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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구에 핀 꽃 ㅣ 아시아 문학선 21
이대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4월
평점 :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실화의 주인공을 직접 만났다거나 인터뷰했다거나 한 것이 아닌 자료에 근거한 허구의 소설이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한 허구적 소설에 나는 항상 관심이 간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가 그랬고 신경숙 작가의 리진 이 그랬다.
역사이지만 역사서로 읽지 않고 허구가 섞인 소설로 읽을 때 그 역사적 사실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역사드라마로 역사를 배우면 안되고, 소설을 역사적 사실로 믿으면 안되지만,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알려한다면 소설만큼 유용한 도구가 없기도 하다.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 그랬고 김탁환 작가의 거짓말이다 가 그랬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이 소설은 평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베헤이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단체였다.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의 축약명칭 베헤이렌 이라는 일본어.
베트남 전쟁당시 일본내에 반전평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단체
그 단체가 피신시킨 미군탈영병 중에 한 사람이
미국인이었지만 한국입양아였고,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었지만 베트남전쟁으로 부모를 잃게하고 있었던 한국출신 미군이었다. 냉전시대 그의 선택은 국가가 아닌 인간이었다. 작은인간.
주인공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인으로 자랐고 히피문화를 접하며 반전분위기가 확산되던 때 군인이 되었다.
그가 겪은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살육이었고, 부상휴가로 머문 일본내 미군기지에서 탈영하여 쿠바대사관에 망명하였으나 외교문제로 발이 묶였을때 베헤이렌의 도움으로 소련으로 건너갔다가 스웨덴에 정착하게 된다. 50여년 후 한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통해 잊고 있던 이름 손진호 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것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시간이 삶에 바쳐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시간에 바쳐지는 날들이라는 주인공이 표현한 노년의 날들은 노년의 권태를 불러올 뻔 했지만,
아들과 함께 하는 추억여행속에서 젊은 시절의 혼란과 방황을 의지와 보은으로 마무리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의 권태를 물리치게 해주었다.
주인공은 어디에 있든 굳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가 궁금해하면, 나를 궁금해한다 는 문징은 소설 내내 주인공의 태도를 이해하게 해주었다.
주인공의 삶에 대해 그리고 베헤이렌 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는 '세계시민' '개인' '작은인간' 이었다. 국적을 초월한 세계시만을 추구하는 삶. 그러나 "정신은 늘 국경을 초월하고 있어도 여권이 있어야 국경을 넘어설 수 있는 세계에서는 몸이 삶을 놓고 있으며 몸이 죽음을 놓을 땅에다 나의 이름을 두겠다는 선택" 은 자이니치의 국적에 대해 주인공의 국적에 대해 세계시민의 국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냉전시기 일본이 미국과 맺은 불평등한 미일지위협정은 미군 신분이었던 주인공의 행동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고, 베헤이렌 에게는 두 국가간 불평등의 역설이 만들어낸 평화운동의 합법지대 같은 것이 되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군인의 신분에 대한 불평등한 지위보장이 유효한 것이 생각나서 씁쓸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그런 불평등조약에 의한 미군을 유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본경찰은 유령을 처벌할 수 없고 유령을 도와준 일본인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베트남전에 참여하지 말고 탈영하라고 선동하던 베헤이렌 은 탈영한 미군을 제3국으로 피신시키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한때 전쟁의 주범이었고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 전쟁광같아 보이던 일본에도 그런 양심 세력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그 양심세력이 세계평화를 주장하고 전쟁반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하자는 반성운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의 탈영이라는 선택은 베트남전쟁 반대라는 입장은 다른 미군 탈영병들과 달리 유일한 분단국가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어느나라에서든 선전용으로 써먹기 좋은 조건이었던지라 순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북한도 남한도 미국도 아닌 제3국가를 선택하는 모습에서 한국전쟁 직후 포로수용소에서의 제3국행을 선택했다던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국가라는 경계가 있는 한 평화에도 경계가 생길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싶고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싶기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해 탐사하듯 서술해가는 이 소설이 많이 읽혀지길 바라지만, 문체가 조금 아쉬웠다. 근대소설 속 화법 같기도 하고 연극배우들의 대사 같기도 한 대화체들이 어색한 곳이 여러곳 있었다. 예를들어,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중에
"까마득한 옛날 행적이 정확한 날짜와 함께 등장할 모양인데, 이건 오래된 기억을 깨우는 가로등 같은 거구나" 하고 아버지가 말하자
"가로등 따라 맥주로 목을 축이며 걸어갑시다. 이제 초저녁이니 길이야 멀어도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아들이 답한다. 좀 어색하지 않나?;;;
어린시절 추억담에서 소를 부를때 열살남짓 소년이 '소야 나오너라' 하고, 허세 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허장성세 라고 한다.
현대시점에서 쓴 책이니 대화체나 표현이 좀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면 읽으며 좀더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약간 아쉬움이 있더라도, 이 소설이 좀 더 널리 읽혔으면 하는 이유는
한국전쟁과 고아, 입양아들의 외국인으로서의 삶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상흔, 일본과 미국에 대한 고정관념등 여러 곳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주제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살면서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새빨간 바탕에 총한자루 그 총구에 꽃한송이 로 인상적인 표지에서 꽃이 눈에 박히는 것은
우리가 겨누고 있는 총구에서도 언젠가 평화의 꽃이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