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초상
이갑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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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간되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했을 뻔 했네요. 1994년도에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아쉽게도 작가분은 1995년에 세상을 떠났더군요. 저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것 같은데, 너무나 안타깝네요. 덧붙여 국내 추리소설계에도 큰 상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지적 재미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이 제게는 무척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작가의 노력(관련 내용의 조사뿐만 아니라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성력까지 정말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들어간 작품이지 않나 생각합니다.)의 피부로 가슴으로 확 느껴지더군요.

 

일반인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우리는 그들을 '천재' 또는 '사이코'라고 부르죠.) 연쇄살인범이 등장합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로맨틱한 초상'이라는 재즈음악을 틀어 놓고, 마취해서 (일반 마취약이 아니라 복독이라고 해서 점차 몸을 마비시키는 끔찍한 마취약입니다.) 데려 온 여자들을(이건 꽤 복잡한데, 자신만의 사상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럴듯해 보이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궤변으로 여자 일곱 명을 잡아서 죽여야 합니다. 뭔가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단순히 옮기는 것도 제게는 무척 벅차네요. 직접 읽어보셔야 압니다.) 죽여서 데스마스크를 뜹니다. 창녀인지, 성녀인지 잘은 모르지만, 암튼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연쇄살인범이 죽인 여자의 질 속에는 메뚜기(정확하게는 아니지만)가 놓여 있고, 재즈음악 '로맨틱한 초상'을 들은 흔적, 암튼 도대체 범인의 살해 동기(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연쇄살인범을 쫒는 이반장과 전형사. 오디오 기기 매니아인 곽원장과 그녀의 애인 박 교수도 연쇄살인범과 엮이게 되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스토리 자체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적 재미가 무척 충만한 추리소설입니다. 연쇄살인범의 궤변도 그리 나쁘지는 않고요. 음악, 종교, 오디오기기, 정신의학, 심리학 등 어려운 내용들이 연쇄살인범을 잡는 추리소설이라는 기둥 줄기에 잘 엮어 들어가면서 더욱더 이야기를 풍성하게 합니다. 앞서 머리말에 작가분이 얘기 했듯이 오디오기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자랑하려고 쓴 글이 아님을 책장을 덮으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결코 잘난 척 하려는,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그런 지적 궤변은 절대 아닙니다. 암튼 자료 조사도 무척 힘들었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무언가에 푹 빠져버린(흔히 매니아라고 부르죠), 그래서 스스로 고독과 외로움을 선택한 (이렇게 작품 하나에 집요하게 빠져서 쓸 이유는 없죠. 자신의 삶이 망가질 수도 있잖아요? 무언가에 대한 집요함을 스스로도 힘드니까요.) 열정 뒤에 숨은 작가의 쓸쓸한 이면이 보이는 것 같아 읽는 내내 씁쓸하더군요(물론 작가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요절한 이유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요.). 무엇보다 연쇄살인범의 캐릭터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정말 다채로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네요. 책장을 덮은 뒤에도 뇌리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가 않거든요.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 뒤로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조금만 일찍 왔어도, 조금만 조심했어도, 대체로 공포영화에서 이런 기법을 많이 사용하죠.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아는데 영화 속 인물들은 모르는데서 오는 그런 안타까움)도 슬그머니 보입니다. 정말 추리(스릴러) 소설의 묘미는 이런 맛이 아닐까 싶어요. 암튼 그런 부분이 무척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암튼 두말하면 잔소리, 이 소설 추천합니다. 물론 (10여 년 전 소설임에도)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방해를 줄 정도는 아닙니다(스스로의 무지를 탓해야죠, 뭐. 이제는 조금 익숙한 용어들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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