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하드보일드 소설(영화도 역시)을 많이 접해 보지도 않았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고독과 우수에 젖은 탐정이 등장하는 냉혹하고 비정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가장 크겠죠. 암튼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그런 제게 큰 모험이었습니다. 덧붙여 하라 료가 많은 영향을 받은 <기나긴 이별>, <안녕 내사랑>, <빅슬립>의 레이먼드 챈들러도 이름만 알고 작품은 한 권도 읽어 보지를 않았습니다. '필립 말로 시리즈'도 역시 소문만 듣고 접해 보지를 않았네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라서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러운데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면서도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많더군요. 반전의 반전(이런 식의 홍보문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해지더군요)을 거듭하면서 이야기 속으러 점점 빠져들게 되고요. 그러니까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그런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많아서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만약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에도 이런 요소가 많다면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에는 사와자키라는 탐정이 등장합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피스라는 필터가 없는 독한 담배를 피우는 40세의 탐정. 고독과 우수라는 단어가 무척 잘 어울리는 그런 탐정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아서 가족도 없고, 의지했던 동료 탐정(와타나베)은 알코올 중독에 사기를 치고 도망 다니는 신세입니다. 그런 와타나베에게 사기를 당한 녀석은 자주 찾아와서 동료를 찾아내라고 협박하고. 암튼 즐거운 일도 없는 그런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무척 심심한 남자입니다. 그런 그에게 오른손을 보이지 않는 사내가 찾아와 사에키라는 사라진 르포라이터를 찾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에키를 찾는 그들의 가족과 오른손을 보이지 않는 사내(기억상실증)를 또 다른 검은 무리들. 단순히 한 사내의 행방불명인 줄 알았던 사건이 수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점차 거대한 진실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소설의 첫 번째 재미이기도 합니다.

'매스컴은 늘 중요한 내용을 빠뜨린다. 진실을 전달한다고 떠들지만 기껏해야 그런 정도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사건보다는 인간이 매우 중요한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사건도 중요하지만 탐정이 의뢰받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고독한 탐정의 내밀한 (황폐해 보이기도 하는) 독백. 무엇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느립니다. 게다가 뛰어난 명탐정(물론 사와자키 탐정도 명탐정이기는 합니다만 다른 의미에서, 예를 들면 긴다이치 코스케)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사건의 수사는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그러니까 단계를 밟아가는 수사라고 할까요? 사건이 바로 해결되지 않고 끈질기게 물어지고 난 끝에야 해답이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상황이나 인물이 있으면 일일이 찾아가서 확인해야 하고, 아니면 다시 수사를 해야 하는 그런 과정이 무척 깁니다. 바로 사건이 해결되는 그런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이런 느려터진 수사가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죠. 그러나 반대로 그런 사실주의적인 사건 추리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만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앞서 얘기했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속도감이 굉장히 붙습니다.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지만 미스터리소설만의 매력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정말 멋들어진 데뷔작이 아닌가 싶네요. 추리는 과감하게 버리세요. 그리고 사와자키 탐정의 행동에 주목하세요. 거기에 고독하고 외로운 한 사내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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