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다! 오랜만에 단숨에 읽히는 소설을 읽었다. -정지아(소설가)-

'말뚝'은 슬픔은 슬픔의 방식으로 겪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편혜영(소설가)-

그저 같이 '엉엉'울어주기만 하면 될 뿐. 그 어려운 일을 이 소설이 해냈다. -이기호(소설가)-

우리는 불행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작가에게서 한 가지 힌트를 건네받은 기분이 들었다. -강화길(소설가)-

김홍을 통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했던 진상과 친구가 된다. -박서련(소설가)-

정지아, 편혜영, 이기호, 강화길, 박서련, 이 어마어마한 작가들이 한목소리로 칭찬하는 소설은 과연 어떤 소설일까, 궁금했다. 이 어마어마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두개 정도씩은 다 읽어보고 감탄했었기에 이들 모두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말뚝들>은 대체 어떤 작품일까.

서로에게 진 빚을 빛으로 기억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위하여

우리가 알아야할 슬픔의 연대기, 그 어려운 걸 해낸 <말뚝들>. 말뚝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로 존재했었다는 기억이 중요한 것이다...

불행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장은 생각한 일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불행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조차 끊임없이 불행하지만은 않으므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마침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장은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지난달의 견해가 오만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불행의 일부를 감경받는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장의 불행을 덜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장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전부 내 것이라고? 이렇게나 크고 많은 것이?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공평하지 않은가?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나눠 가진 적이 없더라도 말이야. 그의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했다. (p. 11)

장은 은행에서 여신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미혼 남성이다. 평범한 성장사를 거쳐 나름 최대한의 노오력을 통해 기업대출담당 과장이라는 나름의 성취를 이루어냈지만 자신이 '회사에 매인 솔거 노비'(p.21)처지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두루 무난한 성격에 튀지 않는 태도가 몸에 배인 어디서나 흔히 볼법한 평범한 직장인 그자체였던 장에게 불행이 떠밀려 온 것은 차 유리에 끼워져 있던 메모 한장이 시작이었다.

'트렁크에 넣어뒀습니다.' (p. 31)

뉴스는 서해안에 떠내려온 말뚝들에 대한 것이었다.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썰물에 몸의 일부를 드러낸 말뚝들의 긴 대열이 장의 머릿속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죽은 사람이 먼 바다로 나가 말뚝이 된다는 전설이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말뚝의 모습은 조금 으스스하기도 했다. 목질화된 몸통과 팔다리에 해조류와 패류가 붙어 있었다. 어쨌뜬 평범하게 묻히거나 태워지는 것보다 모양새가 근사해 보였다. 머리를 땅에 처박고 거꾸로 서 있는 동안 단단해진 몸 사이로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p. 25)

상관없을 것 같은 서사가 겹쳐지게 하는 것은 '말뚝들'이다. 말뚝들에 대한 뉴스 횟수가 잦아질수록 장의 불행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트렁크에 넣어진 것은 장이었다.

'술래가 잡는 것이다.

술래를 잡는 것이 아니다.' (p. 48)

트렁크에 하루 넣어진 장은 그 순간부터 '술래'가 된 셈이었다. 장이 잡아야 할 것은 누구일까. 누가 그를 가두었다 풀려나게 했을까. 무엇보다도 왜?!


근데 아무리 들어도 사건이 묘한 데가 있어요. 강도 한 거 없죠? 몸값 요구한 거 없죠? 심지어 주먹으로 한 대 친 것조차 없어요. 아, 물론 치면 안 되죠. 쳐야 한다는 게아니라 납치 감금은 제압이 중요해서 빠따라도 치는 게 보통이거든요. 것도 하루 만에 문 열어주고 줄행랑쳤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무래도 자세하게 질문드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p. 70)

장 본인 스스로가 생각해도 황당한 사건인데 그 사건을 전해듣는 사람은 또 얼마나 황당할까.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도 찾기 힘든데 장에게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불행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말뚝들도.

말뚝들의 머리는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반지르르했고 얼굴도 방금 세수한 것처럼 매끈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뻘밭에 거꾸로 파묻혀 있었다. 공기는 물론 해수와도 접촉한 적 없는 피부가 일체의 부패 없이 미라가 돼 있었다. (...) 목 아래로는 사람의 몸이면서 동시에 두꺼운 통나무처럼 보였다. (p. 84)

박혀있던 말뚝들이 떠밀려 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온것인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점점 더 많이. 그러다 말뚝들은 갑자기 여기저기 출몰하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이 말뚝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어떤 종류의 재난인가?' (p. 131)

"선생님, 저희 수갑도 없어요. 누구 잡으로 온 게 아니라서요. 지금 밖에 말뚝들 때문에 난리 난 거 아시죠? 관련해서 여쭤볼 게 있어 온 거예요. 잠깐만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게 저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저희도 그걸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 안 좋은 일을 당하셨다고요?" "그게 언제죠?"

"지난주 목요일요"

"다음 날이네요. 말뚝들이 나타난 바로 다음 날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뒷면에 이런게 적혀 있습니다" "혹시 이 명함 기억나십니까?"

"해변에 밀려든 순서대로 말뚝들에 번호를 붙여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1번 말뚝의 입속에서 나왔고요" (p. 139, 140, 141 발췌)

납치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회사에서는 상사와의 마찰과 대출관련 외압으로 장의 입지는 몹시 위태로운 상태였다. 게다가 누명처럼 씌워진 불륜타이틀 까지... 그와중에 낯선 형사들이 찾아와 십수년 전 장의 명함을 내밀며 그것이 말뚝 그것도 1호 말뚝에서 나왔다니, 장은 그 말뚝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로비에 말뚝이 나타났다.

건물 1층 한가운데에 지금 말뚝이 서 있다.

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내 앞으로 말뚝이 왔다. (p. 158)

코가 매워졌다. 눈이 간질거렸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장의 눈에도 이유를 모르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홈쳐낼 틈도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울고 있기는 유리문 밖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너무 이상해서 그런데 지금 왜 울어요?"

옆 사람이 울면서 장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

장이 울면서 대답했다. (p. 159)

말뚝이 수거되자 '모두의 눈물이 거짓말처럼 일시에 그쳤다.' (p. 159) 자신의 예전 명함도 그렇고 장은 뉴스에서 말뚝이 언급될때마다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실제로 보기까지 하고 나니 더욱. 그런데 그 말뚝 하나가 어느날 장의 집안 거실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말뚝은 전날 로비에서 마주친 것보다 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의 마음이 전해졌다. 원망이었다. 방향을 모를 원망이 중력처럼 무겁게 모든 것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p. 179)

누군가는 그랬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장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p. 184) 라고. 행운은 잡으려 하면 오히려 잡히지 않고 오히려 별기대없이 살다보면 어느날 특별할 것도 없이 행운이 찾아올거라고. 그런가? 불행의 원인을 고뇌하던 장에게 이 말은 들은 순간도 불행스러웠을 테지만 독자로서 읽었을 때 나름 수긍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정각을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고 말하는 앵커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이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재난문자가 울리지 않았다. (p. 213)

순간 빵 터졌다.

와우 계엄령.

이 소설 현실감 쩌는데?! 싶어서.

그리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때 재난문자는 울리지 않았다.

불행은 그런 것이었다.

이 소설, 이거이거 우리 모두가 겪었던 불행을 이야기하고 있었네?!!!

'주머니에 넣어뒀습니다' (p. 240)

두번째 메모는 이제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거기에

'Deus ex machina' (p. 241)

데우스엑스마키나 라니. ㅍㅎㅎㅎ. 이 작가 ... 이거이거 그리스비극처럼 이 작품을 쓴거였구나?!

지금 시대에 비극이라고 하면 슬픈극인가보다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고대그리스 시대의 비극은 그저 슬프기만 한 극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당대의 모든 문화적 요소를 총집합시킨 그리스비극은 슬픔을 포함해 모든 감정을 뛰어넘는 메세지가 있는 극이었다. 후반기에 극의 갑작스런 해결장치로 신적 등장을 사용하곤 했는데 이 소설에서 그 장치를 이렇게 사용하다니... 신박한걸?!!! 멋지다, 작가! ㅎ

여하튼, 개인적으로 빵 터지긴 했지만 이 소설의 내용에서 웃음이 나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소설은 점점 더 진한 슬픔의 공감대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존재들을 하나둘씩 상기시키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두어작품 읽어본 적 있는데 의미는 이해하지만 공감까지 되진 않았더랬다. 그러니 재미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고... 그런데 이 소설은, <말뚝들>은 의미와 재미 그리고 감동과 공감 그 모든 것을 해냈다.

우리가 함께 슬퍼해야 할 존재들에 대해 우리가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함께 슬퍼해야 한다. <말뚝들>이 그 연대의 시작을 어렵지 않게 특별하지 않게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말뚝들>이 내민 손을 많은 사람들이 꼭 잡아주길 바란다. 부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