽃 한 송이는 얼마나 오래 피어 있을까요? (p. 336)

생각해 본적 없는 질문에 대해 의외의 답을 알게 될때마다 놀라고, '애기나리' , '꽃이 없다 하여 이름도 '무화과'가 되어 버린 나무 (p. 255)' 속에 숨은 꽃, 하루 라는 답을 읽으면서도 새삼스럽고 새로웠다. 정말? 하면서.

'금강초롱'은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된 초롱꽃과 유사한 식물이어서 붙은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 식물인데 전 세계가 함께 쓰는 학명은 애석하게도 하나부시야 아시아티가 나카이 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나카이'라는 일본인 학자가 이 식물을 발견하고 '하나부사'라는 후견자의 이름을 우리나라 특산 식물의 고유 집안 이름에 붙여 공포한 것이지요. 정말 안타까워도 전 세계의 약속에 따라 붙인 것이니 이제와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P. 57)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야생 나리를 가지고 우리의 백합 품종을 만들어 수출하기보다는 로열티를 물어 가며 외국에서 만든 백합 품종을 들여와 사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p. 100)

섬초롱꽃은 지구 상에서 우리나라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 식물입니다. 그래서 울릉도와 함께 있는 독도의 아름답고 독특한 자연을 말할 때면 이 꽃도 등장하는데, 일본인 학자가 '다케시마'라고 학명을 붙여 매번 가슴이 아픕니다. (p. 108)

안타까운 지점들을 알게 될때마다 아쉽고 또 아쉬워지기도 했다. 과거에야 어찌할 수 없었다할지라도 앞으로는 우리것을 우리가 잘 알아내고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귀비과 식물들은 줄기를 자르면 유액이 나오는 것이 특징 (P. 60)

가장 진화된 식물의 집안이 난초랍니다. 진화의 방향이야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에 따라 복잡해질 수도 단순화될 수도 있지만, 난초과 식물이 진화된 식물이라는 것에는 학자들 사이에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세상의 그 많은 꽃 가운데 가장 진화되었다니, 얼마나 영리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 엿볼 만하지요. (P. 74)

백합은 꽃이 흰색이어서 백합이 아니라 땅속에 하얀 비늘줄기 100개가 모여 있다 하여 백합百合입니다. 영어로는 릴리Lily, 학명으로 말하면 릴리움속에 해당하는 식물입니다. (p. 96)

정작 우리가 칼라로 부르는 식물은 잔테데스키아속으로 분리되었으니 어찌 불러야 옳은 것인지 고민입니다. (p. 140)

귀화 식물은 외래 식물하고는 좀 다릅니다. (중략) 외래 식물은 '누가 심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식물' 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해바라기나 장미 같은 식물은 외래 식물입니다. (p. 142)

자주닭개비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보라색이던 꽃이 분홍색으로 변하거나 색이 없어진답니다. 그래서 방사선 누출 사고를 대비하는 지표 식물로써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에 많이 심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p. 152)

우리가 보는 동글동글한 꽃송이는 아주 작은 꽃들이 마치 작은 공처럼 둥글게 달려 있는 꽃차례입니다. 간혹 토끼풀의 수술과 암술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동그란 꽃차례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꽃을 펼치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p. 160)

민들레라고 부르는 대다수가 서양에서 건너온 귀화 식물인 서양민들레 입니다. (중략) 토종민들레인 '민들레'와 '산민들레'는 그렇지 않답니다. (p. 166)

식물도감에서 들국화를 찾아보면 나오지 않는답니다. 공식적으로 들국화란 이름을 가진 식물이 없다는 이야기지요. (p. 170) 국화과 식물들은 아주 진화된 식물입니다. 우리가 흔히 '한송이 국화꽃'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수십, 수백 개의 꽃들이 모여 있는 꽃차례입니다. (p. 171)

식물도감에 '계수나무'라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올라와 있는 나무는 따로 있습니다. (p. 244)

한방에서는 뿌리와 줄기를 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스피린의 원료 성분으로 쓰여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 조팝나무 p. 258)

이름이 '앵도 櫻挑'에서 유래한 것이어서 '앵도나무'인데, 열매는 '앵두'여서 혼동되기도 합니다. (p. 260)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줄기가 아래까지 늘어져 빼어난 자태를 뽐냅니다. 한동안 구상나무를 심으려는 노력들이 여기저기에서 있었는데, 갑자기 심어진 나무들이 적응을 하지 못하더군요. 게다가 고산성 수종이라 너무 까다롭다고 알려져 심으려는 노력도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멀리 유럽에서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정원수가 바로 한국전나무, 즉 구상나무라고 합니다. (p. 271)

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개나리'도 특산 식물입니다. 더욱이 학명이 'Forsythia koreana', 말 그대로 '한국개나리'라서 한국 특산임을 자랑스럽게 명시하고 세계가 함께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에 대한 고민은 조금 더 심각합니다. (p. 272)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두고 '목란'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 목란이 북한의 나라꽃입니다. (p. 282)

한때 영어 이름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들었다는 도그우드Dogwood와 같아 심어졌다가 아닌 것이 밝혀져 제거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아하게 아름답습니다. (산딸나무 p. 298)

성탄절과 이 나무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가시관을 쓰고 이마에 파고드는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며 고난받을 때, 그 고통을 덜어 드리려고 갸륵한 새 로빈이 몸을 던집니다. 이 작은 새가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를 잘 먹어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히 여기고 기쁜 성탄을 장식하며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p. 400)

책을 읽으며 그 무엇보다도 다양한 식물들의 정보들을 하나하나 배워갈때의 느낌이 가장 좋았다. 그중에서도 꽃차례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실질적으로 가장 놀라운 정보였다. 해바라기 한송이 코스모스 한송이가 사실은 한송이가 아니었다니! 내가 알고 보고 익숙했던 꽃들 중에 의외로 '꽃차례'가 정말 많았다!!

희귀한 식물이 살아가는 자생지는 그대로 보전하고, 곁에 두고 키우고 싶으면 증식된 포기를 구입하여 심는 게 꽃 사랑의 시작입니다. (P. 86)

희귀한 식물의 상당수는 (중략) 수생식물이었습니다. 식물을 살 수 없게 만드는 수많은 요인 중에서 수질 오염은 가장 급속하고도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였으니까요. (p. 121)

망을 치면 망 위로 올라가 한란을 훼손하고, 망 위까지 모두 덮으면 땅을 파고 들어가 캐어 가는 집요한 도채꾼들과의 싸움의 결과이지요. (p. 214)

특산 식물은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 땅에만 자라는 식물입니다. (중략) 중요합니다. 식물 보전을 생각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넓은 지구 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식물이 존재하지만, 특산 식물은 우리가 보전하지 않으면 이 땅은 물론 지구 상에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원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지요. (p. 268)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생하는 나무들의 풍부한 유전자 풀이 잘 보전되어 있어야 비로소 개량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p. 343)

새로 알게되는 다양한 정보들도 좋았지만 사이사이 저자가 건네는 쓴소리도 귀담아들을만 했다. 도채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와우 그정도였나 싶어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여하튼, 데이터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식물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유전자 풀은 클수록 좋다. 하지만 멸종되어 가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녹지가 많아지고 자연환경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자연보호냐 라고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런 면적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생물의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양적 질적 데이터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모두가 함께 자연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꽃 우리나무에 대한 연구가 좀더 주체적으로 활발해지기를 응원한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니 갑자기 수목원에 가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동네 뒷산부터 다시 찬찬히 들여다봐야 할것 같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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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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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약한 강도 꿈나무와 더럽게 말 안 듣는 인질들의 대환장 소동극!

세상의 바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가장 눈부신 이야기

"꼭대기 층에 있는 인질인데요, 여기 하와이안 피자 좀 갖다주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레드릭 배크만은 정말 대단한 작가다. 이번 작품에도 역시나 홀딱 반해버렸다.

흡인력 강한 스토리, 한명한명 모두가 주인공 같은 입체적인 인물들, 무엇보다 감동어린 따듯함.

이렇게 시크하면서 웃기고 웃기면서 따듯하며 따듯하면서 치밀한 구성을 알차게 버무릴 줄 아는 작가는, 게다가 스릴러 소설이 아님에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스릴러 못지 않은 반전 묘미를 선사할 줄 아는 작가는, 이 시대에서 프레드릭 배크만이 으뜸이지 않을까.

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

이건 여러 가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기는 쉽지만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바보같이 어려운 일인지 잊어버린 사람이 아닌 이상,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지 못한다는 점을 미리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특히 누군가에게 아주 좋은 인간이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그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말이다. (p. 15)

소설에서 첫문장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들어봤지만 솔직히 소설을 자주 읽으면서도 첫문장의 중요성을 느껴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책 읽는 법'에 대한 어떤 책에서 첫문장 의 함축성에 대해 깨닫고 나서부터는 소설의 첫문장을 좀더 주의깊게 보기로 했다. 이 소설의 첫문장은 위에 옮긴 바와 같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고 이 첫 단락을 다시 읽으니 '바보'같은 똑똑한 사람들에 대해 다시한번 마음한곳이 뭉클해져온다.

딱 하나의 지독하게 한심한 발상. 그것만 있으면 된다. (p. 17)

복면을 쓰고 권총을 들고 은행강도가 은행을 털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 은행강도는 은행강도라 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르다가 은행직원이 경찰에 신고하자 겁에 질려 맞은편 아파트로 달아났다. 마침 그 아파트에서는 오픈하우스로 열려있는 아파트가 있었고 갑자기 인질극으로 사건이 변모되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인질 여덟 명은 무사히 걸어나왔고 곧바로 경찰이 급습했을때 아파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본론에 집중해주시겠어요?"

"오키도키요"

"그 아파트에 도면에 없는 공간이 있나요?"

"그리고 애들 키우기에도 정말 좋아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냥 짚고 넘어가고 싶었어요. 입지 말이에요. 애들 키우기에 정말 좋거든요! 사실 뭐... 오늘 이런 인질극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것 빼고는 애들 키우기에 환상적인 동네에요! 그리고 애들은 경찰차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거 아시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질문에 대답해달라는 것입니다만"

"죄송해요, 질문이 뭐였죠?" (p. 25)

작은 도시였고 인질들을 조사할 수 있는 경찰관은 두 명뿐이었다. 인질이었다가 풀려난 사람들을 조사하려는데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찰관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정신없는 와중에 스톡홀름 본청에서 협상가를 비롯한 전담팀이 파견되기로 했으나 새해를 이틀 앞둔 때라 고속도로가 막혀 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때 젊고 의욕넘치는 경찰관은 본인이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

사실 붙잡혀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풀려난 이후 경찰이 아파트를 급습하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중략) 은행강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한 발의 총성으로 응수했다. 경찰이 아파트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거실로 들어가보니 바닥이 피투성이였다. (p. 33)

인질들은 협조와 비협조를 오가는 대화로 젊은 경관이 원하는 사건의 실마리를 주지 않는 것 같고 은행강도는 빠져나갈 곳이 없는데도 아파트 안에서 사라졌다. 인질들 중 누군가가 분명 은행강도를 도운 것 같은데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다. 게다가 고참 경관까지 신경을 긁는다.

"어이!" 고참 경관이 외친다.

"안녕하세요" 젊은 경관은 조금 무시하는 투로 답한다.

"커피 한잔 권하고 싶지만 여전히 커피는 마시지 않겠지?" 고참 경관은 그게 장애라도 되는 듯이 묻는다.

"네" 젊은 경관은 상대가 권한 것이 인육이라도 되는 듯이 대답한다.

고참 경관과 젊은 경관은 음식이나 음료에 관한 한, 아니 그 어떤 것에 관해서도 공통점이 거의 없다. (p. 34)

사실 이 두 경관은 부자지간 이다. 아들은 '10년 전에 다리 위에서 그 남자를 맨 처음 본 사람은 아버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장래희망이 바뀌지 않은 10대 소션이었다. (p. 44)' 그리고 10년 전 그 남자는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청구서 더미와 텅 빈 침대, 수면제, 알코올, 모든 게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밤이면 그는 나가서 어둠과 추위와 정적을 뚫고 몇 킬로미터를 달렸고, 발이 인도를 두드리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도 목적지나 목표를 정한 적은 없었따. 사냥꾼처럼 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사냥감처럼 달렸다. (p. 49)' 일중독자처럼 일하고 더나은 일자리제안도 거부한채 작은 도시에서 아버지와 경찰관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늘 불안했다. 10년전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들도 내색은 안해도 사냥감처럼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인질들도 불안해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불안해보이지가 않았다. 불안해해야 할 사람은 불안해하지 않고 불안할거라 보이지 않는 사람은 불안한 상황.

사실 10대 소년에게 경찰의 꿈을 심어준 사람은 다리 위의 그 남자가 아니었다. 일주일 뒤에 똑같은 난간 위에 서 있었던 10대 소녀였다. 뛰어내리지 않은 그 아이였다. (p. 54)

누군가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경험과 누군가의 죽음을 막은 경험은 둘 다 소년에게 경찰관이 되어야할 이유가 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구원의 기회를 얻는 사람보다 버림을 받는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다. 그렇게 버려진 사람 중 한 명이 은행 강도가 되었다.

은행이 은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금 없이 운용되는 '캐시리스' 은행이 있는 모양이니, 그건 소위 말하는 짝퉁 아닌가? 카페인 없는 커피, 글루텐 없는 빵, 알코올 없는 맥주가 넘쳐나니 사람들이 헷갈리고 사회는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은행 강도가 되지 못한 은행 강도는 은해잉라고 볼 수 없는 은행 안으로 들어가 권총을 들이대며 자신의 방문 목적을 선포했다. 하지만 창구에 앉아 있었던 스무 살의 런던은 인간의 사회성을 파괴할 정도로 SNS에 심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은행 강도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외쳤다. "당신 장난이에요, 뭐에요?" 강도는 실망한 아버지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고 권총을 흔들며 이렇게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강도다! 6천 5백 트로나 내놔" 런던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6천하고 5백? 0을 두어 개 빠뜨린 거 아녜요? 아무튼 여긴 현금 없는 은행인데, 진짜로 현금없는 은행을 털 생각이에요? 바보에요, 뭐에요?" (p. 68)

창구 직원이라고는 단 한 명 뿐인 작은 은행 지점, 권총을 든 은행강도 앞에서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강도의 요구금액과 무지에 콧방귀를 뀌는 어린 직원, 늙다리가 된 기분에 멍해졌다가 은행을 털려던 생각이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깨달은 현실자각의 시간속에 은행강도가 얼이 빠진 사이 은행 직원이 외친다. '"저기, 나 지금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p. 70)' 은행강도가 되려다 실패한 은행강도는 허겁지겁 도망간다. 도주 계획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겁에 질려 아무곳이나 열린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들어가고 보니 사람들이 우글우글 했다.

아파트 안에 있던 여자 하나가 권총을 보고 "어머, 어떡해, 강도가 들었어요!" 라고 외쳤고, 그와 동시에 계단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리자 은행 강도는 경찰인가 보다 싶어(그게 아니라 집재원이었다) 딱히 대안이 없었던 관계로 문을 닫고 권총을 마구잡이로 겨누며 처음에는 "아뇨...! 아뇨, 강도가 아니라... 나는 그냥..." 이라고 외쳤다가 생각을 바꿔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음, 어쩌면 강도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여러분이 타깃은 아니에요! 어쩌면 지금 이건 인질극에 가까울지 몰라요! 그 점에 대해서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가 참 복잡하게 꼬였네요!" (p. 76)

아파트 안에는 총 여덟 명이 있었다. 한명은 부동산중개업자이고 신혼부부 한 커플, 중년부부 한 커플, 그리고 고급패션의 여성 한 명과 할머니. 여기까지 세면 총 일곱 명인데 왜 여덟 이냐고? 한 명은 나중에 토끼로 등장한다. 토끼... ㅋㅋㅋ 여하튼, 이들 모두는 은행 강도에게 인질이 되었지만 이들 모두는 은행 강도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은행 강도가 너무... 딱했다.

10년 전에 다리 위로 올라간 남자와 어느 아파트에서 인질극을 벌인 은행 강도는 서로 아무 연관성이 없다. 서로 만난 적도 없다.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럴 해저드다. (p. 79) 모럴 해저드? 그 일곱 살짜리는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직전에 그 단어를 배웠다. (p. 81) 은행 강도는 이날까지도 그 말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얼마나 기분이 처첨했는지가 아니라, 엄마를 싫어할 수 없으니 얼마나 희한한지에 대해 생각한다. (p. 82) 다리 위로 올라간 남자는 모럴 해저드를 운운했던 은행 직원 앞으로 편지를 썼다.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적었다. 그러고는 뛰어내렸다. 은행 직원은 그 편지를 10년 동안 핸드백에 들고 다녔다. 그러다 은행 강도를 만났다. (p. 83)

10년전 한 남자의 자살 그리고 10년 후 허술한 은행 강도에게 붙잡힌 인질극, 두 사건은 관련이 없으면서 연결된다. 은행과 집 두 공간은 관련이 깊으면서도 상관없어 보인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비밀을 공유한 끈끈한 사이가 된다. 은행강도와 인질들 그리고 경찰관.

당신은 평생 무슨 일이든 헤쳐나가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대책 없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도움을 구걸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가 다가오고 당신은 고독한 절망으로 몸부림치며 그날을 보낸다. 아이들이 당신하고는 설날을 같이 보내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해 이틀 전날, 당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겠다는 변호사의 최근 편지와 그날 안으로 월세를 내지 않으면 내쫓길 줄 알라는 집주인의 편지를 주머니에 넣는다.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휘청거릴 수 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면 충분하다. 당신은 진짜처럼 보이는 장난감 권총을 찾는다. 검은색 털모자에 구멍을 뚫어서 얼굴이 덮이게 내려 쓰고, 당신이 돈이 없기 때문에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은행으로 들어간다. 월세 6천5백 크로나만 받아내자고, 월급을 받자마자 갚으면 된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p. 100)

은행강도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첫 장부터 바보같은 발상 한심한 발상이라고 말하며 시작했다. 하지만 소설속 공감요소에 누구나 마음이 동요하게 될 것이다. 어느날 배우자가 자신의 직장 상사와 바람이 난걸 알게 된 것도 모자라 맨몸으로 집에서 쫓겨나며 이혼당했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참았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도 빼앗길 처지에 몰리고 나자,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순간에 이성은 휘청거렸고 한심한 발상이 불안을 극대화시켰다. 그렇게 은행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은행엔 돈이 없었고 도망친 곳에선 희한한 인질들이 자신을 둘러싸기 시작한다.

사라가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 동안 심리 상담사는 상담실에 앉아서 하늘로 둘러싸인 그림 속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가 생을 끝낼까 고민 중일지 모른다고 한 사람은 사라가 처음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해석한 적이 없었다. 심리 상담사도 여자가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유는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움 아니면 두려음. 그녀가 그 그림을 그린 이유도 그걸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그건 심리학자들이 사랑하는 주제였다. 그림을 아무리 오랫동안 들여다보더라도 가장 확연한 부분을 놓칠 수 있었다. 여자가 다리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말이다. (p. 134)

그리움 아니면 두려움.

이 소설은 두려움으로 시작한다. 불안한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불안에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저마다의 다리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자신만의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은행강도사건+인질극 이 터졌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낯선 상황 속에서 서로의 불안을 직면하게 됐을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까? 혹시... 그리움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전부 복잡하고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가 이야기의 주제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이 이야기도 은행 강도나 아파트 오픈 하우스나 인질극이 주제가 아닐지 모른다. 심지어 바보에 대한 이야기도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다리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p. 158)

그리고 어쩌면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책은 두툼하고 읽은 페이지보다 읽어야 할 페이지가 훨씬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책장을 점점 빨리 넘기게 될 것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분명 조금은 (혹은 많이) 행복해지게 될 것이다.

"그냥... 엎드려주시면 안 될까요? 잠깐만? 나는 지금... 아니 그러니까 나는 은행을 털려고 했지... 이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요!" (p. 192)

"흠,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뿔뿔이 흩어져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먼저 각자 자기 소개를 하면 어때요?" (p. 195)

은행 강도는 가서 화장실 문을 잡아당겼다. 잠겨 있었다. 이로써 이것이 토끼에 대한 이야기로 돌변했다. (p. 204)

"내 말을 듣는 사람이 없네! 당신들은 최악의 인질이에요!" (p. 221)

웃다가 찡하다가 하다보면 그렇게 점점 소설속 인물들은 현실속 우리의 모습이 되어온다. 그리고 사이사이 시크하고 삐딱하지만 의미심장했던 문장들에 대해 뒷북치며 아하! 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들어, '스톡홀름은 어떤 장소라기보다 하나의 표현이다.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짜증나는 인간들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상징적인 단어이다. (p. 229)' 처럼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에 대해서 소설에서는 내내 이런저런 비하적 상징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서울사람들 이라고 할때도 그런가? 생각해보지만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스톡홀름'은 증후군이 될 수도 있다. (p. 231)' 라고 한다. 스톡홀름을 그렇게 까내리다가도 단번에 이미지를 바꿔버리는 능력,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이다. (하지만 가장 압권은 스웨덴 어로 읽었을 독자들의 부동산중개업체 상호 에 대한 농담 일 것이다. ※ p. 22)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가 진실이 복잡하길 바라는 이유는 먼저 간파했을 때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다리와 바보들과 인질극과 오픈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여러 편의 사랑이야기다. (p. 309)

소설의 진행은 나름 독특하지만 자연스럽다. 작가적 설명이 종종 등장하면서도 언제 그랬나 싶게 인물들간의 상황 속으로 몰입된다. 그런데... 결국은 사랑이야기 여서 그랬을까... 불안도 그리움도 다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따듯함이... 그래서 였을까...

"아들, 코끼리를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그는 똑같은 농담을 천 번 들은 아이답게 대답했다. "조금씩 천천히요" 그녀는 부모답게 천 번째로 박장대소 했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심지어 사람조차 바꿀 수 없을 때도 많지. 조금씩 천천히가 아닌 이상. 그러니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도우면 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면서. 최선을 다해. 그런 다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수긍하고 넘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게." (p. 292)

어쩌면 혼자여서 우리 대부분 '불안한 사람들' 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레드릭 배크만 소설은 늘 일깨워 준다. 우리가 아직은 혹은 우리가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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