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 김봉렬의 건축 인문학
김봉렬 지음 / 플레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건축적 인문학이 이런 거구나 깨닫게 해준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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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 김봉렬의 건축 인문학
김봉렬 지음 / 플레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2,500년이라는 시간을 축적한 건축물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

과거는 영원한 현재, 지금 이곳이야말로 건축의 시간이다.

역사를 읽다보면 예술과 문화를 알게 되고 건축과 건물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인간이 살아온 시간이 역사라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건물이고 건축이기에.

올여름 <뮤지엄 산> 에 다녀온 후 건축의 미학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건물에 남은 흔적이나 건물 안에 전시된 작품 말고 건축 자체만으로도 사유를 끌어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이후 건축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게 됐고 예전이면 선택하지 않았을 책을 선택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건축과 역사가 결합된 책들을 읽곤 했는데, 기왕이면 국내 건축가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그렇게 [김봉렬의 건축 인문학]을 만났다.

이 책은 서울신문에 2년간 연재했던 [김봉렬과 함께 하는 건축 시간여행]을 보완하고 가필한 것이다. 가급적 원시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28개의 건축적 사례를 택했다. (중략) 등장하는 사례도 무덤부터 궁궐, 사찰, 서원, 정원, 주택, 성곽 그리고 건축가까지 다양하다. (중략) 모든 시대와 건축을 초월한 공통점이 있다면, 다루어진 사례들은 시대적 사회적 한계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부터 현재의 사유원까지 이 책속에 실린 건축물들은 시간순으로 등장하기에 역사로 읽히기도 하고 자재와 지형과 구조를 분석하기에 건축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과 그리고 사람을 아우른 인문학으로 읽혀서 더욱 매력적인 책이었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인돌 5만여기 가운데 2만 9,500기가 한반도에 현존한다. 그 숫자만으로도 한반도는 '고인돌 왕국'으로 불릴 만하다. (p. 13)> 세계 곳곳엔 거석문화가 남아있다. 왕의 무덤일수도 있고 제의적 기념물일수도 있고 또다른 의미일수도 있는 거석들의 분포를 봤을때 한반도의 고인돌문화는 분명 특별하다. 모양도 구조양식도 크기도 다양한 고인돌이 유구한 역사속에 파괴된 것도 부지기수일텐데 유라시아대륙 끝자락인 한반도에 (세계 현존하는 고인돌 수의) 절반가까이 남아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토록 많은 왕이 그토록 많은 부족이 있었을리는 없다. 우리 문화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그 오랜 옛날에 고인돌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협업과 평등의식이 기초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썩 괜찮은 게 아닐까... 조선과 일제시대에 국한된 역사의식을 그보다 더 오래전 시간으로 확장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집트나 마야문명에만 있는 줄 알았던 피라미드가 고구려의 왕릉에도 있었고 동남아시아에나 있는 줄 알았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고상형 이층집이 가야인들의 생황양식에 퍼져 있었으며 백제의 왕실정원은 그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독창성을 보여주었고 신라의 황룡사9층목탑은 역사상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로서 현재의 아파트 27층 높이로 지금도 어려운 목조건축을 당대에 실현시켰다.

신라는 화엄의 불교사상을 건축물로 구현하기도 했고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건축에서 기본요소였던 평지 입지 전제조건을 고려는 산지가 많은 한반도 지형에 맞춘 경사지에서의 건축으로 거뜬히 변형시키며 원나라의 지배시기에도 고유의 문화성을 잃지 않았다.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만 알았는데 동시대 건축가로 박자청의 업적 또한 경탄할만 했고, 오직 성주인 다이묘만 보호하는 의미의 왜성에 비해 조선의 성곽이 보호하고자 한 대상은 백성이었다는 점에서 (부패하기전)조선사대부의 기본정신에 박수를 보낼 수 있기도 했다.

효명세자의 예악정치사상이 구현된 연경당의 이야기는 짠했고 성공회의 한옥 교회는 애잔했으며 한센인들이 손수 지은 애양원의 역사는 마음아프기도 했지만 저자는 제주도에 남아있는 일제의 군사시설을 보며 '다크 투어리즘'을 상기시킨다. <휴양이나 관광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전재잉나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일컫는다. 즉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왜 이 땅에 이런 건축물이 세워져야 했는가? 왜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역사의 상흔으로 남은 이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p. 267)> 그런 의미에서 건축의 시간은 늘 현재일 수 있다.

세운상가와 절두산성당 그리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를 예로 든 한국의 근현대 건축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의 건축사는 과거보다 오히려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유원을 통해 <화룡점정, 눈을 그려야 용이 되듯이 지형과 조경의 마무리는 결국 건축의 몫이다. (p. 306)> 라는 문장에 다시 힘을 싣는다.

건축은 기술과 예술의 양면성을 가진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건축은 인간 사유의 물리적 결과물이다. 공학 기술과 디자인 능력으로 기능적 건축은 가능하다. 그러나 삶의 기쁨과 슬픔을 공감해야 인간적 건축이 가능하며,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이해해야 사회적 건축이 가능하다. 역사의 질곡과 진실을 알아야 역사적 건축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은 기초적인 인문학에 속하며, 지식인 건축가는 포괄적인 인문학자로서 성찰하고 사유하며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p. 308)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면, 미래는 새로운 과거일 수 있다. 근원과 본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p. 309)

건축이 인문학일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분명하게 전달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로 정한 이유를 <역사학의 텍스트가 문헌과 기록이라면, 고고학의 텍스트는 유물과 유적이다. 그렇다면 건축 역사의 텍스트는 문자와 유적 모두가 중요하며 서로 보완적 관계이기도 하다. (p. 318)> 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숨과 삶을 품는 건축은 영겁을 지나도 근본과 현재 사이에서 또 묻고 또 대답한다. 과거가 영원한 현재라면 미래 또한 늘 현재일 수 있다. 근원을 묻고 현재의 물음에 충실히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다. (p. 319)> 라며 건축에서 인문학적 고찰을 중요시할 것을 당부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래된 미래와 영원한 현재와 새로운 과거로 여겨질때 건축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좀더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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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불시착
박소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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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라는 우주를 아직 비행 중인 사람들에게,

일하는 이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보내는 가장 적당한 위로

"어쩌면 나는 31세기형 인재가 아닐까?"

박소연 작가의 첫번째 직장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집 <재능의 불시착> 가제본 서평단 모집에 응모했고 단편 한 작품이 실린 얇은 가제본을 받았다. [이 책은 '일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한 번쯤은 느꼈을 야릇한 소외감, 비릿한 자괴감, 소박한 연대감 앞에서 짓게 되는 미묘한 표정들을 소설 속 리얼리티 넘치는 상황을 통해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이 이 책을 정말 잘 대변해주는 문장이었음을 단 하나의 작품만을 읽었을 뿐임에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제본에 실린 단편은 <막내가 사라졌다> 라는 작품이었는데 콩트처럼 읽히는 이 작품을 읽으며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위트는 이런 것인가 싶었다.

막내가 사라졌다.

유난히 평범한 날이었다. 기묘하거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 전조 증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p. 5)

회사의 한 부서에 막내사원이 출근하지 않은 어느날이었다. 평범한 날은 그저 평범한 날인데, '유난히' 평범하게 느껴지는 날이 '유난'했던 이유는 '눈에 띄는 이상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데(p. 6)'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막내사원 시준의 책상의 풍경, 딱 그런 것이었다. '나는 아까 시준의 책상에서 느꼈던 묘한 이질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책상 위가 완벽하게 깨끗했다. (p. 7)' 완벽하게 깨끗한 책상이 '이질적'이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이 '평범'함과 다다르다는 것은 달리말하면 '평범'하다는 것은 조금은 어수선하고 조금은 어지럽고 조금은 더러운 그런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저는 오늘부로 퇴사합니다. 필요한 서류는 대리인이 참석해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강시준 드림-'

갑작스러운 퇴사문자도 당황스러운데 회사사람들 모두를 당황시킨 단어는 '대리인' 이라는 단어였다. 퇴사에 왠 대리인? 그런데 의외로 그 단어는 무시못할 위력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회사는 점점 술렁거리고 그리고 어떤 이들은 떨기 시작한다. 대리인이 와서 과연 무어라 말할까? 각자 그동안 자신들과 막내사원과의 일화들을 곱씹어 보는 동안 누군가는 속이 울렁거리고 누군가는 좌불안석이 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다른 또 누군가는 ㅋㅋㅋ

단순한 무단 퇴사라고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p. 15)

'그러고 보니 나는 시준 씨한테 실수한 거 없나?'

덩달아 불안해진 나는 그동안의 행동과 말을 천천히 복기해보았다. 별것 없었던 것 같기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p. 17)

엄청난 회사기밀을 들고 튄 것도 아니고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큰 회사의 여러 부서 중 하나의 부서에 속한 막내사원이 퇴사하는 것에 대해 무어 그리 많은 사연이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일화들 속에 과연 막내사원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내일까지 두려움에 떨 사람들이 많아 보이네요. 그러게 회사 다닐 때나 상사고 선배지, 그만두면 아무 관계도 아닐 사람들끼리 진즉 기본 매너는 지키고 살면 좀 좋아요? 지금 여기에 다니고 있으니까 껌뻑 죽는 척 해주는 거지, 나가면 알게 뭐에요? 말도 제대로 안 섞어줄 동네 아저씨고 모르는 아줌마지" (p. 20)

몇장 안되는 짧은 작품이었음에도 풍성하게 읽혔고 지금껏 읽은 그 어떤 직장인 에피소드 보다 산뜻하고 발랄하게 다가왔다. 기묘한 퇴사 절차에 대해 당황해 하는 사람들을 보며 21세기형 사람들과 31세기형 사고관의 만남이 유쾌하게 읽혔다.

직장인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생각났다. '기쁨'과 '슬픔'이라는 대비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속 작품들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사연들이었다. 그 씁쓸함에 비하면 <재능의 불시착>은 아예 그런 구분을 의식하지 않은 작품들을 모은 책인것 같다. 이 신선한 접근에 조금더 다가가보고 싶다. <막내가 사라졌다> 말고도 다른 작품을 읽으려면 어서 이 책을 집어들어야 겠다. '지구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아요' 라고 말하는 31세기형 젊은이들은 또 어디에 어떤 불시착들을 했을까 그래서 어디로 안착하게 되었을까 몹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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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티 Rome City -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이상록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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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도시, 로마

3백여 컷의 근사한 일러스트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유럽 문화의 진수를 만나다

신간소식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한눈에 반했다. 일단, 표지가 너무 예뻤다!!! (사람 뿐만 아니라 책도 예쁘고 볼 일이다;;;; ㅠㅠ)

읽으면서 또 반했다. 예쁜 것뿐만 아니라 알차기까지 했다!!! 로마의 역사부터 예술, 문화등 로마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할만했다. 무엇보다 최신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좋았다. 저자가 참고한 책들을 보니 더욱 믿음이 갔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서양사에 대한 이런저런 책들을 꽤 읽어왔지만 그 책들에서 익혔던 내용들이 이 책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읽는 내내 감탄했고 즐거웠다. 그러니까 이 책은 로마에 한해서만큼은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마에서 특별한 광경은 유적지나 박물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쳐 지나는 일상의 풍경이나 로마 사람들의 태도에서 물신 풍긴다. 유적들은 거리나 주택가에서 수백 수천 년의 시간차를 별로 내색하지 않고 섞여 있다. 잠시 쉴만한 그늘을 찾다가 2천년이 다 되어가는 고대 건물의 파편이 벤치처럼 쓰이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하고. 무심하게 콜로세움을 돌아 지나가는 버스를 타게 되기도 한다. 의술의 신 신전 터엔 현대식 병원이 자리 잡고 있고, 로마제국의 근위대 병영이 있던 곳은 이탈리아군이 쓰고 있으며, 고대 전차 경기장 터의 트랙은 산책로가 되어 있다. 무심코 들어간 장소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발견하는 일도 자주 경험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무심코 건넌 다리가 2천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할 것이다. (P. 12~13)

저자는 로마의 자취를 좇는 일에 대한 가장 큰 이유가 '재미있으니까'라고 했다. 낡은 도시라는 이미지를 풍기는 이 도시가 실은 2700년 내내 멈춰 있던 적이 거의 없었음을 단지 생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격렬히 움직여왔기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거리를 품고 있다는 것을 널리 퍼트리고 싶을 만큼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기존에 읽었던 역사책 속 에피소드들이 이 책에서 더욱 생생해졌고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왠걸 또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면서 읽는내내 재미있었다. 알면 아는만큼 모르면 모르는대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로마 시내에선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성벽의 잔해가 가게안에 떡하니 있다고 한다. 일상이 곧 역사인 도시라니 wow 하지만 무심해 보이는 이 일상속 역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생각하게 됐다.

현재의 로마는 한정된 공간에 많은 건물과 사람으로 복닥보닥하다. 3백만명이 일상을 이어가는 한 국가의 수도인지라 문화유적도시라는 핑계를 대며 그대로 둘 수만도 없다. 이런 고충을 덜기 위해 높은 빌딩이라도 세우면 좋겠지만 도시 미관을 해치게 되므로 역사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 공간을 조성하는 방안 역시 어렵다. 땅을 파다 보면 거의 틀림없이 뭔가 나오기 때문이다. (중략) 이처럼 로마는 참 불편한 도시다. 보통 다른 도시들은 인프라를 확충하고 편의 시설을 늘릴 때 비용만 고려하면 되지만, 로마에서는 번거롭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효율성과 편리함은 기꺼이 제쳐둔다. (p. 25)

로마는 지하철 노선들도 정작 도심부는 비껴가서 외곽을 돌고 있고 따라서 대중교통도 원활하지 않다고 한다. 편의시설도 많지 않지만 뭐하나 새로 만들기가 참 어려운 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로마는 걷기 좋은 도시이고 그렇게 걷다보면 의외의 볼거리를 보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길을 잃으면 잃는데로 어디든 볼거리가 있는 도시에서 저자는 쉴겸 무슨 교회인지도 모르는 작은 교회로 들어갔을 때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사람이 사다리위에서 교회의 벽을 손보고 있었다고. 그런 손길이 있었기에 로마가 유지되어 온 것이었다. 무심한 일상의 유지란 사실 엄청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법이다. <자본과 유행을 따르자면 트레비 분수나 콜로세움 옆에 호화로운 호텔이나 거대한 쇼핑센터나 테마파크 따위를 세우고 테베레강 근처를 고급 주거지나 빌딩 숲으로 조성할 일이다. 그랬다면 로마는 더 세련되고 편리하고 부유한 도시가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많은 방문자가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 없이 콜로세움의 위용을 온전히 느끼고, 스카이라인에서 미켈란젤로의 돔을 바라보고, 옛 시대의 풍경을 상상하며 거닐 수 있는 것은 그런 '의도된 포기' 덕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중략) 문화재 관리는 대개 눈에 띄지 않는다. 구멍 난 항아리에 계속해서 물을 붓는 격이랄까. 부지런히 새 물을 부어야 그나마 현상 유지가 된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산, 즉 항아리가 클수록 부어야 하는 물의 양도 그만큼 많아진다. (p. 53)> 의도적으로 포기하고 커다란 구멍이 난 커다란 항아리에 계속 새 물을 붓고 있는 로마인들에게 경의를 표해본다.

기초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땅속에서 사람의 두개골 하나를 발견했다. 로마인들은 이를 아울루스라는 옛 영웅의 유골이라고 여기며, 장차 이곳이 '카푸트문디(세계의 머리)'로 우뚝 설 징조라고 해석했다. 그 후 이 장소는 카피톨리움(아울루스의 머리)이라고 불렸다. 카피톨리노는 카피톨리움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p. 45)

로마라는 한 도시에 집중하다보니 세세한 역사까지 알게되는 재미가 쏠쏠했다. '카피톨리노는 장구한 로마 역사의 요약(p. 47)'이라는 저자의 표현처럼 '워싱턴 의회의사당의 이름은 '캐피틀'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카피톨리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캐피틀의 돔은 미켈란젤로가 만든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의 디자인도 빌려갔다.) p. 48' 이라는 저자의 안내처럼 로마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시간대에 존재해온 도시이다. 따라서 로마의 중심부터 변두리까지 들여다볼 곳은 다양했고 볼때마다 '아 그랬구나' 하며 빠져들어 읽게 된다. 예쁜 그림으로 그려진 로마를 보려고 손에 든 책이었는데 왠걸 읽다보니 그림보다 글에 더 집중하게 되곤 했다. 그림도 글도 둘다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한가지 더,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가야 하는 이유! 바로 포룸로마눔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멋진 광경 때문이다. (p. 76)' 같은 로마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는 팁도 여기저기서 제공된다. 아~ 정말 가보고 싶다~ 로마!!!

로마의 역사를 읽고 로마의 유적을 둘러보며 로마의 인물들을 알아가다 보면 어느새 작은촌락 로마에서 로마제국을 거쳐 제국의 멸망과 도시국가들의 혼돈속에 현대사로 접어들게 된다. 로마에서 이탈리아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여정은 표지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톤 그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부드럽게 읽힌다.

진정한 통일은 땅덩이만 합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통일을 향한 고난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반도의 국가들은 하나였던 시간보다 따로 떨어져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 천년이 넘는 간극은 도시의 풍경보다 사람들의 정신에 더 깊이 남아 있었다. 이탈리아 민족이라는 새 정체성에 모두가 공감하진 않았고, 모두가 통일을 갈구한 것도 아니었다. 통일을 원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완성체의 모양에 관해서는 각자 상상하는 바가 달랐다. (p. 575)

이탈리아반도는 1870년에서야 통일됐다. 물론 세계양차대전을 거치며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통일성은 조금 강화된 면이 있다. 한반도가 분단된지 백년도 안됐지만 우리는 통일후 서로의 이질성에 대해 얼마나 걱정을 하는가? 그런데 천년을 넘게 따로 살아온 도시국가들의 통일이라니...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각각 그 색깔이 너무 달라서 관광객들이 놀라곤 한다고 한다. 로마 한곳만 봐도 그러한데 그런 도시국가들이 여럿이었음을 감안하면 지금의 이탈리아는 엄청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한때 경제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유럽에서 가장 뒤처졌던 이탈리아가 지금은 G7 국가에 속하고, 영화, 미술, 음악, 패션, 디자인 ,음식, 자동차 등의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p. 579)> 물론 그리스처럼 고대시대에 대한 예우가 이탈리아라는 국가에도 조금은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무너지고 분열됐던 것을 생각했을 때 지금의 이탈리아는 그리고 로마는 분명 대단하긴 하다. 고대 존재했던 도시들이 현재에도 대도시를 이루고 융성하게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큰 도시들은 융성했다가도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가 되곤 했다. 하지만 로마는 2700년을 늘 존속해왔다. 이 사실만으로도 로마는 흥미롭다.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다감한 그림들과 함께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보는 재미 읽는 재미 알아가는 재미가 가득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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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 왜 금융은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니컬러스 섁슨 지음, 김진원 옮김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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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어떻게 '앞면이고 내가 이기고 뒷면이면 네가 지는' 독식게임을 만드는가?

전문가, 경제학자, 정치인은 어째서 부의 약탈자들과 결탁하고 그들을 정당화하는가?

시민들은 이런 금융의 저주 속에서 무엇을 얼마나 희생당하는가?

(그래서)

왜 금융은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흑역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개 들키면 부끄러운 실수나 실패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제목이 '부의 흑역사'라고 해서 부자들의 부끄러운 과거사라던가 부가 쌓이는 과정에 있었던 검은돈 거래관련 에피소드 등의 가벼운 얘기들이 나오는 역사책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그런... 책은 아니었다. 영국인인 저자가 영국 금융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현재 영국 금융계는 저주받은 혹은 저주받아야할 산업이라고 밝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Finance Cuese '금융의 저주' 이다.

금융의 저주라는 개념은 단순하다. 금융 부문이 확장하여 합당한 규모에서 벗어나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이 금융 부문을 지탱하는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금융은 사회에 이바지하고 부를 일군다는 전통적인 역할을 외면하고, 수익을 더 보장하는 활동에 치중할 때가 많아서 다른 경제 부문에서 부를 약탈한다. 정치적으로도 힘을 휘둘러서 자기 입맛에 맞게 법이나 규정이나 심지어 사회까지 바꾸어 놓는다. 이 결과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불평등이 심화하고 시장이 무력해지고 공공서비스가 와해하고 부패가 자행되고 대체경제 부문이 설 자리를 잃고 민주주의와 사회에 막대한 폐혜를 안긴다. (p. 19)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자가 말하는 금융의 저주는 금융산업이 일반 시민의 부를 약탈해왔고 그 정도를 점점더 심화시켜왔다는 얘기다. 금융이 부를 축적할수록 대중은 갈수록 가난해지는 이 '금융의 저주' 개념은 저자가 앙골라라는 광물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더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자원의 저주' 상황을 보면서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영국과 앙골라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은 기본적인 사실 하나에서 출발한다. 두 나라 모두 규모가 큰 경제 부문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 앙골라의 경우에는 석유, 영국의 경우에는 금융이 그것이다. (p. 22)] 영국 금융의 저주 중심지는 '시티오브런던'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횡행하고 있는 금융산업은 실은 산업이 아니라 법초월적 약탈행위임을 밝히려 노력한다. ['경쟁력 높게' 금융 부문을 세우는 목적은 저 팽배한 논리를 업고 시티오브런던을 가능한 한 크고 강하게 지키자는 것이다. (p. 36)] 라면서 이런 유형의 '경쟁력'을 추구하는 헛수고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강조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경제사상가는 이 간극을 인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한 1776년가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주된 문제는 누구 부의 창출자인지를 두고 서로 의견이 달랐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전통에 따르면 이들은 부자들이었다. 돈과 자본을 소유한 이들이 공장을 세우고 정부에 세금을 내면 정부는 가난한 보조금 수령자에게 이 부를 재분배했다. 이런 역사관에 비추어보면 가난한 사회적 약자는 자본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같은 존재였다. (p. 43) 거대 자본가는 효율적인 경쟁을 반기지 않으며 자유시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으로는'그렇다고 말하지만 경쟁다운 경쟁이 일어나면 가격이 내려가고 임금이 올라가서 결국 수익이 줄어든다. 자본가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입맛대로 납세자에게 잔인한 시장, 바로 이런 곳에서 노다지를 캘 수 있다. (중략) 사업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아니라 사업계 전체와 나머지 공동체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이 되었다. 이 갈등이 금융의 저주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p. 44)

저자는 상식처럼 알려진 경제적 상황들을 조목조목 뒤집어 놓는다. '부의 축적'에 대한 기본적 관점은 마르크스주의적인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자본론의 기본 개념은 '잉여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자본가가 가지고 있던 자산은 항상 유지될 뿐 가치를 더 생산해내지는 않으므로 자본가의 사업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에게 부가 나누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를 거두어 가는 것이 자본가이다. 저자가 [사업가는 결실을 낳는 일정한 흐름 중간에 개입해 나무를 흔들고는 별 힘 들이지 않고 열매를 주워 도망가 버린다. (p. 44)] 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현대의 금융산업은 마르크스 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모든 금융이 다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금융은 없어서는 안될 도구이다. 다만 [규모가 '너무 큰' 금융이며 권력이 '너무 강한' 금융이며 민주주의로 검증받지 않은 '빗나간' 금융 (p. 50)] 이 문제다. 그리고 이런 문제적 금융의 중심지가 시티오브런던 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블런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 금융이나 경영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심하게 착각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간파했다. 바로 국가'경쟁력' 이다. (p. 52)

세금을 예로 들어보자. 베블런 시절에 등장한 전형적인 조세 도피처 수법은 이전가격이다. 다국적기업이 에콰도르에서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의 바나나를 생산하는데 1000달러가 들며 웨일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이 컨테이너에 든 바나나를 전부 3000달러에 산다고 가정하다. 이 체계 어디쯤에 수익 2000달러가 놓여있다. 다국적기업은 이제 자회사 세개를 설립한다. 에콰도르 회사는 바나나를 생산하고 웨일스 회사는 바나나를 슈퍼마켓에 팔고 세번째 회사인 페이퍼컴퍼니 파나마회사를 직원없이 조세도피처에 세운다. 이 세 회사는 바나나를 다국적기업 안에서 서로 팔고 산다. 우선 에콰도르 회사가 파나마 회사에 1000달러를 받고 바나나를 판다. 그 다음에 파나마 회사가 웨일스 회사에 3000달러를 받고 바나나를 판다. 2000달러 수익은 어디에 남을까? 에콰도르 회사는 바나나를 생산하는데 1000달러를 들였다. 그런데 1000달러를 받고 팔았으니 에콰도르에서는 수익이 0이다. 따라서 세금이 없다. 비슷한 방식으로 웨일스 회사는 파나마 회사에 3000달러를 주고 사서 3000달러를 받고 팔았기 때문에 영국에서도 수익이 0이고 세금도 없다. 하지만 파나마회사는 1000달러에 주고 사서 3000달러를 받고 팔았으니 2000달러 수익을 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조세도피처에 있기 때문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짠! 세금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p. 53)

위의 조세도피처 예시는 가장 쉽고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깨달음을 전달한다. 사업가는 저런식으로 사업을 하면할수록 부를 축적할 수 있고 저런방식이 가능한 조세도피처는 영국령의 섬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지 않지만 영국령이기에 다각도의 접근이 용이한 섬들.

조세도피처에 대한 적나라한 현실은 <머니랜드> 라는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세계 곳곳에 듣도보도 못한 작지만 서류상으로 부유한 곳들이 참 많아서 놀라웠었는데 저자는 영국령 조세도피처에 주목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과연 누구를 위한 자유였는지 밝힌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없애는 자유를 가능케 했다. 경쟁이 없어질수록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영국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폐해를 야기했다. 그러고도 빈털터리가 되었다. (p. 93)] 빈털터리만 되었더라도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 시티오브런던은 '악의 소굴이 된 제국의 심장' 이었다.

새로운 금융시장이 런던에서 태어나 시티오브런던이 신봉하던 자유라는 종교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나 시티오브런던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탈바꿈해 놓는다. 이 금융중심지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하고 정교한 새 도구로 무장하여 세계 곳곳에서, 영국 곳곳에서 부를 뽑아올린다. 당시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화려하게 성장해서 제국을 대체하고 능가하여 시티오브런던의 기득권층에 바치는 부와 특권의 원천이 되기에 이른다. (p. 103) 시티오브런던 기득권층은 제국의 붕괴를 몹시 애통해하면서 소리없이 영국을 역외 조세 도피처와 금융 안식처로 변모시켰다. (p. 105)

금융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저자가 아무리 상세히 풀어설명해 놓아도 이해에 한계가 있긴 했다. 조세도피처가 나쁘다는 것도 알겠고 법인세 인하가 어떤식으로 뒷거래가 되는지도 알겠는데 그렇게 사업가가 부를 축적하는 것이 시티오브런던 금융산업에는 왜 이로운 것일까? 간단하게 이해한바로는 '수수료'때문이었다. [영국중앙은행은 역사적으로 시티오브런던 편에 내내 서 왔다. 외환 관리를 강화할까 봐, 해외령이 외환관리에 어떤 위험을 끼칠까 봐 조바심을 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외령에 돈을 은닉해 놓는 외국인의 생각을 말없이 반겼다. 이 돈을 관리하면 외환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p. 114)] 저자는 시티오브런던이 역외 모형의 심장부라고 표현한다. 탈세와 해외은닉으로 거대자본이 된 사업가들은 더더 탐욕을 키우며 독식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오늘날 대형쇼핑몰로 걸어들어가면 보크와 그 지지자가 낳은 자식이 온통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풍요의 뿔처럼 슈퍼마켓 선반이 넘치도록 가득 채운 상품은 서로 다른 다양한 상표로 포장되어 있지만 대부분 유니레버나 크래프트하인즈 같은 몇몇 거대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다. 초콜릿을 사먹고, 휴대전화로 수다를 떨고, 선글라스를 쓰고, 신발을 신고, 물을 마시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부대끼며 기차에 타고,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푹 빠져 살면서 지갑을 열 때마다 우리는 숨어 있는 '독점세'를 낸다. (p. 148)

대놓고 독점인 것을 알게하는 시대는 지난지 오래다. 분명 다른 상표이지만 알고보면 같은 그룹의 상품들, 그렇게 경쟁업체끼리의 카르텔보다 더 위험하지만 더 교묘하게 우리는 독점세를 내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해체는 도구상자에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한 가지 도구일 뿐이다. (p. 157)] 라고. [독점과 싸우려면 다양하고 종합적이며 경제 전 영역을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 (p. 156)] 라고.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과거 이러한 금융의 저주는 주로 우파에 의해 주도됐었다면 점점더 좌우의 구분이 없어져 온 것 같다.

제3의 길은 개념이 꽤 단순했다. 좌파 정당이 정계에서 새로운 타협안을 분명히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추세라고 지지자들은 주장했다. 각 나라들이 이를 수용하고 적응해 나가야 성장하는 세계 금융시장에 올라탈 수 있으며 혁신적인 사회 정책을 펴면서 구태의연하지만 바람직한 재분배를 약간만 해도 이 세계화라는 거친 날을 무디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략) 하지만 제3의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외 모형이었다. 거친 세계화의 바다에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를 조세 도피처로 탁월하게 변신시킬 수 있는 국가한테나 맞는 전략이었다. 결국 이 모형을 이끌어가는 토대는 경쟁력 강령이었다. 각 국가가 '사업에 개방'해야 하며 다국적 대기업과 은행과 세계 유동자금을 꾀기 위해 끊임없이 미끼를 흔들어야 한다는 이론이나 이념이었다. (p. 175)

국가경쟁력이나 세계화 관련 내용을 읽으며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다. 너무나 익숙했던 이념들인데 긍정의 모토가 아니었단 말인가...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저자가 말하는 영국의 금융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이지 모든 영역에 확대시키는 것도 곤란하다. 늘 적절한 선이 중요하다. 여하튼 그렇게 국가는 기업이 되고 국민은 종업원이 됐다는 표현에는 수긍가는 면이 있긴 했다.

경쟁력 강령의 중심부에 혼란이 하나둘씩 쌓여 갔다. 경제나 과세 체계나 도시는 기업이 아니며 '경쟁'을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 이 용어와 뜻이 가장 잘 통하는 경우는 군사적인 의미로 쓰일 때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할 만큼 강성해서 '경쟁에서 이길' 때에나 쓰는 말이다. 그런데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은 이와 다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며 이 이윤에서 세금을 낸다. 도대체 이 이윤에 대응하는 등가물이 국가에서는 무엇일까? 예산 흑자? 무역수지 흑자? 이는 불필요한 긴축처럼 정상이 아닌 경제정책이나 과소소비를 나타내는 징후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예산 흑자에는 어떻게 세금을 매겨야 할까?) (p. 189)

기업의 세금은 낮춰주고 국가운영에 비용은 들고 필요한 세금은 국민에게서 걷는다. 기업은 수익을 해외에 은닉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고 복지를 줄인다. 임금은 줄고 물가는 오르고 세금도 오르면 결국 기업의 상품을 살 구매자도 없어질텐데 왜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어 온 걸까...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기 때문인걸까... 조세도피 말고도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했다. 특히나 신탁이나 사모투자 는 현대에서 가능한 금융 약탈의 최고봉이라 할만 했다. 게다가 인력낭비도 문제였다. 저자는 책의 초반에서부터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이 순수학문이 아니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금융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 했었다. 또다른 분야도 있었지만 여하튼 다 금융산업인 셈이었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두 배관, 정부의 위탁정책과 민간 부문의 금융화는 부와 재능 넘치는 사람을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모두 쫓아내고 있다. 이때문에 새로운 질문이 하나 생겨난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대답을 하자면 이들은 일정한 형체 없이 꾸준히 규모와 세력을 키우는 경영이나 재무 상담가와 자문가 집단으로 들어간다. (p. 406)] 금융산업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도 교묘한 약틀을 옹호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경제학자들이었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에 대해 [아무리 정직하고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연구자라 해도 대형 은행과 다국적기업의 기호에 맞게 체계적으로 증거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p. 423)] 라고 말한다. 젊은 인력은 낭비되고 국민은 약탈당하고 있는데 영국이라는 국가차원에서도 얻는게 없이 자본가들만 거대한 부를 쌓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반박의 여지없이 현재 영국은 금융의 저주에 걸리고 시름시름 앓고 있다. (p. 454)] 고... 그뿐만이 아니다. 이젠 국가안보까지 그 영향이 끼치고 있다.

금융의 저주는 분열을 초래하고 기반을 약화하고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서구 주요 경제대국 가운데서도 특히 영국이 중국의 영향력에 가장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2013~16년 사이에 이루어진 핵 협정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다. (p. 460) 예를 들어 시티오브런던에서 몸집이 가장 큰 금융괴물 HSBC를 보자. 홍콩상하이은행이 원래 이름인 이 거대 다국적 기업은 본부가 런던에 있다. (중략) 2017년 즈음 HSBC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이며 17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수익 가운데 90퍼센트 가까이가 아시아에서, 구체적으로는 홍콩과 중국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이 이유만으로 HSBC는 영국 정부가 내리는 지시보다 중국 공산당이 내리는 지시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더 크다. 아니 그 동안의 행태를 살펴보면 오히려 HSBC가 영국 정부에 이래라저래라 지시내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 왔음이 드러난다. (p. 462)

영국에 내린 '금융의 저주'를 읽는 내내 드러난 영국의 실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하면 신사의 나라 아닌가? 하지만 알고보니 영국은 해적의 나라였다. 예나 지금이나.

부의 수탈이 불러온 불평등은 특히 위험하며 분열과 불화를 낳는다. 중산층이나 빈곤층이 심한 박탈감을 느끼고 독 안에 든 쥐 같은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억만장자 계층이 어떻게 부를 쌓는지 우리가 그 과정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우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낡은 정치 공식으로 되돌아간다. 언론 통제력을 이용해 대중의 분노를 다른 방향으로,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게로, 성적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로,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로 돌린다. 증오라 가득 찬 이 공식을 세상은 과거에도 이미 목격한 적이 있다. (p. 465)

익숙한 공식이다. 알면서도 당하는 수법이다. 오랜 세월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은 아마도 계속 효력이 있을 것 같은 방법이다. 하지만 무력하게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저자는 '금융의 저주를 물리칠 똑똑한 자본통제'를 주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이다. (p. 470)] 그밖에도 저자는 할수 있는 모든 방안을 고민한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시민이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도 경제도 그 둘이 힘을 합친 금융도 모두 국민을 일반노동자를 시민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오늘날 영국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적 대립은 금융화와 금융의 저주를 지지하는 편과 금융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사회를 섬기기를 바라는 편 사이에 놓여 있다. 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p. 475)] 로 마무리한 저자의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없다. 우리는 영국 시민이 아니니까 저자가 제시한 첨예한 대립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물론 크게 보면 정치 경제 금융 각 부분들에서 세계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적인 내용들이 있었고 충분히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이었다. 상세한 <미주> 와 <찾아보기> 만 봐도 저자가 얼마나 꼼꼼히 찾아보고 연구해서 정리한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국금융의 저주를 세계적 부의 흑역사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표지도 너무 예쁘고 편집도 깔끔해서 눈에 들어오는 책인데 본문내용과 어색한 제목이 아쉽다.(처음 예상을 잘못한 내 탓도 있겠지만...;;;) 여하튼, 읽는 내내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금융계가 깨끗하다는 건 아니지만 시티오브런던 처럼 적어도 세계적으로 패악을 끼치는 것은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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