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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함께 살기
폴 뒤무셸.루이자 다미아노 지음, 박찬규 옮김, 원종우 감수 / 희담 / 2019년 2월
평점 :
표지가 아늑한 색감에 예뻐서 로봇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벼운 인문학에세이 또는 과학에세이 정도를 예상하고 읽었는데, 철학책이었다.;;;
로봇과 함께 살아갈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시대에 인공지능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금 시대에
로봇을 정의하려면 로봇의 윤리를 정의하려면 로봇의 마음을 정의하려면 그 전에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봐야 한다는 책이었다.
저자는 두명 다 철학을 전공하고 한명은 일본의 대학에서 강의중이고 한명은 일본에서 연구를 수년간 진행한 경험이 있는 학자들이다. 철학중에서도 로봇철학 혹은 과학철학을 주요 분야로 연구하고 계신 분들인것 같다. 우리나라는 철학의 학문적 기반이 약한 편인데, 미래철학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 순간 궁금증이 일었지만 알수 없다. 기술적 발전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동반되야 할텐데 일본의 철학적 기반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하고 그렇다.
책은 기정사실처럼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로봇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도와주는 기계는 진작부터 사용되어져 왔다. 하다못해 주방의 믹서기도 로봇이라 할 수 있는 기계지만 우리는 로봇이라 부르지 않는다.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자동화 도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정의부터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AI 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을 가진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율적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진 것을 로봇이라 하는가? 하지만 우리는 로봇에게 결여되길 바라는 특성들이 바로 인간과 유사한 자율성 이라는 측면이다. 인간의 전유물 같은 자율성을 로봇이 가진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로봇이 알아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 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다시말해 우리는 로봇이 자율적이길 바라면서 동시에 자율적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고 책은 주장한다. 소셜 로봇의 연구가 우리는 누구이며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무엇을 가려줄지를, 진짜 자율성이나 의식을 지니고 사고가 가능한 로봇의 탄생이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보다, 인공의 소셜 로봇을 탄생시키려는 우리의 계획이 당장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줄지를, 로봇들에게 공감능력을 심어주려는 노력이 인간의 감정 자체와 감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줄지를, 그리고 마음의 사회적 차원이 마음 자체나 다른 인지시스템과의 관계에 무엇을 가르쳐줄지를. 다시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간이 로봇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 무엇이며, 인간의 정서나 감정 혹은 마음이 무엇인지를 다시말해 인간에 대해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책은 주장한다.
우리는 인공의 존재에게 인간과 닮았으면서도 인간과 다른, 인간보다 못하지만 인간보다 우월한 이상적인 모습을 바라고 있다. 인간이 만드는 로봇을 통해 인간에게 없는 완전성에 다가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로봇과 인간이 흡사하게 여겨질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뇌를 일종의 기호처리장치로 보았던 고전 패러다임이 오랫동안 외면했던 감정이 인지과학 분야의 주요 연구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지능은 이제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지능이 아닌 감정의 문제로 관심이 옮겨져 왔고 로봇에게 그러한 정서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까지 요구할지 혹은 어느정도 까지 가능할지 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소셜 로봇공학은 세상을 변화시킴으로써 인간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주고 인간에 대해 이해하게 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지과학은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다름'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은 이론상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원론적 요소인 '다름'을 강조한다. 소셜로봇에 대한 연구는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이 좀처럼 인정하지 못했던 인간과 여타 지능체의 차이를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만들어주었다. 로봇과 인간은 다르지만 로봇은 인간처럼 만들어져가고 있고, 몸과 정신은 하나이지만 몸과 정신은 분리되어 연구되어 진다. 어쨌든 인간은 자연이나 인공의 여러 인지시스템들로 이루어진 집단 속의 한 인식론적 행위자이다.
소셜로봇공학의 목적은 인간에게 익숙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타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가를 배우고이해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한다. 로봇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공감과 감정이 필수적이다. 로봇과 인간은 어느정도 사회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가? 정서는 무엇이고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인간연구가 먼저일 수밖에 없다. 타자의 마음은 이론상 존재하는 실체이고 나의 마음은 세상의 한 객체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무대가 된다. 이렇게 볼때 현대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이 유아론이나 관념론과 단절됐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마음을 행위자의 뇌나 물질적 메커니즘에 체화하려 하면서도 유아론과 관념론의 기본 개념들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출현하는 지점이면서 정신철학과 인지과학이 외면했던 '사회환경'이란 측면을 연구하는 로봇공학은 '정서'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다. 물질 일원론의 치장 뒤에서 마음과 물질의 이원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감정을 지닌 로봇에 대한 연구는 마음을 비물질적인 실체도 아니요 그렇다고 공간적으로 확장된 무엇도 아닌 하나의 네트워크나 생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상호작용에서 감정에 관한 진실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속해 있다.
로봇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로봇은 의도 자체를 가지지 않는다. 로봇을 조종하는 인간행위자가 안보이는 상태에서 로봇을 치료용일지라도 인간처럼 대하게되는 환자들의 감정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가짜감정이라고 거짓되다고 해야할까? 군사로봇에 대해 어느 정도의 결정권까지 로봇에게 설정해야 할까?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로봇윤리에 대한 문제는, 로봇이 문제가 아니라 로봇을 대하는 사람과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날 로봇윤리는 선과 악의 차이를 가르침으로써 도덕적 기계를 만들고자 한다고 한다. 도덕규범을 장착한 인공행위자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로봇의 자율성 문제를 고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도덕적이고 자율적 인공행위자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들의 자율적 행위가 도덕문제를 야기하기에 인공행위자들에게 윤리적 규범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율적 행위를 제한하여 도덕적인 인공행위자들을 만들자는건 다시말하면 진정한 도덕적 행위자가 될 수 없도록 이들의 행위를 제한하자는 얘기이기도 한 것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의 질문처럼 혼돈 그자체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자율적 시스템에게 선택권을 양도하는 행위 속에 소수의 인간행위자들에게 결정권을 몰아줌으로써 정치적 도덕적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혁신이 소수에 의한 권력 집중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 사실 이 문제가 로봇보다 더 무서운 것인데... 오늘날 자율적 행위자들에게 결정권을 위임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은 엄밀히 말해 윤리적이라기 보다 법적, 정치적 문제들이다. 로봇윤리를 말하고자 했으나 결국 다시 인간윤리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책은 인공윤리가 현재 진행중인 발전에 주목하고 깊이 생각함으로써 새로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윤리에도 혁신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인공윤리는 로봇들의 사회로의 진입을 종말의 시작이 아닌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한 전진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것은 인공의 사회적 파트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 대한 도덕적 성찰이자 탐구가 될 것이라고.
쉽지 않은 책이었다. 자세히 알지 못하는 철학자의 개념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바로 인용될 때도 그렇고 문장이 길어서 맥락잡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최근에 읽은 AI나 로봇윤리 관련 책들이 떠오르면서 당장 적용시켜야 할 근시안적 윤리규범도 필요하겠지만, 이 책처럼 근본적인 관점도 필요하겠구나 싶다. 로봇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인간이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