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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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처 전하지 못한 메시지 한 장만 남긴 채.

해나는 오언과 결혼한지 2년차다. 열여섯 살인 오언의 딸 베일리와는 아직 서먹한 관계이지만 해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베일리를 이해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오언은 딸바보이고 해나를 사랑한다. 해나는 그런 오언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여느날과 다를 바 없는 아침이었다. 오언은 출근했고 해나는 베일리의 식사를 준비중이었으며 베일리는 해나를 무시하기위해 제 방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던, 그런 평상시와 똑같은 아침이었다. 그런데 낯선 아이가 심부름을 왔다며 오언이 남긴 종이를 건네주고 갔다.

아직은 종이를 펼치지 않은 상태였다. 조용한 집 안에 잠시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종이를 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적힌 글을 읽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종이는 그냥 장난이고 실수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어도 되는 순간까지, 하지만 사실은 이제 더는 멈출 수 없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까지, 그저 이 종이를 손에 쥐고만 있고 싶었다.

마침내 나는 종이를 펼쳤다.

짧은 글이 보였다. 무슨 뜻인지 모를 한 줄짜리 글이었다.

종이에는 "당신이 보호해줘"라고 적혀 있었다. (p. 18~19)

남편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대표가 횡령 및 사기죄로 기소될 거라는. 조사 대상자의 범위가 넓혀지고 있다는.

학교에서 돌아온 베일리는 멍한 표정으로 커다란 더플백을 해나에게 건넸다. 자신의 사물함에 아빠의 쪽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고. 그 가방에는 100달러짜리 지폐 수백 다발이 들어 있었다.

오언은 기술개발 책임자였고 회사대표가 가장 가까운 임원이었다. 자신에게 수사관들의 손길이 닿기 직전 오언은 잠적했다.

해나에게 법원집행관과 FBI수사관이 연이어 찾아왔고 절친인 기자 줄스는 오언과의 마지막 통화내용을 들려주었다.

해나는 휘몰아치는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화가 났으며 불안했지만 오언이 남긴 쪽지의 의미는 분명히 깨달았다.

오언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이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겠다고 떠난 오언에게는 정말 맹렬하게 화가 나다. 하지만 그가 신경 쓴다는 걸 알았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오언이 베일리를 사랑한다는 걸 잘 알았다. 오언이 떠난다면, 그건 베일리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떠나야만 해서 떠난 것이다. 그가 떠난다면, 그것만이 베일리를 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베일리를 보호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일은 모두 베일리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것 말고 나머지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p. 67)

해나는 자신이 아는 오언을 믿었다. 베일리를 사랑하는 오언을 믿었다. 자신을 찾아와 오언에 대해 하는 말들을 의심했다. 오언을 둘러싼 상황을 하나하나 파악해갈 수록 미심쩍은 부분 투성이였다. 해나는 그저 가만히 주입되는 정보들을 수긍하고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알아내고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녀 또한 베일리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지금 베일리의 보호자는 해나 한 사람 뿐이었다. 오언은 그걸 알고 그걸 믿고 사라진 것이었다. 왜일까? 왜 떠났을까?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긴 말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두 사람이 소살리토에 오기 전까지 당신이 말해준 남편의 정보와 일치하는 자료는 단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어. 당신 남편은 다른 이름으로 살았거나, 지금 이름으로 살아왔지만 당신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해. 자기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한 거지"

"무엇 때문에?" (p. 195)

오언의 주변조사를 할수록 오언이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말했던 고향, 학교, 가족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언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함께 살면서 해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오언이 말한 과거의 추억들이 있었다. 해나는 그 기억들에 남겨진 단서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오언의 과거를 추적해 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건 베일리의 기억이었다. 해나를 만나기 전 오언과 베일리만 있던 시절의 오언에 대한 기억. 오언이 말했던 정보들은 모두 거짓이었지만 오언의 말과 행동 무엇보다도 마음은 진실이었다. 그것을 믿기에 해나는 진짜 오언을 알아야 했다. 베일리를 위해서라도.

나는 내가 충분히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한다면 베일리가 나에게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은 그런 방식으로는 배울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모두가 너무나 피곤해서 다정하게 대할 수도 없고, 너무나도 피곤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 노력할 기력도 없을 때다. 그때 사람들이 자기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서야 그 사람을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p. 215)

아빠가 사라지고 아빠가 말했던 과거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은 베일리에게도 충격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자신에 대한 정보들이 거짓이라는 의미였으니까. 사춘기 소녀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흔드는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빠가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곁에는 해나 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요?"

심장이 쿵 떨어졌다.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의 핵심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언은 너무나도 두려운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오언은 살아오는 내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부터 베일리를 지키는데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있었다.

"그걸 알아내면 지금 오언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겠지" (p. 220)

애초에 베일리를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할 수 있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함께 있었고, 우리 둘 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했다. 우리 둘 다 오언을 찾고 싶었고, 오언이 무엇을 숨기고 있건 간에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이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p. 221)

베일리의 기억과 오언이 했던 말들을 바탕으로 오언의 고향을 찾은 두 사람은 오언에 대해 조사해 나갈수록 더 큰 위험에 다가가고 있는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언이 그토록 숨기려 했던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묵직한 두께의 소설이었지만 시작부터 빨려들어가 휘리릭 읽히는 책이었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 하나 없는데도 스릴러처럼 긴박함을 느끼며 읽게 되지만 알고보면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 대한 극진한 사랑때문에 숨겨야 했고 지켜야 했고 알아야 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제목 때문에 재밌는 기분이 되었다. 원제는 The last hting he told me 로 그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 인데, 한국어판 제목은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이다. 그러니까 원제는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초점을 두었다면 한국어판은 '말하지 않은 것' 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이 관점의 차이가 재미있었다. 소설을 읽는 와중에도 나또한 오언이 말하지 않은 것들을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원제대로 라면 오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 소설인 것이다. 작중 화자인 해나 또한 오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중심에 두고 추적해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해나가 찾아내는 오언의 과거정보를 하나하나 모아가며 읽게 되지 않았나?!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미국인과 한국인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굳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정보에 중점을 두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에 지켜야 하는 것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단단하지 않은 과거에 세워진 현재와 미래는 모래성처럼 부서질 수 있기에 과거를 무시할 순 없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하튼,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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