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세계사 세트 - 전3권 - 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지음, 최파일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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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프랑스 혁명기에 시작된 나폴레옹 전쟁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통찰한 걸작

"나폴레옹 전쟁은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

<나폴레옹 세계사>라는 책이 나왔을 때 몹시 탐이 났더랬다. 서양고전을 읽으며 세계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역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프레임을 알려주곤 했기에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 수준의 근대사가 또 어떻게 새롭게 깨우쳐질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처음에 나온 합본 양장의 두께가 어마어마한 벽돌이라 그 아우라에 소장욕이 뿜뿜하면서도 섣불리 손내밀지 못하다가 분권세트로 다시 나왔다기에 가독성 면에서는 좀 낫지 않을까 싶어 와락 도전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멋진 책이었다!

분권세트는 총 3권으로 되어 있다. 본문에 해당하는 1, 2권과 부록이 한 세트이다. 부록은 주석과 참고문헌 그리고 색인만 싣고 있는데도 300페이지가 넘는다. 저자가 얼마나 많은 문헌과 꼼꼼한 주석을 덧붙였는지 그 분량만으로도 확인이 되는 듯 싶다. 본문에 해당하는 1권과 2권의 분량은 1천 페이지가 넘는다. 한권씩만 봐도 5~600페이지 책이니 이것만도 벽돌책이다. 하지만 은근 긴박감 있게 읽혀서 막상 시작하고 나면 예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역시 제대로 된 역사책은 소설 못지 않게 재미가 있다. ㅎㅎㅎ

나폴레옹 전쟁은 그 규모와 충격에서 다른 모든 유럽 분쟁을 압도한 전쟁이고, 19세기 당대인들에게는 '대전쟁 Great War'로 알려지게 되었다. 유럽 내부의 경쟁관계로 촉발되긴 했지만 나폴레옹 전쟁은 식민지와 무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 세계적 투쟁으로 이어졌고, 규모와 범위, 강도 면에서 역사상 최대의 분쟁 중 하나를 대표한다. 프랑스와 헤게모니를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와중에 나폴레옹은 간접적으로 남아메리카 독립의 원인 제공자가 되었고, 중동 지역을 재편했으며, 영국의 제국적 야심을 강화하고, 미국 세력의 부상에 기여했다. (p. 11~12) 나의 의도는 1792년과 1815년 사이에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이 나머지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펼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의 역사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1789년에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퍼져나간 진동은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 진정으로 전 지구적인 반향을 낳았다는 사실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p. 17)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세계 여러 지역은 저마다의 발전 경로를 밟게 되었ㄷ고, 전쟁이 없었다면 프랑스 혁명 자체는 대체로 유럽의 사안으로 남아서 외부 세계에 제한된 영향만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야심과 그 야심을 좌절시키려는 유럽의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전쟁은 저 멀리 세계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 (p. 19) -서문 中-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나의 상식 수준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혼돈의 시대에 불세출의 인물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황제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가 유배당하는, 그러니까 지극히 나폴레옹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사건으로 생각하는 정도였다. 전쟁에 한 개인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 자체가 그 전쟁을 나폴레옹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에 국한시키는 경향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전쟁의 범위를 세계사적으로 아니 전 지구적 범위로 넓혀 차근차근 논증해나간다. 그리고 그 논증은 성공한다.

이 책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의 집권까지의 혁명기를 개관한다. 이 부분은 추후 사건들에 대한 배경을 담고 있는데, 선행하는 10년간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나폴레옹 전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여러 사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 시간 순서대로 또 지리적으로 구성했다. 이 부분은 1801~1802년 동안 유럽의 일시적 평화로 시작하여, 혁명전쟁의 결과로 프랑스가 획득한 것을 공고히 하려는 나폴레옹의 시도들과 그에 대한 유럽의 대응을 살펴본다. 8장과 9장은 종국적으로는 나머지 유럽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게 될 갈등으로 터져나오는 프랑스-영국의 긴장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하의 장들에서는 서유럽과 중유럽에 맞춰진 전통적인 서사에서 초점을 옮겨 스칸디나비아아와 발칸반도, 이집트, 이란, 중국, 일본, 남북아메리카대륙과 같은 다른 분쟁 지역들을 살펴보고, 나폴레옹 전쟁이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했는지를 실증한다. 세번째는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을 추적한다. 이 시점에 이르러 나폴레옹 전쟁은 아시아에서는 거의 해소되었으므로 서사의 초점은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이동하여, 나폴레옹의 패배와 빈 회의의 소집으로 막을 내린다. 결론에서는 전쟁 이후의 세계를 폭넓게 둘러본다. (p. 19~20)-서문 中-

서문부터 굉장히 논리적이었다. 서문에서 이미 이 책의 대강을 개괄할 수 있으며 마치 핵심요약만 쏙 뽑아놓은 듯 해서 결론까지 다 알게 된 마당에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을 안다고 해서 그 과정을 모른다면 어찌 그 결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내용들은 다 그 과정 속에 있다. 엔딩을 다 아는 드라마일지라도 굳이 한편한편 다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한편한편에 드러나는 사건들과 인물의 심리변화를 보는 것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러하다. 결론은 서문에서 알고 시작하지만 그 결론이 어떻게 추출된건지 알아나가는 과정은 굉장히 탐색적이고 흥미롭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나폴레옹 전쟁'을 나폴레옹 개인에 대한 위인전처럼 풀어내지 않고 세계사적 프레임으로 그 전쟁의 전후과정을 살펴본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 나폴레옹 개인은 그닥 두드러지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과 앞뒤의 맥락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읽을수록 이쪽저쪽 입장이 다 이해되면서 이 세계사적 전쟁이 새롭게 인식되어져 갔다. 훌륭한 책이다.

프랑스 혁명의 기원을 둘러싼 논의에는 하나의 역설이 자리잡고 있다. 혁명의 참여자들과 후대의 평자들은 혁명을 전 지구적 사건으로 인식했지만 그 가운데 거의 누구도 혁명의 지구적 원인들을 탐색하지는 않았다. (p. 32)

프랑스 혁명은 시민혁명의 기원이다. 그 이후로 여기저기서 시민혁명들이 뒤따랐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정신과 의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혁명전에 전쟁이 있었다. 전쟁 전에 무역분쟁이 있었다. 혁명이든 전쟁이든 어쨌든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그 시작에는 유럽의 아귀다툼(p. 57)이 있었다.

혁명적 변화를 향한 탐구는 복잡하게 꼬인 경로로 드러났고, 흔히 자유, 평등, 우애가 아니라 그보다는 환멸과 억압, 소요를 낳았다. 프랑스에서 혁명이 밟은 길은 구체제에서보다 더 중앙집권적인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진 한편, 공포정치는 부르봉 왕가의 이른바 절대왕정을 크게 능가하며 국가의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주었다. 전쟁은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역사가 프랑수아 피레는 "혁명이 전쟁을 수행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전쟁이 혁명을 수행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p. 194)

나폴레옹 전쟁의 출발점은 1803년 5월 아미앵 강화조약의 붕괴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혁명의 시대 프랑스의 군사적 성공은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위협했고 장기간에 걸친 프랑스와 영국 간 경쟁관계는 나폴레옹 전쟁의 결정적 배경이었다. 10여년간의 혁명의 시대에 프랑스 시민들은 정변에 무감해져갔고 질서와 안정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때 군사적 성공에서 두드러진 인물이 나폴레옹 장군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나폴레옹은 군사지도자로서의 현명함에 더불어 정치적 책략가로서도 상당한 능력자였다.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제약을 제거하기 위해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국민 다수가 새로운 국가수반에게 허락한 무비판적인 승인을 활용하는 다양한 전략에 의존했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합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국민투표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정치지도자였고, 그런 관행은 20세기에 어디서나 만연하게 된다. (p. 204)

보나파르트에게 책임을 씌우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이해관계는 부자연스럽고 비난받아야 마땅한 반면, 영국이나 영국의 대륙 맹방들의 이해관계는 자연스럽고 훌륭하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p. 304)

나폴레옹은 영국을 혐오했다고 하지만 개인적 혐오로 그 엄청난 전쟁을 일으킬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의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논리적이었다. 구체제는 무너져가고 신체제는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저마다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려고 머리싸움하던 시대였다. 그 주인공이 프랑스와 영국으로 좁혀졌을 뿐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 두 나라는 프랑스는 대륙에서 영국은 바다에서 힘을 키웠다. 그리고 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구체제의 패권국가들이 있었다. 그 맹방들의 계산에 따라 세계사의 흐름도 바뀌곤 했다.

혹자들이 그런 것처럼 유럽 내 세력 균형을 둘러싼 영국-프랑스의 경쟁관계가 이 전쟁을 촉발하는 데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일축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듯하다. 그것은 많은 측면에서 관련이 있었다. 양국의 갈등은 두 제국주의 간의 대립, 각자가 국제적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종함으로써 국가 이익을 수호하고자 하면서 야기된 갈등이었다. (p. 314)

그래서 저자는 프랑스 대 영국의 전쟁을 코끼리 대 고래 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전쟁은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 편에 누가 붙느냐에 따라 상황은 수시로 변했다. 문득 전래동화 한편이 생각난다. 동물들간의 줄다리기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육지동물들이 허리에 허리를 잡고 바다동물들이 꼬리에꼬리를 물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동물들이 하나하나 늘어가던 이야기였는데... 결과가 어찌됐더라는 기억이 안난다. ㅋ 여하튼, 이 동화와 비슷한 상황이었달까. 누가누가 편먹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졌기에 프랑스와 영국은 서로의 맹방을 지키거나 추가하기 위해 끊임없는 외교전을 벌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의 유럽지도가 자리잡아가게 되는데 독일과 이탈리아가 특히 그러했다. 이전까지 독일과 이탈리아는 수백개의 퍼즐조각같은 상태였다.

대륙 봉쇄 체제는 그러므로 상호 연관된 세 부분, 즉 영국 상품에 대한 봉쇄를 통해 영국의 경제력을 위축시키기 위한 군사적 승리의 활용, 대륙에서 경제 발전을 장려하기 위한 경제 권역의 형성, 대륙에서 프랑스 헤게모니의 공고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p. 415) 1807년이 저물 무렵 대륙 봉쇄 체제의 기본적인 윤곽이 잡혔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황제로서 착수한 가장 중요한 정책 이니셔티브였다. (p. 416) 나폴레옹의 유럽 제국이라는 비전에서 대륙 봉쇄 체제의 중요성과 프랑스 제국의 궁극적 붕괴에서 그 체제가 한 역할은 도저히 과소평가할 수 없다. 비록 나폴레옹 제국은 일시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되지만 나폴레옹은 언제나 대륙에 대한 정치적 비전을 품고 있었다. (p. 417)

당시는 혁명의 시대, 이 혁명에는 시민혁명도 있지만 산업혁명도 있었고 과학혁명도 있었다. 봉건체제는 무너졌고 다양한 산업과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있었다. 무역은 각국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잡아 갔고 해외 식민지로 인해 그 범위는 그야말로 전 지구적이 되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대륙의 장군, 대륙봉쇄체제가 영국산업에 타격을 주고 대륙산업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으로 유럽내에 산업 공동화를 일으켰다. 그에 비해 영국의 해외무역은 경쟁자 없이 독점적으로 세를 키워나갔다. 이익에 따라 오늘의 맹방이 내일의 적국이 될 수 있는 시대였다.

프랑스 역사학자 루이 베르제롱이 평갛나 대로 "역설적이게도 나폴레옹은 시대에 뒤처지기도 하고 앞서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 계몽 전제군주이자 근대 국가의 선지자였다" 유럽에게는 나폴레옹 정권이 근대 세계에 대한 신선한 관점이자 그 자원과 국고를 고갈시키는 권력의 행위를 의미했다. (p. 503) 한 국민의 운명이란 그 국민의 정치이며, 그 정치들이란 나폴레옹의 정치, 즉 전쟁과 정복의 정치, 착취와 억압의 정치, 제국주의와 개혁의 정치였다. 핵심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폴레옹 제국은 어떤 목적들에 복무했는가? (p. 504)

나폴레옹의 정치와 그가 일으킨 전쟁들을 중심으로 보면 나폴레옹 개인적 야욕으로 오독할 수도 있을 시대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주변 상황들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나폴레옹 체제'는 프랑스가 지배하는 영토들에서 봉건제의 잔재를 폐지하고 혁명의 원칙들을 주장함으로써 구체제 사회들에 대한 명확한 도전을 대변했다. (p. 507)' 나폴레옹은 프랑스에서 황제가 되었지만 로마제국처럼 유럽대륙의 황제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동맹을 맺고 정복한 지역에는 프랑스 시민혁명의 자유와 정치체제가 안내되었다. 억압의 지배속에 자유와 평등을 일깨우다니 모순으로 보이지만 그게 가능했던 시대가 나폴레옹의 시대였다.

나폴레옹 정권은 결코 하나의 '유럽적' 정체성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프랑스적인 그 본질을 초월하지도 않았다 결국에 제국의 생존 자체가 프랑스 무력의 지속적인 우위에 의존했지 제국 지배의 대중적 지지에 의존한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이 어떠한 초월적 이상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것은 동등한 국가들로 구성된 연방의 이상이 아니라 보편 제국의 이상, 그 정신에서 유럽연합보다는 샤를마뉴 제국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p. 510)

당대 하도 잦은 연맹과 맹방의 관계 속에 혹자는 지금의 UN의 기초가 닦이지 않았나 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저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유럽연합이 아니라 프랑스가 주축이 된 제국에 가까웠다. 나폴레옹은 급진적이었고 점령지에 대의제라던가 헌법 그리고 시민의 자유 등을 소개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물질적 자원이었다. 문제는 이 물질적 자원을 갈구한 나라가 프랑스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말이다.

3차, 4차 대불동맹전쟁은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러시아를 격파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서사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건이었다. 중유럽에 미친 심대한 영향과 더불어 이 무력 분쟁들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광범위한 파문을 불러일으키며 발트 지역에서 세력 균형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p. 601) 저강도 영국-러시아 전쟁-한 러시아 역사학자가 인상적으로 표현한 대로 '연기 없는 전쟁'-이 그 뒤로도 오래 이어졌다. 이 갈등은 나폴레옹 전쟁의 전통적인 역사 서술에서 잊히는 경향이 있는데, 대체로 그것이 대규모 전투로 이어지지 않았고 주로 지중해와 바렌츠해, 발트해에서 러시아와 영국 전함 간 국지적인 교전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기가 났든 안 났든 그것은 나폴레옹 전쟁의 더 큰 이야기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p. 638) 오스만 제국은 15세기와 16세기에 획득한 영토들에 다른 제국적 경쟁자들이 꾸준히 침범해오면서 커져가는 위협에 직면했다. '유럽의 병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유럽 내 세력 균형 문제와 단단히 묶여 있었다. (p. 672)

영-프 간의 갈등은 두 제국만의 문제일 수 없었다. 타국과 유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고 그 범위는 중유럽 북유럽 오스만제국을 넘어 이란과 인도 그리고 아시아 아메리카까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이 연쇄적 연결고리들을 보면서 나폴레옹 전쟁이 왜 Great War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할 때 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전쟁에 더 잘 동원되었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인정사정없었다. 유럽의 좁은 지리적 한계로 말미암아 서로 경합하는 정치 단위들은 다양한 지형과 기후에 대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경쟁자들과 기술적인 대등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질적인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더 효율적인 재정과 과세 방식이 등장했다. (p. 831)

저자는 인도같은 커다란 대륙이 어쩌다 영국이이라는 작은 섬나라에 귀속될 수 있었을까 자문자답한다. '아시아에서 인도의 무굴 제국 같은 대제국들은 적응을 위한 군사적 압박을 덜 느꼈기에 근대화에 계속 무관심해도 되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p. 831)' 이러한 상황은 중국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도처럼 중국도 해외무역은 필요치 않았다. 다 자체적으로 수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럽은 구하고자 하는게 많았다. 끝없이 갈구하고 욕망하며 찾아해맸다. 게다가 이들은 전쟁이 익숙했다. 우물안 개구리는 우물벽을 허물고 들어온 악어에게 먹히고 물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맑은 우물은 사라지고 탁한 늪지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에스파냐령 아메리카는 나폴레옹 전쟁의 지구적 파급효과를 잘 드러낸다. 나폴레옹 전쟁의 전통적인 서사에서 대체로 간과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에스파냐 제국의 붕괴는 유럽의 정치적 격랑의 직접적ㅇ니 결과였다. 동방문제가 오스만 제국의 운명이라는 핵심 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서방문제' 즉 에스파냐와 그 제국의 영토를 중심으로 한 문제가 있었다. (p. 881)

그리고 미국이 있었다. 사실 프랑스 혁명도 미국의 독립전쟁에 자금을 댄 왕실의 재정파탄으로 인해 발발하게 된 건데 나폴레옹 전쟁이 미국의 무역과 영토확장까지 넓히게 해준 것을 보면 미국은 적어도 역사에서 만큼은 프랑스에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현실은 미-프 가 아니라 미-영 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대미를 장식하게 한 나라는 러시아였다.

1812년 여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결정은 유럽에서 프랑스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가장 커다란 시도였다.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전쟁으로 이어졌고, 프랑스 황제가 얻고자 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p. 925)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은 흔히 '잊힌 분쟁'이라는 딱지가 붙은 미국의 캐나다 공격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중략) 북아메리카의 사건들은 오랫동안 유럽의 거대한 투쟁들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들은 북아메리카의 운명에 중대한 의미를 띠었고 나폴레옹 전쟁에도 직접적인 파장을 가져왔다. (p. 949)

책을 읽다보면 종종 '전통적인 서사에서 간과되는' 이라든가 '잊혀진' 등의 수식어가 나오곤 하는데 이러한 수식어 뒤에 등장하는 실체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역사는 폭넓게 볼 수록 객관적일 수 있는 것 같다. 일방적인 사건도 일방적인 역사도 없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한쪽에서 보낸 영향이 다른 쪽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 다시 새로운영향력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역사의 연결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듯 했다. 끝난게 끝난것도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이 패배했어도 프랑스는 건재했고 유럽 각국의 정치싸움도 여전했다.

빈 회의는 유럽 역사상 가장 쟁쟁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순간이었다. 그 독특한 성격은 패전국과의 강화는 이미 파리 조약에서 이루어졌고, 회의는 특정 무력 분쟁의 해소만이 아니라 유럽 전반의 평화정착을 다루기 위해 개최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빈 회의는 엄밀하게 말해서 대형 회의가 전혀 아니었다. 각국 대표들은 총회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전원 총회 대신 최강대국을 대표하는 일단의 대표들은 오스트리아 수도의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사교계로부터 떨어져 무대 뒤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황제와 국왕, 각종 군주들이 무수한 궁정인들과 쾌락을 좇는 이들을 대동하고 빈에 몰려왔고, 빈 궁정은 그들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반쯤은 파산 상태로 전쟁에서 빠져나왔음에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황제는 이 모임을 주최하는 데 국고의 남은 절반을 걸었다. (p. 1035)

세계2차대전 후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 와 중동에 자를 대고 국경을 그은 줄 알았더니 그 시작은 훨씬 앞에 있었다. 아메리카에 유럽인들이 도착해서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며 깃발 꼽는데로 여기는 내땅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유럽대륙에서 하나의 제국은 쪼개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면서 거기 살고 있는 일반 시민들과 관계없이 여기는 내땅 하는 식으로 지도자들 마음데로 영역이 나뉘어졌다. 그러한 유럽식 사고방식과 크게 변하지 않은 영토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우리네 사고방식은 근본적으로 많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평행 우주의 역사를 상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도 나폴레옹 전쟁이 다르게 끝났다면 유럽이 더 좋아졌을까 하는 억측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나폴레옹의 정복은 물론 착취와 더불어 지독한 탄압을 가져왔다. 하지만 프랑스 군대는 혁명의 이상들을 토대로 수립된 각종 개혁 조치들도 함께 가져왔다. 그들은 법적 평등과 개인적 자유, 재산권의 불가침성을 약속했다. 종교적 관용을 선포하고 행정과 사법 체계를 개혁하고, 도량형을 표준화했다. 그의 결점들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리고 얼마나 많았든지 간에 나폴레옹은 유럽 대다수의 독재적인 통치자들보다 더 계몽된 인물이었고, 그의 패배는 근대 사회를 떠받치는 많은 이상들의 후퇴를 의미했다. (p. 1073)

'나폴레옹 전쟁은 어쩌면 종교개혁과 제1차 세계대전 사이 시기에 사회 변화의 가장 강력한 동인이었을 것이다. (p. 1094)' 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폴레옹 전쟁은 19세기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p. 1119)' 라는 저자의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혁명의 시대에 나폴레옹 전쟁의 다른 결말을 상상하는 것도 의미있을 테지만 혁명의 시대에 나폴레옹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과연 세계사의 흐름이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까 싶다. 자본이 탄생하고 있었고 무역을 통한 이익이 중심이 되고 있던 시대였다. 이익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갈등 혹은 전쟁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나폴레옹 전쟁은 무엇보다도 유럽 내 갈등이었지만, 유럽과 나머지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했다. 이 무력 분쟁은 유럽 국가들이 개혁과 근대화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도록 강요하고 촉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 여러 지역들 간 세력 균형을 변화시켰다. 유럽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럽은 중국과 이슬람 세계의 더 선진적이고 세련된 문명들에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막을 내릴 때쯤 군사적 문제, 산업 발달, 기술력 측면에서 나머지 세계에 대한 유럽의 우위는 확연했다. 이는 대분기의 시작이었고, 이 전환의 엄청난 의미는 19세기가 흐를수록 더 분명해진다. (p. 1120)

역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를 읽는 것이 필요하다. 나폴레옹 전쟁사가 왜 이렇게 벽돌책이 되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읽고나니 이렇게 세세히 풀어놨는데도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방면의 자료와 다각도의 관점에서 18~19세기의 전 세계를 전 지구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책을 완독했다는 개인적 뿌듯함으로도 오래 기억될 책일 것 같다. 훌륭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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