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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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여러모로 스티븐 킹 답지 않은 작품이다.

짧은 편이고 범죄 스릴러도 아니고 빨리 해결을 하고 싶은 빨리 끝을 보고 싶은 긴박함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스티븐 킹 다운 소설이기도 하다.

짧은 내용이기에 더 단숨에 읽어가게 하는 몰입력과 끝이 다가올수록 끝이 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반대적 긴박감이란 스티븐 킹 같은 대작가의 능수능란함이 없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1947년생의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세가 넘은 어르신이 그 어떤 편협함도 갖지 않고 인간애와 인류애를 보편개념으로 인식하고 계시다는게 존경스러웠다.

여름에 읽었던 '아웃사이더' 에서 미국내의 진통제 중독으로 인한 마약중독에 대해 거침없이 표현했던 부분들을 기억한다.

길게 이어지는 작품목록에서 어떻게 그토록 끊임없이 작품을 상상하고 작품속에 현실을 녹아내는지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짧고 굵게 마음을 훅 치고 간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스콧은 이달 초만 해도 마침내 체중계 위에 올라갈 용기가 생겨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아주 기뻤다. 그런데 그 이후로 꾸준하게 체중이 줄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불안하긴 해도 그냥 약간 걱정스러웠을 뿐이었다. 불안이 공포로 바뀐 건 옷 때문이었다. 이 옷 문제는 이상한 차원을 넘어 엄청나게 기괴했다. (p. 18)


스콧은 42세의 중년 싱글남이다. 아내와 이혼후 고양이 한마리와 사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한 편이라 환경이 좋은 택지지구에 산다.

195센티미터의 큰 키에 허리벨트위로 툭 불거진 배는 109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게 하는 큰 덩치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몸무게가 줄어든다. 그것도 매일매일 딱 0.5킬로그램씩.


딱히 활력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삶이 무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평범하던 일상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적응하기 혼란스러웠을때 옆집에 새로 이사온 커플의 개 두마리가 자꾸 스콧의 마당에 와서 똥을 싸고 간다. 그런데 그 이웃은 자기네 개는 그럴리가 없다고 항의한다. 스콧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을때 그 이웃은 여전히 냉랭하다.


"당신이 이겼어요"

"이건 정말이지, 누가 이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

"개가 똥 몇 번 쌌다고 동물 관리국 사람한테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매콤씨. 이봐요. 난 단지 서로 좋은 이웃으로 지냈으면 해요.."

"아, 좋은 이웃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도 잘 알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이 동네에서 말이에요"

......

'이 동네에서 좋은 이웃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 '대관절 그게 무슨 뜻이지?' (p. 42, 43)


자신에게 벌어진 문제만도 머리가 복잡할 때 스콧은 이웃에게 벌어진 문제를 갑자기 알게 된다.

자신만의 문제에 매몰된다 해도 답이 없어 더 답답해졌을 수 있을 상황에서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오히려 자신의 할일 과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

그는 생각한다. '정작 나서서 뭐든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점에' 대해서.

왜지? 왜 이웃들은 이 커플을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거지?


스콧이 내년에 붉게 표시해 놓은 일정은 딱 하루였다. 5월3일. 마찬가지로 붉은 글씨로 된 한 글자가 보였다. '0'. 그가 글자를 지우자 5월3일은 다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스콧은 3월31일을 선택하고 직사각형의 일정란에 '0'을 써 넣었다. 감소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는다면 지금 예상하기로 몸무게가 바닥 나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속도가 빨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콧은 그 와중에도 인생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도리라고 느꼈다. 어쨌든, 가망이 없는 상태에 처한 사람들 중 전적으로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그리 흔할까? 스콧은 이따금 노라가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배워 온 어느 격언을 생각했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불가사의다. 그의 현재 상황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p. 97)


예전에 티비 방송에서 탤런트 김자옥이 자신의 암 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감사하다고. 교통사고처럼 부지불식간에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것보다 '암' 처럼 병에 걸려 세상을 뜨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을 천천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그 말에 나는 굉장히 공감했었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닐까?!

스콧은 자신의 체중이 '0' 이 되는 날을 표시한다. 그런데 그 날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이유도 모르고 정확한 마지막 날도 모르지만 여하튼 얼마 안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의외로 덤덤하다. 환상적인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새롭게 뭘 하려고 들지도 않고 침울하게 날짜만 세며 집안에 박혀 있지도 않고 그저 일상을 산다.

일상.

일상을 망가뜨리지 않는 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의미 깊게 다가온다. 아무렇지 않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저 일상을 산다는 것. 내 마지막을 생각하기에 좀더 제대로 일상을 산다는 것. 하루하루의 시간을 차곡차곡 잘 쌓는다는 것. 몸무게가 주는 만큼 시간의 무게를 늘린 다는 것. 일상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일상이 주는 감동이 의외로 찐...했다.


스콧은 컴퓨터를 켜고 '0'의 날'을 3월15일로 앞당겨 놓았다. 두렵지 않다면 어리석은 것일 터. 그는 두려웠다.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감정도 느꼈다. 행복? 이 기분이 행복일까? 그렇다. 미친 소리일지 몰라도 그건 분명 행복이었다. 확실히 그는 어떤 연유에서건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닥터 밥은 그거야말로 미친 소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스콧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라고 믿었다.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뭐 하러 괴로워하랴? 그걸 받아들이면 어때서? (p. 105)


스콧은 자신의 '0의 날' 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름 즐긴다.

그리고 그동안 무심하게 봐왔던 이웃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제야 이웃들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온 동네가 거부한 레즈비언 옆집커플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웃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이웃들의 왜곡된 시선이 의아하고 아쉽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옆집 커플에게 관심이 간다.

남들이 이해 못하는 그 커플을 이해하고 싶고 자신에게 벌어진 이해못할 상황을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생전 처음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한다. 온동네가 주시하는 레즈비언 디어드리, 레스토랑 주인 디어드리, 한때 육상선수라서 동네마라톤 1위 후보자인 디어드리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그래도 우리가 진짜 이웃이 될 수는 있겠죠. 제가 당신에게 설탕 한 컵 빌릴 수 있고 당신도 우리 집에서 버터 한 덩이 빌릴 수 있는 정도만요. 혹시 우리 둘 다 우승을 못하면 무승부예요.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p. 113)


"이 일을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제가...... 우리가 당신에 남성성을 위협하기라도 하나요?"

'아뇨, 이게 중요한 이유는 내가 내년에 죽기 때문이에요'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기 전에 적어도 한 가지는 바로잡고 싶으니까. 결혼 생활은 이미 파탄이 나서 바로잡기 어렵고, 백화점 웹사이트 일도 영 가망이 없어요. 그 사람들은 자기네 사업이 자동차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던 공장들과 똑같다는 걸 모르거든요' 스콧은 그런 내막까지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도 그럴 것이, 스콧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디어드리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냥 중요하니까요" 마침내 스콧이 대답했다. (p. 115)


스콧은 마라톤을 처음 뛰어 본다. 겉보기엔 덩치가 산만한 비만하저씨가 마라톤을 뛴다는 것 자체가 완주불가능성을 확신하게 한다.

하지만 스콧은 마라톤을 뛰며 경험한다.

바람도 아니고 희열도 아니다. 고양이었다.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더 멀리 상승하는 감각.

책의 원제이기도 한 Elevation 의 뜻은 고도 이다. 높은 곳이란 말이다. 상승 승진 뭐 이런 뜻이기도 하다. 위 문장을 읽으며 '고양' 이라는 번역에 대해 원서에는 Elevation 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콧의 감정을 이해하며 더 나은 한글표현이 뭐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안타깝고 아쉬웠다. 뭔가 더 적절한 단어가 있었다면 스콧의 감정을 저 느낌을 뭔가 더 적절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번역자의 고뇌가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었달까;;; 알것 같은데 느낄 수 있는데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네~


스콧은 그의 삶에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만 '행복'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스콧은 자신이 가진 체력의 극치를 경험했다. 신세계였다. 그는 만사가 다 이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이 고양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라면 우리는 죽음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p. 136)


죽음의 문턱에서 느끼는 행복

어쩌면 죽는 다는 것을 알게됐기에 행복도 새삼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늘 있었던 행복인데... 네잎 클로버만 찾다가 세잎 클로버에서 갑자기 의미를 찾게 되는 건 죽음이라는 자극제가 꼭 필요한 걸까...

나보다는 더 죽음에 가까워보이는 노작가가 말하는 죽음은 왠지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한번 곱씹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완벽하게 이해돼요"

스콧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게 말이죠." 스콧이 대답했다. "무섭지는 않아요. 아주 초반에는 겁이 났죠.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괜찮은 것 같아요"

디어드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그말도 이해가 되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죠" 그가 말했다. "분명 그럴 거에요" (p. 160)


"우린 말하지 않아요.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죠 스콧?"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했다.

......

"어떤 느낌이야, 스콧? 자네는 어떤 기분이 들어?"

스콧은 헌터 힐을 달려 내려갈 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 그의 몸이 일단 최대 능력을 발휘하자 모든 세포에 산소가 채워지던 그 순간을.

"고도에 오른 기분이 들어요." 마침내 스콧이 말했다.

그는 디어드리 매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왜 그가 자신을 선택했는지 아는 것이 분명했다. (p. 182)


서로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사이에 유대감이 생기고 연대감으로 연결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분명 글로 읽고 있음에도 글이 아닌 글로 쓰지 않은 그 너머의 무엇으로 이해하게 되는 기분은 뭐랄까... 좋았다... 내가 소설속 인물들의 친구가 된것 처럼...


스콧에겐 '0의 날' 이 왔다. 그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웃이 있었다.

공동체 문화가 부서진 현대에 가족마저도 갈등의 관계가 되버린 현대에 '이웃' 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근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회적 변화일까? 내 개인적 관심일까?

'오베라는 남자' 소설에서 오베 할아버지의 츤데레 매력에 이웃들이 퐁당 빠져들었었는데, '고도에서' 작품에서 스콧의 평화로움에 이웃들이 흠뻑 젖어든다.


드론이 찍은듯한 잔디밭의 사람들이 보이는 표지에서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커다란 사람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겉지를 벗겨보니 하드커버에 가득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딴 세상 같다.

그 딴 세상속에 스콧이 살고 있기를, 고도에서 우리를 보고 있기를, 스콧이 보면 미소지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래본다.



뿌리깊은 차별과 혐오를 넘어,

화해와 포용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대작가의 통찰이 담긴 신작 경장편소설. (표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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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게 말을 걸다 - 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이소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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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유명 전시회와 미술관 관람을 좋아하지만,

작품 감상에는 서툰 미.알.못.을 위한 쉽고 재밌는 교양 미술

 

 

앞서 읽었던 미술관련 책이 영 꽝이었던지라 다른 책, 제대로 된 미술교양서가 필요했다.

미술을 자신만의 잘난척 감상에 빠져있는 글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나 읽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미술을 알려주는 책, 바로 이 책 같은 책!

표지부터 마음에 든다. 화가인듯한 할아버지가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림속에 다른 자화상들과 그림속에 거울속 화가의 모습이 있다. 그림속에 그림이 있고 그 그림까지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표지그림을 보며 화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그렇게 이 책은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내내 미술에게 말을 걸수 있도록 중간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저자는 미술교육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 에세이를 통해 미술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만드는 방법을 늘 연구하는 사람인듯 하다. 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부정하지 않고 그럴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면서 그러한 선입견을 부드럽게 깨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익숙한 그림과 낯선 그림을 함께 보여주고 익숙한 것은 뒷얘기를 낯선 것은 신선한 재미를 알게 해주면서 미술은 생각보다 쉽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각자의 방식으로 미술관 전시를 즐길 것.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면 인증 사진을 마음껏 찍고, 작품 사진과 셀카도 찍고 싶은 만큼 찍을 것,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선에서 자유롭게 즐길 것, 그런 자신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미술 권위주의에 빠진 자가 있다면 마음 속으로 세 번째 손가락을 곧게 펴서 날릴 것. "저는 미술을 잘 몰라서요" 라는 겸손한 말은 생각하지도 말 것. (p. 15)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고 싶지만 괜히 주눅들고, 미술관련 책을 읽어도 뭔소린지 잘 모르겠을 때 저자의 제안을 기억해야 겠다. 그리고 자신있게 내 맘대로 관람하고 느껴야 겠다. 누군가 옆에서 아는척하고 잘난척하는 미술권위주의자가 있다면 마음속으로 세번째 손가락을 곧게 펴서 날리며.

이 책은 크게 2part 로 나뉜다.

1part에서는 미술을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움추러든 어깨를 펴게 해주고

2part에서는 5가지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미술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준다.

미술 감상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미술 작품은 다만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비오는 날을 바라보는 수재민들의 마음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작품 안에서 한참 동안 머물거나 해매다가, 자신이 나오고 싶은 문으로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p. 22)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보게 된 그림, 보자마자 반해 버린 그림 ㅎㅎ

1part 를 읽으며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이 책에 대한 친근함이 훅 올라갔다.

당시 얌전하고 권위적인 초상화가 주로 그려졌다고 하는데, 이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활용해 다양한 표정을 연구하여 기존 초상화와는 다른 재밌는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화가가 당시에 우스운 평가를 받던 화가도 아니었다. 루이16세의 초상화가로 살면서, 루이16세가 처형당하기 직전까지도 그의 초상화를 그렸던 궁중화가였다고 한다. 궁중화가는 화가중에서도 인정받는 화가만이 될 수 있었다. 권력의 옆에서 권위가 무엇인지 알만큼 아는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이렇게 그려냈다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보는 사람을 위해 그림이 쉬워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쉽게 느껴지는 그림을 통해 미술에 한발 더 다가가지게 되기는 한다. 저자의 이 책에 대한 의도가 이 그림을 통해 확연히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이 그림이 더욱 좋았다.

저는 우리가 미술과 친해지면 두 가지 이유에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힘들고 슬프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낄 때 비효율적인 시간 속에서 탄생한 예술은 우리를 응원합니다. 두 번째로 미술과 친해지면 삶이 더 나아집니다. 많은 기업에서 마케팅에 미술을 활용하고, 예술가들을 탐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는 일을 포함한 자신의 삶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서일 겁니다. (p. 30)

이제 part2에서 본격적으로 미술과 친해져 본다.

미술과 친해지는 키워드로 저자는 5가지를 알려주고 있다.

일상 - 알고 보면 일상 곳곳이 작품이다

작가 - 시작은 단순하게, 좋아하는 작가 한 명 부터

스토리 - 명작은 다양한 스토리 속에서 빛나는 법

시선 - 멀리 보고, 겹쳐 보고, 새로운 시선으로

취향 - 취향은 결국 무수한 실패의 결과

일상 곳곳에 있는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다양한 로고로 활용되는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디바초콜렛, 스타벅스 로고, 테트리스 게임속 그 성당, 나이키 로고, 뮤지션의 앨범 커버 속 그림 등 일상에서 충분이 느낄 수 있는 미술의 다양한 예들은 알던 것은 더 자세히 모르던 것은 이것도?! 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세이렌의 조각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세이렌을 표현한 그림들은 인어모습이다. 그런데 기원전300년 경의 테라코타 는 새의 모습으 하고 있었다. 그러보 보니 노래로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이 새의 모습을 하는 것이 인어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 고전을 여럿 읽었다고 읽었는데 인어만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런;;;

 

 

예술가 들이 즐겨 마셨다는 압생트 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물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고흐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압생트의 별명이 '초록 요정' 이었다고 한다. 초록병의 소주가 생각나서 왠지 압생트 라는 술마저 친근하게 다가온다. ㅋㅋ

저자는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좋아하는 화가 한명을 정해서 알아나가는 방법을 권한다. 저자 본인은 고흐를 좋아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화가 한명은 그 화가의 친구나 지인 화가들로 이어지고 동시대의 화가로 이어지며 앞시대 뒷시대의 연결고리가 있는 화가들로 범위가 넓어지고 이런식으로 확장되다 보면 미술사의 맥락까지 이어가게 된다고 한다. 괜찮은 방법같다. 나도 고흐를 좋아하는데, 그림만 보고 좋아했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 동생 테오의 첫아기, 그러니까 고흐 자신의 첫 조카 탄생을 기념한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 그림에도 더 애정이 간다.

 

 

여성화가들에 대한 책인 [내가 화가다] 라는 책을 좋게 읽었었는데, 그 책을 통해 수잔 발라동 이라는 모델이자 화가를 알게 됐었다.

로트레크 가 그린 수잔 발라동의 초상도 봤던 그림인데, 이 책을 통해 부제가 '만취에서 깨어난 후' 라는 것을 알고 보니 그림이 또 다르게 보인다. 평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의 단면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었는데, 독한 술까지 더하니 느낌이 왠지 더 진해진다고나 할까... 르누아르가 그린 꾸며낸 수잔 발라동과 로트레크가 그린 실제모습 그대로의 수잔 발라동은 그림만으로도 다른 느낌을 준다. 그녀를 화가의 길로 끌어주고 응원해주었던 로트레크의 그림에서 수잔 발라동의 삶이 보다 더 진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 그림이란 글이 주는 감동과는 또다른 감동을 주는 예술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제임스 티소 와 아이 둘의 이혼녀 캐슬린과의 사랑이야기는 티비프로그램에서 본적이 있다. 그런데 티소의 그림들이 여성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중심을 둔 유미주의 였다는 것을 알고 그림을 다시 보니 옷주름 하나 레이스 하나에도 정성을 들였다는 것이 새삼 눈에 보인다. 그리고 정말 예쁘다.

 

 

명화라고 불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명화자체로서의 스토리로도 후대의 화가들이 명화를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여하튼 오래도록 사랑받고 인정받는 명화들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밤 풍경의 명화로 손꼽히는 존 앳킨슨 그림쇼의 그림을 알게 되어 좋았다. 그가그린 밤 풍경은 그 어둠의 색채가 정말 남달랐다.

 

 

 

모든 문화 예술은 상호적입니다. 많은 화가들의 그림은 곧 시대를 관통하며 살다간 예술가가 느낀 다양한 사유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는 시대의 경제, 시민의식, 심리학, 물리학, 자연과학, 철학과 같이 당대의 문화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감상하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길고, 넓고 농밀한지 느끼게 됩니다. (p. 218)

 

이 책에는 화가들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더 재미있게 읽힌다. '걸어가는 사람' 이라는 조각으로 유명한 자코메티가 조각을 작게 만드는 이유,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와 컬렉터의 재치, 칸딘스키와 뮌터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프리다 칼로의 고통... 그중에서도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화가들이 그려낸 조선의 모습과 고흐가 그린 바니타스 그림은 처음 보기도 했고 다른 그림들 보다 더 와닿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일상의 도피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과정입니다. 에밀 놀데, 휴버트 보스, 엘리자베스 키스, 세 화가에게 있어 100여 년 전 한국 여행은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마을을 그들이 한국을 바라보듯 진심어린 시선으로, 시간 내여 바라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글을 시작할 때 언급한 문장을 다시 소환해 봅니다.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 이 말의 참 뜻은 어쩌면 매일 보는 익숙한 풍경도 새롭게 볼 수 있는 자가 곧 최고의 여행자라는 의미 같습니다. (p 262)

 

서양화가가 아름답다고 감탄했던 원산의 풍경속에 홀로 커다란 짐을 이고 있는 아낙네의 뒷모습이 짠하고, 인생무상과 삶의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바니타스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해골이나 독특한 사물들을 그렸던 화가들의 그림 중 고흐의 해골 그림은 그의 인생과 겹쳐지면서 담배의 쓴향기가 풍겨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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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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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밤, 나를 위로하는 그림이 필요하다 (표지 中)

 

 

"누구에게나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밤이 있다." 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마음을 다정하게 안아주는 그림을 읽는다." 를 경험하고 싶었다.

나는 혼자 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타입이다. 혼자 만의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이자 자유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그림과 함께 보내보고 싶었다.

그런데... 표지 그림 부터 나에겐 좀 삐걱거림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화가 폴 세잔은 "고독은 나와 어울린다. 고독할 때만큼은 아무도 나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고독을 뜻하는 'solitude'를 '자가의 영혼을 가지려는 태도 soul+attitude' 로 받아들인다. 혼자 있어 즐거우면 고독이고 고통스러우면 외로움인 것이다. 세잔은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고향 마을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풍경을 관찰하며 보냈다. 자연의 독창적인 일부가 풍경이 되고, 풍경은 세잔의 내면으로 흘러들어와 이미지로 압축되고, 그의 캔버스는 위대해졌다. 그것은 외로움을 극복한 고독의 결실이었다. (p. 23)

 

 

나는 세잔의 그림을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고독vs외로움 에 대한 비교차이를 다른 책들에서도 보면서 공감했었다.

그런데 세잔이 그린 '세잔 부인의 초상' 을 보며 '예술가보다 예술가 부인으로 살기가 더 어렵다' 고 '우울함을 느낀다' 며 '내 가까이 있는, 내가 마음으로 아끼는 이들이 저런 눈빛이면, 이유는 묻지 않고 맛있는 고급 요리를 사줘야 겠다' 는 다짐을 한 저자의 표현들을 보며 이 초상의 표정이 과연 밥 한끼로 해결될 일인가 싶었다. 고독을 즐기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남편 옆에서 숨겨진 여자로 살면서 남편이 그려준 자신의 이런 표정을 한 초상화를 보며 이 여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세잔은 자신의 부인을 이렇게 우울하게 그려내면서 과연 어떤 마음이었던 것일까? 여전히 고독을 즐긴 것일까? 차라리 세잔의 정물화 만 알았던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영양제는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은 지친 내 마음에 영양을 보충해주는 시간이자 반복되는 일상에서 살짝 비켜나는 시간이다. 요즘의 내게 독서는 비타민, 음악은 마그네슘, 식물 가꾸기는 철분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는 이런 영양제를 더 맛있게 섭취하게 만드는 조미료? 그래서 과다 사용하면 역효과니 조심! (p. 50)

이 짧은 글 옆에 표지 그림이 나온다

 

 

 

 

표지에는 일부만 실린 이 그림의 제목은 '엽서를 쓰는 모델' 이다. 표지를 보면서 왜 하필 여자가 벌거벗고 뭔가를 쓰는 그림을 '새벽 1시45분, 나의 그림 산책' 이라는 책의 표지로 썼을까 의문이 들었다. 새벽 그시간은 감상에 젖어 뭔가를 끄적이기 좋은 시간이긴 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새벽 1시45분과 어울리지 않고 그림산책 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왜?

51페이지에 나오는 그림 전체를 보니 그림 왼편에 이 모델이 그려진 그림이 보인다. 아마도 이 모델은 화가가 자신을 그리는 중간 쉬는 타임에 잠시 뭔가를 썼나 보다. 그리고 다시 모델로서 화가 앞에 섰겠지... 누드모델로 일하는 도중에 난 잠깐의 시간에 누구에게 글을 썼을까? 그 엽서는 보내졌을까? 그림 자체는 좋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저자에게는 영양제와 같은 그림인걸까? 글과 그림이 매칭되지 않는 부분은 책의 도처에서 느껴진다. 물론 이런 느낌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다.

나도 저자와 비슷하게 독서는 비타민, 음악은 마그네슘, 식물 가꾸기는 철분처럼 여기며 산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영양을 얻으며 그 양분으로 이렇게 블로그에 서평도 올리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은 이 그림의 누드모델이 가졌던 엽서쓰는 시간과 연결이 되는 걸까? 좀더 영양제 같은 그림이 없었던 걸까?

여름 바캉스의 로망

세관 공무원으로 일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던 앙리 루소는 환상적인 열대 풍경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 <꿈>에는 저 멀리 보름달이 떠 있고, 초록의 풀들과 옥색의 꽃, 주황빛 열대 과일들이 가득하다. 숨 쉴 틈 없이 빽빽하게 식물들이 엉켜 있는 밀림에서 한 여인이 금색 피리를 불고 있다. 동그랗게 눈을 뜬 사자와 코끼리, 노란 날개를 펼친 이름 모를 새,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여인이 그 소리에 취한 듯 보인다.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함과 꿈꾸는 듯 환상이 가득하다. 피카소와 많은 평론가가 이 작품을 격찬했는데, 원시림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여인이 소파에 앉아 있을 수 있는지 당황해 하는 사람들에게 루소가 말했다.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던 여인은 밀림 속으로 운반되어 땅꾼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는 중이오"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열대림? 도시에 사는 우리의 여름 바캉스의 로망도 이와 같지 않을까? (p. 65)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열대림 이라는 것이 여름 바캉스의 로망이라고?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벌거벗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고 옆에선 뱀이 기어다니는데 땅꾼이 뱀을 춤추게 하듯 피리를 불고 우거진 풀숲에선 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며 여름 바캉스의 로망을 꿈꾸었다고? 내가 이 여인이었다면 너무 공포스러울것 같은데!

소파위에서 잠들었던 여인이 밀림 속으로 운반되어 땅꾼의 피리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는 중이라고?

납치해와서 환각에 빠지도록 주술을 걸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상황 아닌가? 햇빛 한점 제대로 들지 않는 우거진 밀림에서 불어주는 땅꾼의 피리소리가 과연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이 여인이었다면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을 것 같은데!

예술을 몰라서 이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 거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술에 무지하긴 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지한 채로 이해되는 예술이 좋다. 이렇게 공포를 꿈이나 로망으로 이해하는 것 보다는!!!

즐거움으로 깊어지는 작품도 있다. 모네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가난했지만 그림은 언제나 밝았다. 살아가는 일이 불행한데, 굳이 그림까지 불행을 그릴 필요가 없다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밝고 행복하여 가벼워 보이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가 르누아르의 그림에 담겨 있다. 좋은 작품이 무거울 수는 있지만, 무겁다고 좋은 작품은 아니다. (p. 71)

르누아르의 삶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르누아르는 여성혐오 와 여성비하 발언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말로는

"나는 여성 작가나 변호사, 정치가들을 괴물이다 다리 다섯 달린 송아지라고 생각한다. 여성 예술가들은 그냥 우스운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여자 가수나 댄서는 좋아한다" 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색감이 예뻐서 예전엔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림을 좀 보고 그림관련 책을 좀 보다 보니 르누아르의 편협한 사고방식이 너무 과하다 싶을때가 많았다. 동시대의 여류화가를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의 그림 속 여자들은 주로 춤을 추는 무희거나 여종업원 이었다. 르누아르가 추구한 행복에는, 르누아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여성은 없었다. 예쁜 장식품 같은, 꺾고 싶은 꽃같은 남성의 소유물만 있을 뿐.

그런데 저자는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즐거움이 깊어진다고 한다. 물론 취향차이다. 그러나 무겁다고 좋은 작품이 아니듯이 겉보기에 밝아보인다고 행복한 작품은 아니다.

 

 

이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았던 부분은 고흐의 편지에 담긴 스케치 그림을 본 것이었다.

고흐의 그림을 여럿 봤지만, 편지 속에 그린 스케치그림은 처음 보았는데, 그 그림들이 나중에 어떤 작품이 되었는지 아는 것이었기에 스케치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편지에 이렇게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 생각하니 그의 인생이 더 짠해지기도 했지만, 이 정성어린 스케치가 채색한 그림보다 더 잘그린것 처럼 보일 정도로 실력이 너무 좋아서 고흐가 더 좋아졌다. 진심은 스케치만으로도 통하는 것 같다.

저자는 131페이지에서 한량처럼 살겠다는 농담어린 진심처럼 제대로 된 한량 같다.

약력을 찾아보니 한양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후 파리로 유학을 가서 사진,조형예술, 비디오아트, 예술과 공연미학 등을 배웠다고 한다. 예술인문학자로 살면서 인문학을 예술작품으로 쉽고 재밌게 알리는 글을 쓰고,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예술인문학자라...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배우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저자의 삶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없다. 그러나 '오늘 혼자 있을게요' 라고 말하며,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때 그림은 참 매력적인 동반자가 되어주었다'는 저자의 프롤로그가 좋았다. '이 책과 함께 오롯이 혼자서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하루하루가 조금은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는 저자의 프롤로그 마무리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길 바랬다.

그러나 그림 산책을 하고 싶었던 나의 기대와 달리 그림이 너무 적은데다 글과 연결되지 않기 일쑤였고, 새벽 1시45분 이라는 시간이 주는 감성은 맥락없는 개인 감상에서 그쳤다. 저자가 받은 위로에 공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나의 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의미는 있었을 텐데 저자와 나의 감성은 하늘과 땅 사이처럼 멀고 먼 듯 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림으로 위로받으려던 나의 기대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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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 미래를 과학하라! 10월의 하늘 시리즈 6
정재승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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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과학자가 내일의 과학자를 만나다

'10월의 하늘' 10주년, 10개의 특별한 과학강연

 

'10월의 하늘' 은 전국 중소도시 도서관에서 열리는 과학강연회 라고 한다.

매년 10월 마지막주 토요일, 과학자가 전국 도서관을 직접 찾아가는 강연은 대중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정재승 박사가 지방 도서관에서 했던 강연에서 과학자를 처음 만나본다며 아이돌 못지 않은 환대를 받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과 함께 작은 도시 도서관에서 강연 기부를 해주실 과학자가 있는지 트위터에 글을 올린지 얼마 안되어 의외로 많은 이들의 기부 신청이 들어왔고 그렇게 2010년 시작된 '10월의 하늘' 은 올해로 10년째 과학의 하늘을 열었었고 그 강연들이 이 책으로 나왔다.

어쩌면 '10월의 하늘' 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른 행사들처럼 법인화된 조직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SNS뿐 아니라 언론을 활용하고 광고를 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주변의 수많은 조언을 뒤로하고, 올해도 첫해처럼 돈과 조직없이 소박하게 시작했습니다. 자발적인 참여가 가장 폭발적인 열정을 만들어낸다는 작은 믿음 하나로, 느슨한 조직이 갖는 유연함과 자유로움이 우리 모임에 참여하는 많은 분을 즐겁게 하는 가장 큰 가치임을 깨달으며 말입니다. 한국도서관협회가 도서관을 모집해주고, 열정적인 재능기부자들이 모여 강연자와 도서관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전국 100여개 도서관에서 과학강연회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놀라운 기적은 모두를 감동하게 하는 한순간이 필요합니다. 뭔가를 10년째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슴 설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함께 해주고 선한 사람들이 도와줍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현상'이 세상 속에 만들어집니다. ... '10월의 하늘'에서 강연을 들었던 청소년 중에서 한 명이라도 과학자 혹은 공학자가 되어 세상을 좀 더 근사한 곳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해준다면, 우리는 항상 '10월의 하늘'을 준비할 것입니다. (p. 11,12)

선배 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 단어가 아닐까? 먼저 걸어본 사람이 뒤에 걸어올 사람을 위해 자신의 길을 이야기해 주는 것, 미래의 과학자에게 현재의 과학자가 선배로서 이야기해 주는 것, 인생선배이자 과학자의 선배로서 이보다 더 좋은 마음이 어디 있을까.

과학자로서 눈에 확 띄지 않더라도 소소하게 작은 장소에서 꾸준히 강연기부를 해주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1년에 한번 과학자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경험한 청소년 중에는 분명 미래의 과학자가 여럿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미래의 과학자가 또 더 미래의 과학자에게 강연기부를 해주고 그렇게 선순환이 이루어지다보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현상' 이 이루어진 세상이 만들어져 있지 않을까?

1> 인공지능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 - 정재승

우리는 '자극-반응 체계'로 작동하지 않고, '질문-대답 체계'로 살아갑니다. ... 우리의 뇌는 스스로 답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찾으면 기쁘도록 디자인돼 있다는 뜻입니다. 호기심의 보상은 해답이 주는 즐거움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됩니다. (p. 21)

"20년 후에 가장 유망한 직업이 뭔가요?" 제게 많은 학부모님께서 물어보시는 질문인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질문도 없습니다. 20년 전 우리가 인공지능 전문가나 데이터 과학자를 생각하지 못했듯이, 20년 후 어떤 직업이 유망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를 교육하기 위해서 미래 유망한 직업에 전략적으로 접근했다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 인공지능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냐고요? 바로 무엇이든 즐겁게 학습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데 두려움이 없는 바로 그 태도에 있습니다. (p. 26)

 

로봇이건 AI이건 인공지능이건 뭐라고 부르던 간에 여하튼 기계는 자극을 주면 반응을 한다. 입력해야 출력이 나온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필요하건 필요하지 않건 주변에 세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뭐지?왜지?어떻게?하고 끊임없이 탐색하고 관심을 갖는다. 로봇과 사람의 구분은 창의성이라며 창의성붐이 일었었다. 그 창의성은 다 어디로 갔나? 인공지능이 작곡을 하고 소설을 쓰니까 창의성이 사라졌나? 하지만 창의성은 결과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작과 과정에서 사람은 존재 자체로 이미 로봇과 다르다. 내가 지나온 과거의 20년으로 앞으로 살아갈 자녀들에게 미래의 20년을 재단해 주어서도 안되고 재단해 줄수도 없다. 미래는 후대의 시간이다.

입력해준 데이터를 부정하는 사고를 요구하는 건 아직 인공지능에겐 무리입니다. ... 기존에 나온 작품들을 섭렵한 후에,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예술적 창의성의 핵심입니다. 과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 의심하고 회의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인공지능의 핵심이 데이터를 통해 인식을 확장하는 능력이라면, 인간 지성의 본질은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가치전복적 아이디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세상을 새롭게 구성하고 이해하는 일, 개인적 경험 안에 인식의 틀을 갇지 않고, 데이터에만 매달리지 않는 비판적 사고가 인간 지성의 중요한 토대입니다. (p. 35,36)

미래는 다양하게 호기심을 갖고 비판적 시각으로 맥락을 이해하는 생각하는 힘이 더 중요해 질 것이다. 나만의 것, 자신만의 것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러한 학습은 교과목만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정재승 박사도 강조하고 있지만, 폭넓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깊이 있는 사고, 즉 인문학과 사회과학적인 사고과정을 익히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역시 책을 읽어야 한다. ㅎㅎ

2> 사람의 뇌와 뇌를 연결하는 법 - 장동선

앞서 첫번째 질문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인지하고 판단할 때 타인의 뇌를 나의 뇌 안에서 시뮬레이션하고 미러링한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질문에선 우리가 다른 살마의 의견에 쉽게 영향을 받게 된 것이 인류의 뇌가 타인과의 이해, 공감, 교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뇌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렇다면 뇌와 뇌를 연결하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p. 50)

뇌와 뇌를 연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공감과 이해를 통해 다른 사람의 뇌파와 싱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의 뇌가 혼자 행복하기 위한 뇌가 아닌, 함께 행복하기 위한 뇌로 진화했기 때문이지요. (p. 54)

 

뇌과학자가 이렇게 공감을 중요시하다니!!! 비인간적일 것 같고 딱딱할 것만 같은 과학강연이 너무나 인간적인 마음에서 시작되더니 너무나 인간적인 과학자들을 만나게 한다.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과학자들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모아서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반갑다. 연구하고 연구해서 새롭게 밝혀지는 것들의 근원은 결국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일 때가 많다. 다만 증명되지 못했을 뿐...

3>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도구, 슈퍼컴퓨터 - 이 식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가장 세계에서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위험하거나 불가능한 연구도 가상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주 생성 같은 대규모부터 소립자 연구처럼 아주 작은 규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시뮬레이션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이제 시뮬레이션은 실험과 이론에 이은 제3의 연구방법으로 실험, 이론과학자들과 협력하며 인간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죠. (p. 78)

바이트, 키로, 메가, 기가 정도까지만 알던 내게 테라, 페타, 엑사 까지 넘어가는 슈퍼컴퓨터의 용량은 엄청난 숫자였다. 컴퓨터의 발달로 다양한 과학적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고, 이 프로그램들은 가상의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단번에 성공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수많은 실패를 거쳐서 하나의 진리를 발견해내는 것이 과학자의 길 아니던가. 위험한 실험을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까지 가능해진 과학적 실험세상에 컴퓨터시뮬레이션이 있었다.

4> 스마트교통으로 만나는 미래 세상 - 한대희

장소를 이동하면서 유발된 혼잡이나 교통사고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이용자의 편리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스마트 교통' 입니다. 좁은 범위의 정의로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교통시스템을 의미합니다. 보통은 좁은 범위의 정의를 스마트교통이라 부릅니다. 넓은 범위의 정의는 교통 비용을 낮추거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한 법규, 물리적 시설물 등 모든 방법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p. 82)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고속철도를 운행한 나라, 2029년 까지 총 5단계로 건설할 계획인데 현재 3단계가 완성된 상태로 세계의 허브가 된 인천공항, 세계6위의 물동량이 오가는 무역항인 부산항에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연결됐을 때의 경제성, 승용차 패러독스 와 대비한 공유교통과 공해없는 전기자동차 등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미래기술은 아무래도 교통분야가 아닌가 싶다. 먼저 발달하는 이 미래기술에 대한 윤리적 지침이 여전히 합의가 되고 있지 않지만 스마트해진다는 것이 단순히 편리해진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기에 보다 빨리 가느라 대충 만들지 말고 차근차근 꼼꼼이 지침을 만들어가면서 교통수단이 스마트해지길 기대해본다.

5> 티라노가 털복숭이라고? - 이정모

지금까지 발견한 공룡이 몇 종이나 될까요? 답은 1000종 쯤 됩니다. 1000종의 공룡 가운데 사람의 무릎보다 작은 건 500종 쯤 됩니다. 공룡이 그렇게 작았다니 놀랍지 않나요? (p. 104)

새들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지구상에 새가 몇 종이나 살고 있을까요? 현재 10,400종이나 살고 있습니다. 새는 지구에 이렇게 많이 있어요. 이 사실을 다르게 생각하면 지구에 살아 있는 공룡이 아직도 10,400종이나 있다는 뜻입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새가 공룡이라고 말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난리가 났습니다. 공룡과 관련된 지식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식도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p. 107)

깃털을 가진 수많은 공룡 중에 비대칭형 깃털을 가진 공룡은 몇 종 안 됩니다. 대부분은 대칭인 깃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칭인 깃털만 가지고는 하늘을 날 수가 없습니다. 날지도 못했는데 이 공룡들은 깃털을 가지고 무엇을 했을 까요? (p. 112)

알을 낳는 동물들 가운데 알을 품고 새끼를 양육하는 동물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새 입니다 10,400종이나 되는 새랑 똑같은 모습을 공룡이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공룡학자들은 공룡도 새처럼 알을 낳고 먹이를 가져다주는 양육을 했다고 추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 114)

공룡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다면 '지금 살고 있는 동물' 을 더 관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p. 119)

 

이 책을 읽으며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미래과학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이미 한참전에 사라진 공룡에 대한 이야기 였다. 화석을 통한 공룡의 연구는 어느정도 마무리된 학문이라고 내심 생각했었나 보다. 지속으로 새로운 화석이 발견되고 따라서 공룡에 대한 학문도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시조새 말고는 공룡이 파충류가 아닌 조류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12년부터 공룡과학자들은 털이 있는 티라노사우르스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티라노사우르스에게 깃털이 있다니!!! 공룡에 대한 연구를 지금의 동물을 관찰함으로써 더 많이 알게 된다는 시각도 신선하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아.. 이 책은 정말 읽을 수록 착한 과학책이다. ㅎㅎ

6> 자연의 빛, 인간의 빛 - 고재현

내부 전반사는 우리 주변을 포함한 광기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부 전반사는 빛이 어떤 경계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빛의 방향을 틀거나 빛을 어떤 물질 속에 가둘 때 사용됩니다. 광통신을 예로 들어볼까요? 디지털 정보를 빛의 펄스로 바꿔서 전달하는 광통신은 광섬유라는 소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 오늘날 전 세계의 모든 나라는 촘촘히 연결된 광통신망으로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p. 132)

광섬유, 광통신 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그말을 '빛' 에 연결시키지 못했었다.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같은 정도의 빛 개념은 사실 일상에 크게 와닿지 않는다. 정보의 80%이상을 시각정 자료에서 얻으면서도 빛에 대해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냥 있는 것 으로 여겨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통신망이 '빛'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빛의 속도'라는 광고 문구가 괜한 말이 아니구나 싶으면서 핸드폰 없이 못사는 요즘 세대들에게 이보다 더 체감적인 과학을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순수과학은 현실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7> 인간의 바다, 고래의 바다 - 장수진

2013년에 이루어졌던 첫 방류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남방큰돌고래 방류 시도였습니다. 제돌이와 마찬가지로 제주에서 우연히 그물에 걸려 제주의 한 수족관에 팔려갔던 춘삼이와 삼팔이가 함께 방류 대상이 되었습니다. (p. 152)

그 이후로 방류되었던 돌고래 중 암컷인 삼팔이와 춘삼이가 무사히 새끼를 추란해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2016년에 확인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고래류의 방류는 꽤 여러 번 이루어졌지만, 무사히 원 개체군으로 돌아가고 새끼를 낳은 것이 확인된 것은 최초입니다. (p. 154)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다에 고래가 산다는 사실을 아직 많은 사람이 잘 모릅니다. 우리나라 바다에도 고래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고래 또한 고래류의 하위분류인 수염고래류와 이빨고래류 중 이빨고래에 속합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약 35종의 고래류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제주의 남방큰돌고래와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유명한 고래는 밍크고래와 상괭이 입니다. 그러나 이 두 고래는 혹독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습니다. (p. 161)

 

불법으로 포획된 돌고래 제돌이를 자연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제돌이 방류를 위한 행동연구팀으로 참여하게 된 장수진 박사는 바다와 고래에 흠뻑 빠졌다. 성공적인 방류로 자연에서 살아가는 돌고래들을 처음 확인한 순간 연구원들과 환호를 부르며 얼싸안고 기뻐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고래가 참 많았다는데 그 많던 고래는 어디로 갔을까? 상괭이 라는 고래의 인상은 스마일 이모티콘 처럼 웃는 인상이 너무 귀여웠다. 제돌이는 여전히 힘차게 물위로 점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고래들이 언제까지 우리의 바다에 머물러 줄까? 불법포획과 돈벌이 대상으로만 여겨지기에는 고래가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8> 기후 위기, 돌이킬 수 없을까? - 조천호

초기 인류는 자연의 변동에 따른 채집과 사냥, 그리고 농업에 대한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환경이 자신들이 살았던 시절과 똑같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지구에 상처를 냈지만, 지구는 그 흔적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자연적인 흐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p. 168)

현재 우리가 누리는 기후와 우리가 의존하는 생태계는 홀로세에서만 가능합니다. 홀로세는 인류를 먹여 살리고 현대 사회를 유지해주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인류는 지난 1만년 동안 500세대에 걸쳐 이루었던 변화를 최근 50년 만에 완전히 바꿔 버립니다. (p. 170)

현재 지구는 팽창하는 풍선처럼 터져버릴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70억 명의 인구가 사용하는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식량을 위해 필요한 면적은 2018년 기준으로 지구 1.7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은행가라면 이자로 사는 게 아니라 원금을 까먹으며 사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곧 파산입니다. (p. 172)

"미래는 어떻게 될까?" 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미래는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 라고 자문해야 합니다. (p. 187)

 

지구환경파괴문제는 정말 소귀에 경읽는듯 먹히지 않는 심각한 문제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문제는 체감되지 않을 뿐 지구에서 사는 모든 생명체의 목숨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줄을 스스로 갉아 먹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태연하게 살고 있는것이 아닐까? 그 줄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거라고 말하면서?

지구환경을 붕괴시키는 요소 가운데 45퍼센트가 서로 연관되어 있어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거나 되먹임을 증폭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북극의 빙산이 녹게 되면 그 아래 어두운 바다가 드러나 햇빛을 흡수하여 지구 온난화가 증폭되고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더 많은 빙하를 녹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북극권 기온이 상승할 경우 북반구에 있는 영구 동토층이 불안정해지면 영구 동토층에 매장되어 있는 엄청난 양의 메탄 가스가 배출될 위험성이 높아지고 이 메탄가스가 배출되기 시작하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실가스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지구온난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고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빙하가 더 녹고 기온이 더 상승하고 악순환 속에 땅덩어리들은 해수면에 잠기게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산업과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 늦기 전에 기후협약이 잘 좀 됐으면 좋으련만...

9> 인류는 미래에 어떤 우주환경에서 살아갈까? - 황정아

놀랍게도 우주의 날씨도 지구의 날씨처럼 봄에는 출렁출렁 요동치고 뭔가 요상한 일이 자꾸만 벌어지고 있어요. ... 1년 중 봄과 가을, 즉 춘분과 추분 지점에서는 이렇게 태양풍 입자들이 지구의 대기권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현상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서 지구의 자기장의 교란을 의미하는 지자기 폭풍현상도 봄에 더 심해지고, 지자기 폭풍과 동시에 발생하는 오로라 발생 빈도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 봄바람이 불면 총각, 처녀들의 마음만 싱숭생숭해지는 게 아닌가 봐요. 봄이 시작되면, 우주를 연구하는 우주과학자의 마음도 언제 무슨 이벤트가 터질까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합니다. (p. 192,193)

천문우주관측 기술이 가져온 놀라운 발견들과 우주정거장, 우주망원경을 비롯한 우주기기들의 모습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주쓰레기 배치도' 였다. 쓰레기는 지구 뿐만이 아니라 우주에서도 큰 문제였다. 지구를 온통 뒤덮고 있는 우주쓰레기 그림을 보며 우주산업이 계속 이런식으로 가도 안될 것 같은데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지구에도 우주에도 쓰레기만 넘겨줘서는 안될텐데...

10> 태양계 너머로 떠나는 우주 탐사 이야기 - 이강환

인류가 달에 착륙한게 1969년 입니다. 올해는 달 착륙 50주년이 되는 굉장히 뜻깊은 해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50년 동안 사람들은 달을 넘어서 어디까지 가봤을까요? 안타깝지만 달 이외에 아무 데도 가지 못했습니다. ... 화성에 가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어서 아무 때나 가서 아무 때나 돌아오면 됩니다. 그런데 화성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지 않지요. 지구보다 더 먼 거리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화성에 가려면 우선 화성과 지구가 가장 근접했을 때 출발해야 합니다. 화성과 지구의 거리는 가장 가까이 위치하더라도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거리의 150배나 됩니다. ... 미래에는 일주일만 휴가를 내면 달에 갔다가 올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화성까지 왕복하기 위해서는 36개월은 우주에 있어야 합니다. (p. 213)

적어도 얼마 동안은 사람은 태양계 너머로 직접 갈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웬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한 와계인에게도 우주여행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신 외계에서 오는 신호를 탐지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외계의 지적 생명체라면 어떤 신호를 우주로 보낼수도 있습니다. (p. 224)

여러분이 만약 과학자를 꿈꾸고 있다면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릴게요. 우리나라는 과학 수준이 높은 편이고 앞으로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 한국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과학자는 굉장히 유능하다는 걸 다른 나라 과학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p. 228)

 

우주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빠르게 속도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워낙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탄탄한 기초가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일본에서의 우주산업현황을 설명하면서 이강환 박사는 우리나라의 우주산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을 가져오지 않는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가 적은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이룬 성과와 함께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희망도 놓지 않는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과학의 미래는 밝아질 수도 있다. 안된다는 말보다는 그러한 희망을 심어줘야 그 희망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과학에 흥미있는 청소년들에게 최신 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이 한권으로 소개해줄 수 있다. 과학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미래는 그러한 변화가 만들어 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주체는 지금의 청소년들이다. 청소년들이 과학에 꿈을 갖는데 이 책이 주는 희망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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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 / 지식너머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이제껏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매너'의 역사

놀라운 시각과 흥미로운 디테일로 무장한

똑똑하고 유쾌한 문화사를 선보인다! (표지 中)

 

 

역사서술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학문으로서의 연대기적 역사서술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주제를 잡아서 주제에 맞는 역사만을 선별취합하여 서술하는 방식도 있다. 아무래도 후자가 쉽고 가볍게 읽기에는 좋다.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근래 무거운 책을 좀 읽었더니 쉬어가는 페이지로 읽은 이 책은 후자의 방식이겠거니 예상했었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냉철한 시선과 예리한 분석이 술술 읽히면서도 비판적 문화사의 장점을 갖춘 책이었다.

이 책은 유럽인의 미덕이라 여겨져 온 것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유럽을 마치 '매사에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클럽' 처럼 여기는 고정관념에 흠집을 낼 것이다. (p. 13)

중국 역사가인 쑤 지유는 1848년 출간한 책에서 이른바 '서쪽 대양의 사람들'은 세계를 몇 개의 서로 다른 조각, 즉 대륙으로 나눈다고 전했다. 이 대륙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였다. 그는 또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중국은 아시아에 속한다면서, 그렇다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는 어디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눈에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달린 반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지유의 주장은 상당히 논리적이다. 누구도 유럽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확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또한 합리적이다. 유럽은 따로 독립된 단독의 대륙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판 한구석에 놓인 지역일 뿐이다. (p. 14)

문명화된 대륙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계몽시대 유럽의 철학자다. 유럽은 정신세계의 발전을 선도하는 북극성으로 여겨지며, 세련된 문화로 세계의 다른 부분과 구별되었다. ... 이전에는 '유럽적인 것'을 규정하는 토론은 모두 '유럽적이지 않은 것'을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p. 16)

이 '유럽적인 것'을 정의하는 작업은 더욱 복잡해진다. 오늘날 '유로-피어니즘'은 그 어떤 무언가가 집약된 민족 정체성의 모자이크다. 다시 말해, 그 어떤 무언가를 선뜻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p. 19)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매너라고 생각하는 행동 중 상당 부분이 중세 유럽의 궁정 귀족과 교육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당위성을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다는 것을 풍부한 예시를 통해 증명할 것이다. (p. 21)

 

이 책의 첫 페이지부터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의 방향성이 무척 맘에 든다.

유럽은 뭔가 선구적이고 선도적이며 고급진 고유한 문화를 가진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주지만 유럽은 아시아와 떨어져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고대그리스와 터키 지역을 중심으로 문명이 시작되며 전파되었고 지리적으로도 유럽과 아시아는 붙어 있는데, 유럽은 근동아시아 중앙아시아 극동아시아라고 지칭하며 어떻게든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지으려고 항상 애써왔다. 왜?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와 달리 유럽과 아시아는 한 몸으로 역사를 만들어 왔다. 서로 주고받은 것이 늘 있엇고 엎치락뒤치락 하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아시아는 민족의 혼합이 덜되어서 국가별 민족성이 동일한 편인데 유럽은 고대부터 다양한 민족이 서로 섞여 왔다. 처음 뿌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유럽은 유럽만의 무언가를 늘 찾아 고집한다. 왜?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모두 미개하다는 시선에서 자신들만의 매너에 대한 우월감을 가진 것처럼 해동해온 것을 조롱하는 이 책이 주는 재미는 은근히 통쾌하다.

이 책이 주는 풍부한 예시들은 유럽인들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더러웠는지 다양하게 알려준다. 그들도, 그들이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지역의 사람들처럼 아니 오히려 더많이 미개했다.

아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오른쪽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는데, 이 습관의 원래 주인은 로마 군인들이다. 그들은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었다. 악수도 근본은 같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서 손에 칼이나 비슷한 무기를 숨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악수가 인사법의 기능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 유럽에서부터다. 이전까지는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확인하는 상징적 제스처로 활용됐다. 싸움이나 협상이 중재됐다는 의미로 악수를 한 것이다. (p. 47)

원래 인사는 안전장치이자 폭력방지책 역할을 했다. ... 인사는 항상 불확실성의 순간과 깊이 연결돼 있다. ... 예의범절과 인사법은 위험 사회에서 폭력성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책이었다. 이러한 규칙들은 국가가 폭력을 독접하기 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에서 비롯됐다. (p. 49)

 

거대한 영토를 호령했던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유럽사회는 오랫동안 혼돈시대였다. 국경도 국가도 정확한 경계가 없었고 영토전쟁은 늘 있다시피 했다. 이러한 시대에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자기자신의 무력밖에 없었으므로, 적인지 친구인지 구별짓기 위한 행동은 중요했다. 지금은 예의와 인사 라고 여겨지는 행동들의 시작은 폭력방지책이었던 것이다.

문명인의 예절처럼 보이는 건배 뒤에는 문명이라고 말하기 힘든 역사가 숨어 있다. 원래 건배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즉 술자리에서 사람들을 잔뜩 취하도록 만드는 것 뿐이었다. 건배를 하고 나면 술잔이 경쟁적으로 비워지기 때문이었다. ... 중세에는 음주가 영적 생활에 속했다. ... 수도원에는 술타령이 넘처났고 사람들은 이기지 못할 만큼 술을 마셨다. ... 프랑스 수도원에서는 15세기 중반까지 '술통 축제'가 열렸다. 2월에 시작해 5월까지 계속되는 축제였다. 매년 100일 이상 축제가 열렸던 셈인데, 그동안에는 언제라도 술을 마실 핑계가 생겼다. 알코올음료가 이토록 사랑받은 데에는 깨끗한 식수가 부족했던 상황도 한몫했다. (p. 65)

만취는 오랫동안 유럽의 도시 거주자와 군인이 가장 선호하는 오락이었다. ... 알코올 중독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9세기 말 무렵이다. ... 노동자 계급의 음주 행태가 변한 것이 이러한 인식 변화에 한몫했다. 독주 한 잔에 고단한 삶의 걱정을 잊는 습관을 노동자의 전유물로 고착시킨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상류층이 유포한 프로파간다의 문제이기도 했다. 노동자의 음주 습관에 알코올 중독이란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체의 도덕성 상실을 문제 삼은 것이다. (p. 70, 71)

 

중세시대엔 길거리에 주정뱅이가 넘쳐났다. 술을 마시다 아무데다 뻗어 자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비틀거리다 진창에 넘어지면 그 자리에 대자로 뻗어 누워잤다고 한다. 중세가 신앙의 엄격한 시대인줄 알았더니 읽을 수록 방종의 시대인 것에 놀랍기도 했다. 지나친 방종도 문제지만 차라리 모두가 다 술고래인 것이 평등했는지도 모른다. 산업이 발달하고 노동자계급이 생겨나면서 과한 음주를 노동자층에게만 전유시키는 것은 결국 차별이 되었으니 말이다.

예절이란게 막 생겨나기 시작한 그 시절을 상상해 보자. 식기 도구가 등장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전까지는 모두 손이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로 음식을 먹었다. 혹은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먹었다. 포도주도 큰 잔에 담아 돌려가며 마셨고, 수프도 큰 대접에 담아 함께 먹었다. (p. 76)

포크는 사탄이 들고 다니는 삼지창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된 도구였다. ... 한 독일 목사는 포크의 악마적 성격을 신이 인간에게 손과 손가락을 만들어준 이유와 연관지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에게 손가락이 있는 까닭은 포크 대신 손가락을 사용하라는 신의 의도를 보여준다고 했다. (p. 79)

 

유럽에 예절이 생겨나기 시작한 무렵은 12세기 전후라고 한다. 예절이 생겨나고 있건 어쨌건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이용해서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손가락과 함께 숟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공동대접에 담긴 수프를 한 개의 숟가락으로 돌려가며 사용하여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13세기 예법서에서는 "숟가락으로 먹을 때 숟가락을 쪽쪽 빨지 마라' 는 지침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포크는 16,17세기가 되어서야 사용되기 시작했다. 칼은 무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꺼려졌다. 하지만 귀족문화가 발달하고 궁정생활이 시작되면서 그들만의 식사예법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중세시대 식사예절은 사회적 차별의 도구로 쓰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세와 근대의 일반인들은 신호가 오면 그 자리에서 용변을 해결했다. 변기나 보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창문을 통해 길에다가 바로 노폐물을 버렸다. ... 안뜰처럼 길가의 후미진 곳도 장을 비우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일반인들은 물론 귀족의 집에도 그런 공간은 배설물로 질퍽거리는 게 정상이었다. 17세기 런던의 한 사업가는 낯선 집에서 요강을 찾을 수 없자 벽난로에 용변을 봤다. 귀족들 역시 억지로 참기보다는 궁전의 벽난로라도 찾아 소변을 봤다. 당시는 하수도가 없던 시절이라 유럽 도시의 거리에는 어디나 똥이 넘쳐흘렀다. ... 18세기 에든버러의 행인들은 반드시 모자를 써야 했다. 어느 집이나 하루에 한 번은 창문을 열고 길에다 요강을 비웠기 때문이다. ... 어디에서 배설물이 있었기에 당시 사람들은 배설물을 아무렇게 않게 다뤘다. ... 18세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유한 집안의 연회에는 식탁옆에 탁자가 하나 더 세워졌고 그 위에는 요강이 올라갔다. 그것이 식사를 마친 손님들을 위한 배려였다. ... 결과적으로 위생 관념이 생긴 것은 유럽 도시들에 하나둘씩 하수도망이 깔리기 시작한 19세기부터다. (p. 99~103)

길거리 를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똥바가지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몸서리쳐진다. 푸세식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적어도 화장실이 있지 않았었나? 아무데서나 싸고 아무데나 버리고 어디서든 똥냄새가 나는 곳에서 살면서 동양에 와서는 도로정비가 안되어있네 가묘제도로 인한 시취가 지독하네 했던 것이다. 똥을 안 밟기 위해 하이힐을 만들고 똥을 안뒤집어 쓰기 위해 모자를 썼던 것이 오늘날 패션이 된 것을 보면 유럽문화의 힘이 대단하긴 한 것일수도.

13세기 독일 기사들의 행동규정에 따르면, 오직 '경박한' 기사들만이 목욕을 했다. ... 그런가 하면 목욕을 부도덕한 육체적 오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비난이 전혀 뜬검없는 소리는 아니다. 그당시 기사들이 목욕하러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청결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닌 다른 데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마친 기사들은 규정에따라 어린 소녀들과 함께 목욕할 수 있었다. ... 기사들이 성적 동기에 이끌려 목욕을 좋아했던 반면, 일반 민중은 물을 기피했다. 13세기 프랑스의 농촌에서 자란 사람ㄷ르은 목욕을 아주 가끔했다. 대신 가까운 친구 사이임을 증명하는 행동으로 서로의 몸에서 이나 벼룩을 잡아주었다. ... 어쩌다 한번 씻을 때도 생식기나 항문 주변은 건너뛰었다. 물이 닿는 곳은 손과 얼굴, 입 등 음식을 나누고 준비하고 맛보는 신체 부위에 한정됐다. (p. 115)

유럽에는 사회 최상류층도 개인의 청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대였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한 달에 한 번 목욕했는데, 그마저도 '필요하면 하고 아니면 건너뛰는'식이었다. 손과 얼굴만 매일 씻으면 그만이었다. ... 17세기 영국인들은 특히 생식기 주변을 씻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다. ... 의복이나 향수, 향수가 뿌려진가발 등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는데, 이를 활용하면서 씻어야 할 이유는 더 줄어들었다. 프랑스 귀족들이 '씻는다' 고 하면, 손만 물에 담갔다가 헹군 다음 얼굴에 향수 몇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을 의미했다. 속은 거의 갈아입지 않았다. 불쾌한 냄새는 향수로 가리고, 얼룩은 파우더로 덮으면 되는 일이었다. ... 유럽인들이 개인의 청결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은 19세기 들어서부터다. (p. 116,117)

 

유럽인들이 안 씻고 더러웠다고 욕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에는 다 더럽고 안 씻고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대부분 모르고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이정도 인줄은 몰랐다. 유럽 사람들이 19세기 이전에 저렇게 더럽게 살았다는 것을.

영화에서 보면 중세 유럽과 근대의 유럽은 우아하고 고상하고 고급진 그런 문화로 그려내고는 하지 않나?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게 다는 아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이나 조선사회를 그릴때는 좀 더럽고 추하게 그린 영화들이 많지 않았나? 하지만 거기나 여기나 거기서거기 였던 것이다. 그들이 더 낫고 우리가 더 못한 게 아니라.

중세의 웃음은 투박하고 잔인했다. 사람들은 지능이 좀 떨어지거나 정상 기준에 못 미치거나 하위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보고 웃었다. ... 때로는 비난이나 모욕, 조롱 등이 공개 형벌의 일부에 포함되기도 했다. 공동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개인에게 가하는 형벌 중 하나였다. ... 15세기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 지역 도시 주민들은 돈을 모아 강도 한 명을 보석으로 꺼냈다. 그의 사지를 찢어 죽이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 옛날에는 동물이나 정상인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 다른 사회계층, 다른 종교의 신도 등 절대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없는 대상을 웃음의 원천으로 삼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사람들은 귀족 관료들을 사형에 처하는 장면을 보며 웃었다. ... 남의 고통을 보며 느끼는 기쁨과 궁정 광대의 전통은 서커스란 제도를 통해 민중을 위한 오락으로 살아남았다. (p. 139~147)

고대로마에서의 검투사경기나 황제들의 잔인한 놀이는 유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유럽사회에 내내 있었던 모양이다. 공개처형 구경하기를 즐겼고 고문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보여주며 하다가 구경꾼들의 요청에 의해 고문을 더 오래 하기도 하고, 동물을 학대하는 것을 즐겁게 회자했던 사람들은 몇백년을 걸쳐 그 문화를 유지했다. 웃음의 의미는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웃음은 공격성을 가질 수도 있다. 내옆사람들은 웃는데 나는 웃지못하고 있다면 나는 그들로부터 소외당한 것이다. 공포를 보며 잔인함을 보며 웃었던 분위기는 그저 투박했다고만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때 웃음 유발시켰던 장면들은 정말 웃음이었던 걸까 공동체로서의 소속감이었던 걸까...

중세의 문화는 어느 모로 보다 오늘날보다 저속했으며 인간 간의 상호작용은 훨씬 직접적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다보니 무심코 던진 농담이 갑자기 피 튀기는 싸움으로 불거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1216년 피렌체 사람들이 연회를 열어 도시의 유력자들을 초대했다. 식사사는 동안 광대 하나가 부오델몬티 가문의 열쇠를 잽싸게 낚아챘다. 이에 젊은 부오델몬티를 제외한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그런데도 부오델몬티가 계속 고지식하게 굴자, 도시의 다른 유력자인 아리기가 이를 질책하며 부오델몬티 머리에 열쇠를 던졌고 부오델몬티는 그에게 칼을 던지는 것으로 맞받아쳤다. 이 작은 소동으로 피렌체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가문간의 싸움이 점화됐다. 가문끼리의 싸움은 교황파인 겔프당과 황제파인 기벨린당으로 나뉘는 정치싸움으로까지 비화해 그 정점을 찍었다. 연회에서 밥을 먹다가 시작된 싸움은 10년이 넘게 계속됐고, 그 여파로 이탈리아 문학의 아버지인 단테 알리기에리가 피렌체에서 추방됐다. 겔프당에 속했던 단테는 자신의 작품 <신곡>에서 기벨린당에 속한 자신의 정적을 지옥의 똥구덩이 속에 처박아 버린다. 작품 속에서 단체를 지옥으로 안내하는 베르길은 용감한 단테의 정당한 분노라며 이를 치켜세운다. 중세에 모욕이란 말 그대로 사생결단의 문제였다. 사회계층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명예를 훼손당하면 곧장 칼로 손을 뻗었다. (p. 157)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폭력을 쓰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 중세에는 격투, 주먹질, 사냥이 일상이었다. 누구보다 귀족들에게 폭력은 삶의 즐거움이었다. ... 사람들은 종교와 관습이 다른 사람을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못했다. (p.158)

여자를 마구잡이로 때리는 폭력이 일상처럼 벌어졌다. 중세에 결혼한 여자들은 끊임없이 맞았고 농가는 물론 귀족 가문에서도 체벌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 남편이 부당하고 폭력적으로 행동할 때조차도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 16세기까지 남편의 폭력성은 결혼생활에 필수 요소로 여겨졌다. 그리고 서양의 예법서들은 그 폭력성의 발현을 막기 위해서는 아내가 유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8세기 중반까지도 영국 법원은 아내가 잘못된 행동을 할 경우, 남편이 매질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적으로 허용했다. (p. 187~191)

 

폭력과 공격성에 대한 부분은 정말 너무 야만적이라 입이 떡 벌어졌다. 명예라는 것도 사실 무슨 거대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었다. 중세시대의 명예는 내가 봤을때는 기분이 나쁜것 일 뿐이었다. 아주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상대방의 행동이 내가 맘에 안들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싸우는 것이다. 맥락없이 싸우고 이유없이 죽었다. 노예, 아이, 여자 를 때리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행동이었다. 어떤 중세기사는 세딸에게 여자로서 지침을 준다며 쓴 글에서 아내를 바닥에 눕혀 놓고 때리고 발로 걷어차서 코를 뭉개뜨린 후 일그러진 얼굴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아내가 그나마 남편에게 복종한다고 가르쳤다. 기사도라는 말이 왜 그렇게 멋진 말로 둔갑되었을까? 폭력적 일상에서 기사도를 발휘하는 멋진 남성은 없었다.

중세사회에서 여자들은 기사들을 위해 준비된 상 이었다. 기사들은 결혼을 통해 성의 주인이 될 수도 있었다. 두 가문이 결혼을 앞두고 협상을 시작해 합의를 이루면 결혼 당사자들이 승인하는 것으로 절차가 진행되었다. ... 당시에 결혼이란 딸을 다른 남자의 소유물로 이전하는 절차였다. ... 오늘날 서양 사람들은 인도의 강제 결혼을 생경하게 받아들이지만, 한때 유럽 전역에도 그런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다. (p. 197, 198)

중세와 근대에는 신혼부부의 사적인 공간이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첫날밤의 즐거움이 온 동네에 중계되도록 그들의 침대는 의전에 맞춰 공개된 장소에 놓였다. (p. 199)

중세엔 주거 공간이 좁은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침대 하나를 나누어 썼다. 가족들이 함께 자는 것은 물론이고 하인들이나 손님도 주인과 한 침대를 썼다. 16세기에 들어서야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유별함을 가르치는 지침서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로부터 2백년 후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같은 침대에 누워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p. 207)

중세의 성도덕이 순결한 사생활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저 정해진 사회적 관습을 따르고 공공연한 추문을 피하면 끝이었다. 당시에도 혼전 관계나 불륜은 다반사였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즐거움을 찾을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었다. (p. 212)

 

처음 만나는 여성의 가슴을 만져도 괜찮고, 처음 보는 여성이 맘에 들면 어떻게든 꼬셔서 성관계를 갖는 것이 당연하고, 강간이나 납치도 횡행했던 시대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던 걸까? 심지어 뻑하면 맞아가면서까지. 읽을수록 기사도는 대체 언제쯤 나오나 싶었는데 결국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왜곡된 기사도정신에 대해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뽑내기 위해 다양한 도구와 방법들을 만들어냈다. 왜 대체 왜일까?

마지막 9장에 이르러 저자는 '디지털 중세시대' 라며 현재를 이야기 한다.

" 사람들은 이제 SNS 공간에서 허세를 떨고 서로를 유혹하고 행패를 부린다. 중세 기사들의 무절제한 태도가 또다시 만개하고 있다" 면서 인터넷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중세시대 못지 않은 미개한 행동들이라고 말한다. "지금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나르시시스트들의 자화자찬과 악플러들의 장황한 험담을 보고 있자면 중세의 통제되지 못한 행실이 가상세계라는 새집을 구했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오늘날 디지털 중세기에선 맞대응과 비아냥거림, 공격과 연민의 상실이 일상화 되어버렸다' 며 중세보다 더욱 한계가 없어지고 위험해졌다면서 현재를 비판한다.

1장에서 8장에 걸쳐 매너의 시작, 몸가짐과 바디랭귀지, 인사법, 식사예절, 자연 욕구와 분비물, 눈물과 웃음, 공격성, 성생활 에 대한 중세시대 이야기를 하면서 뒤로 갈수록 중세시대에서 현대에 이어진 문화들을 점점더 많이 자연스럽게 확장해가더니 9장에서는 현재를 이야기 하며 중세와 비교한다. 결국 저자는 중세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중세를 이야기하면서 현재를 다시 보게끔 하고자 했던 것일까? 중세의 야만성을 부각시키면서 더욱 야만적이 된 현재를 드러나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책은 결국 매너의 문화사가 아니라 중세적 인류사를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풍속 문화에 관한 역사는 항상 훌륭한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에서 위로를 얻을 수는 있다. 이제는 당연하게만 보이는 서양의 생활 방식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위대한 역사철학가인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새벽녘에 날개를 펼친다' 라는 말을 남겼다. 고대 사람들은 부엉이가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를 동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인터넷 세계 속 시간에서 부엉이는 어디에 있는가. 짐작건대, 둥지에 앉아 두 눈을 꼭 감고 있을 것이다. (p. 252)

저자는 사회가 변했다고 행동양식이 변했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일상적 환경에서의 폭력성은 눈에 잘 띄지 않게 되었지만 인간의 존재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에게 본래의 특성은 없다고 말한다. 문명화된 사회속 인간의 태도에 대해 말하는듯 하면서 인터넷 공간 역시 이 사회의 하나라고 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다시말해 저자는 어떤 결론도 정확하게 내리지 않는다. 짧고 유쾌한 역사로 읽고 넘기기엔 저자가 숨긴 의도가 궁금해지면서 마지막장을 덮기가 아쉬웠다.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다양한 민족을 품어안으며 다양한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처럼 보였던 유럽의 속살을 까발리는 듯한 관습들을 알려주면서 저자는 디지털현재에 대한 우려로 글을 마친다. 뭔가 더 필요한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나에겐 '디지털 중세시대' 라는 단어만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과거의 관습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냐는 질문에 '디지털 중세시대' 라는 단어에 대한 답으로 구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명과 문화에는 상하를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책은 유럽 문화사에 대한 상위의 위치를 하위로 내리는 책이 아니다. (문화는 그저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므로) 하지만 과거의 잘못된 관습이 현재에 이어지고 있다면 더구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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