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거짓말 오늘의 젊은 작가 11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의 모든 거짓말>에서 주인공 는 거짓말 2급 자격증 소유자다. ‘는 남자와 소년을 동시에 만난다. 사귀는 것 같지만 사귀지 않는 묘한 사이면서 양다리를 걸친다. 남자와 만나는 이유가 능숙한 거짓말 때문이라면 소년을 만나는 이유는 좀 다르다. 거짓말로 사랑을 유지하는 거짓 사랑은 거대한 숲을 이룬다. 소년은 숲으로 성큼 들어서는 쪽으로 이제껏 잘 속아 왔다. 아무 문제 없이 두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1급이 될 자격은 충분할 것이다.

 

거짓말은 사랑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진실보다 더.

 

거짓말은 하는 게 아니라 치는 거라고 아버지가 알려 주었다. 2급이 되고 나서 단독으로 일할 수 있었다. 1급에게 가는 일이 2급에게 떨어졌다. 자격증 심사 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이번 심사에서 1급으로 올릴 기대를 해본다. 위원회는 의뢰 업체에서 원하는 자격 조건을 갖춘 사람을 골라 연락처를 제공하고 일반인과 섞어서 면접을 통해 최종 인원을 선발했다.

 

엄마는 주말마다 예식장에 나갔다. 생판 모르는 남의 결혼식에 하객들과 과장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 나이에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건 자격증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구라였다면 엄마는 공갈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꼬실 때 건물이 자기 거라고 우겼고 엄마는 애 가졌으니 당장 같이 살자고 공갈을 쳤다. 주인공의 거짓말은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부풀렸다. 믿는 대로 진실이 되고 의심하는 대로 거짓말이 되었다. 학교에 늦어도 약속을 못 지켜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연습을 이어 가다 보니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사막에 가 있기도 했고 때로는 공장장이 되어 야근을 하고 갑자기 전국을 떠도는 사업가로 둔갑했다. 아버지는 사기를 치고 도망을 다니면서 다른 여자와 동거하며 수 개월 집을 나가 있었다. 엄마의 공갈이 날카롭기만 한게 아니라 구라를 품기도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완벽하지 않다면 차라리 진실한 게 낫고 거짓말은 사랑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주고 어떤 위기도 모면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건 거짓말이 통했을 때뿐이었다.

 

엄마는 자격정지를 당하고 목욕탕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공갈을 못 친다. 옷을 홀랑 벗은 채 마주 앉아 있어서 그런가 나이 하나 속이는 것도 만만찮더라 하였다. 그동안 목욕탕 출입을 꺼렸던 이유를 딸에게 이야기 해준다. 조금 이해가 안되는 대목인데 딸하고 목욕탕을 한번도 안가봤다는 것인가 독자인 내가 거짓말을 당한 느낌이다.

 

어린 나이에 거짓말과 진실을 적는 일기장 두 권을 가지고 있다. 소설 후반으로 가면 주인공이 그녀의 지시대로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에게 결혼했느냐고 묻고 되물었음.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아 한번 더 질문해 보겠음. 펀치 머신에서 남자는 최고점을 기록했음. 잠자리는 남자가 먼저 시도했음. 거부하자 남자는 등을 돌리고 있음. 백화점에서 점원에게 우리가 결혼할 사이라고 했음> 주인공이 일을 마무리 하는 것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거짓말 가이드북에선 첫 거짓말을 준비하는 때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이라고 했다. 여전히 남자와 소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남자의 택시를 타고 종일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고 소년은 나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땐 당신의 거짓말이 사랑일 수도 있단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아는 거의 모든 거짓말을 친다. 숲이 우거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녀의 거짓말 이라는게 결국 어설픈 구라였음을 스스로 밝히며 다시 숲으로 들어설 차례다. 이 소설은 참신하다. 내가 거짓말 자격증을 딴다면 몇 급이 주어질까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ew 심리학 콘서트 - 독자들이 선택한 대중심리학의 텍스트 심리학 콘서트
공공인문학포럼 지음 / 스타북스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심리학 콘서트(New)50만 독자가 선택한 <심리학 콘서트>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한, 즐겁고 재미있는 심리학의 대표적인 교양서다. 심리학은 자기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마음의 작용을 다루는 학문이다. 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 심리학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해서 자주 읽어보는 편이다. 이 책은 속마음 들여다보기, 숨겨진 속마음 꺼내기, 상황을 역전시키기 3part로 구성되었다.

 

마음은 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마음이 일시적이나마 몸에서 떠난 것이며 잠에서 깨는 상태는 이탈한 혼이 다시 신체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아플 때 가슴을 쓰다듬거나 가슴 속에 간직한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마음이 인간의 몸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의 바탕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의 감정, 욕구, 의지, 인간관계 등이다. 성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늑대에게 양육된 아말라카말라자매의 이야기는 유아시절의 환경은 성격을 좌우하는데 큰 요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베롱에서 발견된 야생 소년 빅터는 지능이 덜 발달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환경에 대해서만 지능이 발달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이것으로 환경이 바뀌면 인간의 발달 성향도 바뀌게 되어 교육과 학습으로 미발달 부분이 보완되거나 발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됐다.

 

처음 보는데도 예전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우연히 자신의 소중한 사람과 닮아서 좋은 감정이 생기는 효과를 전이라고 한다. 어린아이와 한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부탁한 걸 잊어버리는 일이 거듭되면 어린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건 실제로는 실행되지 않는다’ ‘거짓말이라는 걸 배우게 된다.

 

상대의 깊은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악수를 하는데 범인 수사나 이성 간의 악수에도 방법은 응용된다. 냉정한 여성이라도 악수를 해보면 손에 땀이 나 있는 경우가 있으니 이때 상대방 모습에서 어떤 흥분을 일으키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자기 영역을 확보하려는 일종의 보디 존심리다. 사람들은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사회생활을 한다. ‘앉는 거리에 관계된 한 가지 견해는 자신과 상대의 심리적 우열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친해지고 싶으면 나란히 앉는다. 집안의 우위는 다리 꼬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등 몸짓으로 속마음 알아보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각각의 옷차람에도 성격이 있다. 옷차림은 일종의 보디 랭귀지라고 표현한다. 자기와 관련된 일이 아닌 남의 일을 화제로 삼는 것은 지배욕의 표현이다. 상대에 관해 끈질기게 알고 싶어하는 것은 화제로써 상대의 퍼스널 존을 침해하는 일이 된다. 평소에 과묵하던 사람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말이 많아진다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연상의 여성을 좋아하는 유형은 사실은 어머니의 치맛바람과 과보호를 받은 경우 마더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일이 많다. 씀씀이가 헤픈 여성은 충동구매형이다. 이런 사람은 히스테리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겉치레에 많은 돈을 쓴다.

 

달변도 아닌데 가게 주인이 손님을 납득시키는 설득력에 수긍을 할때가 있다. 전문적인 조언으로 손님을 일종의 암시에 거는 기술을 쓴 것인데 위광암시라 부른다. 사람은 현실과 비슷한 드라마 내용은 쉽게 빠져든다. 상품 포장상태에 따라 선호도가 바뀐다. 인기 배우의 한 마디는 강한 설득력이 있다. 부록으로 피그말리온 효과, 신포도 이론, 부메랑 효과, 카인 콤플렉스 심리학 사전을 모아놓았다. 이 책은 마음을 열어 주고 사람을 조종하는 힘이 운명뿐 아니라 인간 자신의 마음에도 잠재해 있음을 보여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지니아 울프 전집 두 번째 [파도]는 비평가이며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 레너드 울프 확실히 걸작이다. 여태껏 그녀가 쓴 작품 가운데서 최상의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 소설은 고딕체로 쓰여진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그녀의 일기였을까 생각이 든다. 읽기에 쉽지 않은 소설이지만 파도에 대한 감상을 무한대로 할 수 있는 [파도]속 글들은 매우 아름답다.

 

해안에 이르자 파도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가는 곧바로 부서지면서 하얀 포말의 얇은 베일을 모래밭에 드리워놓았다. 파도는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계속하고 있는 잠든 사람처럼 멈췄는가 싶으면 한숨지으며 다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버나드, 수잔, 로우다, 네빌, 지니, 루이스 여섯 명의 인물이 나온다. 태양이 떠오르는 때부터 지는 때까지 성장에서 죽음까지 인생 전체를 묘사하였다. 말을 주고 받는 대화 같지만 독백 같기도 하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은 버나드이다. 퍼서벌은 친구들 말을 통해 나오는 인물이지만 중간에 사고로 죽고 만다. 지니가 루이스에게 키스하는 걸 보고 수잔이 울고 있다. 버나드가 옆으로 지나가며 네빌의 칼을 들고 가버렸다. 친구들끼리 살벌하네 했더니 별일은 없었다.

 

친구 중 한명은 구속되는게 싫어 한 사람만 사랑하지는 않을거라며 결혼을 상상을 한다. 네빌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버나드는 약혼을 했다. 인도로 가는 퍼서벌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친구들의 자태를 마음속에 그려보고 있다. 돌에 새긴 조각 같은 루이스, 면도칼 같이 정확한 네빌, 눈이 수정 같은 수잔, 마른 대지위에서 뜨거운 불꽃처럼 춤추는 지니, 언제나 물의 요정 로우다. 그들은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네빌은 퍼서벌이 낙마로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말이 넘어지고 그는 나가떨어졌어. 번쩍하고 빛나는 나무들과 하얀 손잡이가 소나기처럼 튀어올랐다. 큰 파도가 일었다. 내 아들이 태어나고 퍼서벌은 죽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조합이야 버나드가 흐느낀다. 수잔은 집안의 농부와 결혼을 하였다.

 

모든 죽음은 하나의 죽음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른 형태로 모여서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고 인생은 흘러간다. 수잔은 아들과 산책을 하며 원하는 삶의 절정에 도달하였고, 자신을 사랑했던 퍼서벌을 생각하고, 로우다 생각도 한다. 루이스는 자신의 인생이 끔찍했어 회상한다. 친구들에게 퍼서벌은 중요한 인물이었을까 젊은 날 허무하게 죽어서 일까 죽은 뒤에도 자주 등장한다. 모두는 중년이 되어 많은 짐을 지고 있다. 서로의 인생은 어떠냐고 버나드는 묻는다.

 

자 찬미의 노래를 부르자, 고마운 고독이여. 혼자 있게 해다오. 이 존재의 베일을, 밤낮으로, 밤새도록, 온종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모습을 바꾸는 구름을 내던져버리자. 여기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나는 변화하고 있었다. 하늘이 변하는 것을 주목했다. 구름이 별들을 감쌌다가 풀어주었다가 다시 숨기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변화를 보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나도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p309)

 

버나드는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년 시절의 이야기, 학교, 사랑, 결혼, 죽음 이야기 등, 많은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았고, 조금 살이 찌고 머리는 반백이 되었다. 내 안에서도 파도가 일어선다. 말을 타고 돌진한다. 말에 박차를 가한다. 정복당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너를 향해 내 몸을 던지노라, 오오 죽음이여! 버나드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파도는 해변에 부서졌다.> 조이스, 프루스트와 함께 의식의 흐름의 대가라 불리는 울프 작품은 처음은 어렵지만 읽을수록 마음속에 파고든다. 두고 두고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남녀에 관한 유해한 이분법을 비판하였다. 20년 넘게 젠더와 성에 대한 인문학 이론을 강의하는 사람이자 페미니스트인 마리 루티는 사랑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연애 관련 자기계발서를 읽던 차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나온 뒤로 자기계발서들이 남성과 여성을 두 개의 상자 안에 나누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진화심리학 책을 읽게 된 계기라고 하였다. 저자는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 성 고정관념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었다.

 

여성에 대해 다윈이 했던 말 가운데 여성은 성욕이 거의 없는 천사 같은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현대 진화심리학은 이것을 여성들이 타고나기를 성적으로 소극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연애란 가능한 한 많은 자식을 생산하는 일이다. 사랑, 친밀함, 그 밖의 감정적 행동들은 냉정한 번식 경제학에 딸린 부차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

 

구애하는 남성과 선택하는 여성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남성들은 까탈스러운 여성들에게 구애하는 반면 여성들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순결을 지킨다. 진화심리학은 이성 간의 깊은 관계를 번식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후기 산업사회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낭만적이지 않다. 천 명의 자식을 남기고 싶어 하는 21세기 미국 남성이 실제로 있다면 저자는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한다.

 

버스가 생각하기에, 여성들이 한 남성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은 사랑과 헌신, , 사회적 지위, 성숙한 나이, 야망, 근면, 신뢰성, 안정성, 지적 능력, 성격 궁합, 몸집과 힘, 건강을 원한다. 남성이 원하는 것은 젊음, 아름다움, 0.7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을 원한다. 그의 책에서 순결과 정절을 더 한 것이 남성의 욕구 전부다.

 

남성은 일부다처 성향을 타고나는 반면 여성은 일부일처 성향을 타고난다는 개념. 남성은 배우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반면 여성은 자격 요건을 갖춘 후보 중에서 선택만 할 뿐이라는 개념. 여성은 자신의 정절을 남성의 자원 및 보호와 교환하는 반면, 남성은 오직 젊음, 아름다움, 바람직한 허리 대 엉덩이 비율에만 반응한다는 개념으로 진화심리학에서는 모든 것이 번식으로 귀결된다.

 

대부분의 책은 남자들이 쓴다. 미국에서도 남성들이 여성보다 많은 책을 쓴다는 것은 여성들이 많은 책을 쓰지 못한 사회역사적 이유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의 백년 전에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그만큼 유명한 여동생이 없는 것은 예로부터 여성들이 예술 생산에 필요한 경제적 독립이나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자기만의 방도 없었다. 저자는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남성들조차 여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둔감해지는 것을 보았다.

 

서구인들이 남자는 유혹하는 존재고 여자는 조신하게 굴면서 남자의 접근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존재라는 개념에 매달린다니 신기할 노릇이다. 포르노에 관한 연구에서 여성들도 강하게 반응하고, 이성애자, 동성애자 구분없이 벗은 여자 사진에 흥분하는 남성들도 많다. 신체 반응의 층위에서 여성들은 정서적 외도 만큼이나 육체적 외도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은 여전히 정서적 외도가 더 신경 쓰인다고 주장했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창하는 전통적 담론이 실제로 얼마나 억압적이고 구속적인지 증명한다. 이 책을 통해 마리 루티는 우리 모두가 진화심리학자들의 성차별적 이념을 안이하게 받아들였던 불감증을 바로잡고, 과학자라 자칭하는 그들이 제시한 논증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며 표현하기 불편한 글은 적지 않았지만 페미니즘 책으로 정말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마르크 레비 신작 휴면 로맨스 [그녀, 클로이]는 맨해튼 5번가 12번지 아파트 주민들과 9층 여자 클로이를 중심으로 다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낸 소설이다.

 

먼저, 폭죽 터질 때 같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 마지막 불꽃 다발이 꺼지는 순간 다시 어둠에 잠겼다.(p9)

 

첫 문장 클로이의 일기로 시작한다. 클로이는 20134151450,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결승선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리 40센티미터를 잃었다. 기업대표이자 뭄바이 최고 갑부인 산지는 사업 확장을 위해 뉴욕에 도착한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디팍은 39년 동안 엘리베이터를 운전한다. 입주민 성향과 습관을 모조리 꿰뚫고 그들의 요구에 성실히 답한다. 주민들은 그를 하인 부리듯 대하기도 하지만 클로이와 아버지 브론슈타인 교수 만은 예외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를 존중하고 배려해준다. 5번가 12번지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뉴욕 전체에 53대밖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수동으로만 작동하는 골동품이다.

 

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가족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났던 고모 랄리와 디팍의 집에 산지는 머물게 된다. 디팍은 크리켓 선수로 국가대표팀이 눈독을 들일 정도로 승승장구 하다 고모와 도망을 와서 엘리베이터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15년 전 런던 유학 시절 친구인 샘과 사업을 추진한다. 야근에 근무하던 동료 리베라 씨가 추락사고를 당해 입원하게 되었다. 고모부 디팍의 설득에 며칠만 엘리베이터 운행을 하기로 하였다. 산지는 낮에 일하고 밤에 승무원이 되니 약속 시간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고, 투자자들 앞에서도 옷 차림새가 흐트러져 오해를 받기도 한다.

 

클로이는 오디오북 성우인데 연기 수업을 받고 단역 배우로 활동하다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직업에 대한 열의가 보였다. 사고 이후 클로이는 사람들이 휠체어를 밀어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남자친구 줄리어스에게 바람을 맞고 우리가 아직은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내 착각이었어”(p217)잘못 전달된 메시지를 받은 산지와 조우한다. 클로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 적이 없고, 멋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자와 피부색이 다른 남자를 누가 더 저들 눈에 들어올 거 같냐 묻는 산지에게 마음이 끌린다. 산지는 고모부가 인생의 남자라는 걸 언제 아셨는지, 신분의 차이가 두려웠던 적은 없었는지 랄리에게 묻는다.

 

사랑에 빠지면 거지나 왕이나 다 똑같다.”<인도속담>

 

회계사 그룸랫과 주민들은 자동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일을 도모하고 있어 디팍과 리베라는 짤릴 위기에 처했다. 디팍은 퇴직할 때 급여와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해주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던 중 자동화 엘리베이터 설비 세트가 훼손되었는데 주민들은 서로 의심을 하고 있다. 브론슈타인 씨는 오랜 세월 성실하게 근무한 디팍과 리베라 씨를 해고 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두 사람이 은퇴할 때가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산지는 야근 근무를 하다 주민들이 다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빈집에서 잠을 잤던 이후 도난이 발생하여 사건에 휘말린다.

 

프랑스 잡지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다르다는 것은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행복을 줄 수도 있다. 그 다름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었다말한 바 있다. 이처럼 다름사랑을 주제로 인종과 문화를 초월한 사랑의 힘을 보여 준 소설이 감동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