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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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밤, 나를 위로하는 그림이 필요하다 (표지 中)

 

 

"누구에게나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밤이 있다." 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마음을 다정하게 안아주는 그림을 읽는다." 를 경험하고 싶었다.

나는 혼자 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타입이다. 혼자 만의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이자 자유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그림과 함께 보내보고 싶었다.

그런데... 표지 그림 부터 나에겐 좀 삐걱거림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화가 폴 세잔은 "고독은 나와 어울린다. 고독할 때만큼은 아무도 나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고독을 뜻하는 'solitude'를 '자가의 영혼을 가지려는 태도 soul+attitude' 로 받아들인다. 혼자 있어 즐거우면 고독이고 고통스러우면 외로움인 것이다. 세잔은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고향 마을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풍경을 관찰하며 보냈다. 자연의 독창적인 일부가 풍경이 되고, 풍경은 세잔의 내면으로 흘러들어와 이미지로 압축되고, 그의 캔버스는 위대해졌다. 그것은 외로움을 극복한 고독의 결실이었다. (p. 23)

 

 

나는 세잔의 그림을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고독vs외로움 에 대한 비교차이를 다른 책들에서도 보면서 공감했었다.

그런데 세잔이 그린 '세잔 부인의 초상' 을 보며 '예술가보다 예술가 부인으로 살기가 더 어렵다' 고 '우울함을 느낀다' 며 '내 가까이 있는, 내가 마음으로 아끼는 이들이 저런 눈빛이면, 이유는 묻지 않고 맛있는 고급 요리를 사줘야 겠다' 는 다짐을 한 저자의 표현들을 보며 이 초상의 표정이 과연 밥 한끼로 해결될 일인가 싶었다. 고독을 즐기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남편 옆에서 숨겨진 여자로 살면서 남편이 그려준 자신의 이런 표정을 한 초상화를 보며 이 여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세잔은 자신의 부인을 이렇게 우울하게 그려내면서 과연 어떤 마음이었던 것일까? 여전히 고독을 즐긴 것일까? 차라리 세잔의 정물화 만 알았던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영양제는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은 지친 내 마음에 영양을 보충해주는 시간이자 반복되는 일상에서 살짝 비켜나는 시간이다. 요즘의 내게 독서는 비타민, 음악은 마그네슘, 식물 가꾸기는 철분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는 이런 영양제를 더 맛있게 섭취하게 만드는 조미료? 그래서 과다 사용하면 역효과니 조심! (p. 50)

이 짧은 글 옆에 표지 그림이 나온다

 

 

 

 

표지에는 일부만 실린 이 그림의 제목은 '엽서를 쓰는 모델' 이다. 표지를 보면서 왜 하필 여자가 벌거벗고 뭔가를 쓰는 그림을 '새벽 1시45분, 나의 그림 산책' 이라는 책의 표지로 썼을까 의문이 들었다. 새벽 그시간은 감상에 젖어 뭔가를 끄적이기 좋은 시간이긴 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새벽 1시45분과 어울리지 않고 그림산책 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왜?

51페이지에 나오는 그림 전체를 보니 그림 왼편에 이 모델이 그려진 그림이 보인다. 아마도 이 모델은 화가가 자신을 그리는 중간 쉬는 타임에 잠시 뭔가를 썼나 보다. 그리고 다시 모델로서 화가 앞에 섰겠지... 누드모델로 일하는 도중에 난 잠깐의 시간에 누구에게 글을 썼을까? 그 엽서는 보내졌을까? 그림 자체는 좋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저자에게는 영양제와 같은 그림인걸까? 글과 그림이 매칭되지 않는 부분은 책의 도처에서 느껴진다. 물론 이런 느낌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다.

나도 저자와 비슷하게 독서는 비타민, 음악은 마그네슘, 식물 가꾸기는 철분처럼 여기며 산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영양을 얻으며 그 양분으로 이렇게 블로그에 서평도 올리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은 이 그림의 누드모델이 가졌던 엽서쓰는 시간과 연결이 되는 걸까? 좀더 영양제 같은 그림이 없었던 걸까?

여름 바캉스의 로망

세관 공무원으로 일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던 앙리 루소는 환상적인 열대 풍경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 <꿈>에는 저 멀리 보름달이 떠 있고, 초록의 풀들과 옥색의 꽃, 주황빛 열대 과일들이 가득하다. 숨 쉴 틈 없이 빽빽하게 식물들이 엉켜 있는 밀림에서 한 여인이 금색 피리를 불고 있다. 동그랗게 눈을 뜬 사자와 코끼리, 노란 날개를 펼친 이름 모를 새,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여인이 그 소리에 취한 듯 보인다.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함과 꿈꾸는 듯 환상이 가득하다. 피카소와 많은 평론가가 이 작품을 격찬했는데, 원시림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여인이 소파에 앉아 있을 수 있는지 당황해 하는 사람들에게 루소가 말했다.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던 여인은 밀림 속으로 운반되어 땅꾼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는 중이오"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열대림? 도시에 사는 우리의 여름 바캉스의 로망도 이와 같지 않을까? (p. 65)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열대림 이라는 것이 여름 바캉스의 로망이라고?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벌거벗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고 옆에선 뱀이 기어다니는데 땅꾼이 뱀을 춤추게 하듯 피리를 불고 우거진 풀숲에선 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며 여름 바캉스의 로망을 꿈꾸었다고? 내가 이 여인이었다면 너무 공포스러울것 같은데!

소파위에서 잠들었던 여인이 밀림 속으로 운반되어 땅꾼의 피리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는 중이라고?

납치해와서 환각에 빠지도록 주술을 걸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상황 아닌가? 햇빛 한점 제대로 들지 않는 우거진 밀림에서 불어주는 땅꾼의 피리소리가 과연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이 여인이었다면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을 것 같은데!

예술을 몰라서 이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 거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술에 무지하긴 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지한 채로 이해되는 예술이 좋다. 이렇게 공포를 꿈이나 로망으로 이해하는 것 보다는!!!

즐거움으로 깊어지는 작품도 있다. 모네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가난했지만 그림은 언제나 밝았다. 살아가는 일이 불행한데, 굳이 그림까지 불행을 그릴 필요가 없다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밝고 행복하여 가벼워 보이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가 르누아르의 그림에 담겨 있다. 좋은 작품이 무거울 수는 있지만, 무겁다고 좋은 작품은 아니다. (p. 71)

르누아르의 삶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르누아르는 여성혐오 와 여성비하 발언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말로는

"나는 여성 작가나 변호사, 정치가들을 괴물이다 다리 다섯 달린 송아지라고 생각한다. 여성 예술가들은 그냥 우스운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여자 가수나 댄서는 좋아한다" 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색감이 예뻐서 예전엔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림을 좀 보고 그림관련 책을 좀 보다 보니 르누아르의 편협한 사고방식이 너무 과하다 싶을때가 많았다. 동시대의 여류화가를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의 그림 속 여자들은 주로 춤을 추는 무희거나 여종업원 이었다. 르누아르가 추구한 행복에는, 르누아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여성은 없었다. 예쁜 장식품 같은, 꺾고 싶은 꽃같은 남성의 소유물만 있을 뿐.

그런데 저자는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즐거움이 깊어진다고 한다. 물론 취향차이다. 그러나 무겁다고 좋은 작품이 아니듯이 겉보기에 밝아보인다고 행복한 작품은 아니다.

 

 

이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았던 부분은 고흐의 편지에 담긴 스케치 그림을 본 것이었다.

고흐의 그림을 여럿 봤지만, 편지 속에 그린 스케치그림은 처음 보았는데, 그 그림들이 나중에 어떤 작품이 되었는지 아는 것이었기에 스케치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편지에 이렇게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 생각하니 그의 인생이 더 짠해지기도 했지만, 이 정성어린 스케치가 채색한 그림보다 더 잘그린것 처럼 보일 정도로 실력이 너무 좋아서 고흐가 더 좋아졌다. 진심은 스케치만으로도 통하는 것 같다.

저자는 131페이지에서 한량처럼 살겠다는 농담어린 진심처럼 제대로 된 한량 같다.

약력을 찾아보니 한양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후 파리로 유학을 가서 사진,조형예술, 비디오아트, 예술과 공연미학 등을 배웠다고 한다. 예술인문학자로 살면서 인문학을 예술작품으로 쉽고 재밌게 알리는 글을 쓰고,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예술인문학자라...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배우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저자의 삶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없다. 그러나 '오늘 혼자 있을게요' 라고 말하며,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때 그림은 참 매력적인 동반자가 되어주었다'는 저자의 프롤로그가 좋았다. '이 책과 함께 오롯이 혼자서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하루하루가 조금은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는 저자의 프롤로그 마무리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길 바랬다.

그러나 그림 산책을 하고 싶었던 나의 기대와 달리 그림이 너무 적은데다 글과 연결되지 않기 일쑤였고, 새벽 1시45분 이라는 시간이 주는 감성은 맥락없는 개인 감상에서 그쳤다. 저자가 받은 위로에 공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나의 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의미는 있었을 텐데 저자와 나의 감성은 하늘과 땅 사이처럼 멀고 먼 듯 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림으로 위로받으려던 나의 기대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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