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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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가장 다채로웠던 시와 소설의 풍경을

한 권으로 만나는 '시소'

<시소>는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2021년 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담은 책이다. 매 계절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한 편씩 선정하여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 프로젝트는 각 작품마다 작가와의 인터뷰가 뒤따르고, 그 작품들과 인터뷰를 한권에 모아낸 책이 <시소>다.

문학지를 구독하지 않는 이상 발표되는 시와 소설들을 바로바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기에, 잡지가 아니라 한권의 작품집을 선호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최신의 시와 소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한권의 <시소> 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1년의 사계절동안 발표되고 그 계절 마다 선정위원들이 신속하게 선별하여 <시소>에 담은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봄 - 시 : 안미옥 <사운드북> / 소설 : 손보미 <해변의 피크닉>

여름 - 시 : 신이인 <불시착> / 소설 : 이서수 <미조의 시대>

가을 - 시 : 김리윤 <영원에서 나가기> / 소설 : 최은영 <답신>

겨울 - 시 : 조혜은 <모래놀이> / 소설 : 염승숙 : <프리 더 웨일>

나에게 시란 한글로 쓰여졌어도 외계어로 읽히는 분야이기에 시를 읽고 시인의 인터뷰를 읽어도 시의 이해는 역시 무리였다. 따라서 소설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감상을 남겨두고자 한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하고 미심쩍고 불미스러운 그 느낌-그 당시에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런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무엇을 궁금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남자애들은 갑자기 키가 컸고, 골격이 자랐다. 여자애들 중 일부는 가슴이 나오고 엉덩이가 커졌다. 크고 작은 소동이 있었다. (p. 39 -해변의 피크닉 中)

이 작품은 열한살의 '나'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작품으로 이제 막 이차성징이 시작되려는 어린 소녀의 감정적 혼란을 다루고 있다. 어릴때 이혼한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유일한 혈육인 손녀를 만나기 위해 시부모는 전 며느리와 딜을 했고 일곱살때부터 방학이면 부산에 내려가 한달씩 보내게 된 '나'는 열한살 여름방학때 처음으로 삼촌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렴풋이는 깨닫게 되는 가족간의 비틀어진 관계와 그 관계를 해석하는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춘기소녀도 아닌 열한살의 '나'는 비틀어진 첫사랑을 꿈꾼다.

충조의 잘못도 있었고, 엄마의 잘못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론 내가 잘해야 되는 문제로 귀결되었던 지난날을 언니도 다 알았다. (p. 163)

우리는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다. 하지만 둘 다 그걸 인정할 수 없었는데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5천만원은 아버지가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이었다. 우리는 그걸 너무나 잘 알았기에 절대로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아버지의 유산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느새 아버지는 6평 남짓한 반지하방의 전세금만 남겨준 사람이 되어 있었다. (p. 178) (미조의 시대 中)

미조는 단순경리업무 구직중이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시를 쓰는 중이고 하나뿐인 오빠는 진작부터 가출해서 거의 절연상태다. 살고 있는 집이 재개발에 들어가자 집주인은 어서 방을 빼달라하는데 전재산인 5천만원으로는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반지하 전세방조차 구하기 힘든 상태다. 절친인 수영언니는 성인웹툰 어시로 그림을 그리는 중인데 너무 왜곡된 웹툰 내용에 스트레스 받아서 원형탈모가 진행중이다. 미조의 사정을 다 아는 수영언니는 미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조야, 너 그거 아니? 인간을 육체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대야. (p. 184)'

네 나이때는 하루에 한쪽이나 두쪽의 일기를 꼭 써야 잠들 수 있었어.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일기의 길이는 점점 줄어들었고 요즘에는 그냥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손님을 만났는지 같은 내용을 짧게 메모하는 수준이야. 오늘이 어제와 달랐고 또 내일과도 다를 거라는 근거를 적어두는 거지. 기록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같은 날이 되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한꺼번에 삭제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 아마 수감 생활을 하면서부터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 나는 그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글을 썼다. (p. 245 답신 中)

자매가 있었다. 언니는 일곱살, 동생은 네살 일때 부모는 이혼을 했고 자매는 고모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자매를 떠났을때의 엄마 나이는 고작 스물일곱이었다. 아빠는 일용직을 하며 전국을 돌았고 자매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는 심정으로 자랐다. 하지만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p. 268)' 만이 자매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언니는 열여덟에 만난 학교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게 되고 빠른 결혼생활을 했지만 남편은 만삭의 아내에게 자신이 없을땐 보일러도 틀지 못하게 하고 동생이 있거나말거나 막일을 시키는 사람이었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 언니의 삶은 더 고달파 보였지만 언니는 늘 괜찮다고 남편은 좋은 사람이라고 동생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형부의 외도를 목격했고 언니에 대한 폭력을 눈앞에서 보게 된 순간 동생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니는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만들고 모른척' 했다. 그때 그 나이 스물세살이 된 조카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이 작품의 제목은 <답신>이다. 받은 편지도 없건만은 답신 이라니... 누가 누구에게 보낸 것일까.

주제넘지 말라고, 수경씨 제발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 그때 나는 그런 말을, 두 손에 다 쥘 수 없는 크기의 공처럼 어, 어, 어 소릴 내며 받아 안고는 어쩔 줄 몰랐다. (중략) 그래, 그러고 보니 그때도, 나는 또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었다. 공은 이미 저리로 굴려버렸다는 듯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왜 따져 묻디 않았을까. 화내지 않더라도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는 않아도 됐을 텐데. 아니, 당연히, 나는... 무서웠던 것 같다. (p. 347) 알고 있다. 나는 아주 느린 사람, 시간 가는 것에 느리고 감정이 내 속으로 드나드는, 들고 나는 지점을 곧장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즉각적인 것들은 종종 나를 상처 입혔으니까. 뒤늦은 후회와 자책으로 몰살당하는 기분에 휩싸이게 했으니까. 나는 점차로 무감해지는 것을 택하여 왔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바짝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도. (p. 353 프리 더 웨일 中)

수영씨와 우상우씨는 함께 소설가를 꿈꾸는 사이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수영씨만 등단하게 되고 우상우씨는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우상우씨가 사고로 죽었을때 수영씨의 뱃속엔 둘의 아이가 있었다. 혼자 아이를 낳고 맘카페에서 무상나눔 되는 품목들에 연연하며 아둥바둥 살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되자 교재전문출판사에 취직하게 됐지만 경력도 없이 나이도 있는 싱글맘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아이는 수시로 아팠고 코로나때문에 어린이집에서도 가정보육을 권했지만 회사는 재택이 아닌 정상출근해야 했기에 종종거리며 사무실 눈칫밥을 먹던 중에 어느날 부터 노란쪽지가 돌기 시작한다. '프리 더 웨일' 이라고 쓰여진, 회사 게시판에 올라오는 족족 사라지던 '차별 철폐'라는 의미의 그 문구... 하지만 수영씨의 삶은 그 메모를 바라보는 것조차 무서웠다...

시를 읽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단편소설을 읽는 것도 녹록치 않았다. 단편소설은 왜 그리 어두운 건지... 이 시대 싱글여성의 삶은 왜 그리 힘들기만 한건지.... 사계절 마다 발표된 작품이라고 해서 그 계절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 어느 작가가 발표 계절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겠는가;;; 따라서 어느 계절에 발표되었든 2021년 이 한해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작품들은 일종의 '82년생 김지영'들의 이야기다. 인터뷰를 보면 작가들 본인들도 이런저런 육아고충을 토로하고 있었고 그러고 보니 모두 여성작가이자 비슷한 연령대라서 문화적 공감코드도 비슷했을 것 같다. 그렇게 이 책은 사계절의 각기 다른 시와 소설을 담았지만 서로 제법 어울리는 한권의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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