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악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배기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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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는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의 책을 현대적 해석과 안내를 곁들여 철학과 에세이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읽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시리즈로 나온 책들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과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어봤는데 관련된 고전 원전을 읽기전엔 안내서로 읽고나선 정리서로 읽으면 좋을 책들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순자>를 선택하는데에 부담이 없었다. 작고 얇지만 알차고 그닥 무겁지 않을 것을 이미 경험한 바 있었기에. ㅎㅎㅎ

이 책의 부제는 '악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다. 약함이 아니고 악함 이다. 맹자의 이론을 성선설이라고 한다면 순자의 이론을 성악설 이라고 한다는데 역시나 제대로 알고 나면 상식적으로 간편하게 알려진 것들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맹자의 성선설은 성선설이 아니었고 순자의 성악설은 성악설이 아니었다고나 할까... 역시나 고전은 제대로 알고봐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순자가 꿈꾸던 세상은 '선한 세상' 이었다. 맹자의 선한 세상보다 더 선해 보이는 세상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순자>라는 책과 본래 순자가 썼던 글과는 그 양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월의 탓도 있지만, 여러 차례 정리와 교정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해지기로는 본래 322편에 이를 만큼 많은 야잉었던 것을 한나라 때 유향이 중복되는 것을 정리하고 교정해 32편으로 편집하고 <손경신서>라고 불렀다. 그리고 몇 번이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당나라때 양경이 32편을 다시 교정하고 주석을 달면서 <순경자>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순자>의 바탕이 된다. (p. 26)

순자는 공자의 유교사상 계보를 잇는 학자이지만 유교의 '이단아'라고 불린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음에도 직접 써서 남긴 글은 없고 그 제자인 플라톤과 맹자가 스승들의 사상을 집대성시키며 많은 저작을 남기고 그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순자가 그에 반대되는 수많은 저작을 쓰고 현실참여적 논리를 세웠으며 동료들에게 배척당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비슷한 년도에 비슷한 철학자들이 등장해서 어쩜 그렇게 동서양의 철학흐름이 유사할 수가 있는건지 정말 신기하다.

정치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하고 그 정치의 중심에 있는 지도자의 자격과 역할의 무거움을 강조함과 동시에 왕도 정치가 최선이지만 패도정치도 차선으로 인정하자는 등의 순자 사상은 대체로 사람 중심이고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p. 39) 맹자는 선한 세상을 꿈꾸었다. 그런데 순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맹자는 본성의 본질이 선하니 각자가 그 선함을 잘 보존하고 확장하면 선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고, 순자는 본성의 현상이 악하니 각자가 그 악함을 선으로 변화시킨다면 선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p. 40)

순자는 제자백가시대의 무수한 유가사상가들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논리에서 장점을 취했다. 그래서 유가사상의 계보에 올라있으면서도 유가사상가 아니라고 배척받았다고 한다. 특히나 맹자와 대비되곤 하는데 성선설 vs 성악설로 간단하게 비교할 게 아니었다.

맹자가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했을 때 본성은 사람이 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가지는 것이지만, 순자가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했을 때 본성은 사람이 태어난 후 세상을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맹자가 말한 본성이 태생적 본성이라면, 순자가 말한 본성은 과정적 본성이다. (p. 71)

옛날 사상가들은 엘리트주의적 일수밖에 없었다. 시대가 신분의 구분이 확실한 시대였고 사상가들은 다 귀족이었다. 동서양 둘다 마찬가지였다. 플라톤도 맹자도 귀족이고 양반이었다. 그렇기에 타고나면서 지니고 있는 본성을 강조할 수록 그 논리는 지극히 엘리트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패도정치보다는 왕도정치가 옳게 여겨질 것이었다. 하지만 태어날땐 이도저도 뚜렷하지 않다가 자라면서 악함에 물들기 쉬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리더가 모범을 보이고 때론 패도가 방법이 될 수도 있으며 길거리의 사람도 이치릘 깨달으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순자의 논리는 엘리트주의에서 살짝 벗어난다. 당대의 귀족들이 이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음은 물론일 것이다.

순자는 '왕이나 귀인, 사대부의 자손이더라도 예의에 힘쓸 수 없다면 그들을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낮추고, 비록 보통 사람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학문을 쌓아 몸가짐을 바르게 행동하고 예의에 힘쓴다면 그를 재상이나 사대부로 끌어 올린다"라고 까지 말했다. 사람의 지위와 직분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p. 129) 눈앞의 혼란을 해결하고싶었던 순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가 적용됨을 말할 뿐 아니라, 모두가 예를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p. 133)

묵자처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라거나 도가처럼 무관심으로 혼란한 세상에서 발을 빼거나 법가처럼 가혹하게 원리원칙만을 고수하지 않은 것이 순자였던 것 같다.왕을 천자라 여기며 왕도정치만을 고수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짜깁기한 것 같은 순자의 이론이 얼토당토 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순자는 패도도 인정했을 뿐이지, 패도를 다스림의 지극함으로 보지는 않았다. (p. 146)' 본인의 입신양명만을 위해 벼슬에 연연해하지도 않았다.

순자가 말한 예의 세세한 내용들을 지금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예를 관통하는 정신은 따르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 정신은 다름 아닌 공동체 의식이다. 이는 성인이 예를 제정한 까닭과 순자가 줄곧 예를 강조한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세상의 안정과 조화에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의 혼란 해결과 방지의 여부는 세상 사람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얼마나 확보하고 향상해나가느냐에 달렸다. (p. 193)

그는 혼란한 세상에 평안을 가져올 자신의 논리를 세우고 싶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후대에 그닥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나 왜일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고전에 대해 우리는 늘 한발 떨어져 왜 이 논리만 살아남았을까 누가 왜 이 논리만 남겨 대대손손 전하게 했을까 의심해봐야 한다. 지배자의 논리가 일반 서민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건지 그 논리가 세워진지 이천년이 지난 지금쯤은 질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고전들에서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그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질문하며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이 다시금 마음깊이 와닿았다.

순자의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고 유연하면서도 엄정한 사상은 우리가 지금의 혼란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는 이 책의 끝 부분에 다다랐을 때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고 평가하기에 달렸다. 그리고 만약 도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오늘날에 맞게끔 재해석하고 활용할 것인지도 여러분, 아니 우리의 몫이다. (p. 54)

ps. 순자의 대표적 제자가 한비자였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는데, 제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스승이었기에 제자들이 펼친 사상이 곧 순자의 사상이라고 할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스승의 이론을 정설로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자맹자계와 좀 달라보였다. 이 책의 말미에 소개된 다른 학파들의 책에도 관심이 간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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