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흑역사 - 왜 금융은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니컬러스 섁슨 지음, 김진원 옮김 / 부키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금융은 어떻게 '앞면이고 내가 이기고 뒷면이면 네가 지는' 독식게임을 만드는가?

전문가, 경제학자, 정치인은 어째서 부의 약탈자들과 결탁하고 그들을 정당화하는가?

시민들은 이런 금융의 저주 속에서 무엇을 얼마나 희생당하는가?

(그래서)

왜 금융은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흑역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개 들키면 부끄러운 실수나 실패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제목이 '부의 흑역사'라고 해서 부자들의 부끄러운 과거사라던가 부가 쌓이는 과정에 있었던 검은돈 거래관련 에피소드 등의 가벼운 얘기들이 나오는 역사책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그런... 책은 아니었다. 영국인인 저자가 영국 금융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현재 영국 금융계는 저주받은 혹은 저주받아야할 산업이라고 밝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Finance Cuese '금융의 저주' 이다.

금융의 저주라는 개념은 단순하다. 금융 부문이 확장하여 합당한 규모에서 벗어나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이 금융 부문을 지탱하는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금융은 사회에 이바지하고 부를 일군다는 전통적인 역할을 외면하고, 수익을 더 보장하는 활동에 치중할 때가 많아서 다른 경제 부문에서 부를 약탈한다. 정치적으로도 힘을 휘둘러서 자기 입맛에 맞게 법이나 규정이나 심지어 사회까지 바꾸어 놓는다. 이 결과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불평등이 심화하고 시장이 무력해지고 공공서비스가 와해하고 부패가 자행되고 대체경제 부문이 설 자리를 잃고 민주주의와 사회에 막대한 폐혜를 안긴다. (p. 19)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자가 말하는 금융의 저주는 금융산업이 일반 시민의 부를 약탈해왔고 그 정도를 점점더 심화시켜왔다는 얘기다. 금융이 부를 축적할수록 대중은 갈수록 가난해지는 이 '금융의 저주' 개념은 저자가 앙골라라는 광물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더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자원의 저주' 상황을 보면서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영국과 앙골라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은 기본적인 사실 하나에서 출발한다. 두 나라 모두 규모가 큰 경제 부문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 앙골라의 경우에는 석유, 영국의 경우에는 금융이 그것이다. (p. 22)] 영국 금융의 저주 중심지는 '시티오브런던'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횡행하고 있는 금융산업은 실은 산업이 아니라 법초월적 약탈행위임을 밝히려 노력한다. ['경쟁력 높게' 금융 부문을 세우는 목적은 저 팽배한 논리를 업고 시티오브런던을 가능한 한 크고 강하게 지키자는 것이다. (p. 36)] 라면서 이런 유형의 '경쟁력'을 추구하는 헛수고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강조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경제사상가는 이 간극을 인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한 1776년가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주된 문제는 누구 부의 창출자인지를 두고 서로 의견이 달랐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전통에 따르면 이들은 부자들이었다. 돈과 자본을 소유한 이들이 공장을 세우고 정부에 세금을 내면 정부는 가난한 보조금 수령자에게 이 부를 재분배했다. 이런 역사관에 비추어보면 가난한 사회적 약자는 자본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같은 존재였다. (p. 43) 거대 자본가는 효율적인 경쟁을 반기지 않으며 자유시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으로는'그렇다고 말하지만 경쟁다운 경쟁이 일어나면 가격이 내려가고 임금이 올라가서 결국 수익이 줄어든다. 자본가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입맛대로 납세자에게 잔인한 시장, 바로 이런 곳에서 노다지를 캘 수 있다. (중략) 사업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아니라 사업계 전체와 나머지 공동체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이 되었다. 이 갈등이 금융의 저주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p. 44)

저자는 상식처럼 알려진 경제적 상황들을 조목조목 뒤집어 놓는다. '부의 축적'에 대한 기본적 관점은 마르크스주의적인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자본론의 기본 개념은 '잉여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자본가가 가지고 있던 자산은 항상 유지될 뿐 가치를 더 생산해내지는 않으므로 자본가의 사업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에게 부가 나누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를 거두어 가는 것이 자본가이다. 저자가 [사업가는 결실을 낳는 일정한 흐름 중간에 개입해 나무를 흔들고는 별 힘 들이지 않고 열매를 주워 도망가 버린다. (p. 44)] 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현대의 금융산업은 마르크스 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모든 금융이 다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금융은 없어서는 안될 도구이다. 다만 [규모가 '너무 큰' 금융이며 권력이 '너무 강한' 금융이며 민주주의로 검증받지 않은 '빗나간' 금융 (p. 50)] 이 문제다. 그리고 이런 문제적 금융의 중심지가 시티오브런던 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블런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 금융이나 경영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심하게 착각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간파했다. 바로 국가'경쟁력' 이다. (p. 52)

세금을 예로 들어보자. 베블런 시절에 등장한 전형적인 조세 도피처 수법은 이전가격이다. 다국적기업이 에콰도르에서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의 바나나를 생산하는데 1000달러가 들며 웨일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이 컨테이너에 든 바나나를 전부 3000달러에 산다고 가정하다. 이 체계 어디쯤에 수익 2000달러가 놓여있다. 다국적기업은 이제 자회사 세개를 설립한다. 에콰도르 회사는 바나나를 생산하고 웨일스 회사는 바나나를 슈퍼마켓에 팔고 세번째 회사인 페이퍼컴퍼니 파나마회사를 직원없이 조세도피처에 세운다. 이 세 회사는 바나나를 다국적기업 안에서 서로 팔고 산다. 우선 에콰도르 회사가 파나마 회사에 1000달러를 받고 바나나를 판다. 그 다음에 파나마 회사가 웨일스 회사에 3000달러를 받고 바나나를 판다. 2000달러 수익은 어디에 남을까? 에콰도르 회사는 바나나를 생산하는데 1000달러를 들였다. 그런데 1000달러를 받고 팔았으니 에콰도르에서는 수익이 0이다. 따라서 세금이 없다. 비슷한 방식으로 웨일스 회사는 파나마 회사에 3000달러를 주고 사서 3000달러를 받고 팔았기 때문에 영국에서도 수익이 0이고 세금도 없다. 하지만 파나마회사는 1000달러에 주고 사서 3000달러를 받고 팔았으니 2000달러 수익을 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조세도피처에 있기 때문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짠! 세금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p. 53)

위의 조세도피처 예시는 가장 쉽고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깨달음을 전달한다. 사업가는 저런식으로 사업을 하면할수록 부를 축적할 수 있고 저런방식이 가능한 조세도피처는 영국령의 섬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지 않지만 영국령이기에 다각도의 접근이 용이한 섬들.

조세도피처에 대한 적나라한 현실은 <머니랜드> 라는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세계 곳곳에 듣도보도 못한 작지만 서류상으로 부유한 곳들이 참 많아서 놀라웠었는데 저자는 영국령 조세도피처에 주목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과연 누구를 위한 자유였는지 밝힌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없애는 자유를 가능케 했다. 경쟁이 없어질수록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영국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폐해를 야기했다. 그러고도 빈털터리가 되었다. (p. 93)] 빈털터리만 되었더라도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 시티오브런던은 '악의 소굴이 된 제국의 심장' 이었다.

새로운 금융시장이 런던에서 태어나 시티오브런던이 신봉하던 자유라는 종교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나 시티오브런던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탈바꿈해 놓는다. 이 금융중심지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하고 정교한 새 도구로 무장하여 세계 곳곳에서, 영국 곳곳에서 부를 뽑아올린다. 당시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화려하게 성장해서 제국을 대체하고 능가하여 시티오브런던의 기득권층에 바치는 부와 특권의 원천이 되기에 이른다. (p. 103) 시티오브런던 기득권층은 제국의 붕괴를 몹시 애통해하면서 소리없이 영국을 역외 조세 도피처와 금융 안식처로 변모시켰다. (p. 105)

금융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저자가 아무리 상세히 풀어설명해 놓아도 이해에 한계가 있긴 했다. 조세도피처가 나쁘다는 것도 알겠고 법인세 인하가 어떤식으로 뒷거래가 되는지도 알겠는데 그렇게 사업가가 부를 축적하는 것이 시티오브런던 금융산업에는 왜 이로운 것일까? 간단하게 이해한바로는 '수수료'때문이었다. [영국중앙은행은 역사적으로 시티오브런던 편에 내내 서 왔다. 외환 관리를 강화할까 봐, 해외령이 외환관리에 어떤 위험을 끼칠까 봐 조바심을 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외령에 돈을 은닉해 놓는 외국인의 생각을 말없이 반겼다. 이 돈을 관리하면 외환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p. 114)] 저자는 시티오브런던이 역외 모형의 심장부라고 표현한다. 탈세와 해외은닉으로 거대자본이 된 사업가들은 더더 탐욕을 키우며 독식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오늘날 대형쇼핑몰로 걸어들어가면 보크와 그 지지자가 낳은 자식이 온통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풍요의 뿔처럼 슈퍼마켓 선반이 넘치도록 가득 채운 상품은 서로 다른 다양한 상표로 포장되어 있지만 대부분 유니레버나 크래프트하인즈 같은 몇몇 거대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다. 초콜릿을 사먹고, 휴대전화로 수다를 떨고, 선글라스를 쓰고, 신발을 신고, 물을 마시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부대끼며 기차에 타고,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푹 빠져 살면서 지갑을 열 때마다 우리는 숨어 있는 '독점세'를 낸다. (p. 148)

대놓고 독점인 것을 알게하는 시대는 지난지 오래다. 분명 다른 상표이지만 알고보면 같은 그룹의 상품들, 그렇게 경쟁업체끼리의 카르텔보다 더 위험하지만 더 교묘하게 우리는 독점세를 내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해체는 도구상자에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한 가지 도구일 뿐이다. (p. 157)] 라고. [독점과 싸우려면 다양하고 종합적이며 경제 전 영역을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 (p. 156)] 라고.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과거 이러한 금융의 저주는 주로 우파에 의해 주도됐었다면 점점더 좌우의 구분이 없어져 온 것 같다.

제3의 길은 개념이 꽤 단순했다. 좌파 정당이 정계에서 새로운 타협안을 분명히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추세라고 지지자들은 주장했다. 각 나라들이 이를 수용하고 적응해 나가야 성장하는 세계 금융시장에 올라탈 수 있으며 혁신적인 사회 정책을 펴면서 구태의연하지만 바람직한 재분배를 약간만 해도 이 세계화라는 거친 날을 무디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략) 하지만 제3의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외 모형이었다. 거친 세계화의 바다에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를 조세 도피처로 탁월하게 변신시킬 수 있는 국가한테나 맞는 전략이었다. 결국 이 모형을 이끌어가는 토대는 경쟁력 강령이었다. 각 국가가 '사업에 개방'해야 하며 다국적 대기업과 은행과 세계 유동자금을 꾀기 위해 끊임없이 미끼를 흔들어야 한다는 이론이나 이념이었다. (p. 175)

국가경쟁력이나 세계화 관련 내용을 읽으며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다. 너무나 익숙했던 이념들인데 긍정의 모토가 아니었단 말인가...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저자가 말하는 영국의 금융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이지 모든 영역에 확대시키는 것도 곤란하다. 늘 적절한 선이 중요하다. 여하튼 그렇게 국가는 기업이 되고 국민은 종업원이 됐다는 표현에는 수긍가는 면이 있긴 했다.

경쟁력 강령의 중심부에 혼란이 하나둘씩 쌓여 갔다. 경제나 과세 체계나 도시는 기업이 아니며 '경쟁'을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 이 용어와 뜻이 가장 잘 통하는 경우는 군사적인 의미로 쓰일 때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할 만큼 강성해서 '경쟁에서 이길' 때에나 쓰는 말이다. 그런데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은 이와 다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며 이 이윤에서 세금을 낸다. 도대체 이 이윤에 대응하는 등가물이 국가에서는 무엇일까? 예산 흑자? 무역수지 흑자? 이는 불필요한 긴축처럼 정상이 아닌 경제정책이나 과소소비를 나타내는 징후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예산 흑자에는 어떻게 세금을 매겨야 할까?) (p. 189)

기업의 세금은 낮춰주고 국가운영에 비용은 들고 필요한 세금은 국민에게서 걷는다. 기업은 수익을 해외에 은닉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고 복지를 줄인다. 임금은 줄고 물가는 오르고 세금도 오르면 결국 기업의 상품을 살 구매자도 없어질텐데 왜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어 온 걸까...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기 때문인걸까... 조세도피 말고도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했다. 특히나 신탁이나 사모투자 는 현대에서 가능한 금융 약탈의 최고봉이라 할만 했다. 게다가 인력낭비도 문제였다. 저자는 책의 초반에서부터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이 순수학문이 아니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금융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 했었다. 또다른 분야도 있었지만 여하튼 다 금융산업인 셈이었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두 배관, 정부의 위탁정책과 민간 부문의 금융화는 부와 재능 넘치는 사람을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모두 쫓아내고 있다. 이때문에 새로운 질문이 하나 생겨난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대답을 하자면 이들은 일정한 형체 없이 꾸준히 규모와 세력을 키우는 경영이나 재무 상담가와 자문가 집단으로 들어간다. (p. 406)] 금융산업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도 교묘한 약틀을 옹호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경제학자들이었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에 대해 [아무리 정직하고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연구자라 해도 대형 은행과 다국적기업의 기호에 맞게 체계적으로 증거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p. 423)] 라고 말한다. 젊은 인력은 낭비되고 국민은 약탈당하고 있는데 영국이라는 국가차원에서도 얻는게 없이 자본가들만 거대한 부를 쌓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반박의 여지없이 현재 영국은 금융의 저주에 걸리고 시름시름 앓고 있다. (p. 454)] 고... 그뿐만이 아니다. 이젠 국가안보까지 그 영향이 끼치고 있다.

금융의 저주는 분열을 초래하고 기반을 약화하고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서구 주요 경제대국 가운데서도 특히 영국이 중국의 영향력에 가장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2013~16년 사이에 이루어진 핵 협정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다. (p. 460) 예를 들어 시티오브런던에서 몸집이 가장 큰 금융괴물 HSBC를 보자. 홍콩상하이은행이 원래 이름인 이 거대 다국적 기업은 본부가 런던에 있다. (중략) 2017년 즈음 HSBC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이며 17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수익 가운데 90퍼센트 가까이가 아시아에서, 구체적으로는 홍콩과 중국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이 이유만으로 HSBC는 영국 정부가 내리는 지시보다 중국 공산당이 내리는 지시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더 크다. 아니 그 동안의 행태를 살펴보면 오히려 HSBC가 영국 정부에 이래라저래라 지시내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 왔음이 드러난다. (p. 462)

영국에 내린 '금융의 저주'를 읽는 내내 드러난 영국의 실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하면 신사의 나라 아닌가? 하지만 알고보니 영국은 해적의 나라였다. 예나 지금이나.

부의 수탈이 불러온 불평등은 특히 위험하며 분열과 불화를 낳는다. 중산층이나 빈곤층이 심한 박탈감을 느끼고 독 안에 든 쥐 같은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억만장자 계층이 어떻게 부를 쌓는지 우리가 그 과정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우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낡은 정치 공식으로 되돌아간다. 언론 통제력을 이용해 대중의 분노를 다른 방향으로,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게로, 성적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로,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로 돌린다. 증오라 가득 찬 이 공식을 세상은 과거에도 이미 목격한 적이 있다. (p. 465)

익숙한 공식이다. 알면서도 당하는 수법이다. 오랜 세월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은 아마도 계속 효력이 있을 것 같은 방법이다. 하지만 무력하게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저자는 '금융의 저주를 물리칠 똑똑한 자본통제'를 주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이다. (p. 470)] 그밖에도 저자는 할수 있는 모든 방안을 고민한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시민이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도 경제도 그 둘이 힘을 합친 금융도 모두 국민을 일반노동자를 시민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오늘날 영국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적 대립은 금융화와 금융의 저주를 지지하는 편과 금융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사회를 섬기기를 바라는 편 사이에 놓여 있다. 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p. 475)] 로 마무리한 저자의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없다. 우리는 영국 시민이 아니니까 저자가 제시한 첨예한 대립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물론 크게 보면 정치 경제 금융 각 부분들에서 세계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적인 내용들이 있었고 충분히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이었다. 상세한 <미주> 와 <찾아보기> 만 봐도 저자가 얼마나 꼼꼼히 찾아보고 연구해서 정리한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국금융의 저주를 세계적 부의 흑역사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표지도 너무 예쁘고 편집도 깔끔해서 눈에 들어오는 책인데 본문내용과 어색한 제목이 아쉽다.(처음 예상을 잘못한 내 탓도 있겠지만...;;;) 여하튼, 읽는 내내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금융계가 깨끗하다는 건 아니지만 시티오브런던 처럼 적어도 세계적으로 패악을 끼치는 것은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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