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불시착
박소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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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라는 우주를 아직 비행 중인 사람들에게,

일하는 이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보내는 가장 적당한 위로

"어쩌면 나는 31세기형 인재가 아닐까?"

박소연 작가의 첫번째 직장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집 <재능의 불시착> 가제본 서평단 모집에 응모했고 단편 한 작품이 실린 얇은 가제본을 받았다. [이 책은 '일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한 번쯤은 느꼈을 야릇한 소외감, 비릿한 자괴감, 소박한 연대감 앞에서 짓게 되는 미묘한 표정들을 소설 속 리얼리티 넘치는 상황을 통해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이 이 책을 정말 잘 대변해주는 문장이었음을 단 하나의 작품만을 읽었을 뿐임에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제본에 실린 단편은 <막내가 사라졌다> 라는 작품이었는데 콩트처럼 읽히는 이 작품을 읽으며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위트는 이런 것인가 싶었다.

막내가 사라졌다.

유난히 평범한 날이었다. 기묘하거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 전조 증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p. 5)

회사의 한 부서에 막내사원이 출근하지 않은 어느날이었다. 평범한 날은 그저 평범한 날인데, '유난히' 평범하게 느껴지는 날이 '유난'했던 이유는 '눈에 띄는 이상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데(p. 6)'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막내사원 시준의 책상의 풍경, 딱 그런 것이었다. '나는 아까 시준의 책상에서 느꼈던 묘한 이질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책상 위가 완벽하게 깨끗했다. (p. 7)' 완벽하게 깨끗한 책상이 '이질적'이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이 '평범'함과 다다르다는 것은 달리말하면 '평범'하다는 것은 조금은 어수선하고 조금은 어지럽고 조금은 더러운 그런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저는 오늘부로 퇴사합니다. 필요한 서류는 대리인이 참석해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강시준 드림-'

갑작스러운 퇴사문자도 당황스러운데 회사사람들 모두를 당황시킨 단어는 '대리인' 이라는 단어였다. 퇴사에 왠 대리인? 그런데 의외로 그 단어는 무시못할 위력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회사는 점점 술렁거리고 그리고 어떤 이들은 떨기 시작한다. 대리인이 와서 과연 무어라 말할까? 각자 그동안 자신들과 막내사원과의 일화들을 곱씹어 보는 동안 누군가는 속이 울렁거리고 누군가는 좌불안석이 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다른 또 누군가는 ㅋㅋㅋ

단순한 무단 퇴사라고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p. 15)

'그러고 보니 나는 시준 씨한테 실수한 거 없나?'

덩달아 불안해진 나는 그동안의 행동과 말을 천천히 복기해보았다. 별것 없었던 것 같기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p. 17)

엄청난 회사기밀을 들고 튄 것도 아니고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큰 회사의 여러 부서 중 하나의 부서에 속한 막내사원이 퇴사하는 것에 대해 무어 그리 많은 사연이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일화들 속에 과연 막내사원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내일까지 두려움에 떨 사람들이 많아 보이네요. 그러게 회사 다닐 때나 상사고 선배지, 그만두면 아무 관계도 아닐 사람들끼리 진즉 기본 매너는 지키고 살면 좀 좋아요? 지금 여기에 다니고 있으니까 껌뻑 죽는 척 해주는 거지, 나가면 알게 뭐에요? 말도 제대로 안 섞어줄 동네 아저씨고 모르는 아줌마지" (p. 20)

몇장 안되는 짧은 작품이었음에도 풍성하게 읽혔고 지금껏 읽은 그 어떤 직장인 에피소드 보다 산뜻하고 발랄하게 다가왔다. 기묘한 퇴사 절차에 대해 당황해 하는 사람들을 보며 21세기형 사람들과 31세기형 사고관의 만남이 유쾌하게 읽혔다.

직장인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생각났다. '기쁨'과 '슬픔'이라는 대비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속 작품들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사연들이었다. 그 씁쓸함에 비하면 <재능의 불시착>은 아예 그런 구분을 의식하지 않은 작품들을 모은 책인것 같다. 이 신선한 접근에 조금더 다가가보고 싶다. <막내가 사라졌다> 말고도 다른 작품을 읽으려면 어서 이 책을 집어들어야 겠다. '지구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아요' 라고 말하는 31세기형 젊은이들은 또 어디에 어떤 불시착들을 했을까 그래서 어디로 안착하게 되었을까 몹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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