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뫼비우스 서재
칼렙 카 지음, 이은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도시의 소년들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이 실제로 누군가 하는 걸 말이야."

  셜록 홈즈의 새로운 활약을 그린 <이탈리안 비서관>의 칼렙 카의 대표작으로 1896년 뉴욕 맨해튼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매춘 소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역사 추리소설입니다.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아직 국내에 다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중에서 가장 괜찮은 작품(그래봤자 두 작품이지만)으로 살짝 관심을 갖고 있던 작가였는데, 꽤 뒤늦게 대표작 <이스트 사이트 남자>를 읽었습니다(1994년쯤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참고로 셜로키언이라고 하네요^^). 우선 범죄 소설로는 무척 디테일하네요. 따라서 (조금은) 이야기의 호흡이 느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뉴욕 맨해튼의 매춘 소년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팀이 전문적인 탐정들은 아니거든요(물론 형사와 경찰청장의 비서이자 여형사인 ‘새러’가 있기는 하지만, 팀을 이끌어 가는 핵심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수사가 도입되기 이전(지문감식법도 증거로 채택이 되기 이전)이니 미친 사이코를 수사하기에는 더더욱 어렵죠. 암튼 난공불락입니다.

  개인적으로 19세기 말의 뉴욕의 풍경은 잘 모릅니다(참고로 작가 칼렙 카는 소설 속 배경인 뉴욕 맨해튼 남부의 로워 이스트사이드에서 태어났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세기 말의 뉴욕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작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다룬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뉴욕 이민자들의 빈곤한 삶에 대한 묘사는 무척 세밀하고 정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물론 관련 역사책을 읽은 것은 아닙니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 그러니까 추리소설이 아닌 역사소설로 읽어도 이 소설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역사 공부하는 셈 치고 읽었는데, 무척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더군요. 참고로 실존인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참고로 소설 속에서는 뉴욕시 경찰총장으로 나옵니다), J. P. 모건, 폴 켈리, 제이콥 리스 등등. 그런데 실제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암튼 실존 인물과 소설 속 인물을 비교하는 재미도 꽤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19세기 말의 뉴욕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들에게는 두 배의 재미가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우선 주인공(실제적으로 수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은 크라이즐러라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너무나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뉴욕시민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물론 그런 그를 루즈벨트 경찰총장(후에 대통령이 되죠)은 인정을 합니다. 기존의 미해결 사건들, 그 당시의 수사방식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와 친구들)를 끌어 들여 비밀리에 사건을 수사합니다. 그리고 크라이즐러의 친구이자 기자인 무어, 루즈벨트가 신임하는 아이잭슨 형제 경찰, 루즈벨트의 여자 비서(경찰청에 근무하는 최초의 여자라고 하네요)이자 형사인 ‘새러’ 등이 함께 합류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추적하는 악랄한 미친 연쇄살인마. 어른도 아닌 어린 여장 매춘 소년들을(참고로 그 당시에는 이런 어린이를 보호할 만한 법도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민자의 자식들은 먹고 살기 위해 여장 매춘부로 몸을 팝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은 몹시 마음이 아프더군요) 잡아다가 잔인하게 살인합니다. 눈알을 도려내어 물 근처에 버려 버립니다. 흔적도 없이 말이죠. 원한이나 복수도 아닌 이런 살인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해결하기 힘든 사건이었을 것 같아요.

  매력적인 연쇄 살인마.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소설은 꽤나 흥미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바로 연쇄 살인마도 그런 매력적인 요소 중의 하나인데. 암튼 이야기하면 재미없으니 이 연쇄 살인마에 대한 내용은 건너뛰겠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수사 기법의 등장(물론 지금 시점에서는 당연한 수사 기법이지만요) 역시나 흥미롭습니다. 심리적인 수사와 증거는 채택되지 않고, 오로지 물적 증거만 채택되던 시기에 굉장히 혁신적이고 과감한 수사 기법이지 않나 생각합니다(프로파일링 기법도 넌지시 언급됩니다). 물적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물적 증거를 찾기 위해 범행 동기를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사회 심리학적으로 범인에게 접근한다고 할까요? 끊임없이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수사를 진행해 나갑니다. 그런 과정이 무척 디테일하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소설 속에서 중간 중간 묘사되는 19세기 말의 뉴욕의 역사들(사실 부끄럽게도 자유의 여신상의 의미를 이 소설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의 역사, 뉴욕 이민자들의 빈곤한 삶, 여장 매춘 소년들의 매춘 행위, 그리고 범죄와 결탁한 경찰 권력 등등 이 소설을 읽으면 미국의 역사가 다시 보이게 되더군요. 그리고 과학 수사 기법, 프로파일링, 페미니즘(크라이즐러 박사와 경찰총장 여자 비서 ‘새러’의 대립), 지문감식법, 사이코패스, 부모-자식 간의 관계, 종교, 심리학적 결정론 등 온갖 것들이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사이드에서 살아 꿈틀거립니다. 결코 혼란스럽거나 난잡하지는 않습니다.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고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범죄소설 좋아하시는 분들 느긋하게 읽어보세요. 단, 빠른 스토리 전개의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느긋하게 크라이즐러 특별 수사팀의 사건 추리를 따라가 보세요. 확실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범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동정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마세요. 어린 아이들을(그것도 먹고 살기 위해 여장 매춘부로 몸을 파는 아이들)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마. 책장을 덮으면, 쉽게 단정 짓기는 힘들 겁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그런 심리학적 견해에 대해서 부정적인 분들도 있겠지만요. 죄를 결코 용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범인은 ‘누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닙니다. ‘왜?’가 중요한 소설이죠. 물론 역시나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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