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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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이 쉬어가는 곳, 여기는 '소양리 북스 키친'입니다.

책읽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나만의 서점 나만의 북스테이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내가 읽은 책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함께 한다면? 그야말로 꿈이다꿈... 그 꿈을 실현시킨 사람이 있다. 비록 소설속에서나마 ^^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맞는 이름을 고민하던 중, 책마다 감도는 문장의 맛이 있고 그 맛 또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났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듯 책을 추천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이 되듯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북스 키친'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맛있는 책 냄새가 폴폴 풍겨서 사람들이 모이고, 숨겨왔던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고 위로하고 격려받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마침내, 유진의 허리케인 회오리는 잠잠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세계에 입장한 상태였다. (p. 12~13)

유진은 선배와 스타트업 회사를 열심히 준비했고 또 성공시켰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았고 회사를 정리하고 여행하던 중 우연히 소양리에 들렀을 때 땅을 사게 됐다. 그 땅에 새로운 건물을 올렸고 '북스 키친'이라 이름 붙였다. 산속 평화로운 분위기와 책들이 주는 안정감과 맛있는 음식이 주는 넉넉함까지... 그야말로 꿈의 공간이 탄생했다. 이 공간에 제일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은, 유진이 산 땅에 있던 한옥의 주인할머니 손녀인 다인이었다. 다인은 '다이앤'으로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탑스타였다.

가수가 디는 건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다인은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과 대화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갔고, 그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언젠가부터 다이앤은 대중의 애장품이 되었을 뿐이었다. (p.23)

할머니의 한옥이 다른 곳으로 팔리고 그 땅도 팔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인은 할머니와의 추억이 어린 소양리로 향했다. 티비속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고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르겠고 너무 유명해져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옴짝달짝 못하게 된 지금, 자신을 스타가 아닌 그저 손녀로 대해주던 할머니의 따스함이 그리웠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 역시 할머니와 할머니의 집은 없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따스한 '북스 키친'이 들어서 있었다.

직장 생활 4년 차인 나윤은 쳇바퀴 같은 회사 생활에 점점 익숙해짐과 동시에 질려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회사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나윤이 다니는 회사는 좋은 프로그램과 복지 제도가 많은 IT회사이다. 하지만 나윤은 요즘 들어 매사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이 회사에서 자신의 역량을 모두 발휘하고 온 마음을 바치고 싶지가 않았다. 다들 얘기하는 슬펌프가 온 것 같았다. (p. 61)

나윤에겐 대학생때 맺어진 4총사가 있었다. 지금은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사회생활 하느라 연락이 뜸해졌지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만나기만 하면 수다가 끊이지 않는 친구들... 그중 3년 가까이 연락이 없던 시우가 펜션스텝으로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은 갑작스런 여행을 출발했다.

지금 소희는 재판 연구원 3년 과정을 끝내고 서초동의 작은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한 지 3년째였다. 내년이면 판사 지원이 가능한 '법조 경력 7년'을 채우게 된다. 내년 가을에 판사 자리에 지원해서 내후년 봄부터는 법복을 입는 것이 계획이었다. '서른네 살 판사, 최소희'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일정한 속도로 정해진 순서에 도달할 당연한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p. 96)

소희는 타고난 머리에 노력까지 더해져서 지금까지 어려움 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획득해 왔다. 늘 1등이었고 우수한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그랬던 소희에게 뜻밖에도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소희는 급정지했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봤다. 이대로는 안되었다. 소희가 한달동안의 휴가를 쓸 곳으로 정한 곳이 '소양리 북스 키친'이었다. 이곳에서 어릴때 소희에게 상상력을 자극시켰던 <오즈의 마법사>를 새롭게 만났다.

마리는 복잡하고 계산적이고 이해되지 않는 모습투성이었지만, 지훈은 마리의 진짜 모습을 알았다. 겁이 많고, 혼자 있을 때만 몰래 울고, 평범해지기만을 소망하던 아이의 모습을... (p. 144)

북스 키친에서 처음 야외 결혼식을 진행하던 날, 지훈은 마리 모르게 이벤트를 준비한다. 어릴때 친구였으나 사춘기 시절 갑작스레 떠나고 연락두절됐던 마리가 지훈의 연구소에 파견나와 다시 만났을 때 지훈은 이번엔 꼭 마리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고 함께 있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들었던 마리에 대한 소문은 지훈에게 의미 없없다. 지훈은 마리에게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하지만 마리는...

삶은 빛나는 것들로 가득한 화려한 쇼핑몰 같았고, 손을 뻗으면 원하는 것은 대개 쉽게 잡혔다. 그럭저럭 성적이 나와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수혁은 아버지가 자신을 성에 차지 않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수혁이 인생에서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는 아버지였다. (p. 172)

수혁은 재벌가의 아들이었고 어렵지 않은 인생을 누려왔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의 꿈을 잃었고 자신의 지위는 흔들렸다. 그 와중에 유일한 지지자였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하루하루 버티던 수혁은 출근길에 무작정 핸들을 돌렸다. 그렇게 달려 주차한 낯선 곳에서 따듯한 사람들을 만났다. 향긋한 커피와 향긋한 책과 함께....그곳에서 책이 진통제라고 말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거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때로는 그리움이 풍기는 은은한 감정에 기댈 때가 있다. 때로는 그리운 마음이 눈송이처럼 그 사람에게도 내려서, 그도 문득 유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지만, 그리운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만난다. 그런 그리운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이야기의 물줄기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유진이 벌떡 일어났다. 세상 어색한 표정을 한 얼굴이 소양리 북스 키친에 들어서고 있었다. (p. 216)

지나고나서야 깨달았지만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성공시키기까지의 몇년 동안 미친듯 일만 하던 유진은 그때 자신이 번아웃 상태인지 몰랐다.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선배와 날선 대립을 하며 가시돋친 말들을 퍼부었던 자신의 모습이 이제야 부끄럽게 기억되곤 했다. 그런 유진에게 오랜만에 선배가 찾아왔다.

"옛날에 할아버지가 원두를 직접 갈아서 커피를 만들어주신 적이 있거든요. 제가 대학생 되던 해였는데, 할아버지는 저한테 막걸리보다 커피를 먼저 가르쳐 주셨죠.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인생이 쓴 물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겠지만, 쓰디쓴 순간에도 깊은 맛이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요. 커피를 처음 마실 때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도, 정성스레 끓인 커피 한잔의 맛을 알고 나면 쓴맛 속에 감춰진 비밀 같은 인생의 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요" (p. 273~274)

인생의 쓴맛은 소주에서만 배우는 건줄 알았더니 커피에서도 배울 수 있는 거였다!

'소양리 북스 키친'의 사계절을 읽으며 그 동안 왔다가는 사람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왜 소주가 아니라 커피에서 인생의 쓴맛을 배울 수 있는건지 깨닫게 된다. 책이랑 소주는 좀 안어울리지 않나? 책에는 역시 커피지! ㅎㅎㅎ

계절별 정취와 책속의 책들 그리고 그 책들에 온 마음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정말이지 너무 부러워서 당장에라도 '소양리 북스 키친'에 찾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는 꿈에나 그릴 수 있는 곳, 소설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어딘가 있을 이런곳을 찾아내고 싶다고 나도 언젠가 이런 곳에 머물고 싶다고 다시금 꿈을 품어본다. '소양리 북스 키친'만큼은 아니더라도 북스테이하는 곳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조만간 멋진 곳을 꼭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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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愛 물들다 - 이야기로 읽는 다채로운 색채의 세상
밥 햄블리 지음, 최진선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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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다채로운 색채의 세상

모든 색에는 이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의 눈은 다양한 색을 구별하고 그 색깔별로 다양한 이미지를 인지한다. 따라서 색에 대해 알아두면 의외로 큰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표지에 쓰여진 것처럼 '최고의 전략은 색이다' 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은 아니다. 그저 미술을 몰라도 패션을 몰라도 색이야기는 궁금할 수 있고 흥미롭게 읽힌다. 따라서 '알아두면 쓸모있는 여러가지 색에 얽힌 상식' 이라는 뒷표지의 문장이 적절한 책이었다.

자연의 색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일상에 깃든 색에서 받는 자극은 우리를 환상과 신비의 세계로 데려간다. 이 책에는 그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부비새가 푸른 발로 상대를 어떻게 유혹하는지, 영화에서 색감이 왜 중요한지, 상징적으로 쓰이는 색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 색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알아두면 쓸모있는 유용한 이야기로 엮었다. (p. 17)

이 책은 그렇게 색들과 관련된 이야기로 엮인 책이다. 차례를 보면, 빨강-색을 향한 열정 / 노랑-10년을 정의하다 / 파랑-영감의 원천 / 주황-같은 색깔 다른 세계 / 보라색-숭고한 대의 / 녹색-불편한 진실 이라고 다른 소제목들에 비해 크게 쓰여져 있어서 이 색깔별로 묶인 이야기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아니다. 색깔들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어떤 주제로 묶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이 색 이야기를 하다가 저 색 이야기를 하다가 한다. 앞에서 다루었던 색도 뒤에선 다른 내용으로 다시 다루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저 자유롭게 마음편히 쉽게 읽으면 된다.

그렇게 읽다보면 때로는 당연스런 이야기들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들도 있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게 읽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케냐 에서 농장들이 매로부터 닭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닭을 보라색으로 칠하는 것이다 라든지, 패스트푸드점에 적용되고 있는 '케첩 머스터드 이론' 이라든지, 머미브라운 이라는 색에는 실제 이집트 미라의 가루가 들어갔다든지, 푸른 바닷가재도 찜통에 들어가면 빨갛게 된다든지, 극장의 의자가 빨강색인 이유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색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통해 다른 분야의 이야기들을 곁들여 알게 되기도 한다. 세계의 국기 중엔 보라색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던지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라든지 하는 것들 등. 무엇보다 가끔 등장하는 '색의 어원' 이야기가 신선했다.

번역서이지만 책의 원제가 무엇인지 알수 없는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색에 대한 감정이 愛로 물들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색의 의미라던가 그 느낌과 그 영향력 이라던가 여하튼 색에 대해 무언가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는다면 미용실에 앉아 잡지읽는 기분으로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또 모를일이지 않는가? 이렇게 잡다한 색에 대한 상식도 언젠가 어디선가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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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 - 39인의 예술가를 통해 본 클래식과 미술 이야기
김희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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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클래식, 예술가와 우리 삶을 잇는 39가지 이야기

'세기의 걸작을 남긴 음과 색의 마술사들, 삶은 그들에게도

때론 관대하고, 때론 혹독했다'

소위 예술이라 하는 것들은 비싸다 어렵다 하지만 끊임없이 유혹하고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을 욕망하는 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그래서 비싸고 어려운 것들을 싸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들엔 늘 호기심이 생긴다. 가질 수 없어도 즐길 수는 있다고 생각하면서.

클래식, 미술과 친구가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가는 겁니다. 이 선택은 저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접하고 이해하려 하며 다양한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p. 5) 그렇게 절친이 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분에게 소개하기 위해 책을 쓰게 됐습니다. 이 책에선 총 11개 장에 걸쳐 39명의 예술가들을 소개합니다. (p. 6) 그렇게 이들의 이야기를 경유하다 보면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엄청난 거장 예술가들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실 겁니다. (p. 8) -프롤로그 中-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데에도 서로의 사연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 만큼 좋은 것이 없다. 몰랐던 그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몰랐던 그사람의 허술함을 보았을때 딱딱한 관계는 한층 물렁해지고 그제야 소통은 가능해진다. 예술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예술이 어렵다면 예술가의 삶을 알고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면 예술작품 또한 한결 편안하게 다가온다고.

전문가의 어려운 옹어들이 아니라 신문기자로서 갈고닦여진 문장들이 쉽게 읽히기에 그러한 저자의 제안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39명의 예술가들은 클래식의 거장들과 명화의 거장들이고 장르별로 구분되었다기 보다는 저자의 감상느낌별로 구분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파격적인 예술가들, 감각적 예술가들, 늘 새롭게 변신하는 예살가들, 집념의 예술가들 등등 때로는 명화가 때로는 음악이 책장밖으로 튀어나온다. 미술의 경우 작품명을 검색하면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음악의 경우엔 QR코드로 직접 들을 수 있게 덧붙여 놓아서 책을 읽다 중간중간 작품감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책속에 유명한 예술작품들이 넘쳐나지만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의 삶에 좀더 초점을 맞춘 글이다 보니 읽다보면 예술작품들에 대해 배운다기 보다는 예술가들을 좀더 인간적으로 느끼게 된다.예술가들의 사연을 읽으며 세상엔 정말 사연없는 사람은 한명도 없나보다 싶고, 예술가들의 친구와 스승 그리고 연인들을 보며 아 이렇게 연결되는 관계들이 있었구나 싶어 새로웠다.

'가슴속에 1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 그림과 글씨가 된다' 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의 말씀입니다. 비단 그림뿐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죠. 예술가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지식과 경험을 쌓고 폭풍 같은 고뇌를 거듭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흘러넘쳐야 그만의 독창적인 시선이 만들어지는데요, 음악과 그림은 그렇게 구현된 세계의 결정체입니다. 많은 예술가와 친구가 되고, 또 이들의 작품과 가까워진다는 건 그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안에서 즐겁게 놀다 보면 예술가들 각자의 가슴속에 있던 1만 권의 책,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겠죠. 부디 이 책이 독자 여러분께 그 길로 들어서는 안내서가 됐길 바랍니다. (p. 327~328) -에필로그 中-

예술사조며 시대적 흐름이며 작품의 상징 등 예술이 주는 어려운 모든 것들을 벗어나 쉽고 간단하게 이름들을 알아가고 싶다면 이 책이 유용할 것이다. 예술가가 언제 태어나 어떤 기법을 익혔으며 예술작품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느 사조에 속하는지 등등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다. 화가의 이름 작품 두어가지를 알아두면 언젠가 다른 책 혹은 전시장 포스터에 갑자기 눈길이 갈수도 있을 것이고, 음악가의 이름 클래식 한두곡 정도를 들어두면 티비광고에서 갑자기 아~이곡은!하며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이 아무리 비싸고 어려워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알고 예술을 보면 예술도 사람답게 다가오지 않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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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 풀빛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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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이라는 위안'에 가려진 플라스틱 재활용의 실체,

그리고 쓰레기 식민주의를 파헤친 인류학자의 '플라스틱 마을'르포

저자는 인류학 박사로 엑스-마르세유대학에서 사회학 및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2011년부터 폐기물, 플라스틱 재료, 재활용에 대해 연구중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베트남의 민 카이 마을을 알게 됐고 방문하여 '플라스틱 마을'의 실체를 확인하게 됐다. 저자는 그곳에서 '재활용의 신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무너지는지를 깨달았다. 이 책의 원제는 'Le Mythe du Recyclage' 재활용의 신화 이다.

이 작고 얇은 책은 르포처럼 읽히는 글이긴한데 주제와 결과가 명확히 정리되는 글은 아니었다. 본문에 비해 오히려 추천사에서 그 내용을 더 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재활용 쓰레기 처리 시스템과 흐름의 진실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재활요잉라는 '신화'에 담긴 모순과 부조리, 긜고 거짓말을 폭로한다. 그럼으로써 쓰레기 재활용을 둘러싼 우리의 고정관념과 허위의식을 전복한다.' 라며 탐사보고서 로서의 이 책의 가치를 높이고 '우리는 재활용 표시가 붙은 상품을 구입하며 지구의 자원을 과도하게 소비한 행동에 용서를 구하지만, 생각과 달리 재활용은 지구를 구하기에 역부족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라며 깨져버린 신화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하지만, 이러한 정돈된 추천사가 없었다면 본문읽기로는 확실한 깨달음을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 같은 서술방식과 문장들이어서 좀 아쉬웠다.

멀고도 가까운 이 베트남 마을에서 재료의 여정과 포장재, 비닐봉투 등 물건의 삶에 관한 나의 연구를 토대로 쓴 이 글을 통해 이곳과 다른 곳을 연결하고, 인간이든 아니든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멀고도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시팓. 그래서 일상의 경험에 대해 반향을 일으키고 쓰레기, 재활용 그리고 플라스틱과 우리의 일상적 관계를 살피고자 한다. (p. 24)

결과적으로 저자는 베트남의 민 카이 마을에 대한 현장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위와 같은 살펴보는 시선을 독자 스스로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나름 철저하게? 분리수거 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거나 환경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내곤 한다. 하지만 그 쓰레기들이 정말 재활용되고 있는 것이 맞을까?

거시적으로 모든 재활용 시스템을 살펴볼 순 없지만 베트남의 민 카이 마을 한곳을 세세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활용에 대한 기대는 허상이고 거품이었음이 드러난다.

세계의 재활용 쓰레기들은 자국에서 처리되지 않고 타국으로 수출된다. 그 쓰레기들을 수입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에는 쓰레기 마을이 있다. 쓰레기 마을에서는 온갖 악취와 더러움 속에 쓰레기산을 헤집으며 다시 쓰레기를 골라내고 그중 일부가 재활용품으로 재생되지만 그 사용처 또한 그 쓰레기마을에서 순환될 따름이다. 쓰레기를 버린 나라들에서는 깨끗한 원재료로 깨끗한 재활용 봉투를 만들어 재활용하지 않고 그저 버린다면 그 쓰레기를 받은 나라들에서는 더러운 원재료로 믿을 수 없는 재활용 봉투를 만들어 나름 재사용하지만 그 사이 환경과 건강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으므로 그것이 과연 재활용인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 대표적 예시가 플라스틱 마을이라 불리는 민 카이 였다.

결국 재활용의 문제는 환경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의 문제였고 불평등의 문제였다. 누군가의 친환경을 위해 누군가의 환경은 철저히 파괴되고 있었다. 지금은 서로 연관없어 보이는 그 장소들이 사람들이 과연 계속 연결되지 않을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바닷물은 돌고돌고 대기는 돌고돌고 전염병도 돌고도는데?!

현재의 재활용 시스템은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에서 더러운 쓰레기가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계속 깨끗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과신하지 말자. 어차피 모두 지구에서 살고 있다. 내가 버리고 더럽힌 것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재활용이 진정 재활용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우리는 좀더 신경써야 할 것이다.

ps. 프랑스와 영국은 오랜 역사에서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다. 대부분 서로 앙숙인 관계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프랑스학자인 저자는 민 카이 마을에서 찾은 쓰레기들 중에서 유독 영국과 아일랜드의 것을 콕 집어내고 친환경적이지 않은 재활용업체들 중에서 유독 영국 기업을 콕 집어낸다. 험담을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세계의 쓰레기와 세계의 모순적 기업들 중에서 유독 영국것을 예로 든 것은 인류학자라는 저자의 직업에서 갖춰야할 중립성이 조금은 흔들려 보여 아쉬웠다. 또한 르포라면 상세한 르포로, 프로가 아니라면 좀더 확실한 연구데이터로 논리를 세워 전개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이 눈으로 본것 베트남 사람들을 몇명 만나 대화를 나눈 것으로 넌즈시 읊조리고 있는 이 책은 너무 모호한 내용이라 '쓰레기 식민주의'라는 거대한 모순을 파헤쳤다거나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이또한 아쉬웠다.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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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대한 감각 트리플 12
민병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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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하고 불연속적인 감각만이 유일한 논리로 작용하는 세계

이미지는 진술하고 서사는 침묵하는, 멈춘 소설의 세계

이 책은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 12번째 책이다. 이 책의 특징상 작고 얇은 책에 3편의 단편, 무엇보다 새로운 작가.

그 새로움이 이번 책만큼 강렬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새롭다 못해 조금은 충격적인, '이미지는 진술하고 서사는 침묵하는 멈춘 소설' 이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 책이었다.

너는 잠에서 깨어나 밤새 가라앉았던 감각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낮은 천장과 먹색으로 도배된 벽지를 보며 이곳이 낯선 이국의 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발코니에 서서 사진과 영상에서나 봤던 양식으로 건축된 시가지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예전 일들을 떠올린다. 누가 곁에 있었고, 주로 무엇을 했으며, 어떤 곳에 있었는지, 떠올리지만, 위상으로 겹쳐진 시공간속에서 너는 희미함을 느낀다. (p. 12)

<겨울에 대한 감각> 中

이미지들의 나열 속에 너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는 구분되지 않고 도마뱀이 다니는 낯선 이국의 방에서 눈이 너무 많이 내린 이곳까지 모두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작가는 겨울을 이렇게 감각했다는 것일까 겨울로 연상되는 사람관계에서의 의미를 상징한 것일까... 감각은 느껴지지 않지만 서늘한 소설임은 맞다.

한밤중에, 창문을 열었고, 담 너머 세상은 깊은 암흑에 빠져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입김이 흩어지는 창밖을 긴 시간 바라보는 것으로 갑자기 깨어난 새벽 내 지루함을 견디고 있었다. 이제 몇 시간 뒤 동이 트면, 암흑이 걷힌 산중에서, 요 몇 달간 나를 괴롭히던 여러 소리와 상황들이 다시 담 너머에서 밀려 올 것이다. (p. 41)

<벌목에 대한 감각> 中

'나'에겐 일년전 신문지면에 오를만한 사건이 있었다. 그후 고모 혼자 살던 집에 혼자 살고 있다. 이 집은 산 언저리에 있고 이 산에선 벌목이 진행중이다. 그나마 앞 작품에 비해 객관적 상황배경은 좀 파악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보다는 '나' 가 벌목에 대해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는 서사는 앞 작품의 '겨울' 과도 연결되고 뒤에 나오는 '불안'과도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트리플' 시리즈 구성에 맞춤한 3작품이긴 하다.

나는 산페르난도 항구 선착장에서 항해에 합류할 요트를 기다리고 있다. 선장은 입국 절차에 대해 미리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p. 70)

잠깐 내려다본 바닷속은, 낮은 암흑으로 일렁였다. 선장과 선원은 보이지 않고, 나는 밤바다에서, 이제 모든 게, 다시 처음처럼 가라앉길 기다린다. (p. 94)

<불안에 대한 감각> 中

이미지적 소설문체다 보니 안그래도 단편에 대한 이해력이 딸리는 나로서는 서사를 알게 해주는 문장을 집착적으로 찾아가며 읽게 되곤 했다. 누가 어디에서 언제 무슨일이 어떻게 왜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은유와 상징을 넘어선 저자의 표현방식은 너무나 생경했다. 단편 3작품 뒤에 실린 [에세이-당신을 통한 감각론] 은 사실 저자 자신에 대한 소개글이다. 일종의 '작가의 말' 이라고 봐도 될법한. 하지만 저자는 '나' 라고 하지 않고 '당신'에 대해 설명한다. 그 '당신'이 곧 '나' 저자 인데...

이제,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말을 당신만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서투르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다. 당신은 소설에게 당신의 손을 빌려준다. 당신은 감각에게 당신의 입술을 빌려준다. 당신은 모든 것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에 대한 감각이 여기로 오고 있다. (p. 107)

<에세이 - 당신을 통한 감각론> 中

저자인 '나'는 '내' 이야기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나'의 말을 '나'만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기에 서두르지 않고 '내' 소설을 쓴다. '내' 소설은 '나'의 손으로 쓰여지고 '나'의 감각은 '나'의 입술로 말해진다. '나'의 모든 것에게 '나' 모든 것을 준 셈이다.그렇게 '나'의 감각이 여기 이 소설에 실렸다.

저자에게 소설이란 '나' 만의 이야기인 것일까... 의아해 질 수밖에 없다;;;. 문학평론가의 '해설' 을 이렇게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될 줄이야.

여기 실린 세 소설을 읽었을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좀처럼 읽어내기 힘든 그의 글 앞에서 난감함을 느끼기도 했다. 읽다말다 몇 차례 반복하던 끝에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지금 이 읽기를 방해하는 것들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읽는다는 것은 쓰여진 것을 받아들이는 일대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행위가 아니다. (중략) 읽히지 않는 민병훈의 소설은 의식이라는 만들어진 심연이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원초적인 표면을 재현한다. 시각으로, 청각으로, 촉각으로 감각된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현상'하는 가운데 이 소설이 재현하는 것은 독해할 수 없는 표면으로 이루어진 무의식이다. (p. 112~113)

민병훈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고 싶었지만,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욕망이었음을 이제 안다. (p. 122) 불친절하고 불연속적인 감각이 나를 나 자신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논리로 작용하는 세계, 이미지는 진술하고 서사는 침묵하는 멈춘 소설의 세계, 민병훈이 심연을 지배하는 작가의 자리 대신 선택한 것은 모두에게 그들의 자연을 돌려주는 작가의 자리다. (p. 124)

<해설 - 감각을 위한 논리 (박혜진 문학평론가)>

줄거리가 없는 소설이라니 낯설다. 시도 아닌데 줄거리가 없다니.

이미지로 진술하는 소설이라니 낯설다. 시적 상징이나 은유도 아닌 그저 이미지라니.

문학평론가도 좀처럼 읽어내기 힘들었다는 작품에 대해 그 작품을 쓴 작가의 무의식을 유추하며 읽어야 한다는 건 독자에겐 모험이다.

이러한 모험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혀지지 않는 글에 대한 방해물을 생각하고 읽고, 읽는 내용에 대해 이해하려는 습관을 돌이켜보고, 소설읽기가 주는 감동에서 멀어져보는 경험이 의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감각' 이란 애초에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므로 비록 쓰여진 글이라 읽기는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러한 낯선 문장들이 내게 전해오는 서늘하고 외롭고 불안한 감각을 느낀 것으로 이 책은 온전히 읽은 셈이 된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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