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서평단 알림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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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식해서 잘 모르겠다만, 내가 남을 부를 때는 그냥 남만 부르는 게 아니라더라. 남을 통해 나를 부른다는 거야. 남을 부르지 않고 사는 건 결국 나를 부르지 않고 사는 거래. 제 몸 주인이 저를 안 부르는데, 그 몸이 살아 있는 몸이라고 할 수 있겠냐."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


만득이? 처음에는 제목을 자세히 안 봐서 만득이인 줄 알았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완득이>입니다. 완득이는 소설 속 주인공 17세 고등학생의 이름입니다.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에서 온 어머니에서 태어난 완득이.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무시를 당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밝게 살아가는 완득이. 이 소설은 완득이의 청춘소설이자 성장소설, 또는 가족소설입니다. 처음에 완득이라는 주인공을 보고 그 유명한 이현세의 만화 <까치> 시리즈가 생각나더군요. 까치가 야구를 했다면 우리의 완득이는 킥복싱을 하고, 까치에게 엄지가 있다면 완득이에게는 윤하가 있습니다(당연하게도 윤하의 부모님은 완득이를 만나지 말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난쟁이, 집은 가난하고, 게다가 완득이는 공부도 못하고 싸움만 합니다. 물론 이유 없이 아무나 때리지는 않습니다.). 암튼 그런데 이현세의 만화 <까치> 시리즈가 스포츠, 우정, 사랑, 희망 암튼 이런 것들을 재미있게 그렸다면 이 소설은 그와 함께 이주노동자 문제라든지,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 차별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벼우면서도 이야기가 조금 무겁습니다. 그러나 완득이, 담임선생 똥주, 앞집 아저씨, 완득이의 삼촌 등 재미있는 캐릭터와 대사, 묘사들이 많아서 무척 웃깁니다. 그러니까 이런 류의(가정환경이 어려운 소년이 등장하는 신파조의 소설)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억지 감동은 없습니다.

 

우선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 이 소설에는 욕을 달고 살면서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말라고 하고, 완득이의 옆집에 이사 와서 완득이를 괴롭히면서 거친 행동도 많이 보이고, 소설에서 학생들이 상상하는 딱 조폭의 모습입니다. 행동은 거칠지만 마음은 따듯한 선생이죠. 암튼 이 선생, 이 소설에서 무척 웃깁니다. 그리고 소소한 감동도 주고요. 그리고 차별의 문제도 살짝 건드리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죠?)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편견, 크게는 우리나라 사회제도의 모순과 편견 등을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설픈 희망에 대해 설교하지도 않습니다. 위의 완득이의 생각처럼 그냥 거창하고 대단한 삶을 사는 것만이 중요하지는 않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진리를 그냥 넌지시 던질 뿐. 청소년이 읽을 만한 소설이 없죠. 사회 문제를 건드리는 소설은 어렵고(개인적으로 청소년기에 사회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춘소설(성장소설)은 다소 지루할 수 있고(그런 소설이나 영화가 너무 많아 식상할 수가 있죠.), 그러면서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소설이 정말 없죠. 특히 청소년을 위한 소설은요. 개인적으로 10대 청소년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네요. 절대 유치하지 않습니다.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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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 간바라 메구미의 첫 번째 모험 간바라 메구미 (노블마인) 1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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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실로 인간의 습성을 잘 이용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호기심이라는 습성, 상자가 있으면 열어보고 싶고, 미로가 있으면 들어가 보고 싶고, 숨겨놓으면 찾아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간바라 메구미의 첫 번째 모험 <메이즈>는 그런 독자들의 속성을 아주 잘 이용한 영리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수수께끼 같은 알 수 없는 것은 위의 표현처럼 꼭 알고 싶어지죠.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말이죠. 두부는 글자 그대로 우리가 먹는 두부입니다. 아시아 서쪽 끝 어느 황량한 벌판에 두부처럼 생긴 건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 들어가면 사람이 사라집니다. '존재하지 않는 장소', '있을 수 없는 장소'라고 불리는 이상한 장소. 메구미는 그의 중학교 시절 친구 미쓰루에게 거금을 주며 자신의 조수 역할을 부탁합니다. 암튼 무엇보다 사람이 사라지는 장소 두부의 존재가 무척 궁금합니다. 왜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사라질까? 우선 궁금증을 툭 던져 놓고 이야기에 슬슬 빠지도록 미끼를 던집니다. 그리고 마치 소년 같은 메구미와 미쓰루를 등장시켜(처음에 이들의 대화를 보고 중년 남성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학창시절의 묘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캠핑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 무언가 들리는 소리, 어두운 밤에 내리는 비 등의 요소들은 공포적인 요소를 자극하고요. 마지막으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 미로 같은 공간, 시간과 공간의 뒤틀림 등 환상적인 요소도 적절하게 가미하여 암튼 몽환적이고 두렵고 미스터리한 그러면서 묘하게 그리운 암튼 그런 요상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 <메이즈(미로)>라는 제목과 표지를 보고, 그리고 그동안 읽었던 온다 리쿠의 소설을 예상하며 읽었는데, 보기 좋게 배신(배반?) 당했네요. 암튼 이야기꾼 온다 리쿠 여사의 재주는 제게는 정말 상상초월입니다. 어디서 이야기를 이렇게 계속 생각해 내는지 놀라워요. 간바라 메구미는 <클레오파트라의 꿈>에서 다시 만날 수 있고, 미쓰루도 <코끼리와 귀울음>이라는 작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요즘 같은 일회용시대에 이렇게 재활용을 열심히 하는 작가도 드물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메구미나 미쓰루를 이번 작품에서만 만나기에는 조금 아쉽죠. 내가 보는 것은 현실일까? 환상일까? 인간은 보이는 것은 믿지만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끼죠. 암튼 존재하는 것, 사라지는 것의 현실과 비현실성의 모호한 경계(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운데 '시간'이란 개념을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존재하기도 하면서 사라지고,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느끼지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러 개의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가 정말 잘 표현된 작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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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초상
이갑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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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간되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했을 뻔 했네요. 1994년도에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아쉽게도 작가분은 1995년에 세상을 떠났더군요. 저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것 같은데, 너무나 안타깝네요. 덧붙여 국내 추리소설계에도 큰 상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지적 재미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이 제게는 무척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작가의 노력(관련 내용의 조사뿐만 아니라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성력까지 정말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들어간 작품이지 않나 생각합니다.)의 피부로 가슴으로 확 느껴지더군요.

 

일반인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우리는 그들을 '천재' 또는 '사이코'라고 부르죠.) 연쇄살인범이 등장합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로맨틱한 초상'이라는 재즈음악을 틀어 놓고, 마취해서 (일반 마취약이 아니라 복독이라고 해서 점차 몸을 마비시키는 끔찍한 마취약입니다.) 데려 온 여자들을(이건 꽤 복잡한데, 자신만의 사상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럴듯해 보이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궤변으로 여자 일곱 명을 잡아서 죽여야 합니다. 뭔가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단순히 옮기는 것도 제게는 무척 벅차네요. 직접 읽어보셔야 압니다.) 죽여서 데스마스크를 뜹니다. 창녀인지, 성녀인지 잘은 모르지만, 암튼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연쇄살인범이 죽인 여자의 질 속에는 메뚜기(정확하게는 아니지만)가 놓여 있고, 재즈음악 '로맨틱한 초상'을 들은 흔적, 암튼 도대체 범인의 살해 동기(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연쇄살인범을 쫒는 이반장과 전형사. 오디오 기기 매니아인 곽원장과 그녀의 애인 박 교수도 연쇄살인범과 엮이게 되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스토리 자체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적 재미가 무척 충만한 추리소설입니다. 연쇄살인범의 궤변도 그리 나쁘지는 않고요. 음악, 종교, 오디오기기, 정신의학, 심리학 등 어려운 내용들이 연쇄살인범을 잡는 추리소설이라는 기둥 줄기에 잘 엮어 들어가면서 더욱더 이야기를 풍성하게 합니다. 앞서 머리말에 작가분이 얘기 했듯이 오디오기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자랑하려고 쓴 글이 아님을 책장을 덮으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결코 잘난 척 하려는,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그런 지적 궤변은 절대 아닙니다. 암튼 자료 조사도 무척 힘들었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무언가에 푹 빠져버린(흔히 매니아라고 부르죠), 그래서 스스로 고독과 외로움을 선택한 (이렇게 작품 하나에 집요하게 빠져서 쓸 이유는 없죠. 자신의 삶이 망가질 수도 있잖아요? 무언가에 대한 집요함을 스스로도 힘드니까요.) 열정 뒤에 숨은 작가의 쓸쓸한 이면이 보이는 것 같아 읽는 내내 씁쓸하더군요(물론 작가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요절한 이유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요.). 무엇보다 연쇄살인범의 캐릭터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정말 다채로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네요. 책장을 덮은 뒤에도 뇌리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가 않거든요.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 뒤로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조금만 일찍 왔어도, 조금만 조심했어도, 대체로 공포영화에서 이런 기법을 많이 사용하죠.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아는데 영화 속 인물들은 모르는데서 오는 그런 안타까움)도 슬그머니 보입니다. 정말 추리(스릴러) 소설의 묘미는 이런 맛이 아닐까 싶어요. 암튼 그런 부분이 무척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암튼 두말하면 잔소리, 이 소설 추천합니다. 물론 (10여 년 전 소설임에도)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방해를 줄 정도는 아닙니다(스스로의 무지를 탓해야죠, 뭐. 이제는 조금 익숙한 용어들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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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 2
칼렙 카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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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셜록 홈즈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노년의 홈즈의 삶을 다루고 있다면, 이 번 작품은 현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홈즈와 왓슨의 '유령'에 얽힌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에서는 유령 이야기나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 않다고 하네요. 제 짧은 기억으로도 유령이 등장하는 기이한 이야기나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왜? 이번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에서는 이런 유령이 등장하고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을까요? 바로 작가 칼렙 카 때문입니다. 칼렙 카의 추리소설에는 크라이즐러라는 의학적 지식을 갖춘 탐정이 등장합니다. 주로 심리적인 접근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스타일을 홈즈의 이야기와 접목시키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코난 도일의 작품 저작권을 맡고 있는) 욘 렐렌버그의 기획이 잘 맞아 떨어져서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선 작품은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사족이기는 하지만) 욘 렐렌버그의 아이디어처럼 홈즈와 크라이즐러라는 두 명탐정이 함께 등장하는 소설을 더 만나고 싶기는 하네요. 그리고 칼렙 카의 <어둠의 천사>나 <정신과 의사>라는 작품도 무척 읽고 싶고요. 크라이즐러라는 탐정과 그의 파트너 존 슐러 무어의 활약을 보고 싶거든요.

 

에딘버러의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에서 두 건의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비밀임무를 맡고 있는 홈즈의 형의 부탁으로 (여왕 암살 사건의 전조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홈즈와 왓슨은 이 기이한 두 건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으로 향합니다. 300년 전 벌어졌던 <이탈리아인 비서관> 살인사건, 그리고 그 아탈리아인의 유령의 존재, 계속되는 위협, 기존의 홈즈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독한 악당(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개인적으로는 홈즈 시리즈에서 마지막에 무슨 폭포에서 만나는 그 악당이 더 지독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물리적인 공격과 잔인한 면에서는 <이탈리아인 비서관>의 악당이 한 수 위네요.)의 등장 등 홈즈 시리즈에서 홈즈와 왓슨이 사건을 해결하는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좀더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앞에서 언급했던 유령의 존재와 연속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 그 잘난 척 하는 홈즈와 그를 옆에서 열심히 보좌하는 왓슨의 활약은 언제 봐도 즐겁습니다. 불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홈즈와 스스로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보려는 왓슨의 노력 암튼 이런 부분이 홈즈 시리즈가 재미있는 요소죠. 암튼 홈즈 시리즈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번의 새로운 홈즈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단, 제 개인적으로는 결말이 조금 시시하기는 했습니다. 마지막에 악당이 좀 더 끈질기게, 두렵게, 대범하게, 잔인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활약해 주기를 바랐는데, 역시나 기존의 홈즈 시리즈처럼 편안하게 결말을 맺네요. 암튼 두 콤비의 활약을 보는 것은 <인디아나 존스>의 새로운 시리즈를 기다리는 것처럼 제게는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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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출 중
미츠바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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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매일같이 술에 취해 집안일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누나는 밤놀이에 빠져 있다. 형은 잔소리가 심해졌고, 할아버지의 치매도 더 나빠졌다. 다들 아버지와 다를 게 없다. 내키는 대로 술에 취하고, 꼴리는 대로 놀러 다니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망령을 부른다. 다들 너무 제멋대로다. 술에 취해 지내기에는 너무 어리고, 밤놀이에 정신을 팔기에는 돈이 없고, 설교를 하기에는 머리가 나쁘고, 망령이 들기에는 너무나도 정신이 또렷한 나는 이 사태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서 짜증을 부리고 있다."

 

소설 <아빠는 가출중>은 제목 그대로 아빠가 가출을 함으로써 (함께 살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멀어진)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뭉치는 이야기입니다. 아빠는 세상을 구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힘이 없고, 현실적으로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꼭 구하고 싶어 해서, 새엄마와 재혼을 합니다. 암튼 가족 구성원은 5명(아빠는 가출중이니까 제외). 14살 소년 '케이', 17세 여고생 '카나', 27세 백수청년 '류', 42세 불량엄마 '카오루', 마지막으로 73세의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신조'. 이 소설은 이 5명의 가족이 주인공으로 각자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 후배가 책 표지를 보더니 "동화책 읽어요?" 그러더군요. 원제는 <염세 플레이버(염세의 향기)>로 알고 있는데,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무척 밝습니다. 따라서 확실히 <염세의 향기>보다는 <아빠는 가출중>이라는 제목과 동화스러운 표지가 더 어울리기는 하는데, 역시나 동화라고 오해를 할 수는 있겠더군요. 암튼 이 소설은 가족소설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안고 있는 개인적인 고민과 가족 안에서의 문제(아빠가 가출함으로써 생긴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크겠죠?)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을 다룬 이야기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소설도 조금 진부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5명의 가족 캐릭터가 무척 유머스럽게 표현되어서 읽는 동안 '키득키득' 거리게 되더군요. 그러니까 사실 내용은 밝은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묘하게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은 캐릭터 자체가 전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가출로 학교와 육상부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는 14세 '케이'(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자기 스스로도 모릅니다. 당연하죠? 그만두고 싶은데 이유는 없죠.),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가족으로 부터 도피하고 밤놀이 문화에 빠져드는 17세 여고생 '카나', 대학을 나오고 몸이 튼튼함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긍긍하며 그리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의식까지 가지고 있는 27세 백수청년 '류', 가정 자체에 관심이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재혼한 집의 시아버지와 아들도 부담스럽고 그래서 술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버티는 42세 엄마 '카오루', 치매에 걸렸다고는 하지만 과거 아픈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73세의 할아버지 '신조'. 각자 아픔과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족들. 결코 세상사는 것이 만만치가 않죠? 독설로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내려는 가족들. 그래서 서로에게 무관심해 보이려고, 벗어나려고, 도망치려고 생각하는 가족들. 염세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이상한 가족들. 그래도 그들은 가족입니다. 14세 소년 '케이'의 역전마라톤 대회에서 이러한 모든 상처와 아픔들이 잠시나마 치유되고 풀어집니다. 가족의 상처와 화합을 따듯하고 유머스럽게 표현한 가족소설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할 거리를 넌지시 던져줍니다. 개인적으로 27세 백수청년 '류'의 이야기가 가장 공감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 그런지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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