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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조곡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도키코의 성(城)인 우구이스 저택과, 그곳에 모여든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 혈연관계의 여자들. 스스럼없이 오가는 독설, 술과 음식, 푹신한 침대. 즐거운 동시에 질리기도 한다.(p.175)
온다 리쿠 소설은 연극적이다. 우구이스 저택에 시즈코, 에리코, 나오미, 츠카사와 도키코(4년 전에 이미 죽은 유명 소설가)를 담당했던 편집자 에이코 이렇게 창작 관련 직업을 가진 다섯 명의 여자가 목요일 전날 모입니다.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원, 제한된 시간, 이제부터 '시게마츠 도키코 살인 사건'에 대한 여자들의 음밀하면서도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온다 리쿠의 작품에는 항상 노스탤지어의 전령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죠. 노스탤지어의 전령사와 더불어 극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듯싶네요. 그만큼 소설이 무척 연극적입니다(사실 온다 리쿠의 소설 중에는 이런 연극적인 소설들이 많죠. 심지어는 연극이 무대인 소설(<초콜릿 코스모스>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도 있죠. 쓸데없는 장식이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심리에 의해서 이야기가 이끌어져 나갑니다. 사람이 죽지도 않습니다. 무서운 괴물(인간)이 나오지도 않고, 끔찍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습니다. 인물들의 섬세한 묘사와 불안한 심리 상태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재주는 가히 현재 활동하는 일본작가들 중에 최고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심지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방에 있는 남녀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온다 리쿠 소설에 보일 듯 숨겨져 있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말이죠. 물론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온다 리쿠의 소설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런 모호한 결말 때문에 싫어하죠. <목요조곡>은 확실한 결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등장인물들의 망상이니 믿거나 말거나는 역시나 독자들의 몫이지만요).
온다 리쿠의 소설은 아줌마들의 수다 떨기이다. 여자 다섯이 우구이스 저택에 모입니다. 누군가를 동경하기도 하면서 증오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비밀은 감추고 남의 비밀은 엿보고 싶어 하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욕하면서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겉치장을 다 떼어버리면 남는 것은 아줌마들의 수다뿐. 나쁘게 말하면 수다지만 그만큼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심리전이 대단합니다.
'타인의 가십'이라는 먹이만큼 여자의 본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타인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요리하는 것이 특기인 여자들만 모여 있지 않은가!(p.52)
그러나 온다 리쿠는 여자들에 대해서 악의의 감정이 없습니다.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 여자가 악인으로 그려지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나쁜 짓을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기리노 나쓰오(<아웃>, <그로테스크>)가 그리는 여성하고는 다릅니다. 여성들의 그런 (소소한) 악의가 일상적인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져 거부감이 전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남녀노소) 그런 악의는 있죠. 그리고 그런 여성들의 수다 떨기 뒤에 숨겨진 악의 이면에는 역시나 여성들의 우정, 연대감 그런 것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로 싫어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여성들의 관계를 자주 작품 속에 드러내는 것 같아요. 온다 리쿠는 아줌마다. 그리고 수다를 좋아한다.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감을 중요시한다. 암튼 그렇습니다.
온다 리쿠의 소설은 역시나 미스터리이다. 소설에 대해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목요조곡>은 미스터리소설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 이 장소에 죽은 이를 위한 꽃을 바칩니다.
꽃과 함께 익명의 쪽지가 그녀들이 모인 저택에 배달됩니다. 그리고 4년 전에 죽은 천재 작가 도키코. 4년 전 비밀이 서서히 밝혀집니다. 숨기고 싶었던, 그러나 말하고 싶었던 그녀들의 비밀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죠. 그녀의 말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이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그리고 과연 누가 범인인지? 정말 이 곳에 범인이 있는지? 자살이 정말 아니었는지? 그녀들의 기억에 의지해서 퍼즐 조각이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아줌마들의 수다가 즐거운 이유는 바로 그녀들의 기억에 의해서 끊임없이 사건이 재구성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살인을 한 범인일 수도 있다는 것. 서로의 말 속에 진실과 거짓이 있다는 것. 그러나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것이 점차 공포스럽게 다가온다는 것. 온다 리쿠의 이번 작품 <목요 조곡>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 긴장감이 마지막까지 지속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고로 아줌마들의 수다임에도 궁금증에 계속 책장을 넘기는 것 같아요.
여담으로 편집자, 창작자, 현실과 상상(망상) 사이의 글쓰기, 허구와 진실, 창작의 고통 뒤에 오는 희열 등 이런 관점(즉 글쓰기)에서 읽어도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네요. 혹시 온다 리쿠 여사의 속마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글쓰기에 대한 내용들이 펼쳐집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창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암튼 여러모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