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위인전 - 뻔뻔하지만 납득되는
보리스 존슨 지음, 이경준.오윤성 옮김 / 마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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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일까 위인전일까 아니면 르포일까 역사서일까

모두다 이기도 하고 모두다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제목처럼 정말 뻔뻔한 주장들에 저절로 납득이 된다. ㅎㅎ


저자는 영국 보수당의 정치인이자 저널리스트이고, 역사가이자 2008~2016 런던시장이었다.

이책은 저자가 런던시장이던 2011년에 런던을 대놓고 편애하는 입장에서 지성과 애정으로 쓴 런던의 역사이자 런던의 역사를 만든 인물들의 열전이다.


몇년전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갔던 도시가 런던이라서인지 유럽도시들 중에서는 런던을 편애하는 나이지만 저자의 편애는 상상초월이다. ㅋ

하지만 읽기에 거북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때론 키득거려지고 때론 어머정말 해가면서 읽게되는 것은 저자의 신랄하면서 직설적인 표현들 때문이다.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것이, 저자는 거침없이 써대고 당당하게 내세운다. 런던은 이런도시다 라고.

저자가 풀어내는 17명의 인물들은 런던의 역사에 저마다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들 중에는 듣도보도 못한 인물들이 많아서 새로웠다.


부디카 / 하드리아누스 / 멜리투스 / 앨프리드 대왕 / 정복왕 윌리엄 / 제프리 초서 / 리처드 휘팅턴 / 윌리엄 셰익스피어 / 로버트 훅 / 새뮤얼 존슨 / 존 윌크스 / 윌리엄 터너 / 라이어널 로스차일드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메리 시콜 / 윌리엄 스테드 / 윈스턴 처칠 / 키스 리처즈


역사순으로 서술하면서 인물들의 일화중심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런던의 역사가 입체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다가온다.


저자의 이야기는 런던 브리지 에서 시작한다.

런던을 생각할 때 연상되는 몇가지 상징물들중에 커다란 성처럼 느껴지는 런던브릿지는 노래에도 자주 등장하는 다리이다. 다리는 사람들이 건너는 곳이고 시골과 도시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다리는 런던이라는 도시의 탄생에 중추적 역할을 했고 이 다리를 건설한 것은 로마인이었다. 로마의 세력이 영국까지 펼쳐졌을때 역사상 최초로 런던의 은행을 공격한 인물이 부디카라고 한다. 여왕 부디카가 런던에 끼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역설적으로 로마인에게 런던의 중요성을 로마인의 위신과 연결시키는 사안이 되었다며 자연스럽게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로 넘어간다. 부디카의 반란으로부터 하드리아누스의 행차까지 60년간 런던은 빠르게 로마화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로마의 위세가 꺽이면서 410년부터 런던은 공식적으로 로마제국에서 제외되었다. 그뒤로 로마땅도 아니고 기독교땅도 아닌 상태로 7세기초까지 런던은 다시 야만으로 돌아간다.


멜리투스는 런던에 기독교교회를 처음 세운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기독교적이지 않은 표현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어서 뭔가 시원스런 느낌을 준다. 예를들어, "대모신 숭배와 기독교의 교집합은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것보다 큽니다" 라거나 "5세기에 로마로부터 떨어져 나온 경험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종교나 정치를 통합하려는 그 어떤 대단한 범대륙적 계획에도 잠재의식적으로 불신을 느낀다고 말이다" 라거나 "런던 깊은 곳에는 변치 않는 이교 기질과 야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라는 식의 표현은 현재의 영국에 대해 미국과 비슷할거라는 내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앨프리드 대왕은 색슨족 왕가의 번듯한 도련님이었다고 한다. 그는 바이킹을 바다 건너로 돌려보내고 왕국을 통일했을 뿐 아니라 배며 시계며 랜턴 등 굵직한 발명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런던에는 그가 도시에 기여한 바를 적절히 기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기념비적 건축물이 없기 때문일까? 반면에 정복왕 윌리엄은 노르만족이었지만 런던의 왕위를 차지했고 런던타워를 만들어 남겼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영국인들에게 회자되는 왕이라고 한다. 노르만 시대에서야 런던은 공식적으로 잉글랜드의 수도가 되었다.


영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은 영어가 아닐까? 세계공용어인 영어의 발음은 영국식 발음을 제일 높게 쳐준다. 하지만 영어의 시작은 하층민의 언어였고 속된 언어였고 음란한 언어였다고 한다. 제프리 초서가 영어로 글을 쓰면서 당시 두갈래의 거대한 언어인 독일어와 로망스어를 한데 녹여냈고, 또한 노르만어, 프랑스어, 라틴어를 영어와 적절히 섞어 쓰면서 유머러스 하면서도 활용성 높은 문학언어로 영어를 완성시킨 것이라고 한다.


런던이 도시화 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런던은 은행의 도시가 됐다. 리처드 휘팅턴 은 그 대표적 은행가인데 그가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선행때문이었다고 한다. 부자가 베풀면 이름을 남기는법!

경제가 활성화되면 문화도 부흥하기 마련이다. 런던에 돈이 넘칠때 연극도 넘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었다. 저자는 상업연극이 다른 어느 나라가 아닌 영국의 아니 런던의 위대한 수출품이라고 주장한다. 베토벤과 미켈란젤로에 대한 런던의 효과적인 응수로 자랑스럽게 셰익스피어를 내세우며 잉글랜드의 호메로스 라고 부른다. 하지만 치켜세우기만 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영어로 글을 쓴 가장 위대한 작가였으면서 속물이기도 했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로버트 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대한 발명가로 소개한다. 그는 회화와 건축부터 과학분야의 다양한 혁신과 이론에 이르기까지 관심사의 범위가 다빈치에 버금갈 만큼 넓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많은 영역에 걸쳐 너무 많이 질투심을 느꼈고 그만큼 불화도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뉴턴과의 일화에서 그의 모자란 인성이 안타깝기도 했다.

새뮤얼 존슨은 최초의 언어사전을 단독집필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사람도 부당한 말을 불쑥불쑥 내뱉기 일쑤였고 무례했으며 불평등을 당연히 여기는 보수주의자 였지만 그 속엔 온정이 깔려 있었던 거라고 한다. 반면 필력에서 새뮤얼 존슨 버금가는 사람으로 존 윌크스는 신문이 하원 의사록을 보도할 권리를 쟁취하고 모든 성인남성의 투표권을 최초로 주장하며 윌크스와 자유 라는 구호와 45 자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자유주의자 였다. 하지만 둘다 진정한 서민의 편은 아니었다.

연극에서 런던이 세계를 이끌고 과학에서도 유명세를 날릴때 유독 화가명단에서는 영국인이 드물었다. 그때 윌리엄 터너가 등장한다. 저자는 그가 화가가 무엇을 보았는지가 아니라, 화가에게 무언가가 어떤식을 보였는지가 중요하다는 원치을 처음으로 주장한 화가였다며 인상파의 아버지로 지칭한다.

로스차일드는 유럽 전역에 걸친 금융왕국의 영국이라는 지방의 군주라고 표현된다. 하지만 아무리 부자여도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는 정치권에 진출한다. 돈과 권력은 역시 뗄수 없는 관계...

고대부터 어느새 중세를 지나 근현대 까지 왔다. 근대현대적 인물들은 역사적 흐름이라기 보다는 산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등장한다. 나이팅게일과 메리시콜 은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을 돌보는 양대산맥이었지만 한쪽은 간호학을 세웠고 한쪽은 호텔을 세웠달까. 당시에는 둘 다 칭송받았지만 역사엔 한명만 남은 것을 보며 나이팅게일의 정치력도 새삼 알수 있었다. 윌리엄 스테드는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을 창안한 사람으로 시선을 끄는 기사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영국언론의 화제몰이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 은 실패한 정치가이지만 사랑받은 정치가로서 영국인들이 그에 대한 매력을 어디서 찾는지 왜 그가 런던의 상징이 되었는지 를 보며 영국인들의 특성을 생각하게 된다. 키스 리처즈 는 롤링 스톤즈에 대한 저자의 팬심이 가득한 파트 였다.

런던브릿지도 시작한 책은 인물들을 거쳐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로 마무리된다. 흥망성쇠를 거듭한 이 호텔은 2011년 밀레니엄 호텔로 거듭났는데, 20세기 중반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이 잊혀졌던 시기 런던의 부흥도 멈춰있었다. ​저자는 호텔의 재개장 처럼 런던의 부활을 희망한다. 런던은 뉴욕, 상하이와 3자간 대화를 하기 딱 좋은 시간대에 있고 소통하기 딱 좋은 언어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며 은근슬쩍 미국과 중국 사이에 영국을 끼워넣으려 한다. 세계의 중심은 이제 런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런던이 변방도시인 것도 아니다. 역사를 가진 만큼 저력을 가진 도시라서 저자의 희망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쎄...

런던을 위대하게 보면서도 우습게 표현하고, 런던인을 고급지게 표현하면서도 야만성을 드러내며,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도 은근슬쩍 깍아내리는 이책의 재미는 제목그대로 뻔뻔하면서도 납득하게 되는 저자의 필력 때문인것 같다. 다시 런던에 간다면 이 책에 나온 곳들에 가서 런던의 역사를 음미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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