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귀울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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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본격 미스터리 단편집이기는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보다는 일상 미스터리의 느낌이 물씬 풍기네요. 물론 본격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일상 미스터리이기도 하고요. 사실 별 의미도 없는 장르 구분입니다. 암튼 온다 리쿠가 본격 미스터리를 쓰면 이런 분위기가 되는군요. 무척 독특합니다. <요변천목의 밤>을 포함한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단편은 거의 없습니다. 우연한 사고로 인한 죽음은 있을 뿐 범죄자가 잔인하게 살해하는 그런 사건은 없습니다. 보통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하면 사람도 조금 죽어 주고, 마지막의 '범인은 그(그녀)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반전도 있는 그런 소설을 떠올리게 되는데,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명성답게 《코끼리와 귀울음》은 그런 충격적인 반전이나 잔인한 살인 사건은 없습니다. 일상생활에 보이지 않는 의문점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이라고 할까요? 거대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길거리에서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죠. 온다 리쿠는 그런 잊혀진 것, 사라지는 것, 감춰진 것들을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 속으로 초대해 무척 독특한 미스터리를 완성합니다. 암튼 첫 느낌은 무척 독특한 일상 본격 미스터리소설이었습니다.

전설, 역사(거대한 역사가 아닌 소소한 역사), 잡담, 소문 등이 이야기의 소재가 됩니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의심해 본 적은 없는 그런 떠다니는 이야기들.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풍부한 텍스트로, 또한 환상적(판타지를 말하는 것은 아님. 아름다움 정도)인 이야기로 만드는 재주는 확실히 뛰어난 것 같아요. 수다쟁이 온다 리쿠. 사소한 이야기를 엄청난 이야기로 만들어 버립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매력을 온다 리쿠 나름대로 잘 해석하고 멋진 이야기로 완성한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기존의 온다 리쿠 소설의 모호함("결말이 이게 뭐야?") 때문에 그녀의 소설을 기피했던 분들에게는 꽤 쏠쏠한 재미를 주지 않을까 싶네요. 또한 일상 미스터리 좋아하시는 분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코끼리와 귀울음》은 일상 속에 숨은 미스터리를 끄집어내어 그 이면을 파헤치는 소설입니다. 따라서 반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전은 무시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지만, 씁쓸한 여운을 줍니다. 결국은 미스터리의 마지막은 사건(죽음)으로 귀결되거든요. 악의는 없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그(그녀)의 행동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죠. 자살이건 타살이건 가족의 고통과 상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사소한 행동이나 악의 없는 행동도 결국에는 타인에게 고통과 슬픔을 줄 수 있는 거죠. 웃음 뒤에는 눈물이 있고, 행복 뒤에는 슬픔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세계는, 사람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 온다 리쿠의 단편집은 이런 느낌이 무척 많이 들더군요.

사족으로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 많겠지만) 《코끼리와 귀울음》의 등장인물은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했던 인물들입니다. 《여섯 번째 사요코》의 세키네 다카오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 역할인데, 그의 큰아들 슈운은 《PUZZLE》, 딸 나쓰는 《도서실의 바다》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빼먹을 수 없는 등장인물, 바로 《메이즈》의 도키에다 미쓰루 등장해서 기이한 사건 이야기를 합니다(물론 《메이즈》의 주인공이기는 했지만 메구미에 비해서 너무 매력이 없게 나왔죠). 이 소설에서는 세키네 다카오와 슈운이 무척 매력적으로 그려지더군요. 특히 세키네 다카오, 이 할아버지 정말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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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뫼비우스 서재
칼렙 카 지음, 이은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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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도시의 소년들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이 실제로 누군가 하는 걸 말이야."

  셜록 홈즈의 새로운 활약을 그린 <이탈리안 비서관>의 칼렙 카의 대표작으로 1896년 뉴욕 맨해튼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매춘 소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역사 추리소설입니다.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아직 국내에 다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중에서 가장 괜찮은 작품(그래봤자 두 작품이지만)으로 살짝 관심을 갖고 있던 작가였는데, 꽤 뒤늦게 대표작 <이스트 사이트 남자>를 읽었습니다(1994년쯤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참고로 셜로키언이라고 하네요^^). 우선 범죄 소설로는 무척 디테일하네요. 따라서 (조금은) 이야기의 호흡이 느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뉴욕 맨해튼의 매춘 소년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팀이 전문적인 탐정들은 아니거든요(물론 형사와 경찰청장의 비서이자 여형사인 ‘새러’가 있기는 하지만, 팀을 이끌어 가는 핵심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수사가 도입되기 이전(지문감식법도 증거로 채택이 되기 이전)이니 미친 사이코를 수사하기에는 더더욱 어렵죠. 암튼 난공불락입니다.

  개인적으로 19세기 말의 뉴욕의 풍경은 잘 모릅니다(참고로 작가 칼렙 카는 소설 속 배경인 뉴욕 맨해튼 남부의 로워 이스트사이드에서 태어났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세기 말의 뉴욕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작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다룬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뉴욕 이민자들의 빈곤한 삶에 대한 묘사는 무척 세밀하고 정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물론 관련 역사책을 읽은 것은 아닙니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 그러니까 추리소설이 아닌 역사소설로 읽어도 이 소설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역사 공부하는 셈 치고 읽었는데, 무척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더군요. 참고로 실존인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참고로 소설 속에서는 뉴욕시 경찰총장으로 나옵니다), J. P. 모건, 폴 켈리, 제이콥 리스 등등. 그런데 실제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암튼 실존 인물과 소설 속 인물을 비교하는 재미도 꽤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19세기 말의 뉴욕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들에게는 두 배의 재미가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우선 주인공(실제적으로 수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은 크라이즐러라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너무나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뉴욕시민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물론 그런 그를 루즈벨트 경찰총장(후에 대통령이 되죠)은 인정을 합니다. 기존의 미해결 사건들, 그 당시의 수사방식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와 친구들)를 끌어 들여 비밀리에 사건을 수사합니다. 그리고 크라이즐러의 친구이자 기자인 무어, 루즈벨트가 신임하는 아이잭슨 형제 경찰, 루즈벨트의 여자 비서(경찰청에 근무하는 최초의 여자라고 하네요)이자 형사인 ‘새러’ 등이 함께 합류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추적하는 악랄한 미친 연쇄살인마. 어른도 아닌 어린 여장 매춘 소년들을(참고로 그 당시에는 이런 어린이를 보호할 만한 법도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민자의 자식들은 먹고 살기 위해 여장 매춘부로 몸을 팝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은 몹시 마음이 아프더군요) 잡아다가 잔인하게 살인합니다. 눈알을 도려내어 물 근처에 버려 버립니다. 흔적도 없이 말이죠. 원한이나 복수도 아닌 이런 살인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해결하기 힘든 사건이었을 것 같아요.

  매력적인 연쇄 살인마.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소설은 꽤나 흥미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바로 연쇄 살인마도 그런 매력적인 요소 중의 하나인데. 암튼 이야기하면 재미없으니 이 연쇄 살인마에 대한 내용은 건너뛰겠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수사 기법의 등장(물론 지금 시점에서는 당연한 수사 기법이지만요) 역시나 흥미롭습니다. 심리적인 수사와 증거는 채택되지 않고, 오로지 물적 증거만 채택되던 시기에 굉장히 혁신적이고 과감한 수사 기법이지 않나 생각합니다(프로파일링 기법도 넌지시 언급됩니다). 물적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물적 증거를 찾기 위해 범행 동기를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사회 심리학적으로 범인에게 접근한다고 할까요? 끊임없이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수사를 진행해 나갑니다. 그런 과정이 무척 디테일하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소설 속에서 중간 중간 묘사되는 19세기 말의 뉴욕의 역사들(사실 부끄럽게도 자유의 여신상의 의미를 이 소설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의 역사, 뉴욕 이민자들의 빈곤한 삶, 여장 매춘 소년들의 매춘 행위, 그리고 범죄와 결탁한 경찰 권력 등등 이 소설을 읽으면 미국의 역사가 다시 보이게 되더군요. 그리고 과학 수사 기법, 프로파일링, 페미니즘(크라이즐러 박사와 경찰총장 여자 비서 ‘새러’의 대립), 지문감식법, 사이코패스, 부모-자식 간의 관계, 종교, 심리학적 결정론 등 온갖 것들이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사이드에서 살아 꿈틀거립니다. 결코 혼란스럽거나 난잡하지는 않습니다.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고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범죄소설 좋아하시는 분들 느긋하게 읽어보세요. 단, 빠른 스토리 전개의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느긋하게 크라이즐러 특별 수사팀의 사건 추리를 따라가 보세요. 확실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범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동정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마세요. 어린 아이들을(그것도 먹고 살기 위해 여장 매춘부로 몸을 파는 아이들)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마. 책장을 덮으면, 쉽게 단정 짓기는 힘들 겁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그런 심리학적 견해에 대해서 부정적인 분들도 있겠지만요. 죄를 결코 용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범인은 ‘누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닙니다. ‘왜?’가 중요한 소설이죠. 물론 역시나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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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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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격 미스터리계의 기수로 불리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조금은 독특한 본격 미스터리소설입니다. 1987년에 <십각관의 살인>이 나오고 1992년에 <시계관의 살인>(그 사이에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인형관의 살인>이 발표되었죠)이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은 그 사이에(1990년에 발표된 것으로 책에는 표기가 되었네요) 위치하고 있는 작품이겠네요. 관시리즈와 비슷하면서도 분위기면에서는 무척 다른 느낌이 들어서 발표 연도를 살짝 찾아보니, 위와 같네요. 예시, 불운, 암시 등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그런 면에서는 최근에 소개된 <암흑관의 살인>과도 조금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네요. 트릭과 반전은 기본으로 깔리면서 현실과 비현실(아직도 비현실적인 부분은 사건 해결이 미스터리합니다.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지)이 뒤섞이고, 비과학적인 사건과 논리적인 추리가 거듭되면서 이야기는 무척 독특하게 흘러가네요. 암튼 트릭으로만 승부하던 아야츠지 유키토가 꽤나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더군요.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니, 뭐 엄청난 것들을 담고 있는 것은 (조금은) 당연하겠지만요.

여덟 명의 극단 '암색텐트' 단원들이 갑자기 휘몰아치는 눈보라(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추리소설의 공식과도 같은 사건들이 계속 벌어집니다. 눈보라로부터의 고립된 산장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사건은 추리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건이죠) 때문에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엄청나게 화려한 키리고에 저택에 방문하게 됩니다. 역시나 키리고에 저택의 거주인들은 무뚝뚝합니다(저택의 거주인들이 무뚝뚝한 것이 당연한 것은 뭐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뭔가 수상해 보이고, 이들도 의심을 하게 되면서 좀 더 긴장감이 느껴지죠). 아, 그리고 눈보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해 이 저택을 방문한 '닌도'라는 의사도 있습니다(연속살인사건에서 의사의 역할은 중요하죠). 그러니까 총 아홉 명이 키리고에 저택을 방문하게 된 셈이죠. 암튼 그들이 이곳을 방문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기묘묘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연극단원들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극단원들의 이름(가명)이 연상되는 물건들이 저택에 놓여 있고, 그 물건의 어떤 움직임에 의해 다음 사건이 예고가 됩니다(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추리소설도 꽤 있죠). 그리고 검은 그림자의 존재, 하쿠슈의 '비'라는 동요(의 구절)에 따라 벌어지는 연속 비유 살인 사건 등 흥미로운 추리요소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고립된 공간(거친 눈보라, 전화 두절, 외딴 곳)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은 언제 읽어도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비유하면서 시체를 전시(?)하는 그런 살인사건은 독자들의 추리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그런 재미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여기까지는 별다른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그냥 초반에 주인공들이 열심히 토론하는 내용들입니다. 또한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 역시 (당연하게도 연극단원들은 추리소설 매니아입니다. 물론 아닌 단원도 있기는 하지만) 이미 당연한 트릭들은 모두 까발리고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물론 이 소설은 1990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그러니 이 점은 감안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위에서도 조금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시, 불운, 암시 등의 불확실한 어떤 기운(분위기)이 키리고에 저택 주변을 짙은 안개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사실 본격 미스터리소설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그런 요소들인데, 이 소설은 그런 요소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더군요. 문장력이 필요 없이 오직 트릭으로 승부하는 작가로 알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트릭은 물론 문장력도 어느 정도 신경 쓴 것 같고, 기존 작가의 추리소설 세계(트릭이 최고다!!)를 확장한 느낌도 많이 듭니다(개인적인 의견으로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최대로 확장한 소설이 <암흑관의 살인>이고, 현실적인 논리적 추리를 최대로 확장한 소설이 <시계관의 살인>이 아닐까 싶네요. 그냥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따라서 관시리즈를 생각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반면 <암흑관의 살인>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이 소설도 역시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무엇보다 이것저것 신경을 쓴 흔적이 많이 보이더군요. 암튼 본격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트릭과 반전만으로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만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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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소울 1 블랙 캣(Black Cat) 6
가키네 료스케 지음 / 영림카디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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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제25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제6회 오야부 하루히코상. 사실 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제게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암튼 추리소설이니까요. 사실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은 이유는 아무래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네요. <와일드 소울>은 1960년대 초반의 일본의 브라질 이민정책을 과감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굳이 추리소설 중에서 하위 장르를 구분하자면 사회파 미스터리가 되겠네요. 본격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많이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이민정책의 희생자 에토, 야마모토, 케이, 마쓰오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복수하는 내용이거든요. 액션 서스펜스라면 몰라도 미스터리 한 느낌은 (개인적으로는) 별로 없었습니다.

복수의 대상이 일본 정부이기는 하지만,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외무성 고위 관리직 및 허위사실을 유포한 브라질 이민정책의 관계자들(광고 제작자 등) 중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입니다. 어느 나라나 부끄러운 역사는 있는 것 같아요. 또한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들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과감하게 팔아버리는 인간들 역시 있고요. 브라질 이민정책의 실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난을 덜기 위한 자국민 포기정책입니다. 가난한 국민들은 자국의 경제 성장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브라질의 오지(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그런 곳, 밀림도 아주 지독한 밀림)로 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을 버린 정부 관계자들은 잘 먹고 잘 살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국가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자기 위안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죠. 그러니까 '나는 잘못이 없다. 모두 국가를 위해서였다.'라는 썩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죠(소설 속에서 케이는 그들을 쓰레기라고 부릅니다).

암튼 나름대로 소설이 전달하는 주제는 머리 속에 잘 들어옵니다. 아무래도 복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서의 지옥 같은 삶 - 초고속 경제성을 한 일본에서의 삶 - 복수를 끝내고 돌아온 평온한 아마존에서의 삶 등 주인공들이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삶에 대한 묘사도 나름대로 잔잔하면서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지옥 같은 브라질이 실제로 꿈의 낙원으로 변화거든요. 암튼 그럼에도 추리소설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우선 복수의 방법이 조금 식상합니다. N시스템을 이용한 도주 경로가 특히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추적하는 경찰들의 행동도 긴장감을 주기에는 조금 부족했고요. 미디어를 이용한 공개 범죄도 확 끌어당기는 그 무엇은 없네요. 암튼 이래저래 추리소설적인 재미나 기법 면에서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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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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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시리즈의 서막 <도착의 론도>는 서술트릭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추리소설입니다. '서술트릭 자체가 스포일러 아니냐?'라고 반문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출판사에서도 서술트릭으로 홍보를 하고 있고, 알고 읽어도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서술트릭을 깨고 싶으신 분들은 눈 똑바로 뜨고, 집중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겠지만, 작가의 장난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네요. 일본의 권위 있는 추리소설상인 에도가와 란포상의 도작 사건을 넌지시 암시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니 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네요. 아니면 뭐 두려움이 없는 거겠죠.

<도착의 론도>는 1989년에 출판되었더군요. 에도가와 란포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모두 떨어졌지만, 이 재미있는 소설이 지금에야 소개가 된 것은 조금 의외더군요. 물론 서술트릭이라는 것 자체가 국내에는 그렇게 익숙한 것이 아니었지만요(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살육에 이르는 병>에 기대고 있는 면이 큰 것 같아요). 앞의 두 작품을 언급한 이유는 아시겠지만, 서술트릭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살육에 이르는 병> 모두 충격적인 반전이 나오는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추리소설임에도 한편으로는 '사기'라는 평까지 들을 정도로 굉장히 평가가 극과 극이었고, 그 충격의 강도 역시 엄청났죠. 이 두 소설이 국내에 서술트릭이라는 추리소설의 장르를 넓히는데 기여한 면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도착의 론도>는?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사기'로 느껴질 만한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뻔뻔하고 과감한 유희정신이 돋보이는 추리소설이라고 할까요? 서술트릭 자체가 목적이 아닌 하나의 오락거리로 이 소설에서는 다루고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술트릭이라는 반전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재미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작가의 능청스러움, 뻔뻔함, 그리고 (후기까지 읽으면) 치열함까지 느껴지는 아주 보기 드문 그런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추리소설입니다. 오리하라 이치 확실히 재미있는 작가입니다. 염려되는 점은 소설 속 <환상의 여인>처럼 이 소설이 오리하라 이치의 최고의 작품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암튼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암튼 재미있는 작가의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봅니다. 제34회 에도가와 란포상의 사카모토 고이치의 <백색의 잔상>과 제43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의 사사키조의 <에트로프발 긴급전>(참고로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와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는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모두 실재하는 작품이더군요. 암튼 대단한 작품들과 경쟁을 했네요. 그래도 수상을 못한 것은 몹시 아쉽네요. 뭐 그래도 결국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은 받았더군요. 암튼 이런 모든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등장합니다. 뭐 아주 재미있습니다. 소설가와 도작자, 그리고 추리소설을 쓴다는 것 등 암튼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흥미로운 요소들이 무척 많습니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 매니아들을 위한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매니아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 지망생 야마모토 야스오가 추리소설을 쓰는 과정이 몹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암튼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 분들에게도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설이냐? 그러고 보니 소설의 내용은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네요. 사실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추리소설은 스토리 자체를 알면 조금은 재미가 없죠. 암튼 후회하지는 않을 작품입니다. 특히나 서술트릭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요. 정말 오랜만에 오락적인 요소가 가득한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추리소설을 만나게 되었네요. 충격전인 반전 물론 있습니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읽으세요. 그리고 역시나 한 문장, 한 문장 집중해서 읽어보세요. 그리고 한번 추리해 보세요. 물론 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읽는 것이 오히려 더 재미있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소설의 내용과 표지의 싱크로율은 정말 정확하네요. 이야기가 아주 뱅글뱅글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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