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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610/pimg_7583281442570515.jpg)
이 책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남녀에 관한 유해한 이분법을 비판하였다. 20년 넘게 젠더와 성에 대한 인문학 이론을 강의하는 사람이자 페미니스트인 마리 루티는 사랑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연애 관련 자기계발서를 읽던 차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나온 뒤로 자기계발서들이 남성과 여성을 두 개의 상자 안에 나누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진화심리학 책을 읽게 된 계기라고 하였다. 저자는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 성 고정관념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었다.
여성에 대해 다윈이 했던 말 가운데 여성은 성욕이 거의 없는 천사 같은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현대 진화심리학은 이것을 여성들이 타고나기를 성적으로 소극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연애란 가능한 한 많은 자식을 생산하는 일이다. 사랑, 친밀함, 그 밖의 감정적 행동들은 냉정한 번식 경제학에 딸린 부차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
구애하는 남성과 선택하는 여성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남성들은 까탈스러운 여성들에게 구애하는 반면 여성들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순결을 지킨다. 진화심리학은 이성 간의 깊은 관계를 번식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후기 산업사회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낭만적이지 않다. 천 명의 자식을 남기고 싶어 하는 21세기 미국 남성이 실제로 있다면 저자는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한다.
버스가 생각하기에, 여성들이 한 남성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은 사랑과 헌신, 부, 사회적 지위, 성숙한 나이, 야망, 근면, 신뢰성, 안정성, 지적 능력, 성격 궁합, 몸집과 힘, 건강을 원한다. 남성이 원하는 것은 젊음, 아름다움, 0.7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을 원한다. 그의 책에서 순결과 정절을 더 한 것이 남성의 욕구 전부다.
남성은 일부다처 성향을 타고나는 반면 여성은 일부일처 성향을 타고난다는 개념. 남성은 배우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반면 여성은 자격 요건을 갖춘 후보 중에서 선택만 할 뿐이라는 개념. 여성은 자신의 정절을 남성의 자원 및 보호와 교환하는 반면, 남성은 오직 젊음, 아름다움, 바람직한 허리 대 엉덩이 비율에만 반응한다는 개념으로 진화심리학에서는 모든 것이 번식으로 귀결된다.
대부분의 책은 남자들이 쓴다. 미국에서도 남성들이 여성보다 많은 책을 쓴다는 것은 여성들이 많은 책을 쓰지 못한 사회역사적 이유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의 백년 전에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그만큼 유명한 여동생이 없는 것은 예로부터 여성들이 예술 생산에 필요한 경제적 독립이나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자기만의 방도 없었다. 저자는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남성들조차 여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둔감해지는 것을 보았다.
서구인들이 “남자는 유혹하는 존재고 여자는 조신하게 굴면서 남자의 접근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존재라는 개념에 매달린다”니 신기할 노릇이다. 포르노에 관한 연구에서 여성들도 강하게 반응하고, 이성애자, 동성애자 구분없이 벗은 여자 사진에 흥분하는 남성들도 많다. 신체 반응의 층위에서 여성들은 정서적 외도 만큼이나 육체적 외도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은 여전히 정서적 외도가 더 신경 쓰인다고 주장했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창하는 전통적 담론이 실제로 얼마나 억압적이고 구속적인지 증명한다. 이 책을 통해 마리 루티는 우리 모두가 진화심리학자들의 성차별적 이념을 안이하게 받아들였던 불감증을 바로잡고, 과학자라 자칭하는 그들이 제시한 논증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며 표현하기 불편한 글은 적지 않았지만 페미니즘 책으로 정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