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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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인 30대의 한 남자는 어느 날 휴가를 내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주변 지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사구(모래 언덕)로 신기한 곤충(길앞잡이속의 좀길앞잡이.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니 딱정벌레목 길앞잡이과에 속하는 곤충이라네요. 한국과 일본에 주로 분포한다고 하네요. 나름 귀엽게 생겼네요)을 채집하러 떠납니다. 그러나 모래 구덩이 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동네 주민들에게 붙잡혀 모래 구덩이 속에 살고 있는 여자와 기이한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실종 이유조차 모른 채 모래 구덩이에 파묻혀 지낸 남자는 7년 후 사망으로 처리됩니다. 사담으로 미지의 곳으로 여행을 갈 때는 꼭 누군가에게 말하고 가세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망 처리됩니다(재미없는 농담이었습니다).

서로 상처를 핥아 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 (p.198)

일본 순수문학은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를 제외하고는 거의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미스터리소설만 읽어서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은 거의 접해 보지를 않았습니다(물론 미스터리소설이 문학성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국내에 소개된 일본 미스터리소설 중에는 문학성보다는 대중성이나 오락성에 치우친 소설이 많다는 이야기일 뿐). 사실 아름답고 멋진 표현들이 많더군요. 원서로 읽지 않아서 일본어만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느낄 수는 없었지만, 정말 문장들이 아름답더군요. 역시 언어는 이런 맛이 있어야 언어이지 않나 싶어요(예술에 세계에서는요).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초현실주의(환상의 세계. 모래 구덩이)이자 실존주의(인간의 존재) 소설입니다. 물론 초현실주의나 실존주의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얄팍한 지식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도 소설을 읽는 순간 딱 이 단어들이 떠오르더군요. 그만큼 이 소설을 잘 설명하는 단어도 없지 않을까 싶네요. 우선 모래 구덩이에 대해서 말해보면(모래 구덩이에 사는 동네 주민들의 삶도 포함),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물론 시대 배경이 50-60년대이고, 사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판단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요). 10-20m 아래의 모래 구덩이에서 갇혀서(자의건 타의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조금 비현실적이더군요. 또한 그 부근에서 실종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그렇고. 과연 모래 구덩이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그 자체도 무척 의심스럽고요. 인간의 존재와 생명,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이런 극한적인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암튼 무척 매력적인 세계입니다. 모래 구덩이의 세계는 말이죠. 동네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책으로 확인해 보세요. 소름이 돋고, 두렵기도 하면서 황홀합니다. 무척 기이하고 아름다운 세계였어요.

신기한 곤충을 채집하러 떠난 한 남자 교사는 모래 구덩이에 한 여자와 갇히게 됩니다. 신기한 곤충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끈질긴 생명력과 환경 적응력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곤충은 그 가치를 인정받죠. 아이러니하게도 문명 세계(도시 사회)에서 살다 온 남자 주인공은 스스로가 신기한 곤충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동네 주민들에게 협박과 회유도 하고, 탈출도 시도하며, 여자를 인질 삼아 협상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하루 이틀, 1년 2년이 지나갑니다. 그 남자는 결국 살아남습니다(물론 이미 그는 국가로부터 사망 처리가 되지만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한 남자는 결국 벗어나 신기한 곤충의 존재로 뒤바뀝니다. 한 인간의 내면과 행동이 극한 상황(모래 구덩이) 속에서 서서히 변화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모래 밖 세계와 모래 안의 세계는 뭐가 다른 것일까요? 복종과 수용만을 강조하는 모래 세계. 그리고 모래 구덩이 속에 갇힌 남자가 가고 싶었던(또는 꿈꾸었던) 모래 밖 세계. 그리고 그곳에 사는 인간들의 삶의 존재 이유 또는 방식. 그의 절친한 동료 교사 뫼비우스(별명) 이름처럼 모래 안과 밖은 결국 한 공간이지 않나 싶네요. 결국 벗어나지도 못하는 곳을 벗어나겠다고 발버둥치는 인간들에게 이 얼마나 웃기는 삶의 모순입니까? 결국 계속 발버둥 치다 지쳐 스스로 타협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겠죠. 인간이란 존재는 참 우스운 것 같습니다,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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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영미 옮김 / 창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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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하기시노 게이고답습니다. 뭐가 그렀냐고요? 바로 제목입니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제목,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매특허이죠. 제목의 '내가 죽은 집'은 말이 안 되죠. 그/그녀/당신이 아니라 1인칭 내가 죽은 집이라니, 보통은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죠. 내가 죽은 집을 내가 찾아가는 이야기가 우선 연상됩니다. 그렇습니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죽은(물론 실제로 죽지는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이 없을 뿐) 내(사야카)가 자신이 죽은 집(기억이 없는)을 찾아갑니다. 6년 연애 끝에 헤어진 남자친구와 함께 말이죠(그녀는 딸아이가 있는 유부녀입니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만의 특징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복선과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력, 무엇보다 가독성이 좋은 점,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묘사들. 마지막으로 적은 등장인물(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름 때문에 헷갈렸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필요한 인원만 등장시키고, 곁가지는 모두 잘라버리죠. 그래서 추리소설에 처음 입문하시는 분들이 하기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렵지 않으면서도 재미가 있거든요). 그런데 조금 다른 부분도 있어요. 우선 단막극 형식. 최소한의 인원(나와 사야카)과 최소한의 공간(폐허처럼 변해버린 집). 마지막으로 공포소설이 아님에도 뭔가 무섭고 두려운 느낌과 뭔가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몽한 분위기. 암튼 주제의식이나 복선, 이야기의 구성력 모두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인데, 뭔가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는 기존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많이 다르더군요.

"어쩌면 나 역시 낡은 그 집에 죽어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시절에 죽은 내가, 그 집에서 줄곧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곳에 누워 있을 게 분명한 자신의 사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모른 척하는 것일 뿐."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더군요. 집 한 채와 등장인물 2명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가 쉽지가 않은데, 나름대로 완결성도 갖추고 있고, 주제의식도 전달하면서, 미스터리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도 잘 유지하네요. 곳곳에 복선도 잘 깔아 놓았고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미 죽어버린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일기를 등장시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합니다. 아이가 쓴 일기라 당시의 사건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죠. 느낌은 전혀 다르지만 1인칭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더군요. 집에 숨겨져 있는 힌트를 찾아라!! 힌트 속에 집의 비밀이, 그리고 자신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자아 찾기 여행일 수도 있겠네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면서도 기존의 소설과는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가 오래 전이라 반전이나 충격이 약할 수도 있습니다(1994년쯤에 발표가 되었더군요). 그럼에도 확실히 재미는 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성력도 좋고요. 이번에 소개된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괜찮네요. 추리소설 매니아들에게는 반전이나 복선이 다소 싱거울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매우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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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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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드보일드 소설(영화도 역시)을 많이 접해 보지도 않았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고독과 우수에 젖은 탐정이 등장하는 냉혹하고 비정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가장 크겠죠. 암튼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그런 제게 큰 모험이었습니다. 덧붙여 하라 료가 많은 영향을 받은 <기나긴 이별>, <안녕 내사랑>, <빅슬립>의 레이먼드 챈들러도 이름만 알고 작품은 한 권도 읽어 보지를 않았습니다. '필립 말로 시리즈'도 역시 소문만 듣고 접해 보지를 않았네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라서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러운데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면서도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많더군요. 반전의 반전(이런 식의 홍보문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해지더군요)을 거듭하면서 이야기 속으러 점점 빠져들게 되고요. 그러니까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그런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많아서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만약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에도 이런 요소가 많다면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에는 사와자키라는 탐정이 등장합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피스라는 필터가 없는 독한 담배를 피우는 40세의 탐정. 고독과 우수라는 단어가 무척 잘 어울리는 그런 탐정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아서 가족도 없고, 의지했던 동료 탐정(와타나베)은 알코올 중독에 사기를 치고 도망 다니는 신세입니다. 그런 와타나베에게 사기를 당한 녀석은 자주 찾아와서 동료를 찾아내라고 협박하고. 암튼 즐거운 일도 없는 그런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무척 심심한 남자입니다. 그런 그에게 오른손을 보이지 않는 사내가 찾아와 사에키라는 사라진 르포라이터를 찾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에키를 찾는 그들의 가족과 오른손을 보이지 않는 사내(기억상실증)를 또 다른 검은 무리들. 단순히 한 사내의 행방불명인 줄 알았던 사건이 수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점차 거대한 진실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소설의 첫 번째 재미이기도 합니다.

'매스컴은 늘 중요한 내용을 빠뜨린다. 진실을 전달한다고 떠들지만 기껏해야 그런 정도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사건보다는 인간이 매우 중요한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사건도 중요하지만 탐정이 의뢰받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고독한 탐정의 내밀한 (황폐해 보이기도 하는) 독백. 무엇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느립니다. 게다가 뛰어난 명탐정(물론 사와자키 탐정도 명탐정이기는 합니다만 다른 의미에서, 예를 들면 긴다이치 코스케)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사건의 수사는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그러니까 단계를 밟아가는 수사라고 할까요? 사건이 바로 해결되지 않고 끈질기게 물어지고 난 끝에야 해답이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상황이나 인물이 있으면 일일이 찾아가서 확인해야 하고, 아니면 다시 수사를 해야 하는 그런 과정이 무척 깁니다. 바로 사건이 해결되는 그런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이런 느려터진 수사가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죠. 그러나 반대로 그런 사실주의적인 사건 추리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만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앞서 얘기했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속도감이 굉장히 붙습니다.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지만 미스터리소설만의 매력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정말 멋들어진 데뷔작이 아닌가 싶네요. 추리는 과감하게 버리세요. 그리고 사와자키 탐정의 행동에 주목하세요. 거기에 고독하고 외로운 한 사내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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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조곡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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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코의 성(城)인 우구이스 저택과, 그곳에 모여든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 혈연관계의 여자들. 스스럼없이 오가는 독설, 술과 음식, 푹신한 침대. 즐거운 동시에 질리기도 한다.(p.175)

온다 리쿠 소설은 연극적이다. 우구이스 저택에 시즈코, 에리코, 나오미, 츠카사와 도키코(4년 전에 이미 죽은 유명 소설가)를 담당했던 편집자 에이코 이렇게 창작 관련 직업을 가진 다섯 명의 여자가 목요일 전날 모입니다.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원, 제한된 시간, 이제부터 '시게마츠 도키코 살인 사건'에 대한 여자들의 음밀하면서도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온다 리쿠의 작품에는 항상 노스탤지어의 전령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죠. 노스탤지어의 전령사와 더불어 극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듯싶네요. 그만큼 소설이 무척 연극적입니다(사실 온다 리쿠의 소설 중에는 이런 연극적인 소설들이 많죠. 심지어는 연극이 무대인 소설(<초콜릿 코스모스>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도 있죠. 쓸데없는 장식이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심리에 의해서 이야기가 이끌어져 나갑니다. 사람이 죽지도 않습니다. 무서운 괴물(인간)이 나오지도 않고, 끔찍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습니다. 인물들의 섬세한 묘사와 불안한 심리 상태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재주는 가히 현재 활동하는 일본작가들 중에 최고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심지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방에 있는 남녀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온다 리쿠 소설에 보일 듯 숨겨져 있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말이죠. 물론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온다 리쿠의 소설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런 모호한 결말 때문에 싫어하죠. <목요조곡>은 확실한 결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등장인물들의 망상이니 믿거나 말거나는 역시나 독자들의 몫이지만요).

온다 리쿠의 소설은 아줌마들의 수다 떨기이다. 여자 다섯이 우구이스 저택에 모입니다. 누군가를 동경하기도 하면서 증오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비밀은 감추고 남의 비밀은 엿보고 싶어 하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욕하면서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겉치장을 다 떼어버리면 남는 것은 아줌마들의 수다뿐. 나쁘게 말하면 수다지만 그만큼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심리전이 대단합니다.

'타인의 가십'이라는 먹이만큼 여자의 본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타인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요리하는 것이 특기인 여자들만 모여 있지 않은가!(p.52)

그러나 온다 리쿠는 여자들에 대해서 악의의 감정이 없습니다.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 여자가 악인으로 그려지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나쁜 짓을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기리노 나쓰오(<아웃>, <그로테스크>)가 그리는 여성하고는 다릅니다. 여성들의 그런 (소소한) 악의가 일상적인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져 거부감이 전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남녀노소) 그런 악의는 있죠. 그리고 그런 여성들의 수다 떨기 뒤에 숨겨진 악의 이면에는 역시나 여성들의 우정, 연대감 그런 것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로 싫어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여성들의 관계를 자주 작품 속에 드러내는 것 같아요. 온다 리쿠는 아줌마다. 그리고 수다를 좋아한다.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감을 중요시한다. 암튼 그렇습니다.

온다 리쿠의 소설은 역시나 미스터리이다. 소설에 대해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목요조곡>은 미스터리소설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 이 장소에 죽은 이를 위한 꽃을 바칩니다.

꽃과 함께 익명의 쪽지가 그녀들이 모인 저택에 배달됩니다. 그리고 4년 전에 죽은 천재 작가 도키코. 4년 전 비밀이 서서히 밝혀집니다. 숨기고 싶었던, 그러나 말하고 싶었던 그녀들의 비밀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죠. 그녀의 말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이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그리고 과연 누가 범인인지? 정말 이 곳에 범인이 있는지? 자살이 정말 아니었는지? 그녀들의 기억에 의지해서 퍼즐 조각이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아줌마들의 수다가 즐거운 이유는 바로 그녀들의 기억에 의해서 끊임없이 사건이 재구성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살인을 한 범인일 수도 있다는 것. 서로의 말 속에 진실과 거짓이 있다는 것. 그러나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것이 점차 공포스럽게 다가온다는 것. 온다 리쿠의 이번 작품 <목요 조곡>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 긴장감이 마지막까지 지속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고로 아줌마들의 수다임에도 궁금증에 계속 책장을 넘기는 것 같아요.

여담으로 편집자, 창작자, 현실과 상상(망상) 사이의 글쓰기, 허구와 진실, 창작의 고통 뒤에 오는 희열 등 이런 관점(즉 글쓰기)에서 읽어도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네요. 혹시 온다 리쿠 여사의 속마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글쓰기에 대한 내용들이 펼쳐집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창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암튼 여러모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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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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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동시대의 사회적 이슈를 그만큼 잘 다루는 작가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아름다운 흉기>는 올림픽 스타들의 약물 복용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육상 남자 100m 달리기에서 캐나다의 벤 존슨(세계 신기록을 세웠었죠)이 도핑에 걸렸죠. 아마 그 당시에 이런 비슷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어린 시절 기억에 의하면). 역시나 동시대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바로 올림픽 스타들의 이런 도핑 문제를 <아름다운 흉기>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참으로 영악한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올림픽 스타가 등장하는 (미스터리나 스릴러 쪽으로) 일본소설은 이번 작품이 처음입니다. 게다가 미스터리가 아닌 서스펜스 쪽으로 접근한 소설도 처음으로 접했고요. 올림픽 스타가 등장하는 액션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과연 긴장과 스릴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해 줄 것인지, 몹시 궁금하더군요. 다시 말해서 조금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쫒고 쫒기는 자들의 추격. 이런 장면이 영화로서는 무척 볼만하지만 텍스트로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죠.

<아름다운 흉기>는 쫒고 쫒기는 자들의 추격을 다룬 액션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입니다. 서스펜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긴장과 스릴이죠. 그렇다면 이 소설은? 다소 긴장감과 스릴은 부족하더군요.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감동 미스터리에 재능이 많은 작가인데 액션 서스펜스에서는 다소 힘들어 보이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이 전혀 히가시노 게이고 외적인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우선 스포츠 과학(약물복용, 인간 개조)라는 전문 분야가 등장하고, 괴물 같은 한 여자의 슬픈 복수가 기본적인 테마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쉽기는 하지만) 감동적인 여운도 있고요(인간성을 포기하고 최고가 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인간들의 말로. 그러나 아쉽게도 그 감동은 한순간입니다. 이 부분을 좀더 집요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척 아쉽더군요. 그렇다고 서스펜스가 극대화 된 소설도 아닌데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스터리소설은 아니지만 마지막의 반전도 있고요(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겠고, 암튼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성을 참 잔인하게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시 언급하자면 이 소설은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입니다. 그의 소설의 특징이 모두 들어가 있거든요. 단, 미스터리보다는 서스펜스에 중점을 두어서인지 다소 싱거운 느낌은 있습니다.

세계 최고(성공, 부, 명예)가 되기 위해 자아와 본성마저 버리고 괴물이 되어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종종 언론을 통해서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괴물이 되어서까지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것은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겠죠? 그러한 욕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괴물이 되는 인간들. 과연 그러한 괴물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성취감과 만족감, 행복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지. 마지막의 타란툴라의 절규(?)는 그런 면에서 무척 씁쓸했습니다. 요즘도 도핑이 문제시 되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죠. 유효 기간이 지난 소재라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처럼 너무 늦게 국내에 소개가 된 것 같아요) 신선한 맛은 조금 없지만, 괴물 같은 한 여성의 복수에 초점을 맞추고 읽으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작가의 브랜드를 인지하면서 작품을 읽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것 같아요. 가끔 걸작도 쓰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엔터테인먼트 작가이죠. 오락소설로는 괜찮습니다. 단, 이 소설은 미스터리소설이 아닌 서스펜스 스릴러소설입니다. 감안하고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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