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까지 쫓는다 - 대한민국 최장기 인터폴계장의 국제공조 수사 일지
전재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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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팀장'은 어떻게 검거되었나?

범죄조직 추적 및 밑그림부터 첩보수집, 송환까지

최초로 기록되는 전재홍의 일촉즉발 추적기

얼마만에 보는 이름인가 김미영 팀장, 한때 이 이름으로 문자든 메일이든 현혹되는 문구로 치장된 글을 안 받아본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로 어떻게 됐더라? 김미영 팀장으로 널리 알려진 사기범죄부터 그외 언론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굵직한 사건들의 범죄자를 외국에서 검거하는데 필요한 인터폴 공조수사 전문 경찰인 저자는 경찰청 최장기 인터폴 계장으로서 그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해외로 도망간 많은 범죄자들을 추적하고 검거하면서 그들이 도망갔던 방법과 경로 등에 대해 자연스레 연구하게 되었고, 수 년간의 노력으로 나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내가 했던 업무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국가를 위한 일이었기에 혼자만의 경험으로 간직하기보다는 후배들을 위해 노하우를 전하고 싶었다. 특히 요즘같이 세상이 좁아진 시대에 외국으로 도망간 범죄자를 추적하여 검거하고 국내로 송환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p. 14) -프롤로그 中-

프롤로그를 읽으며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는 건 좋은데 수년간의 노하우가 범죄자들에게 이 책으로 알려지면 어떡하나 싶어서. 하지만 다행히도 기우였다. 이 책은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들을 검거하기까지의 요약된 수사일지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방법론적 이라기 보다는 '검거했다'가 중요한 결말론적 이랄까. 그러니 독자로서는 그 사건의 범죄자가 어떻게 됐더라? 하는 궁금증에 대해 명쾌한 결말을 알수 있게 해주는 시원스런 책이라고 할수 있겠다.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굵직굵직하다.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범죄를 벌일 정도의 규모이니 언론 한번 안탄 사건들이 없을 정도다.

보이스 피싱의 원조인 김미영 팀장 검거작전 부터 시작해서 다른 보이스 피싱 사건들, 마약관련 사건들, 성범죄 관련 사건들 등의 큰 사건들 이야기부터 단체 송환이라던가 선박 송환 같은 처음 시도된 방법듣 그렇게 못잡을 것 같던 도피 범죄자들을 몇년이 걸리건 기어코 잡아낸 이야기들이 현장감 넘치게 펼쳐진다.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그 사건들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된 것도 있고 인터폴 공조수사의 세계를 어렴풋이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아 신선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잡았다' 에서 한시름 놓이다 보니 항상 시작만 있고 끝은 모르는 언론 기사들에 대한 후일담으로 읽기에도 괜찮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범죄자들이 다 잡힌 것은 아니었다.

그 유명한 김미영 팀장 보이스 피싱 사건의 총책은 전직 경찰관 출신으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근무했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잡았었는데...필리핀 이민청수용소에서 탈출했다고;;;... 그래서 검거도 검거지만 '송환'에 특히나 저자가 크게 신경썼다는 것이 다른 사건들에서 속속 전달되는것 같기도 했다. 사건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시대에 따른 범죄의 변화가 느껴지기도 했다.

관리 대상 조직폭력배가 아닌 부류는 조직폭력 추종세력 이라고 한다. 요즘 조직폭력배, 일명 깡패들은 예전처럼 나이트클럽이나 주점 등에 몰두하지 않는다. 돈벌이에 도움되는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요즘 불법 사이버 도박, 보이스 피싱 등 돈이 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 범죄 트렌드는 이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법체계도 여기에 발맞추어 대비해야만 할 것이다. (p. 51)

경찰로서 경찰조직에 대해 아쉬운 점이나 쓴소리를 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검찰이건 경찰이건 아무도 못믿겠는 시대가 된지 오래인것 같은데 그래도 이렇게 일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가 싶기도 했다.

열심히 자기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경찰관들에게 조직에서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 승진이다. 성과 있는 직원들이 잘되는 모습을 다른 직원들이 본받고 따라할 때 경찰 조직이 발전할 수 있다. 일은 안 하고 요령 피우고 아부만 하는 사람들을 승진시키게 되면 조직 전체의 사기가 저하된다. 이게 곧 치안력 약화로 연결되고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다. (p. 59)

사건도 사건이지만 사건의 본질에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부분들도 좋았다.

국내에서 검거하는 마약사범의 대부분은 단순 투약자이다. 이들을 잡아서는 얻는 것이 별로 없다. 사실 이들은 처벌하더라도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다시 투약할 확률이 매우 높다. 계속해서 전과자만 양성되는 악순환 구조이다. 단순 투약자들에게는 처벌보다 이들이 다시 마약을 하지 않도록 치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집중해서 검거할 대상자들은 바로 '마약 공급자'들이다. 지금 수사기관의 마약사범 대응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p. 65)


우리나라 범죄자들이라고 해서 외국에서 곧바로 데려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라마다 법체계가 다르고 시스템이 다르고 사건 중요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보니 검거도 어렵지만 송환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또한 범죄의 주범을 잡는다고 해서 사건이 속시원하게 해결된다거나 피해자들이 구제되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사건들 중 특히 '은혜로교회 사건'은 여전히 ing 같아서 가장 안타까웠고,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 주범은 '실질적인 목적은 돈이었다. 게시물을 내려주는 대가로 대상자들에게 돈을 받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정의구현 명목으로 후원금도 챙길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이익이 되는 사업이었을 것이다. (p. 267)' 라는 구절에서 새삼 화가 났다. 이 사이트에 허위사실이 올려져 목숨을 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여하튼,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은 다들 그 결과를 궁금해할 법한 사건들이다. 그 사건들 중 일부는 영화 <범죄도시4>나 <모범택시2>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저자는 <그것이 알고 싶다> <꼬꼬무> <유퀴즈>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인터폴과 해외공조 수사에 대해 자문 및 출연을 할 정도로 사건 해결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사건들에 관심을 갖고 있던 독자라면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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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선정 위대한 그림 220
이경아 엮음 / 아이템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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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1%의 그림들

그림, 보고 느끼고 배우다!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어쩌면 잘 모르기에, 그림을 그냥 보는 걸 좋아한다.

가까이에 미술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관이 있다한들 세계의 명화들을 쉽게 볼수는 없을 터, 내가 그림을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책으로 보는 것이다.

책으로 그림과 미술관련 책을 읽다보니 나름 좋아하는 취향도 생기고,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이야기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밌게 읽게 되고... 가끔은 가장 편한 힐링법이 그림책 보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ㅎㅎ

여튼, 그래서 새로 나온 그림 관련 책들은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bbc선정 그림이라니 뭘까뭘까 더 기대가 될 수밖에.

이 책은 영국의 BBC방송이 다큐멘터리로 방영한 '위대한 그림 220선'을 주제로 미학적 관점에서 한 장씩 골라 보도록 각색하여 엮었다. 선택 범위는 12세기부터 1950년대까지이며, 유럽 회화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새로운 예술가와 작품을 더 많이 감상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요하테스 베르베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등과 같은 유명한 그림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p. 6)


의도도 좋고 구성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생소한 그림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 두 그림에 버금가는 유명한 그림들도 꽤 있었고 널리 알려진 과거의 명화들일수록 널리 알려진 화가들의 그림이어서 그리 낯설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현대미술에 가까워질수록 생소했는데, 이 낯설고 생소함을 위해 현대적 근대미술작품이 꽤 실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차례를 보면 그림의 제목들만 넘버와 함께 실려 있는데 220번부터 시작한다. 220점의 그림이 실려 있으니 당연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1부터 시작하지 않나? 220부터 시작하여 1로 끝내다니 이또한 괜찮은 신선함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난점은 일단 그림이 너무 작고 화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설명이 그닥 대중적이지 않고 이미 그림을 통해 알수 있는 시각적 요소들을 나열하는데 그치거나 지나치게 전문용어들을 남발하여 문장의 맥락이 어색한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림에 대한 기초적 설명만 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하거나 전문적인 내용일지라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핵심만 짚어주는 그런 내용이 본문을 채우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어색한 문장들이 정말이지...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그림은 마치 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진흙 항아리의 빛을 감지하고, 노부인의 주름진 피부 위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p. 132 - 교회 안의 세 여인)'

'동기는 정치적이지만, 형식적인 선입견은 프란츠 클라인과 같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선입견과 유사하다. (p. 147 - 시간의 그림-장벽)'

'예술작품을 자연에서 발췌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창조한 현실의 자율적인 부분으로 제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p. 151 - 꽃이 만발한 사과나무)'

'질주와 위험에 대한 힌트는 부분적으로 그가 이 작품을 완성하고 끔찍하고 피폐한 전쟁 기간 동안의 예술가의 우려를 반영할 수 있다. (p. 169 - 강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그는 정밀하고 구상적이며 종종 대규모로 보이는 기술적 장치, 기계, 장치 및 일상적인 사물을 그려왔지만, 이상하게도 소회되고 재구성되어 클라페크의 작품에 주제가 나타나는 순서대로 악마, 아이콘 또는 기념물이 되었다. (p. 194 - 전쟁)'

'주제의 처리는 악보의 구겨진 모양, 일부 과일의 딱지, 실패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류트 몸체의 균열과 같은 주목할 만한 상징적 세부사항을 드러낸다. (p. 221 - 류트 연주자)'

'서로 얽힌 두 개의 나선형 패턴이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으며, 자연 속의 기하학적 형태에 대한 세계를 초월하는 상징으로서 이 특별한 형태는 더 넓은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다. (p. 302 - 만남)'

'그는 인물이 전혀 없는 풍경을 최소한 한 장 이상 그렸다. 이는 고대 이래로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순수한 풍경이다. (p. 306 - 이수스 전투)'

분명 한글을 읽고 있는데도 더구나 그림을 보며 가볍게 읽고 있는 내용인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은 흡사 파파고번역이나 구글번역의 초창기 버전에서 어색한 문장으로 번역되는 그런 문장들이거나 여기저기서 짜깁기하느라 기묘해진 문장들 같았다.

이러한 초기번역적 문장들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하녀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반증되는 것도 같았다. 뭐.. 오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p.186 에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이라는 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해당 페이지에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프리드리히 대황의 세부모습'이라는 그림이 실려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좀 기묘한 기분이 되버려서 저자의 이력을 새삼 찾아보곤 했는데, 미술계의 이력을 쌓았다고 해서 미술사적 내용이 깊은 그림들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의 이력으로는 이 명화들에 대해 깊이있는 배움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저자의 이력보다도 bbc다큐 라는 다큐영상 자체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해도 bbc선정위대한그림 이라는 다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 제목은 이대로 두어도 되는 것인가...

여하튼, 이 책은 그러니까 다양한 그림에 대한 제목과 화가의 이름 정도 알게 되는 것에서 만족하면 좋을 듯 싶다. 유명한 그림과 유명한 화가의 제목이나 이름만 알고 있어도 꽤나 유용할때가 있으니 말이다.


내가 BBC라는 인용에 너무 큰 기대를 건 나머지 독서하는 내내 불만이 쌓였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그림관련 대중서를 몇권 읽었던 게 비교가 되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나의 혹평에 가까운 서평에 너무 신경쓰진 않아도 될 것이다. 지극히 사소한 개취에 따른 감상평이므로.

여하튼, 지대넓얕 책으로 다양한 그림을 (비록 안 좋은 화질이라도) 볼 수 있다는 장점 만큼은 분명한 책이다. 모쪼록 이 책을 읽으며 더 잘 보기 위해 그림을 검색해보고 더 잘 알기 위해 다른 책들도 들여다보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유익함은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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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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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 『먼 곳에서』가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미국 문단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젊은 거장 에르난 디아스. 그가 두번째 장편소설 『트러스트』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1920년대 월 스트리트를 주요 배경으로 한 『트러스트』는 금융계에서 전설적인 성공을 거두며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 부부에 대해 네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가면서 경제, 금융, 돈, 권력, 계급 등 오늘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트러스트’라는 제목이 신뢰와 믿음이라는 가치뿐 아니라 기업합동이라는 경제적 개념을 의미하듯, 이 소설 또한 여러 영역의 ‘트러스트’를 모두 탐구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텍스트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어떤 내러티브를 믿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의 결혼생활을 통해 부부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하며, 인간사 전체에서 신뢰와 배신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 알라딘 책소개 글 中 -

유명인사들이 무슨 책을 읽었네하며 화제에 오른 책들을 굳이 찾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영화평론가로서의 이동진의 평론이나 유투브를 즐겨 보는 편도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알레고리로 추천된 영상이 이동진의 책 추천영상이었다. (아니, 어쩌다보니가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추천인가?! ;;;)

누가 추천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읽는 편이 아닌지라, 아니 오히려 의문을 품고 좀더 살펴보고 선택하는 편인지라, 검색을 좀 해보았는데... 왠걸 이 책 아주 구미가 당기는데?!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4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각 글의 제목마다 그 글을 쓴 사람이라고 추정되는 인물의 이름도 적혀있다. 그리고 책소개글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 4개의 글은 '앤드루 베벨'이라는 금융사업가의 삶에 대해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다른 사실을 말한다. 무엇이 진실인가는 중요치 않다. 무엇이 사실인지 판별하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울테니. ㅎㅎㅎ

-채권- 장편소설 (해럴드 배너)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모든 이점을 누려온 벤저민 래스크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몇 안 되는 특권 중 하나는 영웅적으로 부상할 특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회복력과 끈기에 관한 것도 아니고, 티끌로 황금의 운명을 만들어낼 불굴의 의지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p. 13)

이 책의 첫번째 글은 '소설'이라고 분류되어 있으므로 실존인물을 그려냈다할지라도 인물의 이름이나 설정등은 허구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문장에서부터 소설은 '벤저민 래스크'라는 인물에 대한 반감과 폄하를 숨기지 않는다. 이어지는 내용도 비슷하다. 벤저민의 집안은 졸부에 가까웠고 부모님은 각자의 향락에 빠져 부부사이도 좋지 않아 하나뿐인 아들에도 무관심했으며 그 하나뿐인 아들 벤저민은 지극히도 사회성이 떨어져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부모님 사후 물려받은 유산관리에도 큰 관심이 없었으나 우연히 채권으로 이득을 본 벤저민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이제야 발견한다. 아주 우연히 말이다.

벤저민은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 - 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 투기의 고립되고도 자족적인 성질은 그의 성격과 잘 맞았고, 경이감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목표였다. 벌어들인 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또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사치란 천박한 부담이었다. 새로운 경험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고립된 영혼이 갈망하는 바는 아니었다. 정치와 권력 추구도 비사교적인 벤저민의 마음에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 (p. 23)

벤저민은 돈을 많이 버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돈으로 누리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짐은 여행가방 두 개에 다 들어갈 정도였으며 호텔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다면, 벤저민은 금융계에 끌린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를 어려워했을 것이다. 금융계의 복잡성이 한 가지 이유였던건 사실이지만, 그밖에도 벤저민에게 자본은 균 하나 없는 생물로 보였다는 이유도 있었다. 자본은 움직이고 먹고 자라고 새끼를 치고 병들며 죽을 수도 있지만, 깨끗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벤저민에게 이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투기의 규모가 커질수록 벤저민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과 멀어졌다. 그는 단 한 장의 지페도 만질 필요가 없었으며, 자신의 거래로 영향을 받는 사물이나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었다. (p. 24)' 그러니까 벤저민은 시작부터 괴물스러웠던 것이다. 금융괴물. 그가 수익을 더해갈수록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존경심을 담아 언급하기도 했으나 '까다로울 정도로 아무 특징 없는 외모와 검소한 습관, 수도승과도 같은 호텔 생활(p. 26)' 로 인해 무수한 뒷담화의 주인공으로 더 널리 회자되었다. 그가 탐욕스러움과 사치스러움을 과시했다면 아마 더한 소문에 시달렸을테지만 여하튼 벤저민에 대해 소설 속 소설가 '해럴드 배너'는 가차없다. 이러한 시선은 벤저민의 부인과 부인의 집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브레보트 부인이 첫 시범을 보인 다음 딸에게 두 책의 문장을 번갈아가며 읊으라 하고, 이어 뒤에서부터 똑같이 해보라고 하면, 잘난 체하며 미소 짓던 손님들은 언제나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곤 했다. 이건 헬렌의 일상적인 묘기 중 첫번째에 불과했다. 그녀의 묘기에는 다양한 정신적 곡예가 포담되어 있었고, 이런 묘기는 늘 웅성거림과 환호 속에 끝났다. 머잖아 사람들은 헬렌을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종의 "아이템"이 되었다. (p. 50, 51)

앞서 (p. 26) 에서 소설가는 벤저민을 일종의 "캐릭터" 라고, 그러니까 좀 많이 이상한 캐릭터라고 표현했었는데, 헬렌의 성장기를 묘사하면서 헬렌의 똑똑함은 "아이템"으로 표현했다. 헬렌의 아버지는 신비주의에 빠져 미쳐가고 있었고, 헬렌의 어머니는 가족을 데리고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면서도 자기과시를 놓치지 않았으며 헬렌은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와중에 친구하나 없이 책에 빠져사는 무감하고 무표정한 소녀로 자랐다고... 그러니 이렇게 이상한 괴짜들이 서로 만난다면? 나름 천생연분 아니었겠는가! 소설상에서는 그야말로 운명적 로맨스랄까. (강조하자면 이 소설은 소설속의 소설이니까)

헬렌은 어머니의 계략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상적인 구혼자가 발견되는 순간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헬렌 자신은 결혼생활이나 물질적 생활에 대해 아무런 야심이 없었으나 좋은 결혼을 통해 어머니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결혼은 다른 사람들의 돈에 의존하는 생활을 그만두고 마침내 정착할 유일한 기회였다. (p. 61)

헬렌은 어머니가 이겼다는 걸 즉시 알아차렸다. 그대로 가만 놔두기만 하면 벤저민 래스크가 자신을 아내로 맞아들이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렇게 놔두기로 결정했다. 벤저민이 본질적으로 혼자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벤저민의 어마어마한 고독 속에서 그녀도 자신의 고독을 찾게 될 터였다.-고독과 함께, 고압적인 부모가 늘 허락하지 않았던 자유도 찾게 될 것이다. 벤저민의 외로움이 자발적인 것이라면 그는 헬렌을 무시할 테고,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헬렌이 좋은 동반자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 고마움을 느낄 터였다. 어느 쪽이든, 헬렌은 남편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토록 갈망하던 독립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하리라고 확신했다. (p. 66)

벤저민과 헬렌은 결혼했다. 파티도 없이 거실에서 증인만을 세운 단촐한 예식이었고,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다. 둘은 집이 제일 편했다. 집안 곳곳을 여행하며 각자의 공간을 안정시켰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혼식 이후 처음 몇 년 동안 벤저민의 재산은 비범할 정도로 증식했다. 벤저민의 부하 직원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기관들을 상대로 충격적인 규모의 거래를, 벤저민의 동료 다수가 기묘하다고 느낄 만큼 정확하게 하기 시작했다. 이런 거래가 반드시 극적인 성취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부 합쳐보면, 얼마 안되던 수익률이 더해져 어마어마한 숫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p. 76)

<트러스트>라는 책을 읽는 과정은, 첫번째 글인 '소설'과 나머지 세개의 이야기를 대조하며 사실을 골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 읽고나면 깨닫게 된다. 이 첫번째 글인 '소설'에 어느정도의 사실과 어느정도의 허구가 섞여 있었는지를. 중요한건 그러니까 마냥 다 허구는 아니었다라는 점이랄까. 그런 점에서 두번째 글로 이 첫번째글 소설에 대한 반감을 써내기로 아니 나름 진실을 알리겠다는 포부아래 회고록을 쓴 '베벨'이라는 금융사업가가 왜 그토록 [채권]을 격렬하게 싫어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여하튼, 첫번째 글 '소설'은 아직 진행중이다.

둘은 이런저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유난히 잘 어울린다는 걸 알았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두 사람은 각자의 특이함을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세상 밖에 나가서 하는 모든 행동에는 늘 어떤 형태의 타협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야 둘은 생전 처음으로, 대부분의 상호작용에 내재되어 있는 부담과 절차에 적응할 필요 없이, 혹은 그런 관습에 따르지 않을 때마다 팽배해지는 어색함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 없이 안도감을 경험했다. 더 중요하게, 둘은 이 관계에서 서로를 향한 고마움이라는 기쁨을 찾았다. (p. 86)


모든 소설의 비극은 대개 '짧은 행복'에서 온다. 소설[채권]에서도 그랬다. 둘은 서로에게 이상적인 짝이었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길지 못했다. 헬렌에게 병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소설속 소설은 나름 1920년대를 전후한 뉴욕 증권가의 굵직한 사건들속 벤저민의 수익에 대한 의혹을 내비치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리고 그런 페이지 분량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다만 내 개인적 취향으로 그런 페이지들을 너무 쉽게 넘겨버렸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놓친 페이지들 때문에 뒤이어 읽은 '회고록' 부분에서 앞부분을 여러번 들춰봐야 했다;;;)

벤저민의 수익은 끝없이 치솟았지만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며 헬렌의 정신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소설가는 그렇게 헬렌의 발병원인마저 벤저민 탓으로 돌리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죽음까지도. 이후 헬렌의 치료과정에서는 이 책 속 4개의 글 중 유일하게 당대의 '정신치료'에 대한 설명을 길게 읽을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작가 에르난 디아스의 의도(당대 뉴욕 증권가의 광적 투기?!에 대한 은유)이자 소설속소설가 해럴드 배너의 전문분야를 유추하게 하는(혹은 당대 인기 있는 소설의 소재를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었다.

여하튼, 부부의 말로는 비참했다. 특히나 헬렌의 경우 끔찍한 죽음이었다.

-나의 인생- (앤드루 베벨)

차례 : 서문 Ⅰ.가문 Ⅱ.교육 Ⅲ.사업 Ⅳ.밀드레드 Ⅴ.번영과 그 적 Ⅵ.우리의 가치관을 회복하자 Ⅶ.유산

소설 속 소설 [채권]에 이은 두번째 글은 소설에서 벤저민으로 표현됐던 캐릭터의 실존 인물 '앤드루 베벨'의 회고록이다. 차레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베벨이 회고록 을 쓴 이유는 분명하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내 업적을 아는 사람은 적고, 내 삶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한 번도 이 점에 괘념치 않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거둔 성취의 총계이지,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러나 최근에 나는 나의 과거가 우리 나라의 과거와 여러 차례 중첩되었던 만큼 내 이야기의 결정적인 장면 일부를 대중에게 공개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 나이의 남자들에게 너무도 자주 나타나는,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욕망을 마음껏 충족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기나긴 세월 내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 점만으로도 내가 나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성향이 아니라는 충분한 증거가 될 것이다. 내 인생 대부분은 소문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그런 소문에 익숙한 채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굳이 뜬소문이나 이야기를 부정하려 들지 않는다. 부정은 언제나 긍정의 일종이다.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아내, 밀드레드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이러한 허구에 대처하고 반박하고자 하는 충동을 유난히 억누르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p. 153)

아마도 해럴드 배너의 소설 [채권]이 앤드루 베벨의 말년에 나와 상당히 주목을 끌고 있었나보다. 수십년간 침묵을 유지하던 베벨이 이토록 즉각적인 반박에 나선 것을 보면.

시작은 자신의 부인에 대한 폄하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뒤이어진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베벨은 자신이 회고록 쓰는 이유에 '나라의 산업뿐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의 정신에도 애석한 퇴로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며 '이 책이 지금껏 우리 국민의 특징이었던 지칠 줄 모르는 대담성을 일깨우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p. 154)' 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회고록은 중간중간 비어있고 간단한 메모로 대체되기도 한 미완의 글이었다. 즉 발표되지 못한 글이었다. 참고로 '회고록'의 내용은 당연히 소설[채권]의 내용과 판이하게 다르다. 회고록의 '차례'에 적힌 순서대로 차근차근. '회고록'에서 핵심부분은 '밀드레드' 부분이다.

세상에는 예외적으로 눈이 밝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불가사의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해답이 이처럼 개명된 소수에게는 빤히 보인다. 세상에 대한 이들의 접근법은 아주 쉽고 간단하면서도 틀림없이 옳다. 이들은 거짓된 복잡성을 꿰뚫어보고 인생의 단순한 진실을 발견한다. 밀드레드는 바로 그런 명석함이라는 축복을 받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시련과 언제나 허약했던 건강 때문에 그녀는 어린아이나 노인처럼, 존재의 경계선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의 천진난만하면서도 짐오한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어울리기에는 너무도 약하고 너무도 착한 사람이었고, 너무 이른 시기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 그녀는 인간성과 온기로 나를 구원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친절함으로 나를 구원했다. 나에게 가정을 만들어줌으로써 나를 구원했다. (p. 183, 184)

'회고록'에서 베벨의 부인 밀드레드는 명석하지만 허약하고 오로지 사랑으로 베벨을 구원해준 천상여자 천상아내 뭐 그런 이미지였다. 밀드레드의 가장 큰 관심분야였던 후원에 있어서도 '그녀는 억누를 수 없는 열정을 품고서 명분을 고르고 기관을 선택했으나, 이성에 귀기울이라는 내 요청도 귀담아듣고 자신이 내린 선택이 재정적으로 불건전할 때마다 내 안내에 따랐다. 나의 질서 있는 접근법이 그녀의 이해할 만한 열정을 통제했다. (p. 195)' 음... 상대를 낯춤으로써 자신을 올리는 것 같은, 이 돌려까기식 표현이 왠지 거슬렸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여하튼, 베벨은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이 글을 통해 내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자세히 밝히겠지만, 1920년대 내가 했던 행동은 우리가 20년대 내내 경험해온 성장을 만들어냈을 분 아니라 연장시키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나의 행동은 우리 나라 경제의 건전성을 지키는 데도 일조했다. (p. 202)' 그리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데이는 또 다... 이유가 있다.

내가 경력을 쌓는 내내 직관은 늘 큰 도움이 되었으며, 내가 명성을 얻은 건 많은 부분 그 덕분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려는 투자자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 나의 이익은 직관에 과학과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에 대한 객관적 해석을 더한 데서 나왔다. 그 결과는 너무도 자주 "예지력"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내가 늘 티커 테이프보다 한발 앞서도록 해준 방법론과 본능의 독특한 조합이다. (p. 208)

1920년대가 시작될 때 취미로 투기를 하는 사람 중 여성의 비율은 1.5퍼센트에 불과했다. 1920년대가 끝날 때에는 여성의 수가 거의 40퍼센트에 이르렀다. 재앙이 닥치리라는 지표로 이보다 분명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집단적 환각에서 히스테리로 후퇴하는 건 그저 시간문제였다. 나는 이런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내가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의무라는 걸 알았다. (p. 211)

나의 행동이 미국의 산어과 영업을 수호했다. 나는 우리 경제를 비윤리적 투기꾼들과 신뢰를 파괴하는 자들로부터 지켜왔다. (p. 214)

책속 4개의 글 중에서 가장 사실을 담고 있어야 할 '회고록'이 가장 허구적으로 읽혔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강조하니까 뭔가 강렬하게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달까. 베벨이 '내 말만 믿어' 라고 하는 부분부분마다 속으론 '네 말만 안 믿으면 될 것같다'라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이렇게 '회고록'에 대한 의문들은 세번째 글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회고록을 기억하며-(아이다 파르텐자)

수십년 동안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게 닫혀 있던 양판문이 지금은 화요일에서 일요일, 오전 열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개방된다. 나는 매디슨 애비뉴와 피프스 애비뉴 사이에 있는 87번가의 베벨 저택 현관을 몇 년째 피해왔다. (...) 오랫동안 계속되던 소송이 끝나고, 앤드루 베벨이 사망한 이후의 계획에 따라 저택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작업이 마침내 시작됐다는 내용이었다. (...) 1981년 봄에 뉴욕의 모든 간행물은 이 도시에 최근에 세워진 "보석"이자 역사적 "보물", 문화적 "보배"인 베벨 저택에 관한 기사를 냈다. (...) 그러다가 몇 달 전 일헌번째 생일 즈음에 나는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서 베벨 재단이 최근 앤드루와 밀드레드 베벨 부부의 개인서류를 소장품에 추가했다는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 어쩌면 내가 막 일흔 살이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이 소식은-그런 서류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점은-내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p. 223, 224)

베벨의 회고록에서 서문의 날짜는 1938년 이었다. 1981년의 아이다 파르텐자가 일흔살이니까 1938년에는 이십대였을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내가 작가가 된 것은 베벨 부부 때문이다. 내가 처음 앤드루를 만난 건 밀드레드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을 때였지만 말이다. (p. 225)' 아이다는 앞서 읽은 '회고록'의 대필비서였다. 그렇다면 아이다는 왜 수십년동안 베벨저택을 피해다녔을까? 아이다는 왜 베벨부부의 서류를 볼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흥분하게 되었을까? 책 속 세번째 글부터는 약간 추리소설 읽는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최악의 문학은 늘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쓰이기 때문 (p. 233)

아이다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이민자로 가난한 식자공이었고 본국에서 무정부주의단체활동을 했으며 지금도 그 단체들을 위한 전단과 광고지를 인쇄해주고 있었다. 또한 하나뿐인 딸 아이다의 글들을 어려서부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책으로 엮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강한 신념은 아이다의 일상을 피로하게 할 뿐이고, 자본가를 혐오하는 아버지는 금융사업가인 베벨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한 저 말은 (어쩌면 이 책에서 유일한) 진리에 가까웠다. 아이다는 베벨의 회고록을 대필하면서 작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해야 했다. 그렇게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쓴 문학이 바로 베벨의 회고록 이었던 것이다.

일 년쯤 전에 나온 책일세. 해럴드 배너라는 그 작가는 거의 잊힌 사람이었어. 내 알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들 말이 해럴드 배너는 별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더군. (...) 그러다가, 내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자가 이걸 쓰기 시작한 걸세. (...) 좌우간, 그자는 책을 썼네. 호평을 받았지. 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 그 책을 읽은 것 같아. (...) 이 책이 공공연하게 내 아내와 나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야. 우리를 나빠 보이게 썼기 때문이야. (...) 모두가 이 책이 우리 얘기라는 걸 알지. (...) 사람들은 이게 믿음직한 정보라고 생각한다네. (...) 그 허구의 글에 나오는 상상 속 사건들이 이제는 내 삶의 실체적 진실보다도 현실 세상에 더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네. (...) 나는 이 상스러운 위작이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도록 놔두지 않을 걸세. 이 더러운 공상이 내 아내의 기억을 더럽히게 놔두지 않을 거야. (...) 해럴드 배너는 내 변호사들이 이미 처리하고 있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내가 목소리를 내야 할 시간이야. (...) 내가 자서전을 쓰도록 도와줬으면 좋겠군. (p. 272, 273, 274)

아이다는 베벨에 대해서 잘 모르는 가난한 이민자2세였고 [채권]이라는 책은 듣도보도 못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베벨의 자서전담당 비서로 뽑히게 된 이유라는 걸 아이다는 몰랐다. 아이다는 그저 취직된 것에 감읍했고 평균보다 두툼한 급여봉투에 아찔해지며 그렇게 '돈'의 위력를 '자본가'의 위세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 [채권]은 그냥 문학작품이 아니라 증거물이었다. 나 역시 그냥 독자가 아니라 탐정이었다. 그 안에 실마리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소설 속 몇몇 요소는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 베벨처럼 큰 권력을 가지고 있고 바쁜 사람이 문학작품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고를 들이는 이유가 뭘까? 소설에는 베벨이 억누르고 반박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p. 283)

자료 모두가 소설에서 (약간 부정확하고 파격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나 베벨이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약간 포장하고 손질해) 내게 직접 해준 설명 둘 다에서 발견되는 금융거래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해주었고,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배너와 베벨이 둘 다 각자의 이야기에서 그런 자료들을 조금만 바꾸어 거의 비슷하게 인용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p. 286)

베벨은 배너의 소설이 사실인것 마냥 유표되는 것에 제대로 반박하고자 자서전을 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금융거래 관련된 내용은 모두 긍정했다. 자, 소설가 배너가 허구로 쓴 것은 어떤 부분들일까? 금융가 베벨이 반박하고자 하는 허구는 과연 허구이기만 한 걸까? 둘다 같은 내용을 인용했다고 해서 그 금융거래 대부분은 과연 사실인걸까? 누구의 긍정도 누구의 부정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게 만든 것, 그게 이 책의 묘미인것 같다.

현재의 아이다가 박물관이 된 베벨의 저택에는 <위대한 개츠비>책은 있어도 [채권]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런데... <위대한 개츠비>를 등장시킨 저자의 의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겠네. 자네는 그 이야기를 받아 적고, 필요하면 문장을 다듬어 전체적으로 말이 되게 만들게. (...) 일반 독자가 보기에 지나치게 거슬리거나 난해한 내용은 절대 없어야 하네. 때때로 윤색을 해도 되고. 뭐랄까, 조금씩 바꾸는 것 말이야. 그냥 잘 읽히게 하게. 당연히 이야기는 내가 해주겠지만, 세부사항 하나하나의 정리는 전부 자네에게 맡기겠네. (...) 또 베벨 부인을 다루는 문단에는...... 여성적인 손길을 더해주리라고 믿네 (p. 296)

비밀유지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일을 시작하후 아이다의 글을 통해 드러나는 베벨의 모습은 앞선 두글에서 등장했던 인물들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여하튼, 아이다는 배너의 책을 처음 읽으며 그 내용보다도 문체적 매력에 빠져들어 그의 작품세계를 좀더 알고 싶어졌고 무엇보다 베벨에 대한 글을 쓰는 데 있어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 갔는데, '배너는 없었다. 아무것도. 단 한 권도. (...)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종합적인 장서 목록 중에 하나에 해럴드 배너의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배너의 초기 작품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채권]은 다양한 평을 받았다. 설명은 하나뿐이었다. (p. 363)' 아이다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그녀의 작가적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었다. '더이상 베벨의 목소리를 포착하지 않기로 (...) 그 대신 (...) 베벨이 가지고 싶어하는 목소리,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를 만들어내기로 (p. 310)'

책의 핵심은 아내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가 가진 사업가로서의 출중한 능력을 주장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투지가 늘 국가의 성장을 동반했으며, 사실상 국가의 성장을 촉진했음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 자네에게 고백할 게 있는데, 밀드레드가 내 청혼을 받아준 건 뜻밖이었다네. 나는 밀드레드가 이 모든 것에....... 이것에 관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 (...) 나는 밀드레드 없이 내가 무엇을 해냈을지 모르겠네 (p. 315)

현재의 아이다는 박물관에서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밀드레드의 서류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아이다는 베벨의 일을 하면서부터 밀드레드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껴왔었다. 기묘한 아버지 아래 자란 성장배경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베벨의 이야기를 그의 속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몇 안되는 사람이라서이기도 했고 알게될수록 베벨이 감추고자 하는게 무엇인지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다. 밀드레드 라는 숨겨진 인물에 대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빈약한 서류를 통해 알게 되는 밀드레드는 '천진난만하고 어린애 같으며 '여성적'이라고 깔볼 만한 그림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p. 342)

나는 그녀의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사교계 사람들이-그녀의 문화생활에 대해 알았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베벨이 자서진 집필을 맡길 사람으로 브루클린 출신 여자애인나를 선택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 앤드루가 묘사한 아내의 가정적이고 어린애 같은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모습의 베벨 부인은 (비록 혼자서일지라도) 정치적 논평에 참여하거나 아무리 잠깐이라지만 시사에 관심을 두는 사람과는 양립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스크랩북은 배너가 표현한 밀드레드와도 맞지 않는다. 조용한 탐미주의자인 헬렌 래스크라면 시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지 않을 터다. 이 스크랩북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이 두 남자가 내놓은 초상과 너무도 극적으로 달랐기에, 나는 이번이 진짜 밀드레드 베벨을 처음으로 일별하는 순간이라고 느낀다. (p. 343, 344)

밀드레드 관련 서류들을 살펴보며 아이다는 깨닫게 된다. '그녀가 죽은 뒤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존재가 그보다도 더 축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베벨은 밀드레드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보다 그녀를 완전히 특징 없고 안전한 인물로 바꿔놓는 것을 더 원했던 것 같다.-베벨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당시에 읽었던 위대한 남자들의 자서전에 나오는 아내들과 똑같이 말이다. 밀드레드를 그녀의 자리로 돌려놓으려고. 어쩌면 해럴드 배너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왜 소설에 밀드레드의 망가진 모습을 그린단 말인가? 이건 [채권]을 처음 읽은 이후로 내가 자문하고 또 자문한 질문이었다. (p. 346)' 이 책속에는 4편의 글이 실려있다. 앞의 두 글은 남성의 글이고 뒤의 두 글은 여성의 글이다. 우연일까?!

대체로 그는 사업 거래애 관한 부정확한 내용을 교정하고 밀드렏에 관한 문든들을 계속해서 편집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의 금융 투자와 아내에 대한 묘사를 최대한 '일반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수학적 재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 재능이 경력을 쌓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p. 401)

베벨이 편집하는 밀드레드에 대한 묘사는 아이다에 의해 점점 더 윤색에 윤색을 거듭하게 되고 그 글을 읽은 베벨은 심지어 글의 내용이 마치 자신의 경험이었던 것처럼 아이다 앞에서 웃으며 떠벌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야말로 가짜 이야기였다. '내 기억을 표절당하는 데는 엽기적인 폭력성이 있었다. (p. 406)'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다의 회고록 창작은 멈추게 된다.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던 때 베벨이 돌연사한 것이다. 하지만 비밀유지각서 때문이기도 했고 배너의 책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는 아이다로서는 이후에도 베벨과 무엇으로도 연결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칠십이 되어서야 진실?!에 다가가보기로 결심한것이다.

나는 장부 중간에 끼워져 있는 얇은 노트를 발견한다. 그 노트를 꺼내자 줄이 쳐진 종이에 어렴풋한 직사각형 자국이 남는다. 노트의 표지에는 밀드레드의 글씨로 "선물先物"이라고 적혀 있다. (p. 416) 나는 서류 사이에 그 일기장을 숨겨 가방에 집어넣으면서 나 자신에게 놀란다. (...) 하지만 이건 절도가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이것은 수십년이라는 시간 지연을 거친 대화다. 이 페이지들은 평생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다려왔다. 읽힐 수만 있다면 말이다. (p. 417)

책의 앞부분 차례에서는 '선물'이라고 한글로만 적혀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글 제목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 선물先物. 그 선물이야기가 밀드레드 베벨의 목소리로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가 되어 풀리기 시작한다. 밀드레드의 진짜 일기.

-선물先物-(밀드레드 베벨)

1926년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그 시절에, 나는 그게 우리 결혼 생활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가 정말로 결혼생활이 시작된 때라는 걸 알았다. 맹세를 한 상대보다는 맹세 자체에 더 헌신하게 될 때가 진정한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p. 447)

어떤 책은 읽을 때보다 정리할 때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되곤 한다. 이 책이 그랬다. 반나절에 다 읽은 책을 정리하느라 하루를 꼬박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이게 뭐라고;;; 여하튼,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읽고 나서 더 많이 시간이 필요한 책.

앞 세개의 글에서 생겨난 의문점들을 마지막의 짧은 글 하나가 답지처럼 해결해주지만, 물음표는 사라졌어도 마침표까지 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마지막 글에 대한 스포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아두길. 이 책의 모든 반전은 마지막글, 4번째 글에 있다는 것을. ㅎㅎㅎ)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사실, <트러스트>의 마지막 부분이자 4부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 마지막 부분이 그런 의구심을 더욱 키운다. (p. 482)'라고 하면서,

해럴드 배너의 다소 감상적인 작품과 앤드루 베벨의 거창하지만 완성되지 못한 자서전, 밀드레드 베벨의 이야기를 쓰되 미국의 인종적 다양성과 페미니즘의 이슈 등 자기 현실의 문제를 함께 다룬 아이다 파르텐자의 이야기등은, 그러므로 밀드레드 베벨의 삶을 탐구하거나 재구성하려는 노력일 뿐 아니라 해럴드 배너, 앤드루 베벨, 아이다 파르텐자나 그들이 살아간 시대에 관한 추리를 하게 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p. 483)

라고 했다. '단서'라기엔 추상적일 수 있을것 같은데 여하튼 문제지점들을 많이 박아놓은 작품이긴 하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등단작으로 유수한 상을 받았던데, 과거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더, 늦은 등단과 완벽한 작품이 마치 세트인것처럼 느끼게 하는 작가들이 종종 눈에 띈다. 여러모로 자극이 되는 작품이었다.

"말했지만, 그게 시작이었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살펴봐야 할 때는 1926년이야. 금융의 세계사 어디를 보든 1926년에 내가 거둔 것 같은 성공이 있나? 놀랍지도 않지만, 내가 사기를 쳤다는 비난이 있었어. 그런 비난이 머리가 단순한 기자들이 내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예비 소설가들이 내가 거둔 전례 없는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네. 좋은 얘기지만, 취소. 그해 내가 한 투자는 시장 전체에 걸친 거래에 관련되어 있었다는 얘기를 해야겠나? 어떻게 사기꾼이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주식을 떠안을 수 있지?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모든 회사를 누군가가 뒤흔들거나 침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스꽝스럽네. 나는 나와 함께 이 나라 전체를 부양했어. 그런데 언론은 나한테 감사하기는 커녕 나를 비방했지. 나는 그 시절의 번영을 촉진했을 뿐 아니라 상당 부분 선도했네. 그러니 공매도자들의 음모론적 합의에 관한 새대가리 같은 생각은 전혀 듣고 싶지 않아. 나한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시간이나 그럴 마음이 있는 줄 아나보지. 이 말은 취소"

(p. 355 -[회고록을 기억하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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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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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전원을 매료시킨 신인 작가 현호정의 첫 소설

작년에 현호정 작가의 <고고의 구멍>이란 작품을 읽고 참 독특한 서사구성을 하는 신인작가로구나 싶어 이름을 기억해두었었다.

지인들과 <단명소녀 투쟁기>라는 연극을 보기로 했는데 원작이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 라는 소설이라고 한다. 원작 소설이 있는 공연은 원작을 보고 가는 것이 제맛! 알고보니 이 작품은 작가의 첫 소설이자 첫 수상작이었다.


책 뒤표지에 실린 심사위원들의 멘트가 심상찮았다. 구병모, 이기호, 정소현 소설가의 심사평이 짧게 실려 있는데 이 작가들이 이렇게 칭찬을 하는 작품이라니 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등단작부터 이런 인정과 호평을 등에 업은 작품은 과연 어떤 소설일까? 그런 작품을 쓴 작가는 과연 어떤 성향일까?


구수정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고 예언한 사람의 이름은 북두다.

북두칠성의 북두를 쓰는 그는 근방에서 가장 용한 입시 전문 점쟁이였다. 종이에 사주를 풀어 확률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진실을 선언하는 반신이었다.

방석에 엉덩이를 대기도 전에 합격할 대학을 말해 준다던 북두였으나 수정이 자리에 앉아 왠지 부정하게만 들리는 부스럭 소리를 내 가며 가방에 지난 달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꺼낼 때까지 그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p. 9)

표제의 단명소녀 이름은 구수정이다. 열아홉살의 소녀 수정이가 혼자 입시 전문 점쟁이를 찾아갔다는 설정부터 작가가 경험한 세대는 아직 한창 자라고 있는 세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어린?! 작가의 작품세계는 생각보다 굉장히 구수하다. 마치 전래동화 같달까.

야, 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싫다면요? (p. 12)

공부도 곧잘 하고 점쟁이를 혼자 찾아갈 정로 대담한? 소녀가 자신의 '단명'예언에 '싫다면?'이라는 대꾸를 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캐릭터적 성격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 쉽게 짐작했을때 사실 뻔한 반응은 아니다. 이 뻔하지 않은 서사진행방식이 이 소설을 단숨에 읽게하는 매력인 것 같다. 결코 재밌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난해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한 이야기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장을 덮을때까지 손에서 내려놓아지지는 않았다.

북두는 '죽음은 소나기처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지평선에서 먹구름과 비가 솨아아 달려오는 모양으로 죽음도 다가온다고. 그러므로 만약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린다면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듯이, 죽음과 반대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면 죽음을 조금,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늦출 수 있다는 말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죽음의 이동 속도가 구름의 이동 속도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이었다. 원망스러운 점은 비구름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소멸하는 데 반해 죽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p. 12, 13)

북두는 수정에게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간다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북망산을 등지고 걷는 길, 차갑고 딱딱한 달 대신 따뜻하고 무른 해를 향해 가는 길, 전 생애에 걸친 길이 될 것이다. (p. 13)

수정은 그렇게 갑작스레 길을 떠나게 된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죽는다니 당장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달까. 입시 점을 보러 왔다가 갑자기 죽음을 거스르는 길을 떠나게 된 수정에게 북두 옆에서 도우미를 하던 은주는 백설기 백개를 가방에 담아주었다. '백설기가 백개니까, 만수무강하라'는 거라며 가방 가득 담아준 떡을 바라보며 수정은 '불경스럽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교복을 입은채 떡을 가득 지고 길을 떠난 수정이 가장 처음 맞닥뜨린 사람은 '술집과 숙박업소들 틈에 자리한 떡볶이집에서 선 채로 떡볶이를 먹던 양복 차림의 남자' 였다. 그가 거칠게 수정의 가방을 잡아당기며 세웠을때 울음이 터진 수정을 구해준건 사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한 커다란 개 한마리였다. 개는 수정의 목덜미를 문 채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러자 개의 옆구리에서 날개 한 쌍이 터져 나오며 펼쳐졌다. 다른 말에는 반응이 없다가 '내일'이라는 단어에만 반응하는 개를 보며 수정은 개를 '내일'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낯선 들판에서 떡을 나눠먹던 수정이와 내일앞에 누군가 걸어왔다. '이안' 이었다.

훗날 수정은 이 장면을 수없이 떠올리며 누구와 나눌 수 있는 순간 가운데 가장 소중한 순간이란 바로 이 순간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서로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마주보는 첫 순간. 아직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은 순간. 각자의 마음속 상처에 관하여 서로가 완전히 무죄인 유일한 순간. 이안과의 '순간'은 근사했지만 좀 긴 편이었다. 상대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일에 이안은 수정만큼이나 능한 아이였기에. (p. 24)

'이안은 수정처럼 열아홉 살.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왜요?" "죽으려고요" (p. 27)' 자신이 가려는 길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친구를 만난 수정은 '혹시 살러 가요?' 라는 이안의 물음에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부끄러움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느니 그냥 죽는 게 낫지 싶을 정도 였다. 게다가 수정은 딱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p. 29)' 그래서 수정은 '딱히 살고 싶다기보다는 죽고 싶지가 않아서' '싫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좀 억울하다고 해야 할까, 이해를 못했다고 해야 할까' 라고 답했다. 늙은 것도 아니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수정에게 이안이 말했다.

물어는 봤어요?

네?

그쪽 사인요. 그쪽한테 죽는다고 말해 준 사람이 있을 거 아냐. 그 점쟁이한테든 스님한테든 왜 죽는지 물어봤냐고요.

... 물어보지 않았다. (p. 29, 30)

그러고보니 느닷없이 '단명'을 예언받은 순간부터 나름 휘몰아치던 전개는 순식간에 독자를 일시정지 시킨다. 그러네? 왜 죽는다고 했을까? 어떻게 죽는다고 했을까? 왜 묻지 않았을까? 이제부터 독자는 수정보다 더 무겁게 질문을 떠안고 책을 읽어나가게 된다. 수정은 왜 '단명소녀'였을까? 라는...

살러간다는 대답을 하기 싫은 수정에게, 딱히 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스무 살에 덜컥 죽기는 억울한 수정에게 '단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수정이 떠난 길은 살기위해서 였을까 그저 갑자기 죽는 다는 말에 싫다고 대꾸하고 싶은 어린 치기 같은 반항이었을가...

아니면... 성인이 된다는 의미의 스무살을 코앞에 둔 나이에 자신이 직면해야 할 세상에 대한 마지막 준비같은 어쩌면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같은 것이었을까...

어떻게 하겠느냐고 스님이 물었어. 나는 잠시 고민했어. 뭔가 더 물어도 스님은 대답해 주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내 엄마인지, 애인인지, 어디 있는지 그런 걸 물으면 스님이 대답해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 말이야. 그래서 나는 별로 구체적이지 않은 질문을 했어. '그 사람도 저를 사랑했나요?' 스님은 잠시 생각하다 그렇다고 했어. 고개도 끄덕이셨어. 하지만 곧 반성하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어. 그때 스님은 좀 이상했어. 분명 내 입에 물그릇을 대 줄 때까지만 해도 아주 늙은 노스님처럼 보였는데, 한편 우리 도래의 어린 스님으로도 보였던 거야. 그러나 나는 그 현상에 관해 묻지는 않았어. 스님은 계속 말했어.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 사랑한 적 없다고, 그러나... 네가 있어서 분명 좋았을 거라고... 수정아, 바로 그때 내 마음속에 죽겠다는 결심이 서게 된 거야. 나를 사랑한 적 없는 사람, 그러나 나로 인해 기쁘고 좋았던 어떤 사람에게 복수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내가 죽어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비록 그게 바로 그 사람이 원하던 일일지라도. (p. 38)

이안은 기억이 없다. 오늘 산 중턱에 있는 절에서 눈을 떴다. 이안을 구해준 스님은 북두였다. 북두는 이안에게 알려주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요즈음 나를 심하게 학대했고, 결정적으로 오늘 나를 이 산으로 데려와 떠밀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곧 다시 눈을 떴다고' (p. 38) 이안은 말했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결심했다고.

이 책은 두번 읽으면 좋을 책이다. 마지막 장면을 알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 새롭게 이해되어지는 것들이 참 많다. 처음 읽을 땐 온통 물음표였던 구절들이 두번째 읽을 땐 그럭저럭 이해되어져 갔다. 그러다 이 대화쯤부터는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 있었다. <데미안>.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는 수정과 이안의 관계를 되짚어 보게 한다. 뭐... 나는 그랬다.

수정과 이안 그리고 내일이 빈집에서 떡을 나눠먹으며 하룻밤 휴식을 취하던 밤 누군가 문을 열었다. 일곱명의 어린 아이들 이었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에게 떡을 나눠주었지만 먹다가 싸움이 난 아이들은 가방을 통째로 들고 가버렸다. 그런데 누군가 또 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일곱 노인들 이었다. 떡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기에 죽을 끓이기로 한다. 그렇게 죽을 나눠먹은 노인 중 한명이 빠르게 늙어가더니 자연사했다. 내일은 나머지 여섯 노인의 뒤를 따라 가버렸다. 그런 '내일'을 보며 '수정은 작은 바위처럼 단단해진 심장을 꺼내 내일에게 던지고 싶었다. 그런 방식으로 내일과 자신을 동시에 아프게 하고 싶었다. (p. 46)' 그런 수정과 이안 앞에 '북두'가 다시 나타난다.

갈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서로 다른 것을 원하는 둘이 가야 할 곳은 같다.

도망치는 자는 붙잡히게 되지만, 쫓는 자는 붙잡게 된다.

함께 저승으로 가거라. 힘을 합쳐 문 앞에서 저승의 신을 붙잡아. 각자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렴. (p. 48, 49)

수정과 이안은 저승의 신을 사로잡게 된다. 저승의 신은 살려달라고 한다. 자신이 죽으면 '무질서' 해진다면서. 저승신을 협박하여 수정과 이안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방법을 제안 받는다.

검은 명부는 자신을 죽게 만들 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 흰 명부는 자신을 살게 만들 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야. 하나하나 찾아가서 그들을 다 죽여. 그 순간 수정 너는 천수를 얻고, 이안 너는 영면을 얻을지니. (p. 60)

그렇게 저승신은 이안에게 바랄 희자가 새겨진 큰 칼을, 수정에게 바랄 망자가 새겨진 작은 칼도 함께 건네준다. 그런데 명부를 살펴보던 둘은 깜짝 놀란다. '두 명부의 내용이 같다. 두 명부에 적힌 자들이 같다. (p. 61)' 두 사람은 갈길이 정반대인줄 알았으나 앞으로도 내내 동행하게 될 인연이었던 것이다. (인연이라면 인연일 것이고, 이 판타지 모험기를 한 사람의 내면으로 보자면 두 자아의 서로에 대한 발견 혹은 성찰 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희망'도 함께였다.

수정이 주머니에서 명부를 펼쳤다. 맨 앞장에 그려진 악사의 얼굴, 그 아래 적힌 이름과 대략적인 삶의 내력이 바늘처럼 수정의 심장을 찔렀다. 악사의 얼굴이 담임 교사를 닮았다는 사실을 수정은 깨닫는다. G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 담임은 아직 학생이거나 막 기업에 입사한 친구들과 어울려 종종 유흥가를 배회하곤 했다. 수정은 밤에 종종 그와 마주쳤다. 그는 끝없이 무언가를 떠들어 대던 입을 채 다물지 못하고 쌔액 웃으며 수정의 머리를 보란 듯이 쓰다듬었다. 취한 손길은 잘 멈춰지지 않아 종래엔 수정의 머리가 툭, 아래로 꺾였다. 그때마다 수정은 모멸과 분노를 누르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그의 가족을 상상하곤 했다. (p. 68)

소설의 앞부분에서 수정이 처음 만난 유흥가의 늙어가는 남자가 기억나는 구절일 것이다. 수정이 만난 그 남자는 어쩌면 젊은 담임의 내일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멸감을 주었던 취한 손길... 수정은 가차없이 악사를 찌른다. 악사를 묻고 난 수정과 이안 앞에 한없이 평온한 얼굴의 농부들이 등장한다. 일곱명의 농부.

그 악사는 글러먹은 놈이었거든

몰랐소? 그 악사가 부른 노래는 전부 우리 마을 사람 하나하나에 관한 추문이잖아

그가 부른 노래가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는 걸 몰랐던 게 아니야. 악사의 노래와 소문으로 명예랄지 순결을 잃은 자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 그런데 그게 어디 악사의 잘못인가? 그렇고 그런 삶을 산 이들의 잘못이지. (p. 70, 71)

담임 교사의 얼굴을 한 악사... 악사가 부른 노래는 모두 마을의 소문, 소문 중에서도 추문... 어쩌면 담임은 음악 선생이었을까? 그가 내뱉은 말들 속에서는 어쩌면 추문도 혹은 그를 둘러싼 소문 중에는 어쩌면 추문이 있지 않았을까? 밤이면 유흥가를 배회하는 젊은 남선생과 여고생에 관한 어떤...

수정과 이안은 얼떨결에 자신들이 새로 온 악사라고 둘러대게 되고 환영회를 한다는 농부들을 앞서 뱃놀이를 시켜준다며 마을의 청소부가 등장한다. 셋은 함께 배를 타고 강의 한가운데 멈춰서게 되는데 청소부가 돌변한다. 청소부는 마을의 '질서'를 위해 정해진 인원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 믿고 있었다.

험한 밤을 보내고 작은 섬에 닿게 된 둘은 명부에 그려진 초상과 이름이 모두 바뀐것을 알게 된다. 초상들은 이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반인반수를 모아 놓은 도감처럼, 넘겨도 넘겨도 괴물뿐' (p. 82) 이었다. 이제 둘의 여정은 괴물퇴치담이 되어간다. 수정의 사인에는 아마도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들이 저지른 어떤 일이 있었던게 아닐까...

처음으로 맞닥뜨린 종족은 '눈-인간' 이었다.

수정은 질식과 비슷한 고통을 느끼고 주저앉는다. 이안이 칼을 봅아 나선다. 베는 족족, 그들은 쓰러진다.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으며 상처를 내도 반격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본다. 쳐다본다. 살펴본다. 그리고 기억한다. 몇몇은 금세 잊지만 몇몇은 평생토록... (p. 83)

수정은 어쩌면 어떤 시선으로부터 시선들로부터 죽음과도 같은 위협을 느꼈던 것일까? 수정의 사인은 어쩌면 '시선'이었을까?

수정의 등허리를 꽉 껴안고 척추 깊숙이 제 침을 꽂는다. 곧바로 수정은 무언가, 자신의 몸에서 아주 귀하고 중요한 무언가 울컥울컥 빨려 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이 모기-인간을 죽인다 해도 결코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다. (p. 87)

두번째로 만난 괴물종족은 '모기-인간'이었다. 수정의 사인은 어쩌면 자신의 내부에서 빠져나가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아주 귀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그래서 '죽음'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걸까?

남은 페이지는 단 두 장이다. 한 면에는 '허수아비-인간'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맨 뒷장은 빈 면이다. 그리고 이안은 꿈 생각을 떨칠 수 없다. (p. 91)

이안은 꿈을 꾸었다. '너무 이상한 꿈이어서 오히려 꿈이라고 믿기지 않는, 꿈에서 깬 뒤를 꿈인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그런 꿈' (p. 80) 이었다. 꿈에서 한 병실에 수정과 이안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기듯 들려오면서 그 속에 귓속을 파고드는 단어들이 몇 있었다. '이를테면 자살시도, 혼수상태' 같은 단어들이었다. (처음 읽을땐 그냥 정말 꿈이려니 했었는데, 두번째 읽을땐 이 구절도 한참 생각하게 된다...) 이안은 수정에게 꿈 이야기를 하지만 수정은 그저 악몽이라며 무시한다. 하지만 이안은 꿈을 떨쳐낼 수 없었다.

만약 그게 현실이고 이게 꿈이면 어떡하지?

그럼 깨어나 봐.

뭐라고?

이게 꿈이고 그게 현실 같으면, 여기서 깨어나 보라고, 해 보라고, 지금 당장.

...

안 돼? 못 하겠어?

...

그럼 이게 어떻게 꿈이냐?

...

깨지도 못하는 꿈이 어떻게 꿈이냐 그건 정말 꿈이어도, 꿈이 아닌 거야. (p. 91, 92)

'수정이 저렇게까지 불안해하는 이유를 이안은 알 수 없다. 그런 수정의 반응에 자신이 슬프고도 기쁜 느낌을 받는 이유도 알 수 없다. (p. 92)'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대화는 중요한 대화다. 어쩌면 이 대화 뒤에 바로 결말로 갔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꿈에서 깨어날 때가 아니다. 적어도 수정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렇다. 둘은 '허수아비-인간'이 가득한 논을 마주하고 의견충돌이 일어난다.


이건 꿈이야. 꿈에서 깨야 해.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어.

너 미쳤구나.

그 끔찍한 일들을 다시 겪을 수는 없어. 이번에는 이겨내지 못할 거야.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이안이 대답한다. 회복이라는 단어에 수정의 눈이 시려진다. 앓고 있는 줄 몰랐다.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들이 깨어 있을 때에도 들리기 시작했어. 나는 우리에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려는 거야.

우리가 지금까지 다한 건 최선이 아니야? 이안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 끔찍한 일들이 이어지는 동안 내가 느낀 건 행복이었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정말 더 이상은 싸울 수 없어. 네가 나를 위해 계속 뭔가를 죽이도록 내버려 둘 수 없어. (p. 94, 95)

수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선(눈-인간)을 베고 진을 빼가는(모기-인간) 존재들도 베었지만, 베어도베어도 끝이 없어보이는 허수아비(-인간)들이 눈앞에 산재해 있다면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는 끝이 없을 것 같다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이안?)로 인해 깨닫게 된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비어 있던 마지막 장에 초상화 하나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수정의 명부에는 이안의 초상이, 이안의 명부에는 수정의 초상이 그려진다. 서로의 얼굴이다. 이안은 자신이 수정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 꿈에서 수정을 깨워 함께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정은 이안이 그런 것들을 깨닫는 중이라는 사실을, 저 아이의 착각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졌다는 사실을 느꼈다. 수정은 이안의 눈에서 예전 청소부의 광기를 본다. 우리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p. 96)

'이안은 자신이 수정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라는 문장에서 잠시 멈추어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다시 돌이켜 보았다. 이안은 누구인가... 이안은 죽음을 향해 가는 소녀였다. 삶을 향해가는 수정과 정반대의 방향을 잡았다가 수정과 동행하게 된. 이안을 만난 순간에 대해 책의 앞부분에서 인상적으로 묘사한 구절이 생각난다. 이안은 수정에게 어떤 존재인가... 여튼, 그런 이안을 보며 수정은 변해간다.

수정은 두렵다. 저리 힘없이 베어질 것이 두렵고, 아플 것이 두렵고, 이안의 눈을 보며 죽어 가게 될 것이 두렵다. 자신이 죽은 뒤 자결할 이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두렵다. 두렵고 싶지 않다. 떨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p. 102)

자신을 향해 장검을 휘두르는 이안에게 수정은 결국 단검을 휘두르지만, 이안이라는 죽음의 위협앞에서 결국 삶을 선택했달까... 혹은 이안이라는 죽음을 구하기 위해 삶을 얻어냈달까... 수정 앞에 내일이 다시 나타난다. 내일을 올라타고 수정은 이안을 업고 달려가는 저승신의 뒤를 쫓아간다. 저승에는 그동안 수정과 이안이 베었던 존재들이 가득하다. 눈-인간들, 모기-인간들, 허수아비-인간들.

우리를 풀어 주면 우리가 살아날 텐데.

우리가 살아나면 다른 이들을 풀어 줄 텐데.

모든 이가 되살아나면 질서가 무너질 텐데.

그럼 저승의 신이 죽을 텐데.

그럼 저 아이는 죽지 않을 텐데. 갈 곳이 없으니까. 데려갈 이가 없으니까. (p. 106, 107)

수정의 선택은!

무너져가는 저승에서 저승신이 말했다. '깨끗이 쓸어버린다...라고들 하지. 그러나 내 오랜 경험에 미루어 보건대 '깨끗이' 쓸어 낸 자리란 없지.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언가들을 다 죽이고 나면 언제나 그들의 잔해가 남지. 부서진 조각들과 흘러나온 액체들로 그 '어딘가'는 오히려 더 엉망이 되곤 하지.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망치게 되는 경험. (p. 108)' 그러나 자신의 단명예언에 '싫다'라고 응수했던 수정이다. 이러한 저승신의 말을 그대로 들을리 없다.

망친 게 아니야.

구한 거야. 이룬 거야. 최선을 다했기에 흔적이 남은 거야.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 (p. 108, 109)

수정은 결국 이안을 구했다.

그렇게 자신을 구했다.

하지만...

잃었다... 무언가를... 그래서 얻었다... 달라진 무언가를...

이안이 말하던 진짜 수정은 여기 있는데, 진짜 이안이 이곳에 없다는 사실이 이해될 리 없었다. 나는 뒤늦게 소리치고 울고 발작했다. 이런저런 약들이 투여되고, 나는 곧 다시 잠에 빠져들었지만 이번에는 꿈속에서도 이안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나는 아무 꿈도 꾸지 않은 채 한 시간쯤 기절해 있다가 다시 눈을 떴다. (p. 119)

전래동화처럼 읽히던 글줄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현실을 묘사하고 있을때 순간 적응이 되지 않아 다시한번 잠시 멈춰야 했다.

수정의 모험담을 되짚으며 꿈인듯 아닌듯한 이야기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했다.

무수한 허수아비-인간들을 베어내고서야 죽음을 향한 길로부터도 삶을 향한 길로부터도 벗어나 자신의 길로 돌아올 수 있었던 수정의 이야기에서 '죽음'은 '사인'은 '질서'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 집 개, 새끼 낳았어.

네?

오늘 낳았어. 그래서 이름이 오늘이.

네...

저희 애는 개를 무서워해요.

엄마, 나 개 안 무서워해. 나 개 좋아해.

너 아주 어릴 때 집채만 한 개한테 쫓긴 이후로 개라면 벌벌 떨었잖아,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아니, 내 기억은 달라. 그리고... 상관없어, 엄마.

이 강아지, 네가 데려갈래?

병실에서 다른 침대 할머니가 수정에게 '오늘이'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수정은 생각했다. '개를 무서워했던 건 이안이다. (p. 121)' 라고. 할머니는 오늘이를 데려가 돌보게 해주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할래? (p. 122)' 라며 수정에게 제안했다. 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개를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개를 무서워하던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p. 122)' 한밤중 화장실에 가던 할머니는 수정의 탁자에 불쑥 백설기를 놓고 갔다.

어떤 이별은 서로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에 발생한다.

칼은 나를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

나를 살리거나 죽이지만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 (p. 125)

소설을 읽고나서 글로 정리할때 (내 글을 뭐 몇사람이나 보겠느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며) 결말을 스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작고 얇은 책을 이토록 길게 정리하면서 거의 결말까지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야 그나마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래도 딱히 걱정이 되진 않는다. 설사 결말을 안다해도 나의 어설픈 해석이 마치 이 책의 요약을 읽었다는 느낌을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말을 알고 읽어야 오히려 한번의 독서로 이 책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번 읽기를 추천한다)

'작가의 말'은 '앞서간 이들이 지금은 더없이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p. 127)'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수정의 '사인'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수정이들의 '사인'은 무엇이었을까...라고 말이다.

책의 말미에 윤경희 평론가의 긴 해석이 덧붙여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평론가들의 해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글은 꽤 흥미롭게 읽혀졌다. '연명담의 현대적 재구성과 재해석' 이라는 제목에 맞게 다양한 '연명담' 이야기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었고.

각별하고도 대등한 두 친구가 함께 여행을 떠나 목숨을 걸고 온갖 기이한 모험을 겪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재생산이라는 자연의 생의 원리와 영생의 신성성 사이 어딘가에서 단순히 수명 연장을 욕망하는 게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으로 죽음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탐색한다는 점에서, <단명소녀 투쟁기>를 읽으며 한반도의 연명담뿐만 아니라 약4800년 전의 고대 수메르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p. 148)

개인적으로 <길가메시 서사시>를 좋아하는데, <단명소녀 투쟁기>를 이 서사시와 연결짓다니... 음... 좀 과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여하튼 흥미로운 평론이었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대부분 참여자들 사이의 비밀로 남는, 단명하는, 그러나 참여 주체의 진심 어린 몰입과 창작의 의지만큼은 다른 어떤 이야기 장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오늘날의 주요한 서사적 활동에 소설이라는 형식을 부여한다. 덧없이 공중에 흩어지는 이야기의 기억들이 조금 더 오래 생존하도록 한다. 이야기의 목숨이 늘어난다. (p. 150)' 라는 평론가의 (바람을 담은) 넘치는 칭찬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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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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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

그 앞에 움츠러든 한 소시민을 둘러싼 세계

아일랜드는 대체 어떤 땅일까? 조너선 스위프트,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 내가 아는 아일랜드 작가들은 다 엄청난 문제적 작가들이다. 이제 여기에 한 명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클레어 키건.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들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p. 11)

'이 소설의 첫 문단이다. 첫 문단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에 대해 클레어 키건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p. 127) -옮긴이의 글 中-'

"'헐벗다', '벗기다', '가라앉다', 북슬북슬하다', '끈', '흑맥주', '불다' 등의 단어를 써서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고 가능하다면 그런 뉘앙스가 번역문에도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존 맥가헌은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가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의 암시를 의식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저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 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독자가 처음에는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일지라도 도입 부분에서 어떤 것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전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첫 문단이 적절하게 느껴지고 이어질 이야기를 암시한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저는 두 번 읽어서 결말 부분이 앞으로 밀려와 다시 서사가 한 바퀴 돌아가기 전에는 이야기를 다 읽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주문과 설명을 담은 저자의 긴 메일을 이 책 번역을 시작할 때 출판사를 통해 전달받았다. (p. 128, 129) -옮긴이의 글 中-

소설은 첫문장이 중요하다던데 이 작품은 특히나 그 부분에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짧은 이 소설을 천천히 읽으며 옮긴이의 글을 읽기 전부터도 이 책은 두 번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내가 읽은 책 또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는데, 옮긴이의 설명을 읽고나니 꼭 그래야 하는 거였구나 싶었다.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 잘못 건드리면 무너지고 녹아내릴 것 같았다. 클레어 키건은 무수한 의미를 압축해 언어의 표면 안으로 감추고 말할 듯 말 듯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미묘하게 암시한다. 두 번 읽어야 알 수 있는 것들, 아니 세 번, 네 번 읽었을 때야 눈에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p. 129) -옮긴이의 글 中-' 그렇다. 이 소설은 시에 가까웠다. 사용한 문장 자체가 상징적이라던가 암시적인 것은 아니었다. 문장들은 길지 않고 평범하며 평이했다. 하지만 그 문장들로 알게 된 상황들과 심리들을 이해하기에는 한번 더 곱씹어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 보일듯 말듯 베일에 가려진 얼굴을 초상화로 그려내듯 이 소설은 어렴풋이 짐작하다 마침내 깨달아지는 그런 멋이 있었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p. 24)

소설은 목재상 빌 펄롱의 일상과 삶의 궤적을 따라 이야기된다.

펄롱은 성실한 노동자였고 온정있는 이웃이었으며 자상한 아버지였고 믿음직스런 남편이었다. 무엇보다도 펄롱은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p. 44)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p. 15)'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p. 22)'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p. 29)'

펄롱의 어머니는 열여섯살에 미혼모로 펄롱을 낳았고, 펄롱이 열두살때 사고로 세상을 뜰때까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펄롱이 산타할아버지께 받고 싶었던 선물은 받은 적 없지만 그렇다고 선물을 아예 못받고 자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때에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딸들을 보며 펄롱은 이유모를 심란함에 빠져들었다. 이 심란함은 수녀원에 뗄감 배달을 하고 온 이후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춥고 건조해지자 사람들은 수녀원이 자아내는 모습이 그림 같다고, 마치 크리스마스카드 같다고 말했다. 주목과 상록수에 서리가 곱게 내려앉은 데다가, 어째서인지 수녀원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열매는 새들이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늙은 정원사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수녀원을 맡아 관리하는 선한목자수녀회는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직업 여학교도 운영했다. 또 수녀원에서는 세탁소도 겸염했다. 직업학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지만, 세탁소는 평판이 좋았다. (p. 48)

그곳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직업학교에 있는 여자들은 알려진 것처럼 학생이 아니라 타락한 여자들이어서 교화를 받는 중이라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면서 속죄하는 거라고 하기도 했다. (...)

다른 사람들은 그곳이 그냥 모자 보호소라고, 가난한 집의 결혼 안 한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가족이 미혼모를 그곳에 보내 숨기고 사생아로 태어난 아기는 부유한 미국인에게 입양시키거나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고 그렇게 외국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수녀들이 상당한 돈을 챙긴다고, 그게 수녀원에서 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p. 49)

카더라 통신은 늘 무성한 뒷말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펄롱이 사는 마을에 있는 수녀원은 그런 뒷말들의 중심에 있었다. 아무도 내놓고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끊이지 않는 소문이 흘러나오는 곳이 그곳이었다. 펄롱은 '그런 말을 전혀 믿고 싶지 않았지만 (p. 50)' 늘 외상 없이 결제를 제때 해주는 고마운 거래처로만 수녀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평소보다 이른 배달을 갔을 때 처음으로 보게 된다. 소녀를. 소녀들을. 그리고...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강까지만 데려가 주세요, 그거면 돼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어디가 되었든 나는 데려갈 수 없어"

"저한테는 아무도 없어요. 그냥 물에 빠져 죽고 싶어요. 우리한테 씨발 그것도 못 해줘요?"

여자아이에 관해 뭔가 묻고 싶었던 마음이 솟았다가 결국 사라졌고 펄롱은 그냥 수녀가 달라는 대로 영수증을 써주고 나왔다. (p. 51, 52, 53)

하지만 펄롱은 수녀원을 나와서 길을 잃었다. 늘 다니던 곳이었는데도 한참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들었고 최고 속도로 차를 운전하다 엉뚱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어딘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한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 (p. 54)

그날 밤 펄롱은 어쩌다 아내 아일린에게 수녀원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게 됐는데, 아일린은 긴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우리 딸들? 이 얘기가 우리 딸들하고 무슨 상관이야?"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당신 말이 틀렸다는 게 아냐"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미시즈 윌슨이 우리처럼 생각하고 걱정할 게 많았겠어? 그 큰집에서 연금 받으면서 편히 지내는 데다가 농장도 있고 일은 당신 어머니하고 네드가 다 해줬는데. 세상ㅇ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 아니었냐고." (P. 55, 56, 57)

다시 수녀원에 배달을 가게 됐을 때, 펄롱은 고요한 새벽녘임에도 평화로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날 한 소녀를 만났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니?" 펄롱이 말했다. "말만 하렴" (p. 81)


일요일이 너무나 공허하고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왜 펄롱은 다른 남자들처럼 미사 마치고 맥주 한두 잔 마시면서 쉬고 즐기고 저녁 배부르게 먹고 불가에서 신문을 보다가 잠들 수 없는 걸까? (p. 93)

펄롱은 섬세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우직한 사람이라 자신의 감정 조차 제때 잘 파악하지 못하곤 그냥 넘겨버리며 살아왔다. 하지만 펄롱은 끊임없이 생각하곤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일상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자주 바라봤다. 주변의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을 둘 다를 끌어냈다. (p. 102)

생판 남을 통해 알게 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새삼스레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해 보며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p. 111) 라는 생각을 하게 된건 펄롱에게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자기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걸' (p. 117) 느꼈으면서도 펄롱은 선택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 119)

그 선택으로 인해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p. 119)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p. 120)' 펄롱의 삶이 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이 소설이 펄롱의 삶을 표면적으로 서술한 이유일 것이다. 그 삶으로 암시적으로 전달하고 했던 것...

펄롱은 미스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p. 120)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p. 120)' 하지만 또한 펄롱은 알았을 것이다.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것처럼 자신의 사소한 선택들도 결국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걸.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p. 121)

이 소설은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허구이나 수십년간 가톨릭교회와 아일랜드 국가가 함께 운영한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도, 어쩌면 이렇듯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120쪽)'의 이야기이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있는 무언가의 존재를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언어가 정교하고 조심스러운 구조물인 것처럼 소설 속에 묘사된 세계도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위태롭다. (p. 130)

겉으로 드러난 것은 보잘 것 없지만, 화려하거나 열렬하거나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클 수도 있다는 것을, 클레어 키건의 조용한 글이 낮은 소리로 들려준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따스한 슬픔의 불빛이, 켜진다. (p. 131) -옮긴이의 글 中-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12월에 세상 모든 교회와 성당에 이 책이 읽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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