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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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가장 다채로웠던 시와 소설의 풍경을

한 권으로 만나는 '시소'

<시소>는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2021년 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담은 책이다. 매 계절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한 편씩 선정하여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 프로젝트는 각 작품마다 작가와의 인터뷰가 뒤따르고, 그 작품들과 인터뷰를 한권에 모아낸 책이 <시소>다.

문학지를 구독하지 않는 이상 발표되는 시와 소설들을 바로바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기에, 잡지가 아니라 한권의 작품집을 선호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최신의 시와 소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한권의 <시소> 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1년의 사계절동안 발표되고 그 계절 마다 선정위원들이 신속하게 선별하여 <시소>에 담은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봄 - 시 : 안미옥 <사운드북> / 소설 : 손보미 <해변의 피크닉>

여름 - 시 : 신이인 <불시착> / 소설 : 이서수 <미조의 시대>

가을 - 시 : 김리윤 <영원에서 나가기> / 소설 : 최은영 <답신>

겨울 - 시 : 조혜은 <모래놀이> / 소설 : 염승숙 : <프리 더 웨일>

나에게 시란 한글로 쓰여졌어도 외계어로 읽히는 분야이기에 시를 읽고 시인의 인터뷰를 읽어도 시의 이해는 역시 무리였다. 따라서 소설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감상을 남겨두고자 한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하고 미심쩍고 불미스러운 그 느낌-그 당시에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런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무엇을 궁금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남자애들은 갑자기 키가 컸고, 골격이 자랐다. 여자애들 중 일부는 가슴이 나오고 엉덩이가 커졌다. 크고 작은 소동이 있었다. (p. 39 -해변의 피크닉 中)

이 작품은 열한살의 '나'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작품으로 이제 막 이차성징이 시작되려는 어린 소녀의 감정적 혼란을 다루고 있다. 어릴때 이혼한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유일한 혈육인 손녀를 만나기 위해 시부모는 전 며느리와 딜을 했고 일곱살때부터 방학이면 부산에 내려가 한달씩 보내게 된 '나'는 열한살 여름방학때 처음으로 삼촌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렴풋이는 깨닫게 되는 가족간의 비틀어진 관계와 그 관계를 해석하는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춘기소녀도 아닌 열한살의 '나'는 비틀어진 첫사랑을 꿈꾼다.

충조의 잘못도 있었고, 엄마의 잘못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론 내가 잘해야 되는 문제로 귀결되었던 지난날을 언니도 다 알았다. (p. 163)

우리는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다. 하지만 둘 다 그걸 인정할 수 없었는데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5천만원은 아버지가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이었다. 우리는 그걸 너무나 잘 알았기에 절대로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아버지의 유산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느새 아버지는 6평 남짓한 반지하방의 전세금만 남겨준 사람이 되어 있었다. (p. 178) (미조의 시대 中)

미조는 단순경리업무 구직중이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시를 쓰는 중이고 하나뿐인 오빠는 진작부터 가출해서 거의 절연상태다. 살고 있는 집이 재개발에 들어가자 집주인은 어서 방을 빼달라하는데 전재산인 5천만원으로는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반지하 전세방조차 구하기 힘든 상태다. 절친인 수영언니는 성인웹툰 어시로 그림을 그리는 중인데 너무 왜곡된 웹툰 내용에 스트레스 받아서 원형탈모가 진행중이다. 미조의 사정을 다 아는 수영언니는 미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조야, 너 그거 아니? 인간을 육체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대야. (p. 184)'

네 나이때는 하루에 한쪽이나 두쪽의 일기를 꼭 써야 잠들 수 있었어.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일기의 길이는 점점 줄어들었고 요즘에는 그냥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손님을 만났는지 같은 내용을 짧게 메모하는 수준이야. 오늘이 어제와 달랐고 또 내일과도 다를 거라는 근거를 적어두는 거지. 기록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같은 날이 되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한꺼번에 삭제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 아마 수감 생활을 하면서부터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 나는 그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글을 썼다. (p. 245 답신 中)

자매가 있었다. 언니는 일곱살, 동생은 네살 일때 부모는 이혼을 했고 자매는 고모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자매를 떠났을때의 엄마 나이는 고작 스물일곱이었다. 아빠는 일용직을 하며 전국을 돌았고 자매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는 심정으로 자랐다. 하지만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p. 268)' 만이 자매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언니는 열여덟에 만난 학교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게 되고 빠른 결혼생활을 했지만 남편은 만삭의 아내에게 자신이 없을땐 보일러도 틀지 못하게 하고 동생이 있거나말거나 막일을 시키는 사람이었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 언니의 삶은 더 고달파 보였지만 언니는 늘 괜찮다고 남편은 좋은 사람이라고 동생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형부의 외도를 목격했고 언니에 대한 폭력을 눈앞에서 보게 된 순간 동생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니는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만들고 모른척' 했다. 그때 그 나이 스물세살이 된 조카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이 작품의 제목은 <답신>이다. 받은 편지도 없건만은 답신 이라니... 누가 누구에게 보낸 것일까.

주제넘지 말라고, 수경씨 제발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 그때 나는 그런 말을, 두 손에 다 쥘 수 없는 크기의 공처럼 어, 어, 어 소릴 내며 받아 안고는 어쩔 줄 몰랐다. (중략) 그래, 그러고 보니 그때도, 나는 또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었다. 공은 이미 저리로 굴려버렸다는 듯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왜 따져 묻디 않았을까. 화내지 않더라도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는 않아도 됐을 텐데. 아니, 당연히, 나는... 무서웠던 것 같다. (p. 347) 알고 있다. 나는 아주 느린 사람, 시간 가는 것에 느리고 감정이 내 속으로 드나드는, 들고 나는 지점을 곧장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즉각적인 것들은 종종 나를 상처 입혔으니까. 뒤늦은 후회와 자책으로 몰살당하는 기분에 휩싸이게 했으니까. 나는 점차로 무감해지는 것을 택하여 왔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바짝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도. (p. 353 프리 더 웨일 中)

수영씨와 우상우씨는 함께 소설가를 꿈꾸는 사이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수영씨만 등단하게 되고 우상우씨는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우상우씨가 사고로 죽었을때 수영씨의 뱃속엔 둘의 아이가 있었다. 혼자 아이를 낳고 맘카페에서 무상나눔 되는 품목들에 연연하며 아둥바둥 살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되자 교재전문출판사에 취직하게 됐지만 경력도 없이 나이도 있는 싱글맘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아이는 수시로 아팠고 코로나때문에 어린이집에서도 가정보육을 권했지만 회사는 재택이 아닌 정상출근해야 했기에 종종거리며 사무실 눈칫밥을 먹던 중에 어느날 부터 노란쪽지가 돌기 시작한다. '프리 더 웨일' 이라고 쓰여진, 회사 게시판에 올라오는 족족 사라지던 '차별 철폐'라는 의미의 그 문구... 하지만 수영씨의 삶은 그 메모를 바라보는 것조차 무서웠다...

시를 읽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단편소설을 읽는 것도 녹록치 않았다. 단편소설은 왜 그리 어두운 건지... 이 시대 싱글여성의 삶은 왜 그리 힘들기만 한건지.... 사계절 마다 발표된 작품이라고 해서 그 계절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 어느 작가가 발표 계절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겠는가;;; 따라서 어느 계절에 발표되었든 2021년 이 한해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작품들은 일종의 '82년생 김지영'들의 이야기다. 인터뷰를 보면 작가들 본인들도 이런저런 육아고충을 토로하고 있었고 그러고 보니 모두 여성작가이자 비슷한 연령대라서 문화적 공감코드도 비슷했을 것 같다. 그렇게 이 책은 사계절의 각기 다른 시와 소설을 담았지만 서로 제법 어울리는 한권의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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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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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유대교에서 여성 랍비라는 것부터 색다른 책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여전히 진행중인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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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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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거대하고 상실의 시간을 건너는 이들에게 약하고, 일시적이며, 빈틈투성이의 삶이 보내는 위로

내가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 책의 홍보문구 한 문장 때문이었다.

[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저마다 아름답다" 소설가 김연수 추천 ]

이라고 책의 띠지에 쓰여있는 것을 보고 이 책이 궁금해졌다. 책에 대해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었지만 김연수 작가가 아름답다고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내가 아는 소설가들 중에 김연수 작가만큼 서정적인 작가는 없기 때문이다.

책을 받아들고 보니 이 책은 프랑스에 사는 여성 랍비인 저자가 자신이 진행했던 장례식들에 대해 쓴 에세이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장례식이라는 예식을 통해 추모하고 애도하는 유대인 랍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은 그렇게 죽음에 대한 송가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찬가이기도 했다. 이 책의 원제를 번역하면 <죽은 자와 함께 살기 : 위안에 대한 작은 논문> 이다.

유대 전통은 천 가지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 당신을 따라올지라도 그를 돌려보낼 방법이 있다고, 죽음이 결국 당신을 추적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은 수많은 전승 속에 등장하는데, 천사의 형상으로 우리네 집을 방문하고 우리네 마을을 둘러본다. 이 등장인물은 심지어 이름까지 있다. 죽음의 천사 아즈라엘이다. 아즈라엘은 한 손에 검을 쥐고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 주변을 서성거린다고 전해진다. (p. 15) 랍비의 일이란 뭘까? 단연, 의례를 집행하고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해가 갈수록 내 직업과 가장 엄밀하게 가까운 직업명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바로 이야기꾼이라는 이름이다. (p. 19) 당신이 손에 잡은 이 책은 내가 들려줄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들, 내가 경험해야 했거나 내가 함께할 수 있었던 삶과 애도들을 망라한다. (p. 25)

'나는 장례를 진행할 때마다 우리 안에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죽은 자에게서 살아 있는 자에게도 이어지는 이 이야기의 힘으로, 그 자리를 빛내고,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p. 25)' 저자는 말한다. 정통 유대전통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여성랍비가, 그들의 부모세대가 탈취한 땅에서 프랑스로 망명하여 랍비로서의 삶을 살면서, 죽음의 천사가 지나간 자리를 되돌아보며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장례식에서 이야기를 한다. 저자는 이야기꾼이 맞다. 다만 그 이야기의 소재가 '죽음'일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좀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죽음'에 대한 경험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아마도 '죽음'에 가까워져가고 있다고 느끼는 나이일수록 이 책속의 이야기들을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토라는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에게 직접 호소한 것이었다. 시나이산에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그것은 우리의 손안에 있지, 당신의 손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해석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는 것이고, 어떤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도, 다수가 표현한 것인 한 현자들의 의견을 무효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탈무드]에서 이 에피소드는 하느님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내 아들들이 나를 이겼구나, 내 아들들이 나를 이겼어" (p. 40~41)

살인자들은 그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의 가당찮은 모순을 알아차렸을까? 앙갚음을 요구하고 무시당한 것에 분통을 터뜨리는 신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다. 어떤 '위대한'신이 이토록 옹색하게 '초라해져서'인간이 당신의 체면을 세워주길 요구한단 말인가?신이 모욕을 당해서 노여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크나큰 모독이 아닐까? 유머러스한 신은 위대하다. 유머감각이 떨어지는 그분은 몹시 졸렬하다. (p. 44~45)

이 책의 첫 에피소드는 2015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이슬람단체의 테러로 사망한 사람의 장례식에서 저자가 느꼈던 것들을 풀어내고 있다. 유대교 랍비인만큼 탈무드적 이야기가 이 책에 자주 나올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도록. 몇가지 전통적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저자가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동화적 탈무드와 결을 달리한다. 저자가 재해석해낸 이야기들은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신랄한 면이 있다. 또한 그럼에도불구하고 온정적이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우리의 장례식 날에 우리의 삶이 비극의 형식과는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고, 우리가 다른 어휘와 다른 상황의 언어로 회상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스릴러, 로맨스 시리즈, 신화, 심지어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처럼 간주될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 요약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 57)

저자의 생각은 우리네 전통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예전에 집에서 초상을 치루던 시절 초상집은 시끌벅적했다. 밤새도록 떠들고 놀고 마시며 '죽음'을 슬픔으로만 내리누르지 않고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어느때부터인가 장레식장에서 고스톱치는 사람들도 없어졌을만큼 우리네 장례식은 그야말로 어둠에 잠겨버렸다. 그렇게 비극적인 비극으로만 치루는 장례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장례식인걸까? 그러한 애도가 '죽음'이 곧 단절이라는 공포심을 더 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차피 사람은 다 죽는다. 모르지 않던 '죽음'에 대해 왜 점점 두려움과 공포를 키워가는 쪽으로 변화되어 온 것일까? 그보다는 살아있었을때의 사랑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애도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그들이 이미 아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당신에게 말한 것을 그들에게 번역해줌으로써 그들이 그말을 새로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로, 그들의 입을 벗어난 이야기가 그들의 귀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p. 97)' 라는 저자의 말처럼,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는 죽음보다 각자가 알고 있는 떠난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명사의 남녀 성을 구분하는 프랑스에서 직업명은 기본적으로 남성형이다. (중략) 2019년이 되어서야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오랫동안 터부시되었던 주제인 직업의 여성형을 받아들였다. (p. 106)

무엇보다 선례를 만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졌다. (p. 117) 이 일화가 이토록 유명한 투쟁에 참여한 여성의 장례식 날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그저 피식 웃고 지나갔을지 모른다. 시몬 베유의 무덤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지워버린 행위가 그녀의 투쟁 현안을 탁월하게 증명해준 셈이다. (p. 118)

저자가 1974년생이다 보니 그녀가 진행하는 장례식의 대상들은 그녀의 부모세대, 그러니까 마지막 남은 전쟁세대라 할 수 있다. 유대인에게 2차대전이란 홀로코스트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의 삶은 정통 유대교적이기엔 신이 너무 무능했음을 경험해버렸기에 이도저도 못하는 그런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한다. 시몬 베유도 그런 생존자였고 프랑스에서 선구자적 페미니스트였다. 테러는 외부에서만 폭탄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여전히 남성중심적이고 한국인들이 선망하는 서양인들의 언어는 여성들에 대한 터부와 무시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새삼, 평등한 한글과 결혼해도 유지되는 내 이름에 감사를!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왕이었다. (중략) 그는 왕궁을 세우고, 나무를 심고, 과실을 수확하고, 보물을 쌓아올린다. 카인의 아들답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그는 말년에 <전도서>라는 책을 쓴다. 그리고 양피지에 모두에게 알려진 이 문장을 반복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구절은 <성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이다. 또한 가장 잘못 번역된 구절 중 하나다. 솔로몬은 히브리이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하벨 하발림 하콜 하벨" 예루살렘의 왕은 허무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입김이고 입김이니 모든 것이 입김이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아벨이고 아벨이니... 모든 것이 아벨이다!" 이렇게 현자, 소유자, 정착민, 그리고 재물을 획득하고 세상의 영속성을 믿었던 자는 말한다. 모든 것이 아벨이라고, 그는 인정한다. 우리가 튼튼하게 세운 모든 것이 결국 마모되거나 사라질 때, 약하고 일시적이며 빈틈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지나간 존재의 입김은 증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숨을 불어넣고, 우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p. 270~271)

책을 읽으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역나나 어원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새로 알게된 부분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히브리어의 원어 해석을 곁들인 저자의 문장들을 읽다보면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들을 더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자가격리' 시대에 함께 하지 못한 '죽음'들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저절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랍비이자 '쇼아'생존자의 손녀이면서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의 이야기들은 그동안 알았던 유대교나 탈무드나 성서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 조금 다른 해석을 보여주어 좋았다. 무엇보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죽음들이 홀로코스트의 생존유대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득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전쟁의 마지막 세대 그중에서도 가장 피해를 입은 분들의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도 저자와 같은 책을 내는 이가 나와준다면 좋으련만.... 여하튼, 이 책은 '죽음'을 다룬 책이긴 하지만 마냥 어둡지 않고 그렇게까지 종교적이지도 않아서 새로웠다. '상실'과 '죽음'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는 이가 읽어보면 좋을 에세이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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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의 시간 - 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학입시를 둘러싼 미래와 성장 너머의 이야기
김보미 지음 / 책과이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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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학입시를 둘러싼 미래와 성장 너머의 이야기

대학에 진학해야 할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해마다 변하는 입시전형은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주제다. 언제부터인가 '입학사정관'이라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대학입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정작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자질을 갖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었다. (검색해도 구체적으로 나오질 않았다) 입시전형도 헤깔리는데 정보까지 깜깜이니 더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 밖에 없었기에 입시는 더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니 입학사정관으로 오래 일한 저자가 알려주는 '치열한 대입 현장에서 고뇌하며 바라본 입시의 풍경'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대학은 학생을 선발할 때 그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보다는 무엇에 호기심을 가지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선발의 핵심은 기존의 표준화된 필답시험에서 벗어난 지금의 학생부위주전형(학교생활기록부를 주로 하는 전형)이다. 이 대입전형은 정담을 맞히는 몇 점짜리 학생을 골라내는 것이 아닌, 고등학교 3년이라는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서 학생의 역량을 읽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입학사정관'이다. (p. 6) 지금부터 '입학사정관'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세상 재미없는 교육 그리고 머리가 지끈하기만 한 대입이라는 주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봄부터 겨울까지 1년 살이 하듯 지내는 입학사정관의 시간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털어놓아보자고 마음먹었다. (p. 8)

전부터 궁금했다.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수가 없었다. 뉴스들을 보면 특출한 전공별 전문가가 입시에 관여하는 제도처럼 보여서 나처럼 일반인은 안되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 대체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입학사정관이 되나 더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직업이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입학사정관은 입시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각 대학내에서 일한다. 저자는 둘러둘러 입학사정관의 특성과 중요성에 대한 설명하지만 읽어나가면서 정리하고 보니 '입학처에서 일하는 교직원' 이었다. 딱 그거였다. 대학에도 다양한 행정업무 직원들이 있다. 그중 입학처에서 일하는 직원을 뽑으면 그들이 결국 '입학사정관'인 것이다. 기업에서 영업직을 뽑고 홍보직을 뽑고 관리직을 뽑으면 그들이 영업사원이 되고 홍보사원이 되고 관리사원이 되듯이 대학에서 일하는 교직원 중에 입학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결국 입학사정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굳이 왜 그들만 그 직원들만 별도로 입학사정관이라고 부르는가?

여전히 입학사정관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문제는 늘 여기서 시작한다. 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수록 잘못 알기 쉽고, 오해하기 쉽다. (p. 57)

2007년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입학 정원의 일부에 한해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하면서 각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p. 68) 입학사정관은 채용사정관, 전환사정관, 교수사정관 그리고 위촉사정관으로 구분한다. 생각보다 구분이 다양한 셈이다. 입학처에서 근무하는 입학사정관은 수로 따지면 채용사정관이 대부분이다. 위촉사정관은 평가 기간에 일부 참여하지만, 오히려 그 수는 채용사정관보다 훨씬 더 많은 편이다. 위촉사정관의 대부분은 학교 소속 교수 중 전공 단위별 또는 학부 단위별로 위촉하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제34조의 2에서는 입학사정관이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에 기여하기 위한 대학의 학생 선발에 관한 일을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법령 어디에도 입학사정관이 몇 세 이상이어야 하고, 무슨 전공을 이수해야 하고, 최소한 어느 학위 이상을 소지해야 한다는 조항이나 규정은 없다. 없는 법령을 만들거나 그 기준을 정비하는 것보다 우리가 하기 쉬운 것은 비평이다. 그래서 한동안 입학사정관의 나이, 전공, 학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p. 69)

입학사정관은 엄청난 수련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고시에 해당하는 자격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자가 대학 행정과 교육 관련 업무를 이해하고, 꽤 많은 시간 교육을 받고, 실제 업무에 투입될 뿐이다. (p. 72)

그러니까 입학사정관에 대해서 검색해도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었던 건 그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입시에 민간한 나라에서 대입에 이렇게 직적접으로 관여하는 직군에 대해 그 명확한 기준이 아직 없다는 것은 실로 이상해보인다. '어떤 사람이 입학사정관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역량과 자질이 필요한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제도가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지금, 앞으로 내디딜 필요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p. 75)' 는 저자의 말에 동의 한다. 복잡해진 입시전형의 혼란을 단순화하는 것으로 번져가는 논란의 불씨를 꺼트리는데만 급급하느라 그렇게 '정성평가'에 대한 외부적 요인에만 신경썼을 뿐 여전히 남아있는 '정성평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내부적 요인에 대해선 너무 관리가 없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수치화된 것들을 단순 계산하는 평가 방식(정량평가)에 비하면 이 평가 방식(정성평가)은 경제적이지 못한 게 분명하다. 꽤 오랜 시간 고민해야 하고, 꽤 오랜 시간 토의해야 한다. 이 평가 방식이 완전무결하지는 않더라도, 또한 바로 그렇기에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대학의 인재가 될 학생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서류의 면면을 샅샅이 살펴보기 위한 공부에 매진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학생들이 학과 내에서 어떤 수업 태도와 결과를 보이는지를 직접 목도하는 교수도 어느새 이 평가 방식에 미래를 투영한다. (p. 84)

입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입시전형에 대한 원래의 취지를 생각하기 어렵다. 내가 들어가야 하는 대학을 판단할땐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본적 있을까? 대학은 왜 그런 입시전형을 선택했을까, 그 결과들에 대해 지난 10년간 축적된 결과들은 어떠할까, 그렇게 논란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입시제도가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평가를 받는 입장이 아닌 평가를 해야 하는 입장을 생각해보면 입시에 대해 조금 다른 이해의 측면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지사지의 생각은 입시준비를 하는 입장에서도 분명 도움이 될 부분이 있었다.

대입제도에 무엇이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사교육기관까지 움직인다. 우리는 서로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쉽사리 손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대입제도의 개혁만으로는 바뀔 수 없다. 대입제도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이루는 만능키가 될 수 없다. 이쯤 되면 교육문제인지 사회문제인지, 사회문제를 교육문제로 조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치문제를 교육문제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할 듯 하다. (p. 180)

적절한 문제의식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은 공교육이 아니다. 철저히 필요에 의해 지원하고 뽑는 선택적 사교육이다. 그런 사교육의 정점인 입시문제를 공교육과 연결시키는 것은 정확한 포인트라고 할 수 없다. 어떤 문제가 이슈화될때는 항상 그 이슈화하는 사람들의 목적을 파고들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지금의 대입 현실에 대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학술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를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미시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더불어 입학사정관이 하는 일의 모든 것 그리고 그 깊이를 담았다고 자부하지는 못하겠다. 그저 이 책을 통해서 입학사정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왜 그런 일을 해나가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p. 212)

저자는 입학사정관의 일년살이를 통해 입학사정관이 하는 일과 그 일을 하면서 느꼈던 고민들에 대해 가감없이 풀어내고 있다. 읽으면서 입학사정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기도 했고 더 아리송하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일단, 감사했다. 저자의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입시때만 반짝 서류검토하는 사람들인줄 알았던 입학사정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됐고 그 일을 함에 있어 어떤 과정과 고민이 있는지 알게 됐고 일년내내 대학내에서 입시관련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게 됐다. 또한, '무엇보다 여전히 대입이라는 전쟁터에서 대입의 방향과 선발을 위한 평가 그리고 교육을 고민하는 입학사정관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응원한다. 나아가 그 노력이 큰 힘이 되어 조금이나마 제도적으로 안정된 틀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p. 212)' 라는 저자의 바람에 공감이 갔다. 저자와 같은 마음가짐과 고민을 멈추지 않는 입학사정관들이 많다면 그런 사람들이 하는 '정성평가'는 믿을만 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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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수업 - 나를 알아가는 공부
향선 지음 / 피그말리온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명리학의 기초를 쉽게 알려주는 책이에요. 기초를 넘어서는 내용은 좀 어렵기도 한데 전체적으론 유익한 책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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