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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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사라진, 사라져가는, 사라질 장소들로의 여행

이 책은 지도책이다. 학창시절 교과서 중의 하나였던 사회과부도라는 커다란 사이즈의 책을 생각나게 하는 크기의 책이지만 사회과부도 안의 지도들처럼 세세한 지도라기 보다는 유아들이 보는 그림책 속의 지도들처럼 그림지도들의 책이다. 그러고보니 크기도 그렇고 지도보다 사진이 많으니 그림책으로 봐도 무방할 책일 것 같다. 부담없이 술술 넘어간다는 면에서도.

이 책이 추구하는 이상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변덕스러움을 일깨우는 한편,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긴급히 보존해야 하는지 경고하는 것이다. (p. 6) -서문 中-

이 책의 첫장은 세계지도로 시작한다. 세계지도 곳곳에 빨간점들로 표시된 곳들이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장소들이다. 그 빨간점들은 그야말로 전세계 곳곳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장소들은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거나 사라질 곳들이다.

장소들은 크게 4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고대도시, 잊힌 땅, 사그라지는 곳, 위협받는 세계

'고대도시'들은 그야말로 사라진 곳들이다. 모헨조다로, 하투샤, 렙티스마그나, 상도, 사우다드페르디다, 마하발리푸람, 팔렝케, 헬리케, 페트라, 팀가드, 알렉산드리아 등의 도시들은 발굴되어 고대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지만 알려고 할수록 알수있는게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들이기도 하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개인적으로 고대도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책의 장소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잊힌 땅'은 지역적 색채가 강해서 잘 모르는 곳들이었다. 산업이 쇠퇴했거나 댐으로 인해 수몰됐다거나 자연풍화로 사라졌다거나... 있었을 때도 잘 몰랐던 곳들이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 '사그라지는 곳'은 자연의 소멸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렇게 '위협받는 세계'에 이르면 지금까지의 장소들이 어떻게 하나로 엮이는지 어렴풋이 깨달아졌다. 인간이 환경을 마음대로 바꾸고 훼손하고 마구잡이로 사용해서 '위협받는' 장소들을 보다보면 계속 이렇게 해도 되는걸까 자연스레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이 책은 지도책에 가깝고 각각의 장소들을 지도와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그리 길지 않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기에 차례대로 볼 필요도 없고 어떤 곳은 나름 관광하듯이 감상하며 읽게도 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왠지 이 모든 장소들이 조만간 다 사라질 장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사라진 곳도 지금 사라져가는 곳도 앞으로 사라질 것 같은 곳도 모두 다 사라질 것이다. 보존하고 아끼고 지키지 않으면 모두 다 사라질 것이다. 이 모든 곳들이 다 사라지고 난 후의 세계가 과연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환경일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에서 '사라진 장소들의 지도'가 아니라 '사라질 뻔한 장소들의 지도'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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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 악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배기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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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맹자 보다 순자를 읽는게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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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 악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배기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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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는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의 책을 현대적 해석과 안내를 곁들여 철학과 에세이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읽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시리즈로 나온 책들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과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어봤는데 관련된 고전 원전을 읽기전엔 안내서로 읽고나선 정리서로 읽으면 좋을 책들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순자>를 선택하는데에 부담이 없었다. 작고 얇지만 알차고 그닥 무겁지 않을 것을 이미 경험한 바 있었기에. ㅎㅎㅎ

이 책의 부제는 '악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다. 약함이 아니고 악함 이다. 맹자의 이론을 성선설이라고 한다면 순자의 이론을 성악설 이라고 한다는데 역시나 제대로 알고 나면 상식적으로 간편하게 알려진 것들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맹자의 성선설은 성선설이 아니었고 순자의 성악설은 성악설이 아니었다고나 할까... 역시나 고전은 제대로 알고봐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순자가 꿈꾸던 세상은 '선한 세상' 이었다. 맹자의 선한 세상보다 더 선해 보이는 세상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순자>라는 책과 본래 순자가 썼던 글과는 그 양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월의 탓도 있지만, 여러 차례 정리와 교정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해지기로는 본래 322편에 이를 만큼 많은 야잉었던 것을 한나라 때 유향이 중복되는 것을 정리하고 교정해 32편으로 편집하고 <손경신서>라고 불렀다. 그리고 몇 번이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당나라때 양경이 32편을 다시 교정하고 주석을 달면서 <순경자>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순자>의 바탕이 된다. (p. 26)

순자는 공자의 유교사상 계보를 잇는 학자이지만 유교의 '이단아'라고 불린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음에도 직접 써서 남긴 글은 없고 그 제자인 플라톤과 맹자가 스승들의 사상을 집대성시키며 많은 저작을 남기고 그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순자가 그에 반대되는 수많은 저작을 쓰고 현실참여적 논리를 세웠으며 동료들에게 배척당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비슷한 년도에 비슷한 철학자들이 등장해서 어쩜 그렇게 동서양의 철학흐름이 유사할 수가 있는건지 정말 신기하다.

정치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하고 그 정치의 중심에 있는 지도자의 자격과 역할의 무거움을 강조함과 동시에 왕도 정치가 최선이지만 패도정치도 차선으로 인정하자는 등의 순자 사상은 대체로 사람 중심이고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p. 39) 맹자는 선한 세상을 꿈꾸었다. 그런데 순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맹자는 본성의 본질이 선하니 각자가 그 선함을 잘 보존하고 확장하면 선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고, 순자는 본성의 현상이 악하니 각자가 그 악함을 선으로 변화시킨다면 선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p. 40)

순자는 제자백가시대의 무수한 유가사상가들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논리에서 장점을 취했다. 그래서 유가사상의 계보에 올라있으면서도 유가사상가 아니라고 배척받았다고 한다. 특히나 맹자와 대비되곤 하는데 성선설 vs 성악설로 간단하게 비교할 게 아니었다.

맹자가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했을 때 본성은 사람이 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가지는 것이지만, 순자가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했을 때 본성은 사람이 태어난 후 세상을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맹자가 말한 본성이 태생적 본성이라면, 순자가 말한 본성은 과정적 본성이다. (p. 71)

옛날 사상가들은 엘리트주의적 일수밖에 없었다. 시대가 신분의 구분이 확실한 시대였고 사상가들은 다 귀족이었다. 동서양 둘다 마찬가지였다. 플라톤도 맹자도 귀족이고 양반이었다. 그렇기에 타고나면서 지니고 있는 본성을 강조할 수록 그 논리는 지극히 엘리트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패도정치보다는 왕도정치가 옳게 여겨질 것이었다. 하지만 태어날땐 이도저도 뚜렷하지 않다가 자라면서 악함에 물들기 쉬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리더가 모범을 보이고 때론 패도가 방법이 될 수도 있으며 길거리의 사람도 이치릘 깨달으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순자의 논리는 엘리트주의에서 살짝 벗어난다. 당대의 귀족들이 이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음은 물론일 것이다.

순자는 '왕이나 귀인, 사대부의 자손이더라도 예의에 힘쓸 수 없다면 그들을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낮추고, 비록 보통 사람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학문을 쌓아 몸가짐을 바르게 행동하고 예의에 힘쓴다면 그를 재상이나 사대부로 끌어 올린다"라고 까지 말했다. 사람의 지위와 직분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p. 129) 눈앞의 혼란을 해결하고싶었던 순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가 적용됨을 말할 뿐 아니라, 모두가 예를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p. 133)

묵자처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라거나 도가처럼 무관심으로 혼란한 세상에서 발을 빼거나 법가처럼 가혹하게 원리원칙만을 고수하지 않은 것이 순자였던 것 같다.왕을 천자라 여기며 왕도정치만을 고수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짜깁기한 것 같은 순자의 이론이 얼토당토 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순자는 패도도 인정했을 뿐이지, 패도를 다스림의 지극함으로 보지는 않았다. (p. 146)' 본인의 입신양명만을 위해 벼슬에 연연해하지도 않았다.

순자가 말한 예의 세세한 내용들을 지금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예를 관통하는 정신은 따르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 정신은 다름 아닌 공동체 의식이다. 이는 성인이 예를 제정한 까닭과 순자가 줄곧 예를 강조한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세상의 안정과 조화에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의 혼란 해결과 방지의 여부는 세상 사람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얼마나 확보하고 향상해나가느냐에 달렸다. (p. 193)

그는 혼란한 세상에 평안을 가져올 자신의 논리를 세우고 싶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후대에 그닥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나 왜일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고전에 대해 우리는 늘 한발 떨어져 왜 이 논리만 살아남았을까 누가 왜 이 논리만 남겨 대대손손 전하게 했을까 의심해봐야 한다. 지배자의 논리가 일반 서민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건지 그 논리가 세워진지 이천년이 지난 지금쯤은 질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고전들에서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그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질문하며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이 다시금 마음깊이 와닿았다.

순자의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고 유연하면서도 엄정한 사상은 우리가 지금의 혼란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는 이 책의 끝 부분에 다다랐을 때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고 평가하기에 달렸다. 그리고 만약 도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오늘날에 맞게끔 재해석하고 활용할 것인지도 여러분, 아니 우리의 몫이다. (p. 54)

ps. 순자의 대표적 제자가 한비자였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는데, 제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스승이었기에 제자들이 펼친 사상이 곧 순자의 사상이라고 할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스승의 이론을 정설로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자맹자계와 좀 달라보였다. 이 책의 말미에 소개된 다른 학파들의 책에도 관심이 간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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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세계사 세트 - 전3권 - 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지음, 최파일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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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프랑스 혁명기에 시작된 나폴레옹 전쟁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통찰한 걸작

"나폴레옹 전쟁은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

<나폴레옹 세계사>라는 책이 나왔을 때 몹시 탐이 났더랬다. 서양고전을 읽으며 세계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역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프레임을 알려주곤 했기에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 수준의 근대사가 또 어떻게 새롭게 깨우쳐질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처음에 나온 합본 양장의 두께가 어마어마한 벽돌이라 그 아우라에 소장욕이 뿜뿜하면서도 섣불리 손내밀지 못하다가 분권세트로 다시 나왔다기에 가독성 면에서는 좀 낫지 않을까 싶어 와락 도전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멋진 책이었다!

분권세트는 총 3권으로 되어 있다. 본문에 해당하는 1, 2권과 부록이 한 세트이다. 부록은 주석과 참고문헌 그리고 색인만 싣고 있는데도 300페이지가 넘는다. 저자가 얼마나 많은 문헌과 꼼꼼한 주석을 덧붙였는지 그 분량만으로도 확인이 되는 듯 싶다. 본문에 해당하는 1권과 2권의 분량은 1천 페이지가 넘는다. 한권씩만 봐도 5~600페이지 책이니 이것만도 벽돌책이다. 하지만 은근 긴박감 있게 읽혀서 막상 시작하고 나면 예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역시 제대로 된 역사책은 소설 못지 않게 재미가 있다. ㅎㅎㅎ

나폴레옹 전쟁은 그 규모와 충격에서 다른 모든 유럽 분쟁을 압도한 전쟁이고, 19세기 당대인들에게는 '대전쟁 Great War'로 알려지게 되었다. 유럽 내부의 경쟁관계로 촉발되긴 했지만 나폴레옹 전쟁은 식민지와 무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 세계적 투쟁으로 이어졌고, 규모와 범위, 강도 면에서 역사상 최대의 분쟁 중 하나를 대표한다. 프랑스와 헤게모니를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와중에 나폴레옹은 간접적으로 남아메리카 독립의 원인 제공자가 되었고, 중동 지역을 재편했으며, 영국의 제국적 야심을 강화하고, 미국 세력의 부상에 기여했다. (p. 11~12) 나의 의도는 1792년과 1815년 사이에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이 나머지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펼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의 역사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1789년에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퍼져나간 진동은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 진정으로 전 지구적인 반향을 낳았다는 사실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p. 17)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세계 여러 지역은 저마다의 발전 경로를 밟게 되었ㄷ고, 전쟁이 없었다면 프랑스 혁명 자체는 대체로 유럽의 사안으로 남아서 외부 세계에 제한된 영향만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야심과 그 야심을 좌절시키려는 유럽의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전쟁은 저 멀리 세계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 (p. 19) -서문 中-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나의 상식 수준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혼돈의 시대에 불세출의 인물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황제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가 유배당하는, 그러니까 지극히 나폴레옹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사건으로 생각하는 정도였다. 전쟁에 한 개인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 자체가 그 전쟁을 나폴레옹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에 국한시키는 경향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전쟁의 범위를 세계사적으로 아니 전 지구적 범위로 넓혀 차근차근 논증해나간다. 그리고 그 논증은 성공한다.

이 책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의 집권까지의 혁명기를 개관한다. 이 부분은 추후 사건들에 대한 배경을 담고 있는데, 선행하는 10년간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나폴레옹 전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여러 사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 시간 순서대로 또 지리적으로 구성했다. 이 부분은 1801~1802년 동안 유럽의 일시적 평화로 시작하여, 혁명전쟁의 결과로 프랑스가 획득한 것을 공고히 하려는 나폴레옹의 시도들과 그에 대한 유럽의 대응을 살펴본다. 8장과 9장은 종국적으로는 나머지 유럽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게 될 갈등으로 터져나오는 프랑스-영국의 긴장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하의 장들에서는 서유럽과 중유럽에 맞춰진 전통적인 서사에서 초점을 옮겨 스칸디나비아아와 발칸반도, 이집트, 이란, 중국, 일본, 남북아메리카대륙과 같은 다른 분쟁 지역들을 살펴보고, 나폴레옹 전쟁이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했는지를 실증한다. 세번째는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을 추적한다. 이 시점에 이르러 나폴레옹 전쟁은 아시아에서는 거의 해소되었으므로 서사의 초점은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이동하여, 나폴레옹의 패배와 빈 회의의 소집으로 막을 내린다. 결론에서는 전쟁 이후의 세계를 폭넓게 둘러본다. (p. 19~20)-서문 中-

서문부터 굉장히 논리적이었다. 서문에서 이미 이 책의 대강을 개괄할 수 있으며 마치 핵심요약만 쏙 뽑아놓은 듯 해서 결론까지 다 알게 된 마당에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을 안다고 해서 그 과정을 모른다면 어찌 그 결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내용들은 다 그 과정 속에 있다. 엔딩을 다 아는 드라마일지라도 굳이 한편한편 다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한편한편에 드러나는 사건들과 인물의 심리변화를 보는 것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러하다. 결론은 서문에서 알고 시작하지만 그 결론이 어떻게 추출된건지 알아나가는 과정은 굉장히 탐색적이고 흥미롭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나폴레옹 전쟁'을 나폴레옹 개인에 대한 위인전처럼 풀어내지 않고 세계사적 프레임으로 그 전쟁의 전후과정을 살펴본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 나폴레옹 개인은 그닥 두드러지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과 앞뒤의 맥락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읽을수록 이쪽저쪽 입장이 다 이해되면서 이 세계사적 전쟁이 새롭게 인식되어져 갔다. 훌륭한 책이다.

프랑스 혁명의 기원을 둘러싼 논의에는 하나의 역설이 자리잡고 있다. 혁명의 참여자들과 후대의 평자들은 혁명을 전 지구적 사건으로 인식했지만 그 가운데 거의 누구도 혁명의 지구적 원인들을 탐색하지는 않았다. (p. 32)

프랑스 혁명은 시민혁명의 기원이다. 그 이후로 여기저기서 시민혁명들이 뒤따랐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정신과 의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혁명전에 전쟁이 있었다. 전쟁 전에 무역분쟁이 있었다. 혁명이든 전쟁이든 어쨌든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그 시작에는 유럽의 아귀다툼(p. 57)이 있었다.

혁명적 변화를 향한 탐구는 복잡하게 꼬인 경로로 드러났고, 흔히 자유, 평등, 우애가 아니라 그보다는 환멸과 억압, 소요를 낳았다. 프랑스에서 혁명이 밟은 길은 구체제에서보다 더 중앙집권적인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진 한편, 공포정치는 부르봉 왕가의 이른바 절대왕정을 크게 능가하며 국가의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주었다. 전쟁은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역사가 프랑수아 피레는 "혁명이 전쟁을 수행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전쟁이 혁명을 수행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p. 194)

나폴레옹 전쟁의 출발점은 1803년 5월 아미앵 강화조약의 붕괴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혁명의 시대 프랑스의 군사적 성공은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위협했고 장기간에 걸친 프랑스와 영국 간 경쟁관계는 나폴레옹 전쟁의 결정적 배경이었다. 10여년간의 혁명의 시대에 프랑스 시민들은 정변에 무감해져갔고 질서와 안정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때 군사적 성공에서 두드러진 인물이 나폴레옹 장군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나폴레옹은 군사지도자로서의 현명함에 더불어 정치적 책략가로서도 상당한 능력자였다.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제약을 제거하기 위해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국민 다수가 새로운 국가수반에게 허락한 무비판적인 승인을 활용하는 다양한 전략에 의존했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합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국민투표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정치지도자였고, 그런 관행은 20세기에 어디서나 만연하게 된다. (p. 204)

보나파르트에게 책임을 씌우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이해관계는 부자연스럽고 비난받아야 마땅한 반면, 영국이나 영국의 대륙 맹방들의 이해관계는 자연스럽고 훌륭하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p. 304)

나폴레옹은 영국을 혐오했다고 하지만 개인적 혐오로 그 엄청난 전쟁을 일으킬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의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논리적이었다. 구체제는 무너져가고 신체제는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저마다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려고 머리싸움하던 시대였다. 그 주인공이 프랑스와 영국으로 좁혀졌을 뿐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 두 나라는 프랑스는 대륙에서 영국은 바다에서 힘을 키웠다. 그리고 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구체제의 패권국가들이 있었다. 그 맹방들의 계산에 따라 세계사의 흐름도 바뀌곤 했다.

혹자들이 그런 것처럼 유럽 내 세력 균형을 둘러싼 영국-프랑스의 경쟁관계가 이 전쟁을 촉발하는 데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일축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듯하다. 그것은 많은 측면에서 관련이 있었다. 양국의 갈등은 두 제국주의 간의 대립, 각자가 국제적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종함으로써 국가 이익을 수호하고자 하면서 야기된 갈등이었다. (p. 314)

그래서 저자는 프랑스 대 영국의 전쟁을 코끼리 대 고래 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전쟁은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 편에 누가 붙느냐에 따라 상황은 수시로 변했다. 문득 전래동화 한편이 생각난다. 동물들간의 줄다리기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육지동물들이 허리에 허리를 잡고 바다동물들이 꼬리에꼬리를 물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동물들이 하나하나 늘어가던 이야기였는데... 결과가 어찌됐더라는 기억이 안난다. ㅋ 여하튼, 이 동화와 비슷한 상황이었달까. 누가누가 편먹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졌기에 프랑스와 영국은 서로의 맹방을 지키거나 추가하기 위해 끊임없는 외교전을 벌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의 유럽지도가 자리잡아가게 되는데 독일과 이탈리아가 특히 그러했다. 이전까지 독일과 이탈리아는 수백개의 퍼즐조각같은 상태였다.

대륙 봉쇄 체제는 그러므로 상호 연관된 세 부분, 즉 영국 상품에 대한 봉쇄를 통해 영국의 경제력을 위축시키기 위한 군사적 승리의 활용, 대륙에서 경제 발전을 장려하기 위한 경제 권역의 형성, 대륙에서 프랑스 헤게모니의 공고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p. 415) 1807년이 저물 무렵 대륙 봉쇄 체제의 기본적인 윤곽이 잡혔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황제로서 착수한 가장 중요한 정책 이니셔티브였다. (p. 416) 나폴레옹의 유럽 제국이라는 비전에서 대륙 봉쇄 체제의 중요성과 프랑스 제국의 궁극적 붕괴에서 그 체제가 한 역할은 도저히 과소평가할 수 없다. 비록 나폴레옹 제국은 일시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되지만 나폴레옹은 언제나 대륙에 대한 정치적 비전을 품고 있었다. (p. 417)

당시는 혁명의 시대, 이 혁명에는 시민혁명도 있지만 산업혁명도 있었고 과학혁명도 있었다. 봉건체제는 무너졌고 다양한 산업과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있었다. 무역은 각국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잡아 갔고 해외 식민지로 인해 그 범위는 그야말로 전 지구적이 되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대륙의 장군, 대륙봉쇄체제가 영국산업에 타격을 주고 대륙산업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으로 유럽내에 산업 공동화를 일으켰다. 그에 비해 영국의 해외무역은 경쟁자 없이 독점적으로 세를 키워나갔다. 이익에 따라 오늘의 맹방이 내일의 적국이 될 수 있는 시대였다.

프랑스 역사학자 루이 베르제롱이 평갛나 대로 "역설적이게도 나폴레옹은 시대에 뒤처지기도 하고 앞서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 계몽 전제군주이자 근대 국가의 선지자였다" 유럽에게는 나폴레옹 정권이 근대 세계에 대한 신선한 관점이자 그 자원과 국고를 고갈시키는 권력의 행위를 의미했다. (p. 503) 한 국민의 운명이란 그 국민의 정치이며, 그 정치들이란 나폴레옹의 정치, 즉 전쟁과 정복의 정치, 착취와 억압의 정치, 제국주의와 개혁의 정치였다. 핵심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폴레옹 제국은 어떤 목적들에 복무했는가? (p. 504)

나폴레옹의 정치와 그가 일으킨 전쟁들을 중심으로 보면 나폴레옹 개인적 야욕으로 오독할 수도 있을 시대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주변 상황들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나폴레옹 체제'는 프랑스가 지배하는 영토들에서 봉건제의 잔재를 폐지하고 혁명의 원칙들을 주장함으로써 구체제 사회들에 대한 명확한 도전을 대변했다. (p. 507)' 나폴레옹은 프랑스에서 황제가 되었지만 로마제국처럼 유럽대륙의 황제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동맹을 맺고 정복한 지역에는 프랑스 시민혁명의 자유와 정치체제가 안내되었다. 억압의 지배속에 자유와 평등을 일깨우다니 모순으로 보이지만 그게 가능했던 시대가 나폴레옹의 시대였다.

나폴레옹 정권은 결코 하나의 '유럽적' 정체성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프랑스적인 그 본질을 초월하지도 않았다 결국에 제국의 생존 자체가 프랑스 무력의 지속적인 우위에 의존했지 제국 지배의 대중적 지지에 의존한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이 어떠한 초월적 이상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것은 동등한 국가들로 구성된 연방의 이상이 아니라 보편 제국의 이상, 그 정신에서 유럽연합보다는 샤를마뉴 제국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p. 510)

당대 하도 잦은 연맹과 맹방의 관계 속에 혹자는 지금의 UN의 기초가 닦이지 않았나 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저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유럽연합이 아니라 프랑스가 주축이 된 제국에 가까웠다. 나폴레옹은 급진적이었고 점령지에 대의제라던가 헌법 그리고 시민의 자유 등을 소개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물질적 자원이었다. 문제는 이 물질적 자원을 갈구한 나라가 프랑스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말이다.

3차, 4차 대불동맹전쟁은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러시아를 격파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서사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건이었다. 중유럽에 미친 심대한 영향과 더불어 이 무력 분쟁들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광범위한 파문을 불러일으키며 발트 지역에서 세력 균형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p. 601) 저강도 영국-러시아 전쟁-한 러시아 역사학자가 인상적으로 표현한 대로 '연기 없는 전쟁'-이 그 뒤로도 오래 이어졌다. 이 갈등은 나폴레옹 전쟁의 전통적인 역사 서술에서 잊히는 경향이 있는데, 대체로 그것이 대규모 전투로 이어지지 않았고 주로 지중해와 바렌츠해, 발트해에서 러시아와 영국 전함 간 국지적인 교전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기가 났든 안 났든 그것은 나폴레옹 전쟁의 더 큰 이야기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p. 638) 오스만 제국은 15세기와 16세기에 획득한 영토들에 다른 제국적 경쟁자들이 꾸준히 침범해오면서 커져가는 위협에 직면했다. '유럽의 병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유럽 내 세력 균형 문제와 단단히 묶여 있었다. (p. 672)

영-프 간의 갈등은 두 제국만의 문제일 수 없었다. 타국과 유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고 그 범위는 중유럽 북유럽 오스만제국을 넘어 이란과 인도 그리고 아시아 아메리카까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이 연쇄적 연결고리들을 보면서 나폴레옹 전쟁이 왜 Great War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할 때 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전쟁에 더 잘 동원되었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인정사정없었다. 유럽의 좁은 지리적 한계로 말미암아 서로 경합하는 정치 단위들은 다양한 지형과 기후에 대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경쟁자들과 기술적인 대등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질적인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더 효율적인 재정과 과세 방식이 등장했다. (p. 831)

저자는 인도같은 커다란 대륙이 어쩌다 영국이이라는 작은 섬나라에 귀속될 수 있었을까 자문자답한다. '아시아에서 인도의 무굴 제국 같은 대제국들은 적응을 위한 군사적 압박을 덜 느꼈기에 근대화에 계속 무관심해도 되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p. 831)' 이러한 상황은 중국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도처럼 중국도 해외무역은 필요치 않았다. 다 자체적으로 수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럽은 구하고자 하는게 많았다. 끝없이 갈구하고 욕망하며 찾아해맸다. 게다가 이들은 전쟁이 익숙했다. 우물안 개구리는 우물벽을 허물고 들어온 악어에게 먹히고 물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맑은 우물은 사라지고 탁한 늪지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에스파냐령 아메리카는 나폴레옹 전쟁의 지구적 파급효과를 잘 드러낸다. 나폴레옹 전쟁의 전통적인 서사에서 대체로 간과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에스파냐 제국의 붕괴는 유럽의 정치적 격랑의 직접적ㅇ니 결과였다. 동방문제가 오스만 제국의 운명이라는 핵심 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서방문제' 즉 에스파냐와 그 제국의 영토를 중심으로 한 문제가 있었다. (p. 881)

그리고 미국이 있었다. 사실 프랑스 혁명도 미국의 독립전쟁에 자금을 댄 왕실의 재정파탄으로 인해 발발하게 된 건데 나폴레옹 전쟁이 미국의 무역과 영토확장까지 넓히게 해준 것을 보면 미국은 적어도 역사에서 만큼은 프랑스에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현실은 미-프 가 아니라 미-영 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대미를 장식하게 한 나라는 러시아였다.

1812년 여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결정은 유럽에서 프랑스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가장 커다란 시도였다.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전쟁으로 이어졌고, 프랑스 황제가 얻고자 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p. 925)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은 흔히 '잊힌 분쟁'이라는 딱지가 붙은 미국의 캐나다 공격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중략) 북아메리카의 사건들은 오랫동안 유럽의 거대한 투쟁들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들은 북아메리카의 운명에 중대한 의미를 띠었고 나폴레옹 전쟁에도 직접적인 파장을 가져왔다. (p. 949)

책을 읽다보면 종종 '전통적인 서사에서 간과되는' 이라든가 '잊혀진' 등의 수식어가 나오곤 하는데 이러한 수식어 뒤에 등장하는 실체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역사는 폭넓게 볼 수록 객관적일 수 있는 것 같다. 일방적인 사건도 일방적인 역사도 없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한쪽에서 보낸 영향이 다른 쪽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 다시 새로운영향력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역사의 연결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듯 했다. 끝난게 끝난것도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이 패배했어도 프랑스는 건재했고 유럽 각국의 정치싸움도 여전했다.

빈 회의는 유럽 역사상 가장 쟁쟁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순간이었다. 그 독특한 성격은 패전국과의 강화는 이미 파리 조약에서 이루어졌고, 회의는 특정 무력 분쟁의 해소만이 아니라 유럽 전반의 평화정착을 다루기 위해 개최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빈 회의는 엄밀하게 말해서 대형 회의가 전혀 아니었다. 각국 대표들은 총회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전원 총회 대신 최강대국을 대표하는 일단의 대표들은 오스트리아 수도의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사교계로부터 떨어져 무대 뒤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황제와 국왕, 각종 군주들이 무수한 궁정인들과 쾌락을 좇는 이들을 대동하고 빈에 몰려왔고, 빈 궁정은 그들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반쯤은 파산 상태로 전쟁에서 빠져나왔음에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황제는 이 모임을 주최하는 데 국고의 남은 절반을 걸었다. (p. 1035)

세계2차대전 후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 와 중동에 자를 대고 국경을 그은 줄 알았더니 그 시작은 훨씬 앞에 있었다. 아메리카에 유럽인들이 도착해서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며 깃발 꼽는데로 여기는 내땅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유럽대륙에서 하나의 제국은 쪼개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면서 거기 살고 있는 일반 시민들과 관계없이 여기는 내땅 하는 식으로 지도자들 마음데로 영역이 나뉘어졌다. 그러한 유럽식 사고방식과 크게 변하지 않은 영토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우리네 사고방식은 근본적으로 많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평행 우주의 역사를 상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도 나폴레옹 전쟁이 다르게 끝났다면 유럽이 더 좋아졌을까 하는 억측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나폴레옹의 정복은 물론 착취와 더불어 지독한 탄압을 가져왔다. 하지만 프랑스 군대는 혁명의 이상들을 토대로 수립된 각종 개혁 조치들도 함께 가져왔다. 그들은 법적 평등과 개인적 자유, 재산권의 불가침성을 약속했다. 종교적 관용을 선포하고 행정과 사법 체계를 개혁하고, 도량형을 표준화했다. 그의 결점들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리고 얼마나 많았든지 간에 나폴레옹은 유럽 대다수의 독재적인 통치자들보다 더 계몽된 인물이었고, 그의 패배는 근대 사회를 떠받치는 많은 이상들의 후퇴를 의미했다. (p. 1073)

'나폴레옹 전쟁은 어쩌면 종교개혁과 제1차 세계대전 사이 시기에 사회 변화의 가장 강력한 동인이었을 것이다. (p. 1094)' 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폴레옹 전쟁은 19세기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p. 1119)' 라는 저자의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혁명의 시대에 나폴레옹 전쟁의 다른 결말을 상상하는 것도 의미있을 테지만 혁명의 시대에 나폴레옹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과연 세계사의 흐름이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까 싶다. 자본이 탄생하고 있었고 무역을 통한 이익이 중심이 되고 있던 시대였다. 이익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갈등 혹은 전쟁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나폴레옹 전쟁은 무엇보다도 유럽 내 갈등이었지만, 유럽과 나머지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했다. 이 무력 분쟁은 유럽 국가들이 개혁과 근대화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도록 강요하고 촉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 여러 지역들 간 세력 균형을 변화시켰다. 유럽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럽은 중국과 이슬람 세계의 더 선진적이고 세련된 문명들에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막을 내릴 때쯤 군사적 문제, 산업 발달, 기술력 측면에서 나머지 세계에 대한 유럽의 우위는 확연했다. 이는 대분기의 시작이었고, 이 전환의 엄청난 의미는 19세기가 흐를수록 더 분명해진다. (p. 1120)

역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를 읽는 것이 필요하다. 나폴레옹 전쟁사가 왜 이렇게 벽돌책이 되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읽고나니 이렇게 세세히 풀어놨는데도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방면의 자료와 다각도의 관점에서 18~19세기의 전 세계를 전 지구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책을 완독했다는 개인적 뿌듯함으로도 오래 기억될 책일 것 같다. 훌륭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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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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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처 전하지 못한 메시지 한 장만 남긴 채.

해나는 오언과 결혼한지 2년차다. 열여섯 살인 오언의 딸 베일리와는 아직 서먹한 관계이지만 해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베일리를 이해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오언은 딸바보이고 해나를 사랑한다. 해나는 그런 오언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여느날과 다를 바 없는 아침이었다. 오언은 출근했고 해나는 베일리의 식사를 준비중이었으며 베일리는 해나를 무시하기위해 제 방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던, 그런 평상시와 똑같은 아침이었다. 그런데 낯선 아이가 심부름을 왔다며 오언이 남긴 종이를 건네주고 갔다.

아직은 종이를 펼치지 않은 상태였다. 조용한 집 안에 잠시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종이를 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적힌 글을 읽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종이는 그냥 장난이고 실수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어도 되는 순간까지, 하지만 사실은 이제 더는 멈출 수 없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까지, 그저 이 종이를 손에 쥐고만 있고 싶었다.

마침내 나는 종이를 펼쳤다.

짧은 글이 보였다. 무슨 뜻인지 모를 한 줄짜리 글이었다.

종이에는 "당신이 보호해줘"라고 적혀 있었다. (p. 18~19)

남편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대표가 횡령 및 사기죄로 기소될 거라는. 조사 대상자의 범위가 넓혀지고 있다는.

학교에서 돌아온 베일리는 멍한 표정으로 커다란 더플백을 해나에게 건넸다. 자신의 사물함에 아빠의 쪽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고. 그 가방에는 100달러짜리 지폐 수백 다발이 들어 있었다.

오언은 기술개발 책임자였고 회사대표가 가장 가까운 임원이었다. 자신에게 수사관들의 손길이 닿기 직전 오언은 잠적했다.

해나에게 법원집행관과 FBI수사관이 연이어 찾아왔고 절친인 기자 줄스는 오언과의 마지막 통화내용을 들려주었다.

해나는 휘몰아치는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화가 났으며 불안했지만 오언이 남긴 쪽지의 의미는 분명히 깨달았다.

오언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이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겠다고 떠난 오언에게는 정말 맹렬하게 화가 나다. 하지만 그가 신경 쓴다는 걸 알았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오언이 베일리를 사랑한다는 걸 잘 알았다. 오언이 떠난다면, 그건 베일리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떠나야만 해서 떠난 것이다. 그가 떠난다면, 그것만이 베일리를 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베일리를 보호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일은 모두 베일리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것 말고 나머지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p. 67)

해나는 자신이 아는 오언을 믿었다. 베일리를 사랑하는 오언을 믿었다. 자신을 찾아와 오언에 대해 하는 말들을 의심했다. 오언을 둘러싼 상황을 하나하나 파악해갈 수록 미심쩍은 부분 투성이였다. 해나는 그저 가만히 주입되는 정보들을 수긍하고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알아내고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녀 또한 베일리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지금 베일리의 보호자는 해나 한 사람 뿐이었다. 오언은 그걸 알고 그걸 믿고 사라진 것이었다. 왜일까? 왜 떠났을까?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긴 말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두 사람이 소살리토에 오기 전까지 당신이 말해준 남편의 정보와 일치하는 자료는 단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어. 당신 남편은 다른 이름으로 살았거나, 지금 이름으로 살아왔지만 당신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해. 자기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한 거지"

"무엇 때문에?" (p. 195)

오언의 주변조사를 할수록 오언이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말했던 고향, 학교, 가족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언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함께 살면서 해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오언이 말한 과거의 추억들이 있었다. 해나는 그 기억들에 남겨진 단서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오언의 과거를 추적해 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건 베일리의 기억이었다. 해나를 만나기 전 오언과 베일리만 있던 시절의 오언에 대한 기억. 오언이 말했던 정보들은 모두 거짓이었지만 오언의 말과 행동 무엇보다도 마음은 진실이었다. 그것을 믿기에 해나는 진짜 오언을 알아야 했다. 베일리를 위해서라도.

나는 내가 충분히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한다면 베일리가 나에게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은 그런 방식으로는 배울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모두가 너무나 피곤해서 다정하게 대할 수도 없고, 너무나도 피곤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 노력할 기력도 없을 때다. 그때 사람들이 자기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서야 그 사람을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p. 215)

아빠가 사라지고 아빠가 말했던 과거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은 베일리에게도 충격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자신에 대한 정보들이 거짓이라는 의미였으니까. 사춘기 소녀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흔드는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빠가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곁에는 해나 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요?"

심장이 쿵 떨어졌다.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의 핵심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언은 너무나도 두려운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오언은 살아오는 내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부터 베일리를 지키는데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있었다.

"그걸 알아내면 지금 오언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겠지" (p. 220)

애초에 베일리를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할 수 있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함께 있었고, 우리 둘 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했다. 우리 둘 다 오언을 찾고 싶었고, 오언이 무엇을 숨기고 있건 간에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이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p. 221)

베일리의 기억과 오언이 했던 말들을 바탕으로 오언의 고향을 찾은 두 사람은 오언에 대해 조사해 나갈수록 더 큰 위험에 다가가고 있는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언이 그토록 숨기려 했던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묵직한 두께의 소설이었지만 시작부터 빨려들어가 휘리릭 읽히는 책이었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 하나 없는데도 스릴러처럼 긴박함을 느끼며 읽게 되지만 알고보면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 대한 극진한 사랑때문에 숨겨야 했고 지켜야 했고 알아야 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제목 때문에 재밌는 기분이 되었다. 원제는 The last hting he told me 로 그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 인데, 한국어판 제목은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이다. 그러니까 원제는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초점을 두었다면 한국어판은 '말하지 않은 것' 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이 관점의 차이가 재미있었다. 소설을 읽는 와중에도 나또한 오언이 말하지 않은 것들을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원제대로 라면 오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 소설인 것이다. 작중 화자인 해나 또한 오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중심에 두고 추적해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해나가 찾아내는 오언의 과거정보를 하나하나 모아가며 읽게 되지 않았나?!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미국인과 한국인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굳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정보에 중점을 두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에 지켜야 하는 것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단단하지 않은 과거에 세워진 현재와 미래는 모래성처럼 부서질 수 있기에 과거를 무시할 순 없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하튼,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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