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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 서양 편 -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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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부터 중동, 아프리카까지!

화제의 유투브 채널 <두선생의 역사공장>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지리 수업

산맥과 바다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도

수천 년 켜켜이 쌓인 역사가 읽힌다!

나는 역사책 읽기를 참 좋아한다. 학창시절에도 역사선생님이 아무리 재미없건말건 역사라는 과목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 기억을 한동안 잊고 살다가 나이가 한참 든 후에야 다시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역사를 참 좋아했다는 것을. 책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하지만 역사책 읽기는 더욱 좋아한다. 역사책이라고 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니 나름 고르는 요령도 생겨서 점점 실패한 책선택의 횟수가 줄고 있다. ㅎㅎ

역사책들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지도와 지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다. 학창시절에는 몰랐었다. 그저 이야기로서의 역사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역사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도와 지리에 눈이 뜨여지고 그렇게 지도와 지리적 지식이 쌓일 수록 역사에 대한 이해도 쉬워졌다. 어렸을때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세상이 좋아질수록 책도 참 좋아져서 더 재미있고 더 쉬운 책들이 참 많이도 나온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정말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의 서양편 이라고 한다. 이제 시작하는 시리즈의 첫권 같고 기자였던 저자가 역사유투버로 활동하면서 쓴 책이라서인지 깔끔한 정리가 돋보이는 책이다. '지도로 읽는 세계사' 인만큼 다양한 지도가 등장하는데 실사지도가 아니라 그림지도라서 장단점이 좀 있다. 여튼, 두껍지 않은 이 한권에서 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를 다루니 세계사에 대한 지대넓얕 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동, 유럽, 미국, 중남미, 아프리카 의 5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컬러풀하지만 간략한 스타일의 그림으로 그려진 지도를 바탕으로 그 지역에 대한 역사를 짧게 훑는다. 오래전부터의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쭈욱 설명한다기 보다는 현재의 국경선이 어떻게 그어졌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상식들만 조금씩 간추리고 있다. 매 챕터마다 끝부분에 요약정리도 해놓아서 핵심내용을 기억해두기에도 용이하다. 읽다보면 새록새록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조금씩 그려나가게 되므로 다 읽고나면 커다란 세계지도퍼즐을 꽤 많이 끼워맞춰놓은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지정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리의 힘> 과 지구적 움직임과 인류사를 연결한 <오리진>을 책을 쓰면서 참고했습니다. (p. 237) 또한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과 답이, 각 지역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쓰면서 참고한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이런 시각을 경계했습니다. (중략) 따라서 같은 호모사피엔스가 각지역에서 어떻게 정착하고 어떻게 역사를 진행했는지, 그 과정의 차이를 이해하는 차원으로 책을 썼습니다. '서구 중심주의'라고 비판하신다면, 부족한 필력 때문에 생긴 오해니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책은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주장을 전하는 책이 아닙니다. 많은 책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한 대중 인문서입니다. (p. 238)

저자의 후기에서 저자가 언급한 책들이 내가 읽었던 책들이라 반가웠다. 역사관력 책을 읽는데 있어 책선택을 잘해왔구나 하는 새삼스런 뿌듯함을 느꼈달까. ㅎㅎ 저자도 말하고있듯이 이 책은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주장을 전하는 책이 아니라 다른 책들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이해나 분석은 이 책의 의도가 아니다. 그저 지도와 역사는 밀접한 관계에 있고 지금의 세계지도가 어떤 식으로 그려졌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래서 세계시사뉴스를 들었을때 간단하게 참고할만한 책이다.

전지구적 혹은 글로벌하게 라는 등의 수식어구도 식상해진지 오래이건만 세계사에 대한 지식은 생각보다 널리 퍼지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세계사에 역사에 박학다식할 필요는 없지만 상식으로 알아두면 도움되는 경우가 참 많다. 저자가 유투버라니 유투브로 봐도 좋겠지만 나처럼 영상보다 문자나 책이 더 편한 사람들이라면 책으로 보는 유투브라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며 좋을 것 같다. 쉽고 재밌으면서 다양하게 세계사적 시사상식을 꽤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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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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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휴머노이드, 가상세계를 소재로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해 탐구하는,

신진 작가 9인의 강렬한 감성 SF 단편 앤솔러지

새로운 작가들을 알게 될 때마다 세상엔 대체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한권에 여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앤솔러지형 책이 많아서 한꺼번에 신진작가들을 만나게 될 때면 더더욱 놀라게 된다. 씨앗이 심어져 있는줄도 몰랐는데 봄이면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파릇한 새싹을 보며 감탄하게 되는 기분이랄까. SF 라는 장르가 다른 장르보다 좀더 새로움을 많이 느끼게 하는 장르이긴 하지만 이렇게 한권으로 신진작가 9명의 새로운 SF를 읽는 경험은 또다른 즐거움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뇌가 없다.

뇌가 없는 변호사다.

자조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무뇌증으로 태어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건 '투명한 뇌' 기술 덕분이고, 실질적으로 나는 뇌가 없는 존재니까. (p. 9)

신조하 <인간의 대리인> 中

판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지는 오래이지만 '투명 뇌'를 이식받은 일명 ALP가 변호사 자격을 얻는데는 여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ALP는 AI가 아니었고 투명뇌는 인공지능이 아니었기에 변호사 자격증은 인정되었다. 다만 취업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작은 법률사무소에 취직이 되긴 했는데 국선변호사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소소한 사무실이었다. 사무실 대표가 AI와 ALP를 구분하지 못하여 발생한 일이었지만 그럭저럭 잘 타협하며 소소하게 지내던 중이었다. 거대제약회사가 개발한 치매약을 테스트복용한 사람들이 좀비상태가 되고 피해자 가족들이 소송을 냈으나 그들은 거대로펌과 계약할 돈이 없었고 그렇게 국선변호사와 다름없던 김변이 사건변호를 맡게 된다. 투명뇌를 가진 변호사인 김변호사.

나는 인간의 기능을 상실한 인간은 마땅히 죽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무뇌 변호사다 그는 변을 지리며 미친개처럼 바닥을 기는 인간이라도 살아 있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엘리트 변호사고. 그 가치가 실험용 쥐 정도라 해도. (p. 29)

나는 알게 된다. 인간이 되고 싶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p. 38)

인간을 변호할 수 있는 건 인간이 아닌 자일 것이다. (p. 39)

스스로의 뇌를 해파리라 부르며 자신이 인간인지 아닌지 되묻곤 하던 김변은 이 사건을 변호하며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기계들이 보내오는 신호를 해파리가 뇌파로 읽어내고 감응할 수 있기에 자신의 투명뇌는 인간들의 뇌와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계라고 볼 수도 없던 자기자신에 대해.

예에, 그럼 베타파가 희미해지고, 스키마가 능동적으로 정보를 분석하지 못한다고 보면 됩니까? 아! 당연히 그냥 그러면 신경안정제나 마약류하고 차이가 없겠네요.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한다라.... 신기하네요. 이 기계는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할 수 있습니까? (p. 47)

유이립 <스키마 리셋터>

어느 대학교의 연구팀이 스키마 리셋터 라는 것을 개발하여 테스트 중이었다. 마침 당시 굴지의 자동차기업에서 노사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회사측과 노조대표 그리고 하청업체 대효는 이 스키라 리셋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용하고 싶어한다. 교수와 의견이 달랐던 조교는 이 세명을 따로 접촉하고 허락받지 못한 테스트를 시행하려 한다. 하지만...

"자네, 나한테 리셋터를 사용해서 무엇을 이루려 하나?"

"제가 옳았다는 것을 가르쳐드리려고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어차피 난 제정신으로 돌아올 텐데? 리셋터는 잠시 생각을 바꿀 뿐이야. 자네는 한순간만 옳게 되겠지. 그런데 나는 왜 자네한테 리셋터를 사용하려는 걸까?"

"......"

"나는 잠시 생각을 바꿀 뿐이지 세상은 바꿀 수 없다는 걸 자네에게 영원히 기억시키려고 사용하네" (p. 75)

두 대의 리셋터가 분실되었고 그중 한대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사용한 것일까...

원래부터 휴머노이드들이 이렇게 고장에 취약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인간과 비슷하게 발전시키면서 점점 더 약해졌다. 꼭 그 옛날, 전화만 되던 핸드폰보다 그다음 세대의 스마트 핸드폰이 쉽게 망가지던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요즘의 휴머노이드들은 한번 방전되면 메모리도 완전히 손상됐다. 꼭 인간처럼. (p. 82)

"휴머노이드를 혐오해서 누군가는 바이러스까지 풀었다. 그런 세상에 살아가면서 인간인 넌 뭘 했는가? 방관하는 것도 결국은..." (p. 99)

임하곤 <나와 올퓌>

세계적 전염병이 지나간 뒤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완전히 바뀐 시대가 되었다. 가족이든 누구든 무조건적 거리두기로 1인1가구 시대에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을 휴머노이드가 맡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전력이 차단되자 손녀와 연락이 끝긴 희재는 수십년간 창고에 박아두었던 태양열충전식 자동차를 꺼내 손녀에게 향한다. 가는 길에 휴머노이드 청년 한대를 구조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이름을 올퓌 라고 했다. 오르페우스의 약자인 올퓌.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 전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만이라도 그런 불평등한 관계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애초에 내가 올퓌에게 정식으로 금지 명령을 내린 적도 없었다. 원래 진정한 관계에 강요나 강제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법이니까. (p. 104)

휴머노이드를 꺼려하던 희재였지만 올퓌와 함께 손녀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게 되면서 희재는 휴머노이드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초창기 인피니티3호의 별명은 '윤리적인 뇌'였다. 인피니티 3호가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조정해서 윤리적인 판단과 감정 조절 기능을 강화하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폭력이나 학대사건이 눈에 띄게 감소했고 양극성 정동장애 환자의 조증 삽화가 짧아지거나 증상이 완화됐다. 그런데 우울증은 환자 수가 조금 줄었을 뿐 발병 빈도나 증상이 뚜렷하게 개선되진 않았다. 인류의 과반수가 인피니티 3호를 장착한 뒤로는 획기적인 예술 작품이나 발명품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용인되는 행동에 대한 기준에 점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p. 116)

최희라 <영원>

'반세기 전에 내가 내린 결정을 씨앗 삼아 현재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곧 종료될 내 뇌가 불러들일 미래는 어떨까. 그것이 어떻든 그에게는 내어줄 수 없다. 방문자가 떠난 뒤 책상 서랍을 열어 총을 꺼낸다. (p. 117)' 한설박사는 노년의 나이가 되어 죽음이 목전에 왔다고 느껴졌을때 어렵게 구식 총을 구했다. 자신의 뇌를 '그'가 스캔할 수 없도록. 뇌를 통째로 날리기 위해. 인류에게 인피니트를 장착하게 만든 '그'는 반세기전 한설박사가 만났을때 어린 소년이었다. 가정폭력의 피해에서 구조된 천재소년 '영원'이었다.

"정신노동은 대체로 인간관계에 따른 스트레스를 수반합니다. 감정적 에너지가 거의 고갈되는 거죠. 그래서 피하는 거예요. 감정을 소모해야 할 상황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식으로 말이죠. 예를 들면 돈을 주고 여러분 같은 대리인에게 상황을 넘긴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은 '감정 대리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겠죠" (p. 155)

여자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공모에서 떨어졌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대리알바를 시작한다.

남자는 색소폰 연주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레슨비로는 생활비가 감당되지 않았고 그역시 대리알바를 하게 됐는데 어느날 자신처럼 대리알바로 나온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둘은 누군가의 대리가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함께하게 됐는데, 그러던 어느날 '토탈 이모션'이라는 회사에서 둘에게 동시에 연락을 해오고 둘에게 그동안의 '대리'로서의 경험을 데이터로 넘겨달라 제안한다. 토탈 이모션이 개발한 앱은 대박을 터트리고 여자와 남자는 풍족한 처우를 보장받게 되었으나 언제부턴가 여자는 토탈 이모션이 '대리'해주는 것들에 염증을 느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점점 공허해졌고, 형태만 유지한 채 서서히 낙엽처럼 메말라, 굳어갔다. 그렇게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사랑을 두 사람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오가는 몸짓은 진심을 담았지만 그 모든게 AI의 산물이었다. 서로의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말들마저 AI가 제시한 가이드를 이행하는 것에 불과했다. 서로를 향한 진심이 오히려 허상의 연쇄를 빚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국 지쳐버렸고, 마침내 이혼에 합의했다. (p. 167)

남자는 이혼후 과거를 찬찬이 돌이켜보았다. 어디서부터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자는 왜 그렇게 변할수밖에 없었을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자리에 함께해도 될까요? 나는 색소폰만 연주할게요. 당신과 당신 애인이 있는 자리에서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겠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두 사람 곁에서 연주하게 해주세요. 액수는 상관없습니다." (p. 169, 170)

남자는 오래 묵혀둔 색소폰을 들고 무작정 거리에 나갔다. 그리고 낡은 기술로 녹슨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남자는 그렇게 10여년간 더 대가를 지불하고 색소폰을 연주하다 행복하게 죽었지만 자신의 그 행동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어떤 산업을 탄생시킬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질적 빈부는 이제 공감과 연민의 빈부로 확장되었다. (p. 173)'

"이건 회사 공식 지침이야. 그리고 정부에서도 버전 4이하의 도덕을 소유한 자는 일 시키지 말라더군" (p. 188)

클레이븐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

정수는 택배기사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처지였기에 최신 버전의 도덕을 업그레이드할 비용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 도덕을 업그레이드 해오지 않으면 퇴사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정수는 일단 도덕 버전을 알아보러 가지만 업그레이드 된 도덕은 점점더 이상해져가고 있어 보였다.

처음엔 별거 없겠거니 싶었는데 불행히도 도덕4.7 베타와 5.0 베타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우선 이성애와 동성애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사랑은 경계의 대상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격상되었다. 이제 인간은 오로지 도덕만을 사랑할 수 있었다. 또한, 라면과 만두를 함께 먹는 것은 새로 비도덕적 범주에 편입되었다. 몸에 해롭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는 전에 도덕법을 어긴 사람을 본 적 있었다. 길거리에 깡통을 버린 여자였다. 깡통을 버리기 무섭게 여자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아 다리가 마비되었다고 소리를 쳤다. 몇 분 뒤, 경찰이 와서 연행할 때까지 여자를 돕는 이는 없었다. (p. 195)

사람들의 척추에는 도덕칩이 내장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며 꾸준이 그 도덕칩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업그레이드 된 도덕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은 '도덕법 위반' 이라는 글자를 이마에 새긴 죄인들을 법원 광장에서 폭행하고 화형시키는 것이었다. 정수는 갈수록 '도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살기위해선 업그레이드 시켜야 했다. 그러다 옆집 할머니의 칩을 훔칠 생각까지 하게되었고 갑작스런 화재로 정수는 오히려 느닷없이 영웅이 된다.

임신 방식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여성 임신은 64.2퍼센트, 움시스 임신은 26.7퍼센트, 남성 임신은 9.1퍼센트 였다. (p. 225)

강윤정 <대통령의 자장가>

지수는 대통령이었고 인공자궁인 움시스 임신을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지수의 움시스가 납치된다. 납치법을 추적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난다.

기본 소득이 보편화되고 10년 정도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직업이 없는 삶에 적응했다. 비관론자들의 예상처럼 모두가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살지는 않았다. 무료함을 주된 원인으로 하는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AI 시대의 개막 전, 경제적 빈곤 때문에 우울증을 앓던 사람들의 쉬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다. 무직자 중 대다수는 현실세계나 가상세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살았다. (중략) 하지만 무제한 복제가 가능한 정보와는 달리, 물질적 자원을 모두가 원하는 만큼 가질수는 없었다. 결국인 그것이 기본소득 이상의 돈을 버는 유직자들이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게 된 이유였다. (p. 256)

이성탄 <정신의 작용>

기본소득이 보편화된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없이 살아갔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부유하고 특수한 엘리트계층이 되어갔다. 부자들은 더더오래 살기를 바랐고 자신의 기억이라도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다. 이러한 바람을 실현시키려 노력중인 기업의 뇌공학 연구소 실장 연경은 그동안 테스트해왔던 뇌업로드 가 성공적이라 생각했었다. 처음으로 고객의 뇌를 100% 업로드 하여 신체는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있는 따라서 영생이라 부를만한 테스트 또한 성공했다고 여겨졌을 때 이유를 알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여 결국 실패했다. 오류의 원인을 과정에서 연구소의 핵심연구원이었던 수연의 AI우울증에 대해서 알게 된다. 수연은 연경과 다른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문호의 추산으로는 현존하는 인류의 어떤 컴퓨터로도 그런 연산을 해낼 수 없었다. (p. 282)' 그러다 사고가 발생했다... '당신은 당신의 정신을 수연의 뇌에 업로드하는데 동의하십니까? (p. 290)' 그렇게 둘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후배는 자신이 이번에 개발을 주도한 게임에 캐릭터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세스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언어인 PROLOG를 변형하여 활용한 것인데, 그는 그걸 '자기 결정 프로세스'라고 불렀다. 물론 말이 자기 결정이지 결국에는 프로그래머가 짜놓은 명령어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유저들 입장에서는 캐릭터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고 착각할 만큼 세련된 프로세스였다. 문제는 캐릭터가 자기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드문 확률로 오류가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베타 테스트 과정에서 그 문제가 발견되었는데 내가 오류의 양상을 묻자 그는 캐릭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고 말했다. (p. 298)

안리준 <미래의 죽음>

후배가 의뢰한 프로그램은 아무리 분석해도 오류를 찾아낼 수 없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이 뿌듯할 만큼 완벽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한 캐릭터가 마지막 선택에서 멈추는 오류를 분석하던 그에게 오히려 기이한 오류가 일어난다. 아내인 미래가 곧 죽는 영상을 본 것이다. 꿈이 아니었다. 그에겐 분명 실재한 미래체험이었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겪은 일. 나는 이 모순된 문장 앞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겪은 일과 겪을 일 사이에 갇혀버린 셈이었다. (p. 304)' 아내인 미래는 과도하게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남편의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한다. '오류가 생겼으면 그걸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선배는 지금 거꾸로 오류에 맞춰서 프로그램 전체를 뜯어고치려고 하고 있어요. 멀쩡한 선배 삶을 망치고 있다고요. 그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p. 316)' 라는 후배의 말은 타당했다. 하지만 하지만 아내의 죽음은 아니 곧 다가올 아내의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한 캐릭터가 맞닥뜨리는 선택의 순간은 대략 30번쯤 되는데, 에피소드의 마지막 선택과 함께 게임이 종료된다. 게임은 리셋되고, 같은 에피소드의 첫 번째 선택부터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이때 마지막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30번의 선택이 공교롭게도 이전 게임의 선택들과 똑같이 반복되면 마지막 선택을 앞둔 캐릭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 후배의 설명이 끝났을 때 나는 캐릭터가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깨닫고는 스스로 멈춰버린 것 같다고 느꼈다. (p. 321)

완벽한 프로그램의 캐릭터가 일으킨 오류의 해결점은 결국 캐릭터에게 주어진 자기결정권 문제였다. 선택을 하고 또하고 또했는데 같은 결과가 된다면 그 선택을 처음부터 다시 또 반복해서 또 같은 결과가 나오기 직전 캐릭터가 멈춘 오류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을 느꼈을 때, 후배가 만든 게임 속 캐릭터 (p. 325)' 를 떠올린 '나'의 선택은 어찌되었은 미래의 죽음이 되고 말았다. 이 미래가 과연 아내일까 본인인일까...

9편의 단편들은 최근 SF작품 소재들로 많이 사용되는 것들을 채택했으나 저마다 다른 설정과 해석을 해놓았기에 그 중첩성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SF가 유토피아적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SF는 디스토피아적인것 같다. 그러한 미래예언적 디스토피아는 현재에 영향을 주게 되고 현실은 그렇게 다른 미래를 준비해 간다. 이 책에서는 미래에 사용될 기술에 대한 윤리적 부분들을 많이 건드리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SF는 늘 '인간'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장르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다양한 색깔의 SF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그 SF가 보다 인간적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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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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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인이 되었고,

시민이 되었고,

결국 내가 되었다

Being Heumann 이라는 원제를 봤을 때 Heumann 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순간 해석했는데 또한 그순간 이상했다. 휴먼 철자가 저거였나;;; 나의 영어사용능력은 항상 믿을 수 없으므로 검색을 해보았을때 인간이라는 단어는 Human 이었다. 그제서야 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묘한 발음의 동일성으로 인해 한국어로 읽으면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저자의 성씨가 '휴먼' 이었다. '휴먼이 되다' 라는 문장에 대한 한글발음적 의미로는 '인간이 되다' 혹은 '(성씨로서의)휴먼이 되다' 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 짧은 한 문장이 곧 저자의 삶을 대표할 수 있게 되다니 장애운동가로서의 저자의 삶은 운명적인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자의 삶은 그야말로 '장애인이 되고 시민이 되고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장애인이 아니고 특이한 시민이 아니고 그저 '주디스 휴먼'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토록 험난한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의 부모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부모님에게 그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지만, 만약 내가 그런 질문을 했더라도 부모님은 나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우리 삶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란 식의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은 나의 장애를 수용했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바로 나의 부모였다. 그들의 방식이었다. (p. 10) -들어가며 中-

주디스의 부모는 나치의 만행을 피해 미국에 이민온 분들이었다. 옳지 않은 것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던 가치관을 가졌고 소아마비인 딸을 시설에 보내라는 의사의 권고를 거부했다. 주디스가 학교에 입학을 거부당하자 갖은 노력을 다해 비록 장애인전용학급에나마 뒤늦은 입학을 시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어린 주디스가 집밖에서의 경험들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서도 '함께' 맞받아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부모의 교육관 영향이 컸다.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왜 그 아이는 내게 그렇게 물어본 걸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 나는 아픈 사람인가? 그 아이의 눈을 통해 나 자신을 보니 주변의 빛이 사라졌다. (중략) 나는 달랐다. 항상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온 세상은 내가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은 집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 아픈 사람은 밖에서 놀지 않고,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아무도 그들이 밖에서 놀거나,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p. 35)

주디스가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지날 때 한 아이가 물었다. 신기하다는 듯이 휠테어를 타고 있는 주디스를 보며 아프냐고 물었다. 어린 주디스는 아프지 않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과 그 아이의 다름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다. 교육관계자들도 특수교육반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특수교육반은 일종의 돌봄케어였다. 하지만 주디스는 책을 많이 읽었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교사자격증을 땄으나 신체검사에서 교사먼허를 불허당했다. 스스로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통보받았다. 다른 모든 시험은 모두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던 것이다.

나는 분노했고 마음 깊이 큰 상처를 입었다. (중략) 내 이야기를 세상에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장애인이 교육, 고용, 교통 접근성 측면에서 마주하는 삶의 장벽이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 내 이야기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p. 91)

주디스의 장애는 재활로 치료될 수 없는 영구적인 것이었는데도 의학적인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했다. 주디스는 지인들을 통해 신문에 기사를 내고 법정 소송을 시작했다. 미디어는 교육당국을 맹공격했고 천운으로 개혁성향의 판사를 만나 소송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주디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 운을 자신만의 성공경험으로 만드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주디스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생각했고 멈출 수도 그만 둘 수도 없었다. 그렇게 정치와 법의 세계에서 '장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없애는 활동에 주력하게 되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3류시민으로 본다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당신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당신과 함께 싸워줄 친구들이다. (p. 104~105)

1970년대 였다. 온갖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들이 넘쳐나던 시대였고 온갖 새로운 활동이 태동되던 시대였다. 시대적 억압이 끝나고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나던 때였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늘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에 있었기에 그들이 거리에 건물에 학교에 나타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에도 우호적인 시대였다. 언론과 시민들은 대체로 장애인들의 외침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그렇게 정치권과도 연결될 수 있었다. 주디스는 그러한 장애인운동의 선두주자로서 백악관에서 일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 그렇게 활동범위와 영향력은 점점 커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장애 활동가들은 기술적인 부분을 지원하고, 엔지니어 및 재무 분석가와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논쟁하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그 결과 더 많은 공부를 하면서 점차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의 일이 탄력을 받는데 큰 힘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변화가 일어날 때 사람들이 학습 곡선상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정해야 했다. 사람들이 장애인의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이야기를 들려줌녀서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야 했다. (p. 220)

평등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문제였다. 그게 아닐 때도 말이다. 평등은 공정성에 관한 이야기다. 접근 기회의 형평성에 대한 이야기다. (p. 221)

요근래 몇년간 공정하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알려주는 책들이 꽤 많았었다. 자유와 평등에서 자유가 그나마 획득되었다면 평등은 아직 획득되지 못한 가치인것 같았다. 평등은 다시 공정의 문제로 이어졌다. 무엇이 공정한가? 같은 출발선상에 선다는 것이 어떤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가? 한날한시에 동일한 장소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공정한가? 그 시험을 보기까지 준비하고 공부했던 과정은 결코 동일하지 않았는데? 그 시험장소에 오기까지 누군가는 자가용으로 오고 누군가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 접근기회의 형평성이란 문제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게다가 주디스는 장애인 사회에서도 남녀의 처지가 다름을 체감해왔다. 장애인이자 여성인 경우 더욱 불공정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곤했다.

사실 법안이 하원 위원회에서 교착 상태에 빠질 무렵까지는 미칠 것 같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본래 느리기 때문이다. 민주적 정부의 일은 오래 걸리고, 느리고, 힘들기 마련이다. 그래야 맞다. (p. 242)

민주주의 정부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우리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본래 그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포함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미국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이 모든 것은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양한 토론과 회의를 거치며, 시간이 걸리는 견제와 균형의 방식을 따르기 따르기를 민주주의에서 요구한다. 의사 결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실을 검증하고, 납득할 만한 객관성을 보이며, 내 말을 듣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정부를 원한다. (중략) 불편하고 원망스럽다고 느껴진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p. 297~298)

저자의 투쟁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때로는 성과가 없다고 느껴질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민주주의는 그래야 맞다고 말한다. 오래 걸리고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그 느림을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그러한 민주주의여야 다양한 소통을 해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다양한 입장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바마가 잘 해놓은 일을 트럼프가 망쳐놓아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저자는 계속 활동해야 함을 강조한다.

'장애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한부분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킬수록, 의학이 발달할수록 이전 시기라면 아마 죽었을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채.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 (p. 281)' 라는 저자의 말은 미래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이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그동안 장애에 대해 너무나 협소한 범위로 생각해 온 것이 아닐까.

사회 안에서 전체 집단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될 때 민주주의 구조는 약화된다. 서로 거리를 두고 분리되다 보면 이해와 공감에 실패하고, 궁극적으로 불의를 초래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상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나라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차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면 불평등과 가난의 책임을 사회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게도 쉽게 돌리게 된다. 서로를 비난하는 데만 급급한다면 평등을 중요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종종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수동적인 태도, 즉 우리가 혼자이고 개별적인 목소리일 뿐이라고 느끼는 데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모두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p. 300~301)

저자의 인생역정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들은 생생했고 읽을수록 그 생동감에 빠져들어 읽게 되는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첫 페이지의 문장이 문득 생각났다.

'무엇보다 '나 홀로'가 아니라 '우리'였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p. 20)'

저자는 늘 '함께'였다. 그것은 물론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저자의 노력이 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함께일때 그 해결능력도 높아지게 된다. 사회가 갈수록 개개인으로 분리고립 시키고 민주주의는 갈수록 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느리게 '함께' 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한쪽으로 치우친 빠른 해결법을 강조하는 이들을 조심하자. 느리지만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우리는 계속 '함께' 소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장애운동가의 삶의 이야기이자 함께하는 소통의 이야기로 의미있게 읽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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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 - 인도, 문명의 나무가 뻗어나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시리즈 1
강희정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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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시대가 온다

이제 미술의 역사를 다시 쓸 차례

일명,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를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6권 중 1권과 2권을 읽으며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어서 시리즈 전체에 욕심이 났던 책이었다. 서양사를 읽을 때도 박물관에 전시물을 보러 갈때도 꼭 한번 읽고 넘어가야 할 시리즈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동양미술에 대한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1권은 인도편이다. 아~! 기대된다!!!

미술을 회화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서양의 기준에 익숙하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탐험할 동양미술의 세계는 훨씬 넓고 깊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단단히 준비해주세요. (P. 16)

저자는 이른바 고대문명발상지 4곳중 3곳이 동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서양사관에 젖어 온게 아니냐고 묻는다. 동양미술 이라고 하면 수묵화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서양의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진 때문이라고 말한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따라서 동양미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서 보다 열린 태도로 임할 것을 당부하며 보다 광범위한 예술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을 예고한다.

1872년 일본정부에서 해외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만들어낸 번역어예요. 독일오 쇤네 쿤스트(Schöne Kunst)의 번역얼오, 쿤스트는 원래 미술보다 예술이란 뜻에 더 가까워요. 그림 뿐만 아니라 시, 음악, 조각, 공산품 등이 포함되죠. (p. 18) 그런데 우리가 아는 미술사는 서양 관점이에요. 혁신을 핵심 기준에 놓은 미술이죠. 동양 미술은 달라요. 서양미술이 스스로 발전을 거듭한 끝에 일상에서 먼 곳까지 달려나갔다면 동양미술은 생활에 밀착해 있습니다. (p. 20) 동양미술이라는 세계를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의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 주변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곳에서 동양미술이 단서를 찾을 수 있어요. (p. 23)

미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인들이 만든 번역어 였다. 번역어란 아무리 충실해도 원어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란 어렵다. 예술을 의미하는 Art 라는 영어단어의 기원도 찾아 올라가다보면 테크네라는 그리스어로 거슬러올라가지게 되는데 테크네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기술에 가까웠다. 여하튼, 그러한 미술이라는 단어 자체도 일본이 서양을 바쁘게 쫓가며 만든 단어였기에 서양 관점이 담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게게 지금 미술이나 예술은 일상과 너무나 멀고 먼 비싸고 귀한 무엇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동양미술 세계는 달랐다고 말하여 따라서 서양식 관점을 벗어날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또한 동양과 아시아라는 단어의 의미와 그 간극에 대한 설명도 덧붙이는데 일단 '동양미술'로 부르기로 한다.

우리가 먼저 가볼 곳은 인도입니다. 동양미술의 시작으로 인도만큼 적당한 출발지가 없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인도에서 불교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p. 38) 제야의 종도 원래는 불교 행사였어요. (p. 39) 통치방식을 바꾼다고 1000년간의 세계관이 갑자기 바뀔 리 없지요. (중략) 조선 건국 이후 600년이 더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그 세계관 안에 있습니다. 잘 몰라서 안 보이는 것뿐이에요. (p. 41) 한가지만 강조하고 싶어요. 미술에는 그 미술을 만들어낸 이들의 역사와 문화, 즉 세계가 깃들어 있습니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우리는 서양 중심으로 세상을 봐왔지만 그 역시 여러 관점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물론 알던 대로, 익숙한 대로 세상을 본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닫힌 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가치는 충분하죠. 알에서 깨어나야 더 넓은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요. 동양미술, 더 나아가 동양을 이해한다는 건 우리를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p. 42)

저자는 동양미술에 들어가기에 앞서 동양이란 어디이고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왜 동양미술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조곤조곤 설명해 준다. 하나하나 주옥같은 말이 많아서 포스트잍을 붙이며 읽다가 앗! 했는데, 소단원내용이 하나 끝날때마다 <필기노트>로 깔끔하게 이미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이 책을 읽고 요약해보고픈 사람은 매 단원마다 있는 이 <필기노트>로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매 대단원이 끝날때마다는 본문에 나왔던 유물들을 모아 간략한 설명과 연표로 정리해놓음으로써 핵심노트 뿐만 아니라 시각적 자료의 되새김까지 가능하게 해놓았으니 이 책의 친절한 구성에 감사할 따름이다.

인도가 지금과 같은 영토를 갖춘 건 영국 식민지 시기부터입니다. 말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영국이 '여기 다 우리 땅!'하며 경계를 긋고 이를 인도란 이름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지요. 생각보다 얼마 안 된 일이에요. (p. 59)

이 책은 '미술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긴 하지만 풍부한 미술적 자료를 갖춘 역사책에 가까웠다. 그렇다고해서 인도의 역사이야기 라기 보다는 인도를 중심으로 한 동양 역사의 유래를 풀어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인도라는 나라의 이름부터 지금의 인도에 이르기까지 간략하게 설명되는 인도 역사는 동양미술, 인도미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 바탕이었다. 제대로 된 '의미'파악은 늘 제대로 된 배경'지식'에서 출발하게 되므로.

문명의 시작 연대는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인도 최초 문명을 인더스 문명이라 배웠겠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문명이 최근에 발견됐거든요. (p. 79) 이 문명을 인더스 문명에 앞선 문명이란 뜻에서 먼저 선(先)자를 붙여 선인더스 문명이라 불러요. (p. 80) 기원전 2000년경 기후 변화로 날씨가 급격히 건조해지자 메르가르에 살던 사람들이 인더스 계곡으로 이주했을 거라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p. 82) 메르가르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기원전 7000~6000년이에요. 지금으로부터 약9000년 전입니다. (p. 83) 메르가르는 비교적 최근인 1974년에 발굴됐습니다. 이 사실이 교과서까지 반영되려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해요. 시간이 충분히 지나야 '추상적인 무늬를 그린 게 신석기 문화의 특징이다'라고 배웠던 우리의 고정 관념도 바뀔 수 있을 겁니다. (p. 88)

신석기혁명과 농업혁명에 너무나 익숙한 나로서는 괴베클리 테페의 유적을 알게 되었을 때 무척 충격이었다. 농업혁명 이전에 집단거주가 있었을 수도 신석기 혁명이 신석기 혁명이 아닐 수도 있게 할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1963년 발견되었을 땐 그저 무덤이겠거니 했다가 1994년 재발굴에 들어가면서 1만년~9천년 전의 고대인류 유적지로 인정받아 201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발굴 및 연구중이다. 그런데 1974년에 발굴된 선인더스 문명에 대해선 왜 지금껏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을까? 이런....

동양 문명이 서양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한 서구 학자들의 선입관이 반영돼 있습니다. 즉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의 지모신은 그리스 문명이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인도까지 퍼져 나간데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애초에 인도 최초 문명의 발상지를 인더스강으로 봤던 것도 인더스강이 메소포타미아와 가깝기 때문이었고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인더스 문명을 낳았다는 생각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오랫동안 기정사실처럼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인더스 문명을 만든 드라비다인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까지 했죠. 하지만 메르가르의 발굴을 통해 드라비다인이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훨씬 먼저 문명을 일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p. 92~93)

아직 논쟁중인 문제에 대해 저자는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진 않는다. 다만 지금껏 상식이라고 여겨왔던 고대문명에 대한 상식을 깨트릴 것을 제안하는 듯 했다. 모든 문명은 서로 교류했다. 따라서 서로 영향을 끼쳤다. 어디가 먼저이고 어느것이 우수한지를 따지는 것은 나중 문제다. 그러한 것보다는 그 교류와 영향을 통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나또한 그런 저자의 생각에 깊이 동감한다. 이후 저자가 풀어내주는 이야기들은 그러한 오픈마인드를 더 탄탄하게 지탱해줄 만큼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처음 봤을 땐 두꺼워보이던 책이었지만 재미난 소설읽듯이 책장이 아주 술술 넘어갔다.

다만 유념했으면 합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동양이라는 말의 의미를 짚었던 걸 기억하나요 아시아를 하나로 묶기 위해 동양이라는 단어를 쓰고, 불교를 공통된 정신으로 내세운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고작 몇백년 전인 19~20세기의 일본에서였지요. 일본 근대미술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오카쿠라 덴신이 최초로 동양이란 세계를 정의하고 퍼뜨린 사람입니다. (p. 496) 오카쿠라 덴신의 주장은 훗날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배경이 된 대동아 공영권 개념을 뒷받침할 때 이용돼요. (중략) 여기서 우리가 불교라는 관점에서 인도를 돌아본 것처럼 19~20세기 일본 학계에서도 같은 일을 했었단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끔까지 인도를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이해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 프리즘 밖으로 나올 때입니다. 불교를 통해 아시아 미술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방향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에요. 아시아 일대에 불교가 어떻게 영향력을 미쳤는지 좇는 여정은 여전히 의미있고 유효합니다. 다만 그 여정에는 과저 제국주의자들이 아시아와 동양, 인도에 덧씌워놓은 선입견을 벗겨내는 과정이 동반돼야 할 거에요.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가 그 성공적인 시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p. 497~498)

책에 실린 이미지 자료들보다도 매단원마다 잘 정리된 핵심포인트들보다도 역사와 맞물려 흥미롭게 읽히는 동양미술이야기 보다도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마지막 페이지에 쓰여있던 바로 저 문장들이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갇혀 있던 미술에 대한 예술에 대한 프레임을 넓히고 선입견을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러한 노력에 이 책과 이 시리즈가 한몫할 것이라 믿으며 다음 편을 기다려본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읽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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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 행복한 사람이 욕망에 대처하는 자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유재민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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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을 읽기 전 먼저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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